검마회귀(劍魔回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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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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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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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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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DUMMY

쿨럭, 몇 번이나 쓰러진 걸까.


천흉의 그림자가 눈앞에서 짙었다. 거대한 장벽과도 같았다. 손가락 하나로 타인을 희롱하고 주무르는 극강한 힘의 주인.


뼈저리게 느껴진다. 검마로서 보냈던 승리의 역사 따윈, 한낱 옛이야기에 불과하다고.


탁.


[호오. 더 이상 달려들지 않는 건가.]


굴욕감은 없다. 뚜렷한 패배에 모든 자존심을 내리고 간절히 빌어야 한다. 난 무릎 꿇으며 애원했다.


“살려줘.”

[목숨을 구걸한다라.]

“마공을 익히든, 네 제자가 되고 흉마전에 입회하든 다 할게. 그러니까 제발···.”


잠자코 듣던 천흉이 말문을 뗐다.


[너한테 흥미가 동한 순간도 있었지.]


요악스러운 안광이 빛났다.


[하지만 넌 본좌가 품을 그릇이 아니다. 반골 기질로 꽁꽁 무장했지. 와신상담이 너무나 분명한데 어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여기서 죽이는 게 옳다.]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예리한 통찰력이라고 부를 것까지 없었다. 나의 굴복은 시간을 벌기 위한 잠시간의 연기였다. 어떤 수모를 겪더라도 굴하지 않으리라. 그 성정을 천흉도 느꼈겠지.


역시 쉽게 통하지 않았다.

상황은 절망적이다. 단언컨대 승산은 없고 죽음은 몹시 가깝다.


난 마지막으로 협상을 시도해봤다.


“난 죽어도 좋아. 하지만 아버지만큼은 살려줘.”

“소백아···!”

“사공자도 같이. 저 녀석은 이래 봬도 한씨가주의 아들이거든. 죽인다면 필히 그의 분노를 살 거야. 그는 자식을 위해 꼭 복수할 인간이니 살리는 게 좋아.”

[한씨가주라··· 그건 알겠다. 살려주지.]


천흉은 즐거워하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네 아비는······.]


쿵.


불현듯 아버지께서 무릎을 꿇으셨다.


“아니오, 날 죽이시오.”

“안 돼요. 아버지···!”

“난 이미 살 만큼 다 살았소. 하지만 소백이만큼은 아니 될 일이오. 부디 선처를 부탁하오.”

[부자간의 눈물 겨운 사랑이로군. 좋다.]


천흉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자식이 먼저 떠나는데 어느 부모가 마음 편히 있으리라. 길동무로 보내주마. 저승에서 단란하게 포옹이나 해라.]


우웅.


빛무리가 모인다.

제길, 설득도 안 되는 건가.


“육시랄. 이제야 운명을 바꿔낼 줄 알았는데, 난데없는 날벼락이 떨어졌군.”

[운명이라, 서정적인 개념을 믿는군. 하지만 작금과 같은 상황에 네가 부르짖어도 이상할 게 없다.]


비웃기라도 하는 걸까. 천흉은 신나게 떠들었다.


[어찌 하늘을 운명과 동일시 여기며 경외하는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힘을 지녔기 때문이지. 그리고 이는 굳이 하늘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넌 무림을 왜 강호라고 부르는지 아는가.]

“···작은 발걸음에도 수면이 들썩이는 게 육안으로 보이니까.”


휴식이 필요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좋다. 난 맞장구치며 답했다. 천흉도 그 속셈은 꿰차고 있으리라.


[그렇다. 강과 호수는 잔잔하기에, 조그마한 요동에도 그 여파가 표면 위로 선명히 드러나지. 허나 광활한 세상에서 온갖 풍랑은 일상적이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밑을 가리켰다.


[무수한 물결이 서로를 잡아먹고자 뒤엉키는 강자의 세계, 그것이 바로 강호(江湖)다.]


난 물었다.


“강자의 뜻이 곧 운명이라는 건가.”

[그래, 약자는 그들이 지어낸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떠밀리고 몸부림치며 마침내 침몰하리라. 오늘의 희생양은 바로 너다.]

“너도 한때는 약자였을 터,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약자에 불과하지. 그럼에도 아량 따위는 일절 없는 건가.”


천흉은 웃었다.


[그러니 더더욱 이 순간을 만끽해야지. 더 강한 파도에 삼켜지기 전에, 더 거친 격랑이 탄생하기 전에 나보다 하찮은 잡것들을 철저히 짓밟고 응징한다.]

“타인을 궁지로 모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지.”

[즐거움.]


천흉이 외쳤다.


[자, 떠올려봐라. 막강한 힘이 나의 것이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미간이 뚫리고, 손짓 한 번에 무더기의 인간이 개미처럼 죽어 나간다. 생명은 부질없고 발버둥은 그저 가소로운 반항에 그친다. 개개인의 일생을 결정짓는 나는, 바야흐로 생사를 관장하는 강호의 사신이니라.]

“넌 신이 아니다. 그럴 자격은 더더욱 없다.”


천흉이 웃었다.


[그게 어떻다는 거지? 너야말로 나와 논할 자격이 없다. 죽음의 운명에 수긍하라.]

“아니, 너와 맞서겠다.”


내가 노려봐자 천흉은 한껏 비웃었다.


[사소한 물결이로다. 넌 할 수 없다.]

“아니, 너와 맞서겠다.”


천흉이 다시금 외쳤다.


[일개 하수여, 네가 평생 갈고닦은 기술은 나한테 닿을 수 없다. 네 저항은 전부 무용하다.]

“아니, 너와 맞서겠다.”


하, 하하. 천흉이 격렬히 대소했다.


[수많은 물결이 끝내 사그라들었으나 난 여전히 살아남았다. 무려 이십 년의 고매한 마(魔). 본좌가 바로 노강호, 좁은 중원의 물줄기를 압제하는 거대한 운명이니라.]

“한낱 인간이 운명을 자칭하지 마라. 네가 정의하는 운명이 핍박의 역사라면, 난 그 운명을 거부하겠다.”

[어리석다. 운명도, 격랑도 항거할 수 없다.]


난 거칠게 반박했다.


“운명은 불가항력이다? 아니야. 네가 간과한 게 있어.”

[근거 없이 의문을 제시하는가.]


난 고개를 저었다.

내가 바로 그 기적의 산증인이다.


회귀 자체는 어떤 강한 의지가 내린 선물일지 모르지만, 이후의 선택은 오롯이 내가 고민하고 결정하여 내렸다.


“운명은 틀림없이 바꿀 수 있어. 이 손으로, 작은 선택이 모이고 모여서!”

[우습구나.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나를 이기겠다고? 본좌가 네 절망이로다. 그래도 물어보지.]


천흉이 질문을 던졌다.


[하수여, 넌 나에게 무엇으로 맞설 테냐.]


우습게 느껴지는 건 이쪽이었다. 난 천흉의 물음에 곧장 답하지 않고 대신 누군가를 바라봤다.


아버지, 후회란 이름의 매듭.

저 일방적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화를 거부하였다. 그 잠깐의 참을성을 발휘하지 못해 모든 미래가 수틀렸다.


허나 두 번째 주어진 삶에서 내 행적은 전부 달랐다. 아버지와 오해를 풀었다. 숱한 인연을 만나 한씨세가라는 보금자리에 드디어 정을 붙였다. 그렇게 내 편을 만들며 미래를 대비해나갔다.


비록 귀월객은 놓치고 말았지만, 난 차근차근 운명을 바꿔나가고 있던 것이다.


“아버지, 제가 분명히 말했죠. 망상과 같은 삶을 검으로 증명해내겠다고.”

“소백아··· 안 된다···.”


피식, 자괴감이 든다. 이런 건 기회가 두 번까지나 주어지지 않아도 가능했다. 어쩌면 지난 생에서도 내가 조금만 더 현명하고 성숙했으면 충분히 결과가 달라졌겠지.


그리고 그 말은 지금에도 적용된다. 후회를 할 바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저벅.


걸음을 내디디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 말했다.


“한하진, 검기는 비효율적이라고 했지. 허나 삶을 살아가는데 효율을 따질 필요는 없어. 가슴이 시키는 대로 충동적인 판단을 내리면 돼.”

“너···.”

“잘 봐. 별빛을 품은 지고의 칼잡이가 네 눈앞에 있으니까.”


저벅, 저벅.


몸이 휘청거린다. 그럼에도 난 천흉에게 다가갔다. 끌어올려진 입꼬리. 내 선언을 한낱 유언으로 치부하는 모양새였다.


[그래서, 내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있느냐. 이 절망적인 난관을 넘어설 방도는 있고?]

“후회 없을 선택. 그걸로 이미 운명은 바꿨어. 그렇지만 여기서 종착을 맞이하긴 싫어. 더 찬란히 이루고 싶은 바가 남았어.”

[운명을 바꿨다라?]


검마, 나의 죄.

옛 넋두리가 오랜만에 흘러나온다.


“마공으로 이성을 잃었지. 피아식별을 하지 못한 채, 앞을 가로막는 모든 걸 검으로 베어버린 적이 있었어. 무고한 이들도 많았지. 그들도 같은 심정으로, 날 원망하며 노려봤으려나.”

[음···?]


스륵, 검이 손에 들린다.


“네가 흉폭한 마인이듯, 나도 누군가에게 칼을 쥔 마귀였어. 그 바보 같은 복수귀는 애꿎은 분풀이를 하며 최악의 결말을 맞이했지.”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군.]


한때 올곧은 검을 품고 싶었다.

하지만 검은 잔혹했다.


누군가를 베고, 찌르고, 죽이며, 슬픔을 핏물로 뿌린다. 오로지 살인을 위해 탄생한 도구. 활검 같은 구명의 칼질은 그저 치기 어린 망상이겠지.


칼잡이의 품위를 찾아내기엔, 존재도 목적도 처음부터 타인의 피를 마시는 것이어서, 그 갈피까지 너무 흐릿했다.


그래도, 그래도······

내 운명이 칼잡이이고, 칼을 쥐어야 한다면.


“더 이상 그런 과오를 범하진 않을 거야. 이곳에서 맹세하지. 칼질은 결국 누군가를 상처입히는 것. 그 태생적인 사명만큼은 도저히 거역할 수 없다면, 너와 같은 거악을 베기 위해···.”


─기꺼이 칼질하겠노라.


하하, 광기 어린 음성이 퍼졌다. 내면의 밤그늘을 떨쳐버리며, 무모한 호승심 속에서 검마의 웃음꽃이 활짝 피어올랐다.


개전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발을 내딛자, 흑빛 벼락이 꽃내음을 퍼트렸다.


파앗.


암향흑뢰표(暗香黑雷飄)


두 스승의 걸음이 강호를 질주했다. 허공에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수차례 쏘아지는 손가락 바람을 피해다녔다.


[기어코 맞설 테냐.]


천흉은 쉽게 거리를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빛줄기가 어깨를 스친다. 그리고 절대 피할 수 없는 경로로 찾아올 때, 무당산의 검로가 나만의 해석으로 펼쳐졌다.


태극요허승람(太極料虛昇籃)


금빛 강기(罡氣)의 선이 구부러졌다. 계곡의 물줄기와 같은 곡선이 정방 위로 촘촘히 그려진다.


[흠!]


인간은 어째서 별빛을 갈망하는가. 만약 별이 인간의 일생이라면, 별빛은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는 영광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검마의 야성이 곁에서 속삭였다.


불멸의 기록을 새겨라. 운명에게서 승리하고, 별하늘을 운치 있게 올려다보며 옛 추억으로써 회상하는 거다.


자, 어서 눈앞의 마인을 사냥하라.


‘놈은 아직까지도 방심하고 있어.’


초고수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후천적인 오만함이었다. 반면 이쪽은 실낱같은 기회라도 잡기 위해 집중력이 한없이 고도화된다.


적의 부주의를 읽고, 심계를 간파한다.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계산한다. 이내 승리의 논리가 세워진다. 일단은 천흉이 검격의 사정권에 들어가야 한다.


‘필중의 시기를 노려야 해.’


검흔도가 확장된다. 기감은 예민해지고, 두뇌의 사고는 고열을 머금은 채 가속화된다. 예상을 벗어나 뚜렷한 예지의 영역에 들어선다.


움직임도 터무니없는 요구에 맞춰진다.


[네 객기는 무용하며 절망은 여실하다.]


천흉은 거듭 외쳤다.


[굳센 의지만으로 어떠한 것도 이룰 수 없다. 그저 벌레의 발버둥으로 그치고 말지.]


허나 그도 분명 이상함을 느꼈을 거다.

치명상이 되어야 할 공격이, 조금씩 엇나갔다.


갈비뼈를 부수려하면 대신 살점이 뜯긴다.

미간을 노리면 턱이 부러진다.

심장을 앗아가면 폐부가 대신 찢긴다.


모든 수싸움에 이변이 생겼다. 기분 탓이나 실수, 행운이라고 결코 치부할 수 없겠지.


[네 놈··· 무슨 짓을 벌이는 거냐.]


천흉의 얼굴이 오늘을 통틀어 가장 일그러졌다. 방심이 끝난다. 더 이상 날 하수로 취급하지 않는다. 손가락이 빗발치며 놈의 전력이 드러났다.


그때는 이미, 난 흑백의 세계로 진입하였다.


사아앗─


거미줄처럼 얽힌 흐름이 보였다. 현재 가진 수단으로, 천흉을 쓰러트릴 길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허나 저기까지 도달하고, 필중의 일격을 날릴 경로만큼은 분명히 존재했다.


문득 시체가 된 홍연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초고수 정도가 되면 혜광심어가 아니어도 비슷한 일이 가능해. 의념이 저절로 새어 나오거든.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초식명을 들을 수 있는 것과 원리가 비슷하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말한 것이다.


통상적인 청력으로 본디 들을 수 없는 마음의 음역이, 자신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렸다. 그것도 특이하게 곡조의 형태를 띠며 말이다.


─깊은 별밤에 잠 못 이루건만[深星夜不眠].


검의 명문가이자 칼잡이들의 요람. 한씨세가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전부터 이 노래를 듣고 자랐다. 기원조차 불분명한 노래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다.


─들녘의 풀잎마저 소란스럽구나[野草枼騷亂].


장면을 그려봐라. 밤하늘 위로 흐드러지게 피는 별빛. 풀잎을 뒤흔드는 무인의 발걸음.


─봄날 삭풍이 잔불을 꺼트리니[春朔風熄滅]······.


어째서 봄날에 겨울바람이 부는가. 아마도 청춘을 거두는 가혹한 시련의 바람이었으리라.


화자도 그랬을 거다. 한차례 사악한 불길이 집어삼킨 뒤 멍하니 바라봤겠지. 폐허가 된 장원을 보며 이를 악물었으리라. 같은 경험을 나누었기에 필설할 수 없는 공감대가 있었다.


[난 거대한 파도다.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지엄한 흐름이로다!]


일갈(一喝)이 크게 울려퍼졌다.


천흉의 앞까지 도착한 순간, 그의 지풍이 참혹하게 쏘아졌다. 몇 발이고 내 몸을 꿰뚫는다. 신체 곳곳에 구멍이 생기고, 핏물과 함께 육편이 흩날린다.


몸이 부질없는 맹세처럼 바스러졌다.

죽음이 다가온다.

동시에 활로가 보였다.


한낱 인간이 거대한 운명 앞에서··· 우연의 티끌을 기예로써 모으고 모아, 미세한 변화를 통제하고 통제해······ 그렇게 긁어내어 빚은 단 한 번의 기회.


이 일격만큼은 필연이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저 호신강기를 깨부술, 절삭력이 필요해.’


검객이라면 누구나 아는, 자격만 된다면 누구든 도달할 선망의 경지.


검마는 이번 생에서 단 한 번도 별빛을 피워본 적이 없다. 물론 단순히 색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아직까지 흑빛으로 덜 물들었다.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순백의 진기. 다만 자격지심이 심중에 마(魔)로써 자리잡았다. 회의감과 망설임이 진정한 효능을 약화시킨다. 확신은 없다.


그래도 묻는다.


‘난 부끄럽지 않은 칼잡이가 될 수 있는가.’


구태여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단순한 행동이면 족했다.


화아아─


[설마 저건, 믿을 수 없다!]


십이경맥과 기경팔맥은 흑색 도화지였다. 저 새까만 배경 위로 덧칠하기 위해선 밝은 도료가 필요했다.


가슴에 품은 별. 소망을 담아 하나, 둘, 셋······ 올려보낸다. 줄기를 뻗듯 각 별에 온갖 선이 연결된다. 그렇게 허약한 육신을 밤하늘로 삼아, 내 마음에 별자리가 생겨났다.


동시에 부족한 내공을 보충하듯, 외부의 자연지기마저 기이한 흡인력으로 빨아들여 찰나의 심법을 통해 정제했다.


그 빛이 지금 바깥으로 발광한다. 기분 좋은 소음과 동시였다.


우우우웅──!


검명이 울린다. 무한한 진동의 조합이 존재함에도, 내 의지와 공명하여 오차 하나 없이 동일한 마음을 표출한다. 그렇게 생사결의 순간에 퍼진 격전의 고동은······ 기나긴 모멸의 끝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 누가 미덥지 않은 망상을 꿈꾸었는가.

어찌 어린 날의 순진한 포부로 치부했지?


칼자루를 쥔 팔을 매개로 아스라이 칼날에 빛이 스며든다. 이내 날붙이를 뒤덮은 빛무리가 점차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밀도가 몹시 짙었다.


‘흑빛도 별빛이라고 했나. 그래도 역시 새하얀 게 더 좋아. 멋있잖아.’


그리고 마침내······


별빛의 색채가 칼날에 응집된다. 굽이치는 은하수와 같다. 그렇게 새하얀 광채가 물결치며, 무지갯빛마저 어렴풋하게 들썩였다.


─어느새 칼날에 별빛이 담겼네[劍身含星光]···.


검마의 숙원이, 내가 꿈꾸는 미래가 칼로써 증명된다. 별밤에 영원토록 메아리치고, 선조의 노랫가락을 끝맺으며 말이다.


내 영혼마저 별이 흐르며 찬란히 물든다.

이내 칼날이 암운을 잘라낸다.


절예(絕藝)

“검기성강(劍氣成罡).”

일섬(一閃)


─────푸콰아악!


빈틈없는 호신의 갑주가 쪼개지며, 천흉의 가슴팍 위로 핏줄기가 솟구쳤다.


······


강호는 잔혹하다. 죽음은 가까우며 절망은 일상이다. 도피는 부질없고, 항거할 수 없는 시련이 때때로 찾아온다.


그래도, 별빛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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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명검주 승단 +2 24.09.04 422 6 13쪽
35 벌과 나비 24.09.03 446 4 14쪽
34 별빛과 칼의 노래 24.09.01 468 7 12쪽
33 격전 24.08.31 467 6 16쪽
32 집결 24.08.30 453 6 16쪽
» 그래도··· 24.08.29 449 9 16쪽
30 강호는 잔혹하다 24.08.29 447 6 12쪽
29 맹세는 바스러지니 24.08.27 466 8 17쪽
28 복수는 미숙하고 24.08.26 511 10 18쪽
27 귀월객 24.08.25 486 9 16쪽
26 혈령탄 24.08.24 500 8 13쪽
25 가르침 (2) 24.08.23 560 8 17쪽
24 가르침 +1 24.08.22 561 9 15쪽
23 사공자 (2) 24.08.21 569 11 10쪽
22 사공자 24.08.20 607 10 18쪽
21 깨달음 24.08.19 652 11 14쪽
20 살생부 (2) 24.08.18 673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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