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마회귀(劍魔回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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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휘.
작품등록일 :
2024.07.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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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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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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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동

DUMMY

검로향은 가문의 정원에서 수십 리는 떨어진 산맥에 있었다. 바깥에서 언뜻 살펴만 봐서는 내부의 크기가 짐작되지 않았다.


한대명의 등 뒤에 걸쳐진 배낭과 안쪽 보따리. 한소백이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그 보따리는 뭔가요.”

“보급이란다. 총관부에서 가는 김에 채워 넣으라더구나.”


깎아지른 협곡 아래로 도관처럼 지어진 작은 건물. 그 옆으로 사십여 장 거리를 둔 벼랑은 인위적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다정한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검로향의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


“반갑네. 검로향에 도전하러 온 본가의 혈족들이지? 노부는 이십여 년간 이곳을 지킨 한문정이라고 합세.”


검로향의 관리인이 웃으며 맞이해주었다. 강호 일선에서 물러난 한씨세가 원로원(元老院) 소속이다.


“마음의 준비는 다 했는가? 입구까지 안내해줄 수 있지만, 출구를 찾는 건 전적으로 자네들의 몫이라네.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

“믿지도 않을 거짓말이군요.”

“쯧. 이런 시험에는 진심으로 도전해야 하건만, 불성실하게 임하면 어떠한 것도 얻어낼 수 없다네. 대명이 자네를 구출했을 때가 아직도 떠오르는군.”


두 사람은 구면이었다. 한대명은 후기지수 시절에 이곳을 도전한 적이 있었다.


“통과하는 이들이 몇이나 된다고 그러십니까. 어서 입구로 데려다주시지요.”


사파나 마도 세력도 아닌 무림세가의 수련동. 통과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식으로 극한까지 몰아붙이지는 않는다.


검로향의 시련 대부분이 홀로 수행하는 경우가 많으니, 관리인은 주기적으로 수험자의 생사를 확인하고 유사시 구조를 맡는다.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된 셈이었다.


“자네는 여전히 버릇없게 구는구만. 뭐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한데······ 노인네의 주접은 이쯤 해주지. 따라오기나 하게.”


관리인의 뒤를 밟으니, 고풍스러운 무늬와 그림이 음각(陰刻)된 벼랑 앞으로 도착했다. 이것이 바로 검로향에 진입하는 석문이었다.


짤막한 설명이 들려왔다.


“여기서부터 시험은 시작되었다네. 자네들은 두 개의 문 중 하나를 정하여 들어갈 수 있지.”


오롯이 근력으로 여는 문.

그리고 내력을 주입하여 여는 문.


“이 문이 얼마나 무겁길래 시험으로 정해진 겁니까. 내력으로 기관진식의 구조를 건드리는 것도 여간 만만치 않을 텐데.”

“한 번 밀어보게나. 어차피 내부는 하나로 연결되어있으니 둘 다 열어도 상관없네.”


한소백은 자신 있게 걸음을 내디뎠다. 때마침 경지를 돌파하고 비약적인 힘을 얻은 상태.


석문을 밀자 전완근이 두드러지게 부풀어 올랐다. 장딴지 비복근마저 내공이 집중되며 온 무게가 실렸다. 전신이 아릿해지는 통증이 느껴진다.


그그극.


땅바닥이 그을릴 정도로 마찰이 이루어졌다. 전체적으로 거무스름한 걸 보니 이런 경우가 예삿일이 아닌 듯했다.


“무식하게 무겁군요. 사람이 할 짓이 아닌데요? 가능은 합니까.”


황급히 포기 선언을 하였다. 석문의 틈새를 보니 기껏해야 세 치 정도 민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한대명이 방긋거렸다.


“강호 역사를 살피면 암살 명가에서 이런 방식의 시험이 있었다고 들었다. 문의 무게가 단계별로 급격하게 늘어나는 식이었지.”

“기밀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살수들인데 명문세가? 그런 곳이 어디··· 아.”

“사천당가는 아니다. 그 정도 수준도 못 되니까 결국 멸문지화를 겪었지. 뭐 당문도 이젠 팔대세가가 아니지만.”


한소백은 장난스럽게 물었다.


“오늘 아버지의 힘 보는 겁니까.”

“이 정도야 거뜬하지. 다만 오늘은 무릎이 쑤시는구나. 세월의 흐름도 야속하지.”

“문을 미는 것과 무릎이 쑤시는 게 무슨 상관인지여.”

“하체. 하체가 중요하지, 이 녀석아.”


근력이 부족하니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한씨세가 무인들 대다수가 내력으로 문을 열어야 했다. 진기 탐지와 미세한 조율을 문 앞에서부터 장구히 수련해야 하는 것이다.


스륵.


문의 중심부에 손바닥을 얹었다. 원형으로 패인 홈을 따라 내력이 스며들었다. 공력 줄기가 내부 구조를 샅샅이 파헤치더니, 이내 기관장치의 핵심을 건드렸다.


구구구궁──!


거대한 석문이 양옆으로 갈라진다. 동굴 특유의 매캐한 공기가 격하게 덮쳐왔다. 관리인이 크게 감탄하였다.


“대단하군. 보통 칠주야 정도는 이 앞에서 머물며 돌문의 구조를 탐색하기 마련인데 이리 단시간에 끝마치다니! 미리 설계도를 익힌 걸로도 보이지 않아.”

“제 아들입니다. 하등한 원숭이들과 격이 다르지요. 같은 선상에 두는 것도 불쾌합니다.”

“내가 소문에 어두운데, 자네가 언제부터 제대로 기른 건가?”


한대명은 침묵했다. 부친이 겸연쩍어하기 전에, 한소백은 입구 안을 가리켰다.


그러자 관리인은 두 사람에게 인사하며, 근력의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네들이 이 안에서 유의미한 가치를 얻어내길 바라네. 그럼 좋은 수행 시간이 되기를.”


직후, 관리인의 손가락이 석문 위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위태롭게 잡고 당겼다. 한소백이 밀었던 틈새가 서서히 닫혔다.


그그극··· 쿵!


‘무슨 악력이 저렇지?’


대수롭지 않게 보여주는 모습이 경악스러웠다. 심법 자체가 외공이나 강인한 힘을 얻는 데 특화된 게 분명했다.


한소백은 미간을 찌푸리며 검로향으로 진입했다. 광대한 석굴 내부는 몹시 쾨쾨했다. 열렸던 문이 기관진식에 의해 스스로 닫히자,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야명주를 비치할 돈이 없답니까?”

“그거 몸에 해로운 거란다. 수명이 단축된다는 풍문이 있던데. 그리고 조명도는 괜찮단다.”


쿠구구···.


벽 너머로 미세한 소음이 울렸다. 그러더니 어딘가에서 빛이 드문드문 새어들어,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부 보존을 위해 특이한 장치를 설비한 듯했다. 동시에 시험이 시작되었다.


구구구우······!


요란한 굉음이 바닥에서 들려왔다. 공간마저 일렁거리며 안개가 낀 것처럼 주변이 뿌예졌다. 석굴과 연결된 기문진법이었다.


“앞을 보거라.”


그때 한대명이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허공에 웬 글귀가 적혀 있었다.


─베어내면 길이 열리리라.


시험의 내용이 분명했다.


동시에 철컹하면서 바닥이 열리며 내려갔다. 그리고 널찍한 철판이 솟아올랐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변화가 있었나? 아니면 저 철판을 베어내는 건가.’


한소백이 살짝 긴장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자 한대명이 이번에는 벽을 가리켰다. 멋쩍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저것 때문일 거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법 탓에 흐릿했지만, 누군가 시험과 별도로 남긴 글귀가 보였다. 한순간에 진이 빠지기 시작했다.


- 준비된 기관진식의 배치물이 전부 소진되었으니, 수험자는 스스로 진법을 깨부숴라.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뭡니까.”

“흠, 흠. 세월이 야속한 탓이지. 이곳 검로향은 한씨세가가 성세하기 전부터 존재했을 정도로 오래되었으니.”


한대명이 민망하다는 듯 연신 헛기침했다.


“아버지 때는 어떠셨습니까. 세 번째 관문까지 가셨다고 들었는데.”

“나 때도 다 소진되었지. 처음 저 글귀를 읽었을 때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원.”


무릇 검로향 같이 기관진식과 연동된 구조물은 오밀조밀하게 설계되기 마련이다. 하물며 산 아래의 동굴이라면 설계도를 알아도 건드리기가 난감하다.


그런 이유로 두 번째 관문에 필요한 도구는 애진작에 소모되고, 보충되지 못했다.


“하긴 후대로 갈수록 기관진식을 복구하기 힘들어질 테니까요. 아예 처음부터 새로 만들면 모를까.”

“원래는 이곳으로 오는 길에도 함정이 있었던 걸로 안다. 발판을 밟으면 화살이 나온다던가 말이다.”

“어쩐지 뭘 자꾸 건드려도 반응이 없더라고요. 괜히 긴장했네요.”


한씨세가가 검신교에 편입되고 본격적으로 세를 키운 지 백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전에도 규모와 명성이 미약할지언정 대대로 존재해왔고, 시험에 도전한 자들도 수없이 많았다.


“그래도 이 이후부터는 곤란해할 만한 건 없단다. 안심해도 좋아.”


본래 시험 내용은 아마도 베어내기 까다로운 무언가를 베는 것이었으리라. 진법 자체를 파해하는 걸로 바뀌었으니 난도 자체는 전보다 터무니없이 올라갔다.


“별로 어려울 건 없네요.”


진법의 구조와 취약점이 감지되었다. 한소백은 무심하게 검을 휘둘렀다.


스각─ 째앵!


도자기 파편이 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자욱한 안개가 사라졌다. 진법을 깨부숴낸 것이다. 이후 가로막힌 문 옆에 석면을 누르니, 다음 관문으로 향하는 통로가 열렸다.


“배치물이 전부 소진될 걸 염두하고 설계했나 보네요. 이럴 거면 처음부터 잘 만들 것이지···.”

“후대로 갈수록 수준이 더욱 올라가야 조상님들도 좋아하시겠지.”


세 번째 관문으로 향하는 길은 몹시도 길었다. 산맥 지하의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는 듯했다. 이내 넓은 광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건··· 전부 검흔(劍痕)이네요?”


검법의 흔적이 벽에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일정 간격을 둔 걸로 보아, 각기 다른 검법인 게 분명했다. 각 검흔의 밑으로는 목갑(木匣)이 배치되어 있었다.


전부 합해서 열 개였다.

목갑을 열자 잘 보존된 검이 있었다.


─검과 뜻을 일치시켜라.


세 번째 시험의 내용이었다.


“검흔을 바탕으로 검법을 익히고, 목갑 안의 검에다가 검명(劍鳴)을 울리는 겁니까?”

“그래. 열 가지 길 중 원하는 걸 선택하는 거란다. 이후로는 일직선 통로로 같은 검법의 초식을 익히게 되지. 무슨 원리로 작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검명과 공명하는 기물이 있을 겁니다.”

“기물과 공명한다라?”


한소백은 검을 유심히 살피며 들어올렸다.


“특정 물체에 검명을 주기적으로 들려주어 영성(靈性)을 갖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검명과 공명하게 되고, 그때 일어난 변화를 기관장치가 감지하는 것일 테죠.”


그것조차 일반적인 검명을 의미하는 건 아닐 테다. 열 자루의 검은 모두 신병이기. 고유한 진동수를 품고 있다.


뚜렷한 자아도 가지고 있는바. 애당초 검명을 울리기도 어렵고, 강제로 울려도 기관진식과 공명하는 울림이 아닐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검흔을 분석하여, 그 안에 담긴 진정한 검의(劍意)를 깨우치고 신병(神兵)과 뜻을 합일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열 가지 모두 상승의 검법이지. 본가에도 당연히 전해졌겠지만, 배울 자격조차 주지 않아. 이곳에서 스스로 얻어내야 하지. 난 예전에 익히다 포기한 검흔을 궁리해보도록 하겠다.”


한대명은 맨 오른편에 있는 검을 쥐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검법과 검의를 다시 떠올리는 수행이었다.


한소백도 검흔을 올려다보며 고민했다.


‘무슨 검흔을 먼저 복원해야 하지?’


저벅저벅.


상념에 빠진 채 검로향 내부를 산책했다.


동굴 벽은 수많은 검흔이 새기고도 빈자리가 굉장하게 남아 있었다. 그곳을 이전 방문자들이 글귀를 적었다.


고독한 수련은 따분한 법. 일정 기간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다. 오랜 역사 동안 쓸데없는 낙서가 많이 쌓였다. 그러고도 여백은 충분할 지경이었다.


그중 한 낙서가 눈에 들어왔다.


- 벽곡단 좀 채워 넣어라 게으른 새끼들아. 수련도 못 하고 아사로 뒤지겠다.


광장의 한구석에는 수없이 많은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그중 다섯 개 정도만 벽곡단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보따리가 이거였구나.”


냄새 탓에 벽곡단인 줄은 알았다. 왜 많이 챙기는가 했더니 한꺼번에 채울 목적이었다. 죽배루(竹背篓)라는 이름의 대나무 바구니. 그곳에서 꺼낸 보따리를 열어 항아리를 채웠다.


시간도 넉넉한 만큼 낙서를 살폈다. 오랜 수련에 미쳐버린 자들의 분노와 광기가 엿보였다.


- 저 지랄 맞은 검흔은 뭐냐? 저걸로 검법을 익혀? 그게 가능해? 가문으로 돌아가면 기필코 출제자의 이름을 알아내 위패(位牌)를 태워버리고 말겠다.

- 동감하오. 내가 이곳에서 죽어 귀신이 된다면, 선조 혼령의 목을 뽑아버리고 말 테오.

- 밖으로 나가면 무당파로 달려가서 여기 귀파의 검흔이 있다고 신고해야지. 히히.

- 위에 글귀 남긴 놈 미친 새끼. 진짜로 했어.


구슬프고 광적인 비명이 과거를 뛰어넘어 이곳까지 들리는 듯했다. 한소백은 피식 웃으며 흐뭇하게 글씨를 읽었다.


최근에 적힌 글귀에는 익숙한 이름도 보였다.


- 한군악의 차남 한세형. 이곳을 제패하러 왔다. 나는 꼭 가주가 될 거다!

- 한백린, 선조분들의 역사적 장소에 방문하였다 다시 돌아갑니다.

- 잘 놀다 갑니다, 한백혼.


읽다 보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한소백은 아버지한테 가서 묻자 답이 들려왔다.


“여길 어떻게 빠져나가냐고? 관리인만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가 있는 줄로 안다. 그리고 저기 검명을 울려야 지날 수 있는 다음 통로는, 바깥에서 누군가가 열어줘야 하는 구조지. 물론 검을 들고 갈 수는 있긴 하다. 그렇지 않으면 관리인의 구원을 하염없이 기다려야지.”


세 번째 관문은 몇 단계로 더 나뉘었다고 한다. 각 통로마다 열쇠처럼 검이 존재하고, 계속해서 검흔을 분석하고 검명을 울려 나아가는 구조.


뒷사람을 위해 통로 바깥에 검을 두고 가야 하는데, 들고 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지금도 열 개의 목갑 중 다섯 군데가 비어있었다. 이미 다른 수련자가 관문에 도전 중인 것이다.


한소백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낙서가 눈에 띄었다.


- 낙서 읽느라 수련 소홀히 하지 말라고 내가 지워놨다. 고맙게 여겨라.

- 이십사대 율법당주. 위 범법자 특정 및 체포 완료. 사유, 본가의 역사 훼손 및 평소 행실 불량. 후손들은 반면교사 삼도록.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이 사람들, 여기 장난하러 온 건가요?”

“여기서 검흔을 몇 날 며칠이고 분석하고 있으면 멀쩡한 사람도 정신이 나가기 마련이란다. 나도 그랬고.”


말이 끝나기가 공교로웠다. 한소백은 벽면에 적힌 수많은 글씨 중에서 하나를 발견해냈다. 잠깐 멈칫하고 입을 열었다.


“아버지도 계시네요?”


글귀는 다음과 같았다.


- 한대명, 진유혜.

- 백년해로(百年偕老)를 기원하며.


그리운 이름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가슴이 괜히 뭉클해졌다.


“유백이가 태어나기도 전이니 이십여 년 전이구나. 세 번째 관문의 네 번째 통로까지 도달했었지.”


한대명이 눈시울을 살짝 붉혔다. 잠시 분위기가 서먹해졌다. 모친을 떠나보낸 지가 오 년 전. 한소백의 나이 열 살 무렵이었다.


실제 체감상으로는 삼십여 년이 훌쩍 넘었다. 통곡하게도 얼굴이 흐릿했다. 한낱 초상화 따위로는 그 자애와 미소를 전부 담아낼 수 없었다.


‘어머니···.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그날로 보내줬으면 좋았거늘. 대체 어째서······.’


불끈 쥔 주먹이 잘게 흔들렸다.

입술을 씹은 한소백이 팔등으로 눈가를 닦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루빨리 강해져야겠지. 이 행복이라도 지킬 수 있게.’


관문을 통과할 시간이었다.

목갑이 있는 장소로 거침없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천장에 적힌 희미한 글씨가 돌연 보였다.


이름을 겨우 읽는다.


“칠대가주 한월령··· 검로향 완공(完工)?”


폐검황(閉劍皇)이라고 불렸던 선조.

아무래도 그녀가 이곳을 공사하도록 지시를 내린 듯했다.


그리고 가소로운 문장도 존재했다.


─너희의 선조는 너희보다 뛰어나다.


하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경쟁심이 동하는 도발이었다. 저자의 장담을 짓뭉개고 싶어졌다. 당연히 구시대의 칼잡이보다 후대가 더 월등해야 하는 법이었다.


한소백은 목갑을 열어 맨 왼쪽의 검을 쥐었다. 대응되는 검흔이 벽면에 있다. 눈을 지그시 감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당신들의 후손은 당신들보다 뛰어납니다.’


스릉.


동굴 내부의 미약한 빛이 검신에 맞닿더니 너울거렸다. 한씨가주가 전생에서 보였던 검법이다. 그때의 경험과 검흔이 맞물리며 선명한 도해(圖解)를 머릿속에서 빚어냈다.


칼날에 맺힌 광채가 서리서리 흩뿌려진다. 마치 일심동체와 같이 움직임은 유장하게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검의 궤적은 막힘없이 흐른다.

기뻐하며 호응하듯 검도 바르르 떨렸다.


우우웅.


검명(劍鳴).


칼울림이 사무치도록 짙게 번지며, 허허로운 공동을 칼잡이의 마음으로 가득 채웠다. 이내 칼의 뜻을 더 이상 담아낼 수도, 환희를 표현할 수도 없자······.


──구구구궁!


어서 다음 장면을 보여달라고 재촉하듯, 앞으로 향하는 통로가 열렸다.


작가의말

격조하였습니다. 추석 연휴 때 비축분을 많이 쌓아야겠네요. 즐거운 한가위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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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명검주 승단 +2 24.09.04 441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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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별빛과 칼의 노래 24.09.01 490 8 12쪽
33 격전 24.08.31 487 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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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그래도··· 24.08.29 471 11 16쪽
30 강호는 잔혹하다 24.08.29 467 8 12쪽
29 맹세는 바스러지니 24.08.27 485 9 17쪽
28 복수는 미숙하고 24.08.26 530 10 18쪽
27 귀월객 24.08.25 503 9 16쪽
26 혈령탄 24.08.24 517 8 13쪽
25 가르침 (2) 24.08.23 576 8 17쪽
24 가르침 +1 24.08.22 578 9 15쪽
23 사공자 (2) 24.08.21 587 11 10쪽
22 사공자 24.08.20 628 10 18쪽
21 깨달음 24.08.19 677 11 14쪽
20 살생부 (2) 24.08.18 699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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