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 귀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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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
작품등록일 :
2024.07.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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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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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 (2)

DUMMY

“그러십시오.”


이량흔의 말에 장요령은 웃음을 지으며 움직였다. 1층에 도착해보니 상황은 더욱 황당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바닥엔 머리 없는 시체가 널브러진 채 마룻바닥을 피로 적시고 있었으며, 거구의 사내는 소면을 먹으면서 루주를 칭찬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런 소면은 처음 먹어보는구려.”


“그럼요! 항주 제일루는 하급 음식이라도 허투루 하지않습니다요. 이 소면으로 말씀드리자면 신선한 전복과 새우를 아낌없이 넣어서 국물을 푹 우려냈습죠. 이런 음식은 제아무리 황제께서 기거한다는 북경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요리입니다.”


왕삼은 연거푸 허리를 조아리면서 아부를 떨었다. 사실 속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만. 그 귀한 재료를 고작 소면이나 해 먹는 데 낭비한다니. 그러나 상대가 상대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저 야수가 날뛰지 않고 신사적으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처지였다.


“거 팔자 한 번 늘어졌구만.”


장요령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 아부하느라 발그레한 혈색을 보이던 왕삼의 얼굴이 대번 창백해졌다. 거구의 사내는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지막 한 젓가락까지 소면을 먹는 데 여념이 없었다.


“네 놈이 날 보자고 한 놈이냐?”


장요령은 천천히 다가와서 말했다. 사내는 그제야 장요령을 한번 힐끗 올려다보았다.


“닮았구먼.”


“뭐?”


“네 녀석 아버지랑 닮았단 소리다.”


“하!”


장요령은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신교의 수장이나 만인지상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분이시다. 그런데 고작 촌 동네 노인네가 감히 아버지의 이름을 담다니.


“어디 어른 행세를 하며 빠져나갈 생각인가 본데. 감히 내 아버지를 들먹이다니. 잘못 생각했다. 곱게는 못 죽을 줄 알아라!”


장요령은 매섭게 검을 뽑아 들며 사내의 목을 향해 일검을 날렸다. 남자의 목젖을 가르고 지나갔어야 할 검이었건만 검은 우습게도 남자의 두 손가락에 잡힌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장요령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도록 힘을 썼으나 어림도 없었다.


사내는 무슨 강철로 된 검이 썩은 나뭇가지라도 되는 양 가볍게 부러뜨리더니 부러진 검조각을 식탁에 박아버렸다. 그 모습을 본 장요령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검을 단순히 꽂아 넣은 수준이 아니라 튀어나온 것 없이 말끔하게 박아 넣어버리는 용력은 도저히 사람이라 부르기 힘든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뒤에서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보고 있던 이량흔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다급하게 튀어나왔다.


“대협을 뵙습니다!”


이량흔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실수도 이런 실수가 없었다. 다른 자도 아니고 저 작자라니! 20년간 모습을 감췄다곤 하나 얼굴조차 못 알아본 건 크나큰 실수였다.


“1장로 무슨 짓을 하는거요!”


이량흔은 소리를 지르는 장요령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강제로 고개를 숙이게 했다. 아니 숙이게 한 정도가 아니라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으리라.


“아, 기억나는군. 그 교주 옆에 있었던 검객 맞는가?”


“그렇습니다. 대협, 시간이 그렇게나 지났는데도 기억해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이것 참.... 오랜만에 만나서 해후를 풀어야 할 판에 얼굴을 붉히게 되었으니 안타깝네.”


“대공자가 아직 어리셔서 사리 분간이 잘 안되어 그렇습니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지요.”


“어려? 애야. 나이가 몇이냐?”


“씨발, 지금 상황에 나이 이야기가 나와?! 1장로 이거 놔! 놓으란 말이다!”


“어린 것이 맞구먼.”


“그렇지요.”


장요령이 바둥거렸으나 이량흔의 손은 무슨 강철로 된 것처럼 굳건했다. 더불어 이량흔은 혹여 빠져나갈까 두려워 오히려 힘을 더 줘서 장요령이 고개를 바닥에 붙이고 있도록 만들었다. 사내는 겸연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얼굴을 붉힌다는 것이 자네가 안 나타났으면 별일 없이 넘어갔을 거란 이야기라네.”


“예?”


“저 꼬맹이가 날뛰는 거야 잡아서 엉덩이 몇 대 두들겨주면 끝날 일이지만 자네가 엮이면 좀 다르지 않겠는가? 신교에서 나름 위치도 있는 친구가 무림인으로서 취해야 할 예를 가르치는 데 소홀했다는 것이 실망스럽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뭐긴 뭐야, 칼 뽑으란 소리 아니겠나? 설마 앉아서 맞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요?!”


“내 방식 모르나? 무림인이 돼서 힘없는 양민들 핍박해서야 되겠는가? 만약 오늘 1층에 들어온 게 내가 아니었으면 사람 몇은 잡았겠더만.”


이량흔은 어딘가 어긋난 논리에 당황하면서 뒷걸음을 쳤다. 이래서 저 작자하고 절대 엮이지 말라고 했건만!


“물론 억울한 사정은 내 인정하겠네. 그러니 상품을 걸지.”


사내가 품에서 꺼낸 물건을 보자 이량흔의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 되었다. 그것은 새하얀 보옥이었는데 어떤 물건에 끼워져 있었던 것처럼 홈이 파여있었다.


“그걸 어떻게 가지고 계신 겁니까?”


“짐작하는 것이 맞네. 어떻게 할 건가? 내 주먹을 받아내고 살아남아서 이 물건을 받아 갈 것인가? 아니면 도망쳐 보겠나?”


“받아보지요. 삼 초는 양보해 주시겠지요?”


“내가 무림을 떠난 지 꽤 돼서 일 초만 양보해 주지.”


이량흔은 침을 삼켰다. 무림 최악의 괴인이 저렇게 약한 소리를 한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는 검을 뽑아 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단 일격, 일격에 승부를 보지 못 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는 이량흔의 검에는 시뻘건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검강!’


이량흔의 손에서 간신히 벗어난 장요령은 바닥에 짓눌리던 얼굴을 연신 문지르면서 경악했다. 신교제일검이 저렇게 긴장하면서 첫수부터 검강을 펼치다니.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량흔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얼마나 거세게 바닥을 박찼는지 마룻바닥이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을 지르며 파편을 흩뿌렸다.


흐릿한 신형 새로 쏘아지는 새빨간 검날이 사내의 가슴팍으로 쇄도했다. 그러나 날카로운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이량흔의 검은 오른쪽으로 튕겨 나갔다. 어느새 허리춤이 찬 붉은 쇠사슬을 팔에 감은 사내가 가볍게 손을 털어 튕겨낸 것이다.


가슴이 훤히 드러난 이량흔은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이내 그의 가슴으로 사내의 주먹이 작렬했다. 사람과 사람의 살이 맞닿는 소리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폭음이 기루에 있던 사람들의 귓전을 때렸다.


사람들이 다급하게 귀를 막은 손을 내리고 사내와 이량흔이 격돌한 자리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량흔은 자리에 있지 않았고 그가 있던 자리 너머에 있던 기루의 벽이 큼지막한 구멍이 뚫린 채 처량하게 먼지를 뿜고 있었다.


“이거야 원, 또 힘 조절을 잘못했네.”


사내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곤 얼이 빠진 장요령에게 다가가선 일으켜 세우고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그리곤 보옥을 장요령의 손에 쥐여주었다.


“여보게, 루주.”


“예.... 옛!”


“나가서 의원하고 수레 하나만 구해오게나.”


***


“대공자님, 어디로 갈까요?”


“항주, 항주 지회로 가라.”


장요령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했다. 옆에는 몸통에 붕대를 둘둘 감아놓은 이량흔이 누워있었다. 의원 말로는 기적이라고 했다. 늑골이 모조리 박살 났는데 산산조각이 난 지경이라서 아슬아슬하게 내부 장기를 찌르지 않았다던가?


신교 내에서 맞수를 찾기 어렵다는 이가 저렇게 박살이 날 줄이야. 노인의 정체가 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작자가 건네준 보옥은 또 뭔지. 꺼내든 새하얀 보옥은 장요령의 심란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묘한 빛만을 발하고 있었다.


“대공자님!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사색이 된 항주 지부장은 신발조차 제대로 신지 못한 채 튀어나왔다. 그리고 수레에 실린 이량흔의 모습을 보더니 말조차 잇지 못했다.


“그냥.... 그냥 사고가 좀 있었다. 지부에 있는 의원을 불러오너라. 응급처치를 했다만 1장로의 부상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지부장은 풀이 잔뜩 죽은 장요령을 보면서 한 번 더 경악했다. 저 개망나니가 대체 무슨 일인지, 그리고 1장로는 무슨 전력 질주하는 마차에 치이기라도 한 건지 의심하며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지부장은 서둘러 의원을 부르러 뛰어갔다.


그렇게 방 안으로 돌아온 장요령은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교주님.”


공사다망하여 자리를 비우기조차 어렵다는 그 신교의 교주인 장중부가 매서운 눈길로 장요령을 쏘아본 것이다. 자라 새끼마냥 움츠러드는 아들의 모습을 본 장중부는 가볍게 혀를 찼다.


“3년이란 세월 동안 파락호처럼 떠돌아다니는 게 그렇게도 좋더냐?”


“그런 게 아니오라....”


“교주 자리를 두고 싸우는 것이 그렇게도 겁이 난 게냐? 그래서 이렇게 비루먹은 개새끼처럼 꼬리나 말고 다니냐는 말이다!”


폐부를 찌르는 듯한 질책에 장요령은 고개를 조아린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장중부는 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눈쌀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하물며 신교의 대공자나 된다는 녀석이 어디 가서 맞고 다닌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거기에 1장로가 저 꼴이 났는데 너는 몸 성하게 돌아와 방 안에 기어들어 갈 생각이나 하다니. 실로 네놈은 내 자식이라 부르기 부끄럽다!”


“하지만 그 노인네가 주먹으로 사람 머리를 3층까지 쳐올리고 1장로를 박살을 내놨습니다. 제 무공으로는 도저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싸워서 못 이기겠다면 최소한 생채기라도 내고 죽었어야지! 싸우기도 전에 패배를 인정하는 무인은 이미 뒈진 놈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못 봐주겠다는 듯이 장중부는 방을 나가버렸다. 장요령은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일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지 비틀거리며 침상에 걸터앉은 채 바닥이 꺼질세라 한숨을 내쉬었다.


***


“대공자님, 1장로께서 정신을 차리셨습니다.”


“몸은 어떻다더냐?”


말을 전하러 온 시비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좋지는 않습니다만 대공자님께 말씀드릴 것이 있으니 서둘러 모셔 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알았다.”


장요령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터덜터덜 의방으로 향했다. 약초 냄새가 코를 찌르는 의방 가운데에는 이량흔이 온몸에 붕대를 감고 팔에는 부목을 댄 채로 누워있었고 그 주위를 항주 지회장과 의원, 장중부가 둘러싸고 있었다.


장중부는 요령이 걸어들어오는 모양새를 보더니 영 마음에 차지 않는지 가볍게 콧방귀를 뀌곤 이량흔을 향해 시선을 돌려버렸다.


“대공자도 오셨군요. 다 오셨으면 이야기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이량흔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장중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가 돌아왔습니다. 무림인의 도살자, 일권파쇄의 멸야차 무극천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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