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 귀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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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
작품등록일 :
2024.07.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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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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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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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 (13)

DUMMY

웅혼한 내공을 품은 검이 내려쳐질 때마다 여실없이 장요령의 검은 맥없이 무너졌다.


“무극에서 유극으로 하는 것이오! 필살지격(必殺之挌)은 없으나 필생지격(必生之挌)은 있는 것이 바로 태극혜검이오!”


저답지 않게 자신의 검을 풀어 설명 해주는 율승의 말에 장요령은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이를 악문 채 검을 받아야만 했다. 한 번의 맞부딪힘에 몸의 중심이 진탕을 치니 차마 반격할 기세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요령은 율승의 검을 보며 마치 거대한 강과 상대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의 힘으론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렇게 검이 내려쳐질 때마다 한 걸음, 두 걸음 요령은 뒤로 밀려났다.


“저 놈이 내려가지만 않았어도 이런 우스운 판을 내가 짜지 않았을 텐데.”


자유자재로 태극혜검을 소화하는 율승을 보면서 범여는 입맛이 썼다. 무당 역사상 저보다 더한 기재가 있었을까? 개파조사 장삼봉 진인이 살아 돌아와도 저보단 못할 것이다. 고작 이립의 나이에 태극의 도를 깨우쳤으니.


“그나저나 끝났구먼, 아무래도 자네 조카가 판을 예쁘게 정돈해주긴 무리였던 모양이야.”


무극천은 범여의 말에 비무대에서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 장요령을 바라봤다.


“난 잘 모르겠군. 가끔 예상치 못한 것을 보여주는 녀석이라.”


“그런가?”


끝도 없이 밀리던 장요령은 어느새 자신에게 더이상 갈 곳이 없음을 알아챘다. 속절없이 밀리다보니 비무대 끝까지 밀려난 것이다. 이대로 떨어진다면 끝이다. 그러나 상대의 검을 뚫고 나갈 자신도 없었다.


율승의 어깨가 조금이나마 눈에 띄게 오르락 내린다. 상대도 이미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었다. 제아무리 기재 중에 기재라지만 내공이 느리게 쌓이는 정종심법의 제자 특성상 내공이 슬슬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장요령은 머리를 맹렬하게 굴렸다. 자신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 있는지 바닥에서부터 생각했다. 여기서 빠져나갈 것이 무언가는 있을 것이다. 그때 번뜩임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그는 급박한 와중에도 곁눈질로 심윤영을 바라봤다.


얼마나 뛰어날지는 몰라도 의문(醫門)으로 이름을 날리는 곤륜파의 대제자다. 목숨만 붙어있으면 어떻게든 해줄 것이다. 마음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불안감을 앞선 이유로 누르면서 장요령은 결정을 내렸다.


“저 얼간이가!”


심윤영이 경악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장요령의 몸에서 기이한 기파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입과 코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요령은 내공을 한번 크게 순환시키면서 동시에 제어를 놓아버렸다.


순식간에 온몸의 혈맥을 타고 흐르는 막대한 내공이 고삐 풀린 말처럼 날뛰면서 기맥을 미친듯이 질주했다. 임독이맥 뿐 아니라 온 사지의 세맥까지 내공이 파고들면서 장요령은 온 몸이 찢겨나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한편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던 율승도 요령의 상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다급하게 달려들었다. 허나 그 순간 요령의 모습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시야을 메운 것은 서늘한 은빛 검광이었다.


요령은 날뛰는 내력을 어거지로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나뉘어 운용했다. 하반신의 내공이 다리의 기맥을 타고 흐르며 맹렬한 흐름으로 날뛰었다. 반대로 상반신의 내공은 거대한 대하(大河)의 물이 흐르듯 내공이 몰리고 몰려 묵직하게 기맥을 훑으며 점점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날뛰는 내공의 기세를 탄 장요령의 발이 쾌활하게 움직이며 율승에게 쏘아져 나감과 동시에 상반신의 내공이 다시 단전에 닿고, 하반신의 내공 또한 단전에 몰리니 몸 안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듯한 고통이 사지를 잠식한다.


요령은 그 안에서 이를 악물며 일검을 율승에게 쏘아냈다. 보법과 검술의 파탄이 검술의 진결이라면 내공 또한 파탄으로 이끌면 되는 것이다! 막연한 계산에서 발휘된 투신의 검이 요령의 일격에서 조금이나마 재현된 것이었다.


율승은 요령의 검을 받아 내었지만 이전과 다른 흉폭한 기세에 놀랐다. 태극혜검조차도 걷어내지 못하는 이 검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히려 검이 밀려나고 있음을 안 율승은 맞서는 것이 아닌 흘리는 것을 선택했다.


태극혜검의 유극이 잠들고 태극검의 무극이 장요령의 일격을 상쇄시키려는 찰나. 그 찰나였다. 아주 자그마한 틈이었으나 단번에 밀고 들어오는 요령의 일격에 율승은 당황했다. 그때 그의 머리를 타고 흐른 것은 아주 오래된 기억이었다.


‘태극은 흐르는 물과 같으니 일 푼의 망설임이 있으면 그대로 끝인 법이다.’


율승은 자신의 선택이 일 푼의 망설임인 걸 깨달았다. 그 순간 율승의 검에 금이 가더니 순식간에 부러지며 그 반동으로 율승은 뒤로 날아가 한참이나 굴러야 했다.


둘의 격돌에 좌중은 침조차 삼키지 못한 채 승부의 향방을 기다렸다. 코와 입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넘어 곳곳의 핏줄이 불거진 채 가쁜 숨을 내쉬며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요령, 바닥에 구른 나머지 온통 먼지 투성이에 봉두난발이 된 율승.


율승은 손을 들어 오른쪽 볼을 훔쳤다. 찐득한 피가 묻어나왔다. 검이 부러지면서 그 조각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간 것이다. 그는 손에 쥐어진 부러진 검을 한번 보더니 하늘을 들어 나지막하게 웃기 시작했다.


“하, 졌소.”


그의 말에 장요령이 비척비척 손을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승자가 넘어지고, 패자가 서 있는 그 기묘한 광경에 아무도 말을 잇지 못 했다. 그때 심윤영이 다급하게 뛰어오더니 장요령을 바르게 눕히고 이곳 저곳을 짚어보았다.


“어떠냐?”


무극천도 비무대에 올라와 장요령을 살피면서 물었다. 심윤영의 내기가 장요령의 몸 안을 훑었다. 기맥이 끊어진 곳은 없었으나 내공에 할퀴어진 상세는 아주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옮겨야겠어요. 이대로라면 위험해요.”


“아니, 여기서 움직일 수 없소.”


현성이 비무대에 올라오더니 검을 뽑았다.


“위험하다는 말을 듣지 못 했는가!”


무극천의 사슬이 절그럭거린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그 검, 그것은 북적의 검 아닌가! 난 기억하오. 그 자와 장문의 비무에서 태극혜검이 똑같이 파훼되던 모습을!”


무극천은 현성의 말에 주위를 살폈다. 그의 말대로 속가와 장로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의 냉혹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옮겨.”


“장문! 만약 북적의 검을 이은 자라면 마땅히 무림의 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간단히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범여는 현성을 바라보더니 다시 한 번 말했다.


“옮겨.”


짧은 한마디였으나 그 안에 박혀있는 한기 서린 조각은 모든 이들의 폐부를 찌르기에 무리가 없었다. 소형기가 뛰어와서 장요령을 들쳐 업더니 다급하게 연무장을 빠져나갔고 심윤영이 그 뒤를 따랐다.


“저 자가 살아난다고 한들 차라리 여기서 죽는 편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그걸 왜 너가 결정하냐? 애초에 가르친 사람이 투신이 아니거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내가 가르쳤다.”


현성은 무극천을 바라봤다.


“내가 투신의 검의 일부를 기억하고 있던 것을 가르쳤으나 심법은 알 도리가 없었지. 그저 운동이나 하라고 초식만 가르친 것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하지만!”


“넌 저게 정상으로 보이냐? 검술 한번 휘둘렀다가 주화입마에 들기 직전의 검이 북적의 검이 맞는 것 같아?”


“그야 사술이니 그렇겠지요! 거기다가 저 마두가 중간에 사용한 검은 마교의 마화충천검 아닙니까? 장문께서 지금 마교를 감싸시는 겁니까?”


“저 녀석이 마교는 맞다. 갱생을 위해 내가 데리고 다니는 것이지.”


현성은 그 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갱생을 위해 마교 최상위층에 속하다 못해 마교제일검이라는 이량흔의 제자를 끌고 다닌다고? 그러나 말하는 자가 무극천이다. 아주 불가능한 소리는 아니라는 말이었다.


“이건 무림맹에 알리겠습니다. 저희만으로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현성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거 시발 존나게 떽떽거리네. 야 이 개새끼야. 거기 서라.”


원색적인 범여의 욕설에 현성은 얼굴이 붉어진 채 다시 돌아봤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서라고 했지. 귀가 막혔냐?”


“아무리 장문이라지만 장로인 저에게 그런 식으로 나오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용납? 용납? 네까짓게 감히 나에게 용납을 찾느냐?”


범여는 소매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청동으로 된 패에 검은색 옥이 박힌 물건이 바닥에 청아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이.... 이건?”


“네가 그렇게나 죽고는 못 살던 장문령패지. 장문이 된 자는 일생에 단 한번 장문령패의 권위로 모든 무당의 규율을 무시하는 명을 내릴 수 있지 알고 있느냐?”


범여의 말에 현성뿐 아니라 현각, 현웅의 얼굴도 새파랗게 질렸다. 이 모든 지난한 과정이 그들을 잡기 위한 범여의 덫인 것을 직감한 것이다.


“나 범여, 현 무당의 장문인으로서 선언한다. 현성, 현각, 현웅 너희 셋은 이 시간부로 파문이다. 원래의 규율대로라면 너희의 사지근맥을 자르고 단전을 폐했겠지만 선택권을 주지.”


“그게 무엇입니까?”


“너희가 그간 무당을 위한다는 대의를 천명해왔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그 대의에 걸맞게 여기서 나와 싸우는 거다. 내가 죽으면 너희가 사는 것이고, 아니면 뭐 말할 것도 없겠지.”


“사부님!”


율현이 다급하게 뛰어오며 외쳤다.


“이건.... 이런 식으로는 안 됩니다!”


범여는 냉혹한 눈으로 율현을 바라봤다.


“안 된다고? 어차피 이렇게 될 것임을 너도 알았잖냐. 피를 안 보고 끝내겠다고? 애초에 강호라는 정신 나간 판에 뛰어든 이상 그런 일은 드문 것이야.”


범여는 거침없이 율현에게 다가가 허리춤에 매인 검을 뽑아들었다. 반으로 동강난 송문고검, 오래전 범여의 애병이었으나 패배의 순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검이다.


세 장로는 비무대에 천천히 걸어나오는 범여를 보았다. 폐인으로 살아온 그였다. 거기에 부러진 검을 들고 생사결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진정으로 범여를 죽이는 것 말곤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도망친다면 장문령을 어긴 도망자가 되어 한평생 쫓겨다닐 일만 남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20년간 폐인으로 살아온 범여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들의 무공이 범여를 앞질렀을 가능성도 있었다.


각자 검을 빼들고 합격을 준비하는 세 장로를 보며 범여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래, 마지막 결기만큼은 칭찬해줄 만 하구나. 그 긴 세월 동안 본산에 얼씬도 안한 쥐새끼들 치고는 말이다.”


“이 모든건 장문께서 시작하신 일입니다. 저희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셋은 동시에 달려들면서 범여를 향해 검을 뻗었다. 범여는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검을 향해 오히려 한 걸음 더 다가서더니 맨 좌측의 현웅의 검부터 시작해서 현각, 현성의 검을 차례차례로 막아냈다.


그리고 세 장로는 자신들의 검을 빼낼 수 없는 것에 경악했다. 마치 풀로 붙인 것처럼 셋의 검이 범여의 동강난 검을 따라 원을 그린다. 극한에 달하는 이화접목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순간 범여의 검이 셋의 검을 휙 당김과 동시에 앞으로 쇄도했다.


동시에 셋의 멱을 따버린 범여는 냉혹한 표정을 지으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세 장로를 봤다.


“너희가 20여년을 무당이라는 미혹에 빠져있는 동안 나라고 달랐을 것 같으냐? 다만 내 미혹은 검이었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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