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 귀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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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
작품등록일 :
2024.07.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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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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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 (9)

DUMMY

그렇게 마지막 제자가 쓰러지자 현웅은 풀썩 주저앉았다. 헤벌죽 열린 입에서는 나지막하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 사... 수... 읍!”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옆에 있어선 현각이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은 것이다. 만약 이 자리에서 사술이라고 말을 꺼낸다면 그것을 입증해야 하는 것은 본인들이 될 것이다. 정말 사술이라면 모를까 아니라면 그만한 대가를 치뤄야한다.


지금까지 대의라는 명목으로 요리조리 빠져나간 범여의 치죄를 불러오는 일이 되리라. 그것만큼은 막아야 할 일이었다. 현각은 수혈을 짚어서 현웅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너희 스승이 충격이 큰 것 같으니 서둘러 데리고 내려가거라.”


현웅의 제자들이 먼저 떠나자 현각은 현성을 바라봤다. 현성의 얼굴은 변함이 없었으나 손은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어찌나 힘을 준 것인지. 현각은 내심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와 현웅 모두 무당을 위해서 움직였다.


그중에서 현성은 그 정도가 심해 거의 집착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런 그의 면전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지다니. 특히 마지막에 들린 말은 문자 그대로 현성의 꼭지가 돌아가게 만든 듯 싶었다.


“장문, 저희는 내려갔다가 내일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더이상의 충돌을 막고 싶었기에 먼저 말을 꺼냈다. 범여도 현성을 슬쩍 보더니 상황을 짐작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은 손끝에 맴도는 은은한 열감을 느낀다. 이전에 만난 자들이 전해준 무공이 날뛰는 심정을 타고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마치 화라도 난 것처럼 보였겠지만 그는 어떻게든 이 힘을 누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때 현각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현성은 하마터면 그 손을 찢어버릴 뻔했으나 아주 아슬아슬하게 참아낼 수 있었다.


“여보게, 이만 돌아가세.”


“그래, 그래야지.”


현성은 답하면서 손을 들여다봤다. 어찌나 힘을 준 것인지 살점에 손톱이 파고든 자국에서 피가 흐른다. 그는 고개를 한번 털어버리더니 먼저 떠나는 현각의 뒤를 따랐다. 그를 범여가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장요령은 피곤했다. 손쉽게 이기긴 했지만 오늘 연거푸 세 번이나 비무를 치뤘고, 연공을 거의 하지 않았던 통천각법을 펼친터라 허리와 다리가 온통 뻐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객청에선 차마 쉴 수 없었다.


그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무당 속가의 사람들이 심심할 틈도 없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두어명을 적당히 상대해 준 요령은 이대로 있다간 저녁 내내 붙잡혀 있겠다 싶어서 도망쳐 나온 것이었다.


그가 도망친 곳은 무극천의 마차가 있는 곳이었는데 정신이 온전치 않은 남궁현 때문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 하도록 막았기에 사람 그림자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는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단단히 확인하곤 검을 뽑았다. 전전날 저녁에 범여가 해준 당부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량흔의 검은 내 또래 대엔 제법 잘 알려져 있지. 아무데서 막 쓰다간 큰일을 치를 터이니 알아서 조심해라.’


범여의 나이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찾아온 무당 속가 사람들 중엔 머리털 허연 노인들도 제법 있었기에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오늘 그 난리를 쳤으니 내일은 분명 칼 뽑고 덤비겠지.”


무당의 검과 맞서본 적은 없으나 강호를 울리는 그 위명은 귀가 아프도록 들어보았다. 상대의 공격을 받아 흘려내거나, 낚아채며 초식을 파훼하는 태극검은 유검(柔劍)의 대명사로 뽑혔다.


“나는 왜 가는 곳마다 이런 놈들만 만나냐.”


전에 만났던 남궁세가의 검이 변초의 시작을 틀어 막아버린다면, 무당의 검은 필시 변초를 흐트리는 데에 주력할 것이었다. 이 또한 장요령의 검과 상극에 가까운 무공이었으니 준비를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아직 상투를 틀고 원시천존을 찾기에 요령의 나이는 매우 젊은 편이었으니까. 연신 투덜거리던 요령의 기세가 가라앉는다. 팔은 아래로 늘어뜨린 후 아주 느리게, 느리게 위로 들어올린다. 손에 쥐어진 검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 검술의 요체는 강유예둔(强柔銳鈍)을 뒤섞어버린 것에 있습니다. 공자님.’


이량흔이 처음 요령을 가르칠 때 했던 말을 떠올린다. 벌써 천 번은 되뇌었을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 자신의 경지가 네 가지 힘을 모조리 사용할 수 없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익히지 못한 초식의 부족함은 쾌(快)로 채웠으나 제아무리 노력해도 검술의 진결을 펼쳐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시작은 둔(鈍)으로, 검광이 아주 느리게 나풀거리는 나비처럼 어둠을 수놓는다. 이내 예(銳), 느릿하던 검이 매섭게 허공을 가르고. 아직 강(强)과 유(柔)의 묘리를 깨우치지 못한 장요령은 쾌(快)한 기세로 검을 내뻗는다.


손목이 연거푸 돌아가며 허공에 검광이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이내 다섯 줄기의 빛살이 동시에 앞으로 뻗어 나가며 보이지 않는 적을 감싼다. 여기까지 온 장요령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줄기는 콧등을 타고 흘러 콧날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단 한번의 초식이었으나 그를 위해 내공을 있는 대로 담아 휘두른 것이었다.


“아니, 일 장로는 하루에 이걸 어떻게 50번씩 했다는 거야.”


자신의 천성이 게을러서 그런 것일까? 장요령은 잠깐 고민했으나 과거와 똑같은 답을 내렸다. 그냥 이량흔이 검이 미친 것이 분명하다고. 어차피 땀도 흘렸겠다 장요령은 투신의 검 또한 연습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보법은 쾌하게, 그러면서 검은 무엇보다 강하게. 모순적인 보법과 검술이 만난다. 그렇게 검을 휘두를 위치에서 바닥을 단단하게 딛으면서 한 줄기의 일진광풍과 같은 자격을 쏘아내려는데.... 뒤에서 섬뜩한 금속성이 들렸다.


장요령이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남궁현이 검을 손가락 한 마디만큼 뽑고 있었다. 다 뽑히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했으니 요령은 냅다 달려가서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어우씨, 이거 무서워서 연공을 어떻게 해. 다음부턴 숙부님이랑 같이 와야겠다.”


장요령은 남궁현을 달래가며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이 밝자 사람들이 연무장으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범여는 어차피 자기가 도착하지 않으면 시작되지도 않을 것을 알기에 서두르지도 않았다. 이런게 결정권자의 권력 아니겠는가? 그의 옆에는 율현이 따라붙고 있었다.


“사부님, 대체 이런 일을 벌이시는 저의가 무엇입니까?”


율현의 말에 범여는 뒷통수를 벅벅 긁었다.


“음.... 그냥?”


“아니, 사부님 엉뚱한 것도 좋지만 뭔가 설명을 해주셔야지요. 다짜고짜 돼지 세마리 잡을 생각이니 서둘러 튀어오라는 서찰을 받은 제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글쎄다.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사람 마음은 못 꿰뚫어 보겠구나.”


“맹에서는 피를 안 보고 넘어가길 원합니다. 이건 사부님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러니까 비무에서 생사결도 금지하셨구요.”


“일이란 것이 어찌 생각처럼 되겠냐. 하다 보면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법이지.”


“설마 진짜 죽이실 생각은 아니시지요? 애초에 사부님이 그렇게 강조하셨던 무당의 대의를 장문인이 어기는 사태는 안 벌이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그게 내 신조인데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이겠느냐. 다 순리대로 될 것이니 넌 걱정 좀 하지 말거라. 좋은 곳에 보내 놓으니 걱정만 늘어서 왔구나.”


율현은 뭐라고 한 마디할까 고민 했지만 그만두었다. 어차피 말해봐야 들을 사람도 아니었으니. 사실 그는 이전에 무림맹을 움직여서 세 장로를 처리할 계략도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범여의 결사적인 반대로 실행조차 하지 못했었다.


대체 사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 범여의 얼굴을 바라보았으나 주름진 얼굴 속에는 그로선 알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란걸 다시 한번 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과거 무당의 장문인 중에서 가장 냉정하고 혹독하기로 유명했던 범여가 참패를 당하고 실없는 노인네로 20여 년을 보냈지만 사람의 천성이란 건 어디 가는 것이 아니었으니. 언제쯤 그것이 튀어나올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사제는 한참을 걸어서 비무장에 도착했다. 이미 안에는 범여의 도착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관중들이 가득했다. 범여는 느긋하게 비무대에 올랐다.


“다들 잠은 잘 잤는가?”


“예!”


속가 측에서 우렁찬 대답이 들렸다.


“그래, 그래. 목청은 좋은 것은 알았으니 앞으론 조용히 이야기 해. 노인네 넘어가는 거 보고 싶은 거 아니면.”


그 말에 속가의 사람들이 겸연쩍은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범여는 몸을 돌려서 현성과 현각을 바라보았다. 현웅은 거무죽죽한 얼굴이 되어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것을 보니 어제의 충격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오늘도 박투로 하겠느냐?”


“아닙니다. 어제 저희가 큰 결례를 저질렀으니 오늘은 검으로 나서겠습니다.”


현각이 답했다. 범여는 그러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시작하라는 의미에 장요령이 무대에 오르고 그 뒤를 따라 상대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무당의 진성입니다.”


“장요령이오.”


오늘은 먼저 인사를 건네는 상대에게 혼쾌히 답한 요령은 목검을 뽑아 들었다. 진성 또한 목검을 양손으로 잡고 검첨은 아래를 향한 기수식을 취하며 장요령을 노려보았다. 무당의 검은 방어에서 그 진가를 드러내는 법이었으나 아무래도 선수를 잡는 것이 유리한 건 고금의 진리인 법이다.


이를 되새기며 요령은 앞으로 도약하며 맹렬한 찌르기를 진성의 미간을 향해 쏘아냈다. 진성은 침착하게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아래에서 위로 검을 들어 올리며 요령의 공격을 걷어냈다.


검로가 흐트러지면서 요령의 몸이 훤히 드러나자 진성은 사선으로 검을 내려긋는다. 그러나 이미 그쯤은 짐작했던 장요령이 이를 검으로 받아내었다. 동시에 그는 손목을 돌리면서 진성의 검을 아래로 짓눌렀다.


진성은 이에 맞춰주며 검을 빼려고 했었으나 요령은 훨씬 더 맹목적이었다. 진성의 검을 타며 들어오는 검에 진성은 철판교의 수법으로 누우면서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나 간발의 차로 스쳐 지나간 목검에 광대의 살이 쓸려나가며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검이 실로 매섭구려.”


“어린 놈이 말투하곤.”


말은 투덜대는 투였으나 요령은 진성이 볼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아낼 틈을 주었다. 그래도 나름 예를 차리고 있지 않은가? 그정도 짬은 줘도 상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한번 맞대보니 자신감이 붙은 참이었다.


진성은 검을 든 손을 위로 치들고 반대쪽 손은 검결지를 쥐며 요령에게 겨눴다. 마치 소의 두 뿔이 요령을 겨누고 있는 자세였다. 이번에는 진성이 먼저 앞으로 튀어 나간다. 목검이 앞으로 뻗어나가며 요령의 목을 노린다. 그러나 이내 선공을 나섰던 진성의 입에선 경악스런 말이 흘러나왔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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