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 귀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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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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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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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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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 (8)

DUMMY

늦은 밤이 되었음에도 맹주의 서재에는 불이 밝혀져 있었다. 혁련휘는 밀려드는 서류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거대 문파들이 무너져 버린 곳들의 공백이 너무나 컸다. 거기에 사파를 제어할 흑룡방이 유명무실해지니 별의별 잡것들이 다 날뛰고 있었다.


특히나 사천 무림은 청성파를 제외한 문파들이 거의 쓸려나간 상황이었고, 청성파의 무인들은 찾아보기 힘들 만큼 수가 적을 뿐 아니라 대부분 속세에 관심이 없는 상태라서 그야말로 무주공산이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사천이었지만 그 외에도 도움을 요청하는 곳은 많았다. 그러나 무림맹의 힘이 닿는 곳은 너무나도 적었다.


“사부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너라.”


등무전이 들어와 포권하자 혁련휘는 가타부타 없이 앉으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 모습을 본 등무전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몹시 어려운 일을 시킬 때 나오는 사부의 습관이었으니까.


“밤중에 잠도 안 주무시고.”


“제자 녀석이 내 걱정을 해줄 때까지 살아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기분은 좋구나.”


말은 훈훈했지만 혁련휘의 얼굴에는 웃음이 배어들지 않았다.


“오늘 회의 소식은 들었느냐?”


“남궁세가가 합류한다는 소식 말입니까? 맹 내에서 그 이야기를 안 꺼내는 사람이 없을 지경입니다.”


등무전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무림맹 전체가 침체되어 있는 이 시기에 남궁세가와 같은 명성 높고 강력한 거대 문파가 참가하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에 들려온 희소식이었다.


특히 맹주의 직전 제자라는 명패 때문에 이리저리 목숨을 건 임무를 나서야 하는 등무전에게는 짐을 나눠 들 동지가 생기는 것이니 더더욱 기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허나 안타까운 마음도 들더군요.”


“어째서?”


“남궁이 지금까지 날개를 펴지 못한 것은 남궁 가주님의 오랜 병환이었지요. 그런데 남궁이 갑작스레 강호행을 선언한다는 것은 남궁 가주님께 변고가 생겼다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혁련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도 무극천의 이야기가 맹 내에 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맹 내에서 나오는 중론이 그렇단 말이지.”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까?”


“그래, 남궁세가가 움직이기 시작한 건 남궁 가주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좀 나아졌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강호에 큰 홍복이군요! 화경에 든 남궁 가주께서 움직이신다면 사천 탈환도 손쉬운 일이겠는데요.”


“실은 남궁 가주의 문제가 아니라 만상검이 남궁세가로 반환되었다.”


그 말을 들은 등무전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더니 입을 떡 벌어졌다. 혁련휘는 제자가 충분히 놀랄 수 있도록 배려 해주었다. 간신히 넋을 붙잡은 등무전이 말했다.


“설마 북막의 투신이 또 내려온 겁니까?”


“아니, 정확히는 우리가 투신에게 보낸 자객이 성공하고 돌아왔더구나.”


“자객이요?”


“그래, 투신이 한창 위세를 부릴 즈음에 정사마의 수뇌부들이 모여서 한 명에게 의뢰를 했었지. 그 자가 바로 멸야차 무극천이다. 이번에 그가 남궁세가에서 남궁 가주를 때려눕혀 광증을 완화하고 만상검을 반환했다.”


“그렇다면 다른 문파의 신물들도?”


“무극천 손에 있겠지.”


등무전은 허리춤에 찬 검손잡이를 어루만졌다.


“어려운 부탁을 하실 건 예상했지만 이건 상상을 뛰어넘는군요.”


“뭐?”


“제자, 목숨을 바쳐서 사부님의 원을 풀어드리겠습니다.”

혁련휘는 잠깐 동안 등무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가 간신히 말의 맥락을 붙잡을 수 있었다.


“인마, 갑자기 뭔 개소리야. 뭔 목숨을 바쳐?”


“멸야차를 쓰러드리고 모든 신물을 회수해 오라는 명 아닙니까? 무림맹이 정사마의 모든 신물을 독차지함으로써 강호의 유일한 정의로서 우뚝 서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당금의 혼란을 재편하고 무림맹에 의한, 무림맹을 위한.... 악!”


혁련휘의 지풍이 등무전의 이마빡을 강타했다.


“이놈이 사부를 무슨 마두로 생각하냐! 내가 그리 막 나가는 놈으로 보여?”


“아니, 그러면 무슨 일로 부르셨는데요.”


“널 부른 건 무극천을 은밀히 호종하면서 모든 신물들이 주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우라는 명을 내리려고 부른 거다. 근데 이놈이 감히 하늘과 같은 사부를 이런 식으로 음해하다니.”


혁련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문을 열더니 밖을 한번 둘러본 후 돌아왔다.


“무림맹 총군사의 의견은 나서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혁련휘가 가볍게 손을 젓자 얇은 기막이 퍼져나가며 방을 감쌌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총군사는 무당과 소림의 물건만 신경 쓰면 된다지만 당금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파나 마교 또한 세력을 갖출 필요가 있지.”


“그러면 정파 무림엔 오히려 독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왜 지금 계속해서 소모전을 펼치고 있는지 아느냐? 협상할 상대가 없어서다.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놈들하고 뭘 해야 말이 통하지 온갖 시정잡배들을 일일이 상대하다간 끝이 없어. 줄 건 주더라도 현 무림맹에겐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다.


차라리 흑룡방과 마교주를 다시 세워서 천하를 삼분하는 것이 현 상황에선 최선이다. 이대로 가다간 버티지 못 할게다.”


“그 정도로 위험한 상황입니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거지. 가령 네가 임무에 실패해서 각 문파의 신물들이 전 중원에 뿔뿔이 흩어지고 그걸 가지겠다며 전 무림이 아귀다툼의 장이 되는 그런 일들 말이다.”



그제야 등허리에 한기가 돌은 등무전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깨달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맹주전을 나온 등무전은 숙소로 돌아가서 간단하게 짐을 싼 방을 나섰다. 공교롭게도 옆의 숙소를 쓰는 공동파 출신의 황무결 또한 떠날 채비를 한 채 나오고 있었다.


“여, 등 형. 어디 가시오?”


“맹주님의 임무가 떨어졌네.”


“이번에도 피똥 싸겠구먼.”


“흐흐흐, 강호를 위해 이 한 몸 불사르는 일인데 피똥이야 얼마든지 싸야지. 혹시 자네가 대신 해줄 건가?”


“됐소이다. 내가 등 형처럼 다니면 벌써 예닐곱은 시왕전에 들락거렸을 거요.”


“한데 황 아우, 자네도 어딜 가나?”


“사부님이 내린 명이 있어서 말이오. 잘하면 공동파가 이번에 다시 일어설지도 모르겠소.”


“그거 다행이구먼, 공동파가 다시 서면 감숙성의 민초들도 마적들에 대한 두려움을 덜 수 있을걸세.”


“그랬으면 소원이 없겠소. 허구한 날 문파 재건을 외치는 사부님 얼굴 보기도 이제 안타까워 못 참을 지경이니.”


둘은 한담을 나누며 무림맹의 입구까지 걸어갔다. 그런데 벌써 한 무리의 남녀가 문 앞에 모여있는 것이 아닌가? 등무전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해남파의 유운엽, 아미파의 곽윤, 소림의 혜심까지 강호에서 후기지수로 제법 이름을 날리는 이들이었다.


“어, 등 소협?”


유운엽이 제일 먼저 등무전이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곤 아는 체를 했다.


“이 오밤중에 다들 무슨 일이오?”


등무전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둘러보자. 유운엽이 눈알을 굴리면서 답했다.


“공교롭게도 전부 같은 날 임무를 나간다기에 신기해서 잠깐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등 소협도 임무에 나가시나요?”


곽윤이 묻자 등무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곽윤의 눈썹이 아래로 쳐졌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임무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맹주님이 직접 명하신 일이라 자세히 이야기할 순 없지만 호위 임무요.”


“그것참 신기하네요. 저희도 전부 호위 임무로 밖에 나가게 되었거든요. 뒤에 계신 황 소협은요?”


“나도 호위 임무인데?”


그쯤 되자 등무전은 상황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각 문파에서 가장 믿음직한 후기지수들을 전부 무극천의 강호행에 파견하는 것이었다. 이쯤 되니 그도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다고 느껴졌다.


“혹시 멸야차 무극천?”


“맞습니다. 등 시주, 설마 시주도?”


혜심이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답하자 등무전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모든 이들도 서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들은 전부 같은 곳으로 향하게 될 것임을 알아챘다.


“어르신들도 좀 따로따로 보낼 것이지. 무안하게 이게 뭐야. 비밀 임무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하시더니.”


할 말이 없어서 괜스레 투덜거리는 황무결이었다. 그때 유운엽이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쳐들더니 말했다.


“혹시 여기 계신 분 중에 그 무극천이 어디 있는지 아시는 분 있습니까?”


그들은 또 서로를 바라보았으나 답이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즉, 모두 무극천을 호위하라는 말만 들었지 정작 제일 중요한 호위대상의 위치는 아무도 듣지 못한 것이었다. 잠시간 침묵이 무림맹 입구를 장악했다.


“가서 물어보고 올까요?”


그 불편한 상황을 제일 먼저 깬 것은 곽윤의 말이었다.


“가봐야 잔소리만 들을 게 뻔하오. 일단은 남궁세가로 가봅시다. 무극천과 제일 먼저 접촉한 곳이니 단서가 있을 것이 분명하오.”


등무전의 말을 들은 나머지는 그럴듯하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이내 무림맹을 떠나는 멀고 먼 길에 올랐다.


그렇게 사라지는 이들의 모습을 높디높은 군사당의 전각에서 제갈견이 내려다 보고 있음을 그들은 몰랐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일행을 본 제갈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엉덩이 가벼운 노인네들 같으니.”


“그래도 총군사님이 원하시는 대로 전부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사마륜이 옆에서 말하자 제갈견은 눈쌀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과정이 지난해서 그렇네.”


제갈견은 현 무림맹의 수뇌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에 오늘 회의에서 일어난 개판만 보더라도 마음이 갑갑해질 지경이었다. 당장 뛰어가도 모자랄 판에 어떤 놈은 나잇값 받겠다고 불쌍한 어린 애만 핍박하고, 어떤 놈은 내버려두자는 속 편한 소리만 하고 있으니.


만약에 거기서 무극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자고 말을 꺼냈다간 마도와 사파도 돕겠냐며 어깃장을 놓을 인간들이 천지였다. 그럴 바에 이런 어지러운 수를 쓸 수밖에.


“그나저나 사마 군사, 호북성의 소식은 좀 들어왔는가?”


“좋은 소식은 없습니다. 분열된 무당파의 인원들이 돈이 부족해서 도적질까지 한다는 소식이 제법 들어오고 있습니다.”


“무당 본산에서는 움직임이 있는가?”


“아직 범여 장문은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갈견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의 장문이 움직이면 반드시 피바람이 분다. 그것도 자파의 인원을 상대로 말이다. 그랬다간 무당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는 호북을 공유하는 제갈세가에게도 최악의 사건이 될 것이었다.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이군. 청성과 종남에게서 들려온 소식은 어떤가?”


“각각 한 명씩 산을 나섰다고 합니다. 청성에서는 청성일절 위지풍, 종남에서는 천하검 공초량입니다.”


“그 둘을 반드시 찾아내게. 어떻게든 무림맹의 전력을 보충해야 해. 이런 시기에 청성과 종남을 끌어드릴 수만 있으면 그보다 더한 행운은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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