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 귀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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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
작품등록일 :
2024.07.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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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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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 (2)

DUMMY

백노경은 남궁연이 보낸 보고를 읽으며 콧수염을 잡아 비틀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백노경의 호위무사 곡전풍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상단주님, 어떤 내용입니까?”


백노경은 말없이 종이를 내밀었고 그것을 읽던 곡전풍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이게 사실입니까?”


“주인을 무는 개새끼를 집에 들여서 영 마음이 안 좋더라니, 개는 개라고 뭘 물어오는 것은 또 잘하는구나.”


“하지만 만상검은 이미 투신이 북막으로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투신이 사라진 지 20여 년이 흘렀다. 그가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물론 가능성이 적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남궁 놈들이 흘린 흉계인 것이 분명하다.”


“남궁 놈들이요?”


“만상검을 빌미로 자중지란을 일으키려는 것 아니겠느냐. 이렇게 얕은수를 쓰다니 무림 제일 세가라는 이름이 울겠군.”


백노경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무사들을 준비 할까요?”


“아니, 일단 휘상련에 알리는 것부터가 먼저다. 대어들은 꿈쩍도 안 하겠지만 몸이 달은 잔챙이들은 만상검이란 환상을 잡아보겠다고 난리를 피울 테니 우린 그놈들을 잡는다.”


“남궁가는 어쩌시겠습니까?”


“추적에 능하고 바람 잘 잡는 놈 몇을 남궁연이 이야기 한 자들에게 붙여라. 본인들이 기어 나와 주겠다는데 합을 맞춰 주는 것이 상도 아니겠느냐? 휘상련과 남궁세가가 충돌하면 사이에 껴서 적당히 부상을 입고 빠져나오도록. 나머지는 관을 움직여서 끝낼 것이다.”


곡전풍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방을 빠져나갔다. 백노경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창문 밖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이미 먹구름이 가득하여 우중충하기 짝이 없었다.


***


“형님!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가주전으로 남궁검상이 다급하게 들어오면서 외쳤다. 안 그래도 온갖 잡무에 치여있던 남궁검민은 머리가 울린다는 듯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다른 손으로는 손사래를 쳤다.


“목소리 좀 줄이거라. 왜 또 무슨 일인데? 무사들이 탈주하기라도 했냐? 아니면 하인들이 야반도주를 했냐? 아니면 또 비급이 털린거냐?”


“아니요. 형님 지금 황산 인근이 만상검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 그래. 만상검이 나타났구나. 그럴 수도 있지.”


별일 아니라는 듯 대충 주억거리던 남궁검민은 잠시 후 자신의 입에서 무슨 말이 새어 나왔는지 되새겼다.


“만상검, 만상검, 만상검?!!!! 가문 내에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얼마나 되느냐? 아니, 만상검은 지금 어떤 상태라더냐?”


“그게 왠 노인하고 청년이 가지고 있다 합니다. 벌써 휘상련의 승냥이 같은 것들이 추적자를 붙였는데 그중에는 백노경도 있다더군요.”


“백노경까지.”


남궁검민은 나지막한 침음성을 흘렸다. 백노경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만상검을 잃은 이후 남궁세가의 근간을 조심스레 파내 이제는 무너뜨리기 직전까지 간 자였으니. 그간 그에게 남궁이 잃은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멍청한 방계 놈 하나를 꼬드겨서 비급까지 훔쳐 갔을 땐 검을 뽑고 백가상단으로 달려갈 뻔했다. 그러나 다르게 말하면 조심스럽고 엉덩이가 무거운 자라는 소리다. 그만큼 만상검에 대한 정보는 확실하다는 의미였다.


“가문 내에 동원할 수 있는 고수는 몇이나 되겠느냐?”


“오늘내일하는 장로원까지 합쳐야 열 명이 넘을까 말까입니다. 사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건 저와 형님 말고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나머지는 아버님을 지켜야 하니 데려갈 수 없는 상황이구요.”


“별수 없구나. 너와 나만 움직인다. 최대한 빠르게 치고 빠져나오는 수밖엔 없겠군.”


남궁검민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풀어놨던 검을 검대에 매었다. 이번 진짜 마지막 기회였다.


***


객잔 주인은 때아닌 호황을 맡아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어제 숙부와 조카 사이라는 두 명이 묵겠다고 한 이후 아침이 되자 갑작스런 인파가 몰려와서 객잔을 가득 채운 것이다. 전부 흉흉한 무기를 소지하고 있긴 했지만 물 쓰듯 은자를 써대는 통이라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때 2층에서 젊은 남자와 초로의 노인이 내려오자, 객잔 내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이 둘에게 쏠렸다. 요령은 따끔거리는 시선 세례를 느끼며 어제 만났던 사내를 떠올렸다.


‘촉새 같은 새끼, 대체 어디까지 떠들고 다닌 거야.’


남궁연에게 개새끼, 소새끼 되는 대로 속으로 지껄이며 내려온 장요령과 무극천은 간신히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정중앙에 위치한 걸 보면 일부러 비워둔 듯했다.


“숙부님, 뭘 드시겠습니까?”


“아침이니 속도 편하게 죽이나 한 그릇 먹고 싶구나. 삼복이, 너는 젊은 놈이니 좀 든든하게 먹어야 하지 않겠냐?”


장요령이 눈치코치도 없다고 투덜거렸던 무극천은 나이를 허투루 먹은 것은 아니었는지 주위 인파를 느끼곤 연극을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삼복이라니, 왜 그런 촌스러운 이름을 지어주는 건지.


어찌 됐든 상황을 넘어가려면 장단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요령은 터져 나오는 불만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저도 그럼 숙부님하고 같은 걸로 들겠습니다. 그런데 숙부님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아무래도 합비가 좋을 것 같구나. 평생 복건에서 살다가 이렇게 대처로 나오니까 아주 좋아. 이참에 더 큰 곳으로 가봐야겠다.”


“그럼요. 안 그래도 어머님께서 숙부님 걱정을 그렇게 하시더라니까요. 통 어딜 나가려고 하시질 않으신다고 말이죠.”


“이것 참 괜한 걱정을 끼쳤구나. 그래도 이렇게 나왔으니, 걱정은 하지 말라고 전해주련.”


“그러지요.”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이들 중 몇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리숙한 몇 놈은 합비로 보내버린 듯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자리를 뜰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음식이 나왔으나 너무나 뜨거운 관심에 둘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급하게 방으로 돌아왔다.


“이것 참 보통 곤란한 것이 아니구나.”


“이대로라면 밤중에 칼 물고 창문을 넘어오는 놈도 나오겠는데요.”


“아무래도 안 되겠다. 두 패로 갈라지자.”


“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네가 그렇게 훌륭한 방법을 내줬는데 그걸 허무하게 날릴 수는 없지 않겠느냐? 네가 객잔에서 시간을 끌고 있으면 내가 얼른 남궁가 담장을 넘어갔다 오마.”


“아니, 숙부님! 제가 어떻게 저 치들을 상대로 버틴답니까! 거기다가 전 신교인 이라서 무공을 펼쳤다간 다 들킨단 말입니다!”


“아니다. 네 새로운 면모를 보고 나니 이런 역경쯤은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으리란 믿음이 생기더구나. 자신을 믿어보거라.”


무극천은 인자한 표정으로 장요령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장요령은 전날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인 자기 주둥아리를 때리고 싶은 심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화급하니 난 서둘러야겠다.”


무극천은 짐에서 검 하나를 꺼내오더니 허리춤에 단단히 맨 채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얼마나 일련의 과정이 날쌔게 지나갔는지 장요령은 미처 무극천을 잡을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씨발....”


말 그대로 진퇴양난인 상황이다. 장요령은 일단 무극천이 짐을 들쳐맸다. 객잔에 앉아있다간 독 안에 든 쥐 신세로 잡혀 죽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1층으로 내려갔다. 다시 한번 뜨거운 눈길 세례가 이어지고 장요령이 다급하게 밖을 나가려는 찰나 누군가 그를 붙들었다.


“아니, 손님. 벌써 떠나십니까?”


둘을 재신(財神) 조공명쯤으로 생각하게 된 객잔 주인이 그를 다급하게 붙잡은 것이었다. 장요령은 객잔 주인을 쳐다보다가 눈길이 객잔 안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지켜보던 이들 상당수가 벌써 무기를 챙겨 들고 일어나고 있었으니.


“아닐세, 숙부님과 합비로 가기 전에 필요한 물건들을 좀 사러 나가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나.”


“아! 그러면 조심히 다녀오십쇼!”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까지 흔들어 주는 객잔 주인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장요령은 느긋하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절대로 바쁘게 보여선 안 된다. 도망치려는 기색을 보였다가는 저들이 한꺼번에 달려들 것이다.


뒤통수를 따갑게 쏘아보는 눈길에 요령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시장으로 향해 화섭자니, 부싯돌이니 하는 것들을 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다녀도 당최 추격자들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보시오!”


그때 누군가 장요령의 어깨를 붙잡으며 친한 사이라도 되는 양 몸을 맡긴다. 기겁한 나머지 하마터면 검을 뽑아 들 뻔한 장요령은 자신을 다독이며 상대를 바라봤다. 남궁연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그를 붙잡은 것이었다.


“저쪽 골목으로 빠집시다. 얼른.”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내가 실수했소. 그냥 친한 친구한테 이야기한다는 것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단 말이오.”


남궁연은 이만저만 당황한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자기 주인인 백노경에게 보고한 사실이 어떻게 휘상련으로 넘어가서 저렇게나 많은 주목을 받았단 말인가? 공을 독차지 하려던 그에겐 몹시 불쾌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자를 피신시켜야 한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장요령을 잡아 끌었다. 그러면서 곁눈으로 장요령이 검을 잘 차고 있는지 살펴봤다. 다행히도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된 검은 장요령의 허리춤에 잘 있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안전한 곳!”


그 말에 장요령은 남궁연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검을 뽑아 들었다.


“이런 개 씨발놈이. 너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그런데 뭘 믿고 안전한 곳까지 따라가냐?”


“거.... 검이?!”


남궁연은 요령을 검을 보더니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신을 가리켰다. 검신은 흠 하나 없이 매끄러웠다. 항주에서 떠나기 전 이량흔의 검을 빌려온 것이 이런 낭패가 되었을 줄이야. 장요령은 이번에 살아 나갈 수 있다면 이 재수 없는 검을 팔아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너 이 새끼, 만상검 어디에 숨겼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남궁연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런 거 없어. 좆같은 새끼야. 알았으면 이제 뒈져!”


검신에 섬뜩한 붉은 빛이 맴돈다. 자주 무공을 펼칠 기회는 없었지만 요령은 그래도 원숙한 절정 고수에 속했다. 붉은 검기에 싸인 검이 뱀처럼 쏘아져 나가며 남궁연의 목을 관통했다.


“꺼륵.”


목에 난 상처를 다급하게 막은 남궁연이었지만 이미 피가 폐로 넘어가 꼴록거리는 소리를 내뱉으며 뒤로 자빠졌다. 때마침 장요령을 쫓던 이들이 골목으로 접어 들었고, 그들은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는 남궁연과 피가 번들거리는 검을 쥔 장요령을 번갈아 보더니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무기를 꺼내들었다.


“니미 시팔, 다 덤벼. 개새끼들아!”


어차피 엎질러진 물. 요령은 매섭게 쇄도하며 한 놈의 미간을 꿰뚫음과 동시에 검을 좌우로 휘둘러 두 명의 다리를 베어 넘겼다. 그렇게 군중 사이에 틈이 생기자 그는 그 사이로 질주하며 온 사방을 향해 닥치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붉은 피가 치솟고 잘려 나간 사지가 허공을 날아오른다. 예상 외로 무시무시한 요령의 무공에 당황한 추격자들은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요령은 이를 악물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절대로 틈을 줘선 안 된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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