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 귀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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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
작품등록일 :
2024.07.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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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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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 (3)

DUMMY

장요령은 신교제일검 이량흔이 직접 가르친 제자였다. 마치 불처럼 퍼져나가며 온 사방을 난도질하는 신화충천검(神火充天劍)이 요령의 손아귀에서 펼쳐진다. 제일 먼저 요령의 전방에 있던 재수 없는 놈은 목이 반쯤 베어져 대롱대롱 매달린 채 절명했다.


이내 몸을 돌린 요령이 세 번의 빠른 자격(刺擊)을 쏘아내자 심장와 허벅지, 폐를 찔린 세 명이 나동그라진다. 그 사이로 요령은 몸을 날리며 검을 일(一)자로 휘둘렀다. 붉은 검기가 순식간에 사위를 메우고 이에 휩쓸린 자들이 피범벅이 된 채로 나가떨어졌다.


검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뒤로 물러나던 이들은 다른 이들과 엉켜 자빠지자 그 위로 요령의 검이 난도질을 펼쳤다.


순식간에 10명을 베어버린 요령의 신위에 추격자들은 피에 미친 악귀를 만난 것처럼 겁에 질려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요령은 숨을 크게 한번 내뱉었다. 검기를 쏘아낸 일격이 제법 무리가 온 것이다. 그래도 기세를 잡는 데 성공했다는 기쁨이 마음 한켠에 어린다.


이대로라면 살아나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순간 요령은 다급하게 몸을 돌려서 검을 내세웠다. 엄청난 충격이 몸을 타고 전해졌다. 자칫했으면 손아귀가 찢어질 뻔했다. 요령은 잽싸게 몸을 뒤로 날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거리를 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가 몸을 날리고 바닥에 착지하자 불쾌하게 철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령이 주위를 돌아보자 마치 거대한 검이 베고 지나간 것처럼 그를 쫒던 추격자들이 모조리 두 토막이 난 채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남궁의 이름이 바닥에 떨어졌다지만. 황산 바로 코앞에서 마교 놈이 설칠 줄은 몰랐는데.”


요령을 습격한 자는 바로 남궁검민이었다. 남궁검민과 남궁검상은 남궁연의 뒤를 쫓던 도중이었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하고 나니 남궁연은 죽어있었고 피에 미친 마교 놈이 칼부림을 펼치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남궁검민은 한순간 치솟는 울분에 못 이겨 일검을 날린 것이다. 이제 마교 따위에게 무시당하는 처지까지 되다니. 그래도 남궁은 검가다.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의 일격은 말 그대로 하늘을 찢어발기는 폭풍 마냥 골목 전체를 휩쓸어버렸다.


“야, 이 씹새끼야, 넌 오늘 여기서 죽는다.”


남궁검민은 생긴 것답지 않게 걸걸한 입담을 자랑하며 새파란 하늘빛으로 빛나는 검을 요령에게 들이밀었다.


***


“으으으....”


남궁검민과 장요령이 서로 대치하고 있을 무렵 남궁가의 비처에서 한 사내가 눈을 떴다. 그의 이름은 남궁현. 현 남궁가의 가주이자 과거 검황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자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위명은 바람에 날린 모래처럼 흩어졌는지 깡마른 채 눈에는 번들거리는 광기가 보였다.


“천우, 천우야. 거기 있느냐? 천우야.”


“예, 가주 여기 있습니다.”


남궁세가의 최고수들인 남궁삼우(南宮三雨)의 일각으로 뽑히는 남궁천우가 다급하게 와서 무릎을 꿇었다.


“천우야. 투신, 그 빌어먹을 오랑캐 새끼는 어디에 당도했다더냐?”


“아직 멀었나이다. 가주. 잠시 눈을 붙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흐흐흐, 아니다. 소림을 무너뜨리고 무당의 현판을 박살 낸 자 아니냐. 그런 자를 상대로 잠에 취해 싸울 순 없는 일이다.”


남궁현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뭔가를 찾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천우야, 내 검은 어디 있느냐? 만상검 말이다. 아무래도 몸을 좀 풀어야겠어.”


“일전을 앞두셨으니 검을 갈아두려고 가져갔습니다. 가주. 제가 금방 가져올 테니 일단 쉬시지요. 그리고 이번에 귀한 영약이 들어왔습니다. 투신과의 일전에 복용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영약, 그래 좋지. 투신과 싸우려면 뭐든지 해야지. 뭐든지.... 뭐든....”


그 순간 남궁현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내공이 폭사됐다. 남궁천우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몸을 뒤로 날렸다.


“남궁의 검은! 천하제일검이다! 남궁은! 꺾이지 않는다!!!!”


남궁현의 광태가 도지며 깡마른 몸에 맞지 않는 고함이 터져 나온다. 그는 손을 제멋대로 휘두르면서 악을 썼다.


“난 아직 지지 않았다! 어딜 가느냐! 어딜 가! 남궁의 검을 받아라!!!”


20년 전의 패배에서 헤매는 남궁현의 정신은 주위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화경의 경지를 이뤘다는 고수의 가벼운 손놀림에 청석이 터져나가고 건물이 산산조각이 난다. 남궁천우는 남궁현이 내뿜는 내공을 검으로 쳐나가며 버텼다.


그 순간 남궁현이 한걸음에 내달려와 남궁천우의 검을 잡아챘다. 남궁천우는 당황하며 남궁현의 손을 떼내려했다. 20년간 단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폐인이 됐으나 갈수록 강해지는 무공에 천우도 혹독한 수련으로 자신을 단련해 왔으나 검을 잡히는 순간 알았다. 이건 더 이상 막지 못한다고.


“어.... 내가 잘못된 때에 들어온 건가?”


아무도 없어야 할 비처에서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천우의 집중력이 순간 흐트러지며 남궁현의 막대한 내공에 휩쓸려 뒤로 날아가 버렸다. 천우는 간신히 몸을 세우고 불청객을 쳐다봤다.


무극천은 살면서 이렇게 당황했던 적이 몇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요령에게 뒤를 맡기고 남궁세가로 온 것은 좋았으나 심각한 문제가 있었으니. 그는 남궁세가의 지리를 몰랐다. 어떻게 할지 당황하고 있는 와중에 남궁세가 한 편에서 익숙한 내공이 느껴졌다.


무극천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곳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만난 것이 작금의 상황이었다. 남궁현에 맞서는 남궁천우와, 한눈에 봐도 정상이 아닌 남궁현까지.


“멸야차?”


무극천은 남궁천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남궁현이 무극천을 향해 달려든다. 그의 눈은 오직 무극천의 허리에 매인 새하얀 검집에 박혀있었다.


“내 검!”


무극천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남궁현을 밀어내려 했으나 남궁현은 금나의 수법으로 무극천의 팔뚝을 제압하려 들었다. 무극천은 팔에 내공을 집중하여 남궁현의 손길을 막아냄과 동시에 왼손으로 목을 낚아챘다.


“캑캑, 내놔라, 내놔! 캑, 내 검!”


손아귀에서 바둥거리며 발악하는 남궁현을 바라보던 무극천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하자 천우는 다급하게 외쳤다.


“무 대협! 아니 되오!”


무극천의 손이 움찔거리며 멈춘다. 남궁천우는 갈빗대가 나간 건지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힘겹게 걸어왔다.


“가주께 절대로 검을 주셔선 안 됩니다. 검을 쥐게 뒀다간 아무도 막을 자가 없습니다. 정신 나간 검귀가 일대를 피바다로 만들 거란 말입니다.”


무극천은 천우의 말에 남궁현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봉두난발에 제멋대로 자란 수염, 덕지덕지 붙은 눈곱 위로 진물이 새어 나오고 입에서는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옷도 입는 둥 마는 둥 하여 아랫도리가 안 드러나는 게 다행일 지경이다. 이게 자신이 아는 그 남궁현이 맞는 건가?


“내 기억 속에 있는 그 깔끔한 친구하고는 많이 다른 것 같은데.”


“투신에게 패하고 난 이후 1년간 정신을 잃으셨다가 깨어나시니 저 상태였습니다. 그때 가주가 날뛰는 것을 막느라고 가문 내 많은 고수가 목숨을 잃었지요.”


“허, 이것 참....”


“무 대협은 그간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만상검을 보아하니 투신은 죽었나 보군요.”


“그냥 심사가 좀 복잡해서 고향에 있었다네. 근데 이거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가? 슬슬 따끔거리는데.”


남궁현은 이제 무극천의 손을 긁어대고 있었다. 화경의 내공이 담긴 손톱은 설령 강철보다 더하다는 무극천의 피부에도 능히 생채기를 낼 지경이었다.


“약을 먹여야 합니다. 조금만 그대로 버텨주십시오.”


남궁천우는 품에서 환 하나를 꺼내 들었다. 비록 함이 박살 나고 으깨어진 상태였지만 그런대로 먹을 수는 있어 보였기에 후후 불고는 얼른 남궁현의 입에 털어 넣었다. 환이 목구멍을 넘어가자, 남궁현의 눈이 서서히 풀어지더니 이내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는 듯 천우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무 대협이 안 오셨더라면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겁니다. 남궁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거야 원 저렇게 칼 같던 친구가 저렇게 되니 마음이 편하지 않구먼.”


바닥에 널브러져 잠든 남궁현을 본 무극천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런데 저쯤 되면 그냥 죽이는 게 더 낫지 않았나? 듣기론 남궁의 가세가 상당히 기울었다던데. 현 저 친구도 한몫한 것 같으이.


남궁천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시도야 여러 번 했지요. 그러나 살기만 느끼면 미쳐 날뛰는 도리가 있겠습니까? 무려 화경의 무인이 그러는데 방법이 없어요.“


”다른 문파에 이야기는 해봤고?“


”하아, 무 대협이 문파니 강호니 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으신건 압니다만, 그래도 자기 문파의 치부를 타인에게 드러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저희도 10년이 지나갈 때 쯤에 비슷한 시도를 해봤지요.“


”그런데?“


”북적의 난 이후 멀쩡한 문파가 없습니다. 도월 대사는 잠적하셨고, 사파는 뭐 말할 것도 없지요. 무당은 박살이 난 나머지 지금 서로 혈전을 벌일 지경입니다. 화산은 봉문에 들어갔다면서 외부에서 청하는 도움은 다 거절하더군요. 그러면서 받아먹는 건 안 가리고 처먹으니. 그 배때지에 기름만 찬 말코 씹새기들.“


천우가 당시의 수모를 떠올리며 욕설을 뇌까렸다.


”종남과 청성의 검파는 애초에 투신조차 찾지 못한 자들 아닙니까. 그쯤 되니 그냥 포기했습니다. 제가 강해져서 가주가 늙어 죽을 때까지 막는 것이 더 빠르겠더라고요.“


무극천은 생각보다 더 처참한 이야기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겁대가리를 상실한 돈벌레 새끼들이 남궁을 갉아 먹는다는 소식을 민이에게 들었을 때는 복장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만상검이 돌아왔으니 이제 어떻게든 되겠지요.“


천우는 그렇게 말하며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무극천은 숙연하게 천우의 넋두리를 듣고만 있었다. 정말 너무나도 처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식사는 드셨습니까? 무 대협이 있으니 저도 여길 나가서 뭘 먹고 싶네요. 20년 가까이를 여기에 미친 가주와 같이 있으니 많이 답답해서 말입니다.“


”그래, 그러세나.“


남궁천우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무극천은 그를 부축했다. 둘이 비처로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남궁현이 갑자기 눈을 떴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무극천의 허리에 매달린 만상검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곤 바닥을 천천히 기어가며 무극천에게 다가간다. 얼마나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인지, 남궁현은 귀식대법을 무의식적으로 응용하며 바닥을 미끄러지듯 기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던 순간이 왔다.


남궁현이 몸을 날리자 이상함을 느낀 무극천이 다급하게 몸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남궁현의 손에는 만상검의 손잡이가 쥐어진 채었다. 허리춤에 빈 칼집만 남은 무극천과 경악한 얼굴로 바라보는 천우를 보며 남궁현은 자랑스럽게 검을 치든다.


”내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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