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 귀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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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
작품등록일 :
2024.07.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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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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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 (8)

DUMMY

한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든 채로 걸어 나오는 범여의 모습이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었다. 범여는 그러거나 말거나 휘적휘적 걸어오더니 비무대 위로 올라와선 주위를 둘러보았다.


“율현이는 아직 안 왔냐?”


“여기 있습니다!”


율현이 손을 들며 일어났다. 그는 범여의 명에 따라 장문인을 따르는 몇 안 되는 제자들을 이끌고 무림맹에 파견 나가 있다가 돌아온 것이었다.


세 장로에게 무림맹의 위치까지 넘겨줘선 안 된다는 스승의 신신당부를 따르느라 나잇살에 치이며 눈칫밥을 먹다가 돌아온 그의 얼굴은 눈에 띄게 초췌했다.


“얼굴이 완전 살았구나. 무림맹 공기가 좋기는 좋아.”


율현의 복장을 뒤집어 놓는 말을 아무렇게나 던진 범여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손을 크게 들어 포권 하더니 말을 꺼냈다.


“좋아, 모일 사람은 다 모였으니 빨리빨리 끝내자고. 해 넘어가기 전에 끝내야 하지 않겠어? 요즘은 어디 무당채 소속 산적들이 날뛴다고 하니 다들 몸조심해야지.”


거침없는 말에 속가의 일원들은 저래도 되냐는 눈길로 범여를 바라봤고, 세 장로의 낯빛은 파랗게 질리다 못해 거무죽죽해질 지경이었다.


“비무의 승패는 상대가 패배를 인정하거나, 싸움을 진행하지 못할 때까지. 혹은 비무대에서 떨어져 나가면 패배다. 비무 중에 일어난 불상사에 대해선 뭐 무림인이라면 다들 감수할만한 사고지만 그래도 피는 안 봤으면 좋겠다. 이상. 시작해.”


“저기 장문,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뭐야?”


“눈이요. 눈.”


“자다가 굴렀다. 더 궁금한 거 있냐?”


대체 잠버릇이 어떻게 되기에 눈이 시퍼렇게 변한단 말인가. 다른 모든 이들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범여는 비무대를 내려가 자리에 앉아버린 후였다.


사실 어제 장요령의 실력을 봐주겠노라고 대충하다가 한대 얻어맞은 것이 이렇게 변할 줄은 범여도 몰랐던 일이었다. 아침이 되고 나서야 이런 꼴이 된 걸 알았으니. 그러나 범여의 기분은 하늘을 뚫을 것 같이 좋았다.


무슨 패인지도 모른 채로 상대에게 허세를 부렸는데 알고 보니 나온 골패가 여섯짜리 패였으니 말이다.


비무의 막이 오르자 장요령은 훌쩍 비무대로 올라왔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괜히 주눅이 들었으나 그는 범여의 말을 기억하면서 어깨를 당당하게 폈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여기서 붙잡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에게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낭인 생활을 하던지, 범여에게 붙들려서 무공을 사사 받고 무당파에 귀의해서 팔자에도 없는 도사질을 해야하는 운명만이 남은 것이다.


둘 중 무엇이 되었든 장요령은 용납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상대가 비무대에 올라왔다. 제법 체구가 탄탄한 이였는데 비무대로 올라온 그는 장요령을 향해 포권했다.


장요령도 상대에게 예를 갖췄으나 꽤 불쾌한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름조차 밝히지 않는다니 자신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 것인가? 무당의 제자는 장요령의 기분이 그러거나 말거나 자세를 바로 잡았다.


“뭐하는 거요?”


“박투로 싸우겠소.”


적수공권으로 나서는 무당 제자를 본 장요령의 표정은 한층 더 썩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무당의 박투술이 격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검문으로 명성이 높은 문파의 제자가 검조차 뽑지 않는다니.


너는 무당의 진정한 공부를 볼 자격도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장요령만이 아니었는지 범여의 옆에 앉아있던 무극천도 살짝 눈꼬리가 위로 올라가 있었다.


“뭐, 그러면 고맙고.”


무당의 제자는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건지 싶었다. 고맙다? 뭐가 고맙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는 생각을 채 끝내지 못 했다.


장요령의 신형형이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져 들어오더니 턱을 걷어차려는 듯 무릎이 위로 치솟은 것이다. 너무나 빠른 움직임에 경악한 무당의 제자는 서둘러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치솟았던 장요령의 다리는 어느새 아래로 내려가 있었고,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던 근육이 풀려나면서 무시무시한 파공음과 함께 무당의 제자 옆구리를 강타했다.


“헉!”


온 몸을 울리는 충격과 격통에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 무당의 제자의 턱을 향해 장요령의 다리가 다시 한번 치솟더니 맹렬하게 걷어찼다. 대번에 눈을 까뒤집고 쓰러진 무당의 제자를 향해 심윤영이 뛰어오더니 상세를 살폈다.


갈빗대가 몇 대는 나갔고, 내공이 실린 발차기에 뇌는 진탕 나서 기절한 그를 보더니 손을 위로 올려서 가위표를 그렸다. 전투불능, 장요령의 승리였다.


너무나 손쉽게, 그것도 고작 두 번의 발차기로 상대를 무너뜨린 그를 보며 관중은 말을 잃어버렸다. 그중에서 압권이었던 것은 현웅 장로였다. 장요령을 때려눕히는 일말의 영광이라도 쥐어보겠다며 먼저 나선 그의 체면이 완전 시궁창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그를 증명하듯 현웅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 채 입을 떡 벌리고 뭐라 말을 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장요령의 아버지가 신교주 장중부라는 것을. 그리고 장중부는 통천각이라는 각법의 달인이었다. 장요령 또한 아버지에게 사사받은 몸이었으니 박투술에서 그와 겨룬다는 것은 목을 내놓고 잘라 달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번째로 도전하기로 예비 되어 있던 무당의 제자가 불안한 표정으로 스승을 살폈다.


“스승님, 어찌해야 합니까?”


그는 불안했다. 자기 또래 중에서 박투술이 가장 뛰어난 이가 선발로 나갔는데 무참하게 깨졌다. 지금이라도 검을 들고 덤비고 싶은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현웅은 여전히 새하얀 얼굴로 제자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박투술로 하거라.”


그도 알았다. 장요령의 공부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음을. 그러나 이미 상대를 무시해버린 처지에서 검을 뽑아들었다간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제자는 스승의 말에 그저 고개를 조아리더니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비무대에 올랐다.


“무당의 진무다.”


“장요령.”


이번에는 상대가 이름을 밝혔으나 장요령은 앞서 무시당한 것이 영 불쾌했기에 말이 절로 짧아졌다. 진무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으로 짓쳐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부드럽게 이어지는 장법이 상대의 온 몸을 난타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장요령은 몸을 뒤로 살짝 빼더니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진무는 그것을 보며 필사적으로 공격을 이어나갔다. 상대의 실력을 본 이상 어떻게든 먼저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면 쓰러지는 것은 자신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 진무의 필사적인 공격에서 장요령은 유들유들하게 피하기만 했다. 어느새 숨이 목까지 차오른 진무는 악에 받친 말을 내뱉었다.


“비겁하게 도망치지 마라!”


“도망이 아니라 작전이야. 등신아.”


상대의 호흡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본 장요령은 한걸음에 거리를 좁혀서 들어갔다. 그러나 마치 바닥을 잘못 밟았는지, 발목이 접질렸는지 그의 몸이 바닥으로 자빠지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진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장법을 쏘아냈다.


간발의 차로 등허리를 스쳐 지나가는 상대의 공격에도 요령의 얼굴은 그저 평안했다. 그는 단순히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거의 딱 붙으며 팔꿈치로 몸의 중심을 잡았다. 부드럽게 몸을 굴리며 상대의 공격을 흘려보낸 그는 이내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뛰어오름과 동시에 솟구치는 요령의 무릎이 진무의 배를 강타하자 둔중한 충격과 뱃속에서 치밀어오르는 구역질에 진무는 아기처럼 바닥에 몸을 웅크릴 수 밖에 없었다.


“우웨에에엑!”


싯누런 위액과 더불어 피가 섞여 나오는 토악질을 하는 진무의 모습에 세 장로의 얼굴은 이젠 불쌍해질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는 무당 속가의 일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건 나려타곤이 아닌가?”


“아무리 비무에서 승리가 중요하다지만 저런 추태까지 보이는 건 좀....”


요령의 무위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저런 수로 상대를 농락하는 것이 영 보기 껄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같은 문파에 소속된 이들인만큼 진무에 대한 동정심이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저건 나려타곤이 아니야.”


“예? 하지만 바닥을 구르는 것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바닥을 구른 게 아니라 바닥에 몸의 일단(一端)을 붙이면서 미묘하게 균형을 잡아 움직이는 것이다. 남파 무공 중엔 구권(狗拳)이라는 독특한 권법이 있는데 그걸 응용한 것 같군.”


범여의 대답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부드러운 움직임이 바닥을 아무렇게나 구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장요령의 옷은 먼지투성이 아니었고, 팔꿈치나 팔목, 무릎 등 일부분만이 때가 타 보였다.


그때 현웅이 내보낸 마지막 비무자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서서 장요령을 바라봤다. 장요령은 그러거나 말거나 이리저리 걸어다니면서 상대를 관찰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번 바닥을 박차면서 날아차기를 날렸다.


하지만 상대는 부드러운 손길로 장요령의 발목을 낚아채더니 비틀어 버리려고 들었다. 장요령은 상대가 비트는 방향대로 공중에서 몸을 돌리며 반대편 발로 상대의 손을 찼다. 자칫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은 공격에 마지막 무당의 제자는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풀려난 장요령은 이리저리 상대에게 가벼운 발차기만을 쏟아냈다. 상대는 뿌리박힌 나무라도 되는 것처럼 이러저리 공격을 흘려내거나 막아내기만 할 뿐이었다.


“거북이냐?”


장요령이 말로 상대를 자극해보려 했으나 마지막 비무자는 그저 굳건하게 서서 방어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요령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다시 한번 앞으로 도약하며 채찍처럼 다리를 뻗었다. 상대는 옆구리로 날아오는 공격을 막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다리를 접으며 짓쳐 들어오는 장요령을 보면서 서둘러 손을 앞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허초였다. 장요령은 적에게 최대한 가까이 붙은 후 상대를 차버리는 것이 아닌 발을 그대로 밟아 찍어버린 것이다.


발등이 으스러지는 고통에 눈이 번쩍 뜨인 무당의 제자의 방어가 허물어지자 장요령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몸을 붙인 상태에서 다리를 올려서 상대의 배에 발바닥을 붙였다.


단전에서 솟구치는 내공이 발의 장심에 맺히고 그대로 상대를 밀어붙이면서 폭발시켰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당의 제자는 물수제비처럼 바닥을 통통 튀더니 비무대 밖으로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실력차다. 세 명 다 장요령의 옷깃조차 스치지도 못 한 채 나가떨어진 것이었다. 반 시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장요령은 쓰러진 상대들을 한번 슬쩍 봤다.


“무당 장로들이 직접 길렀다더니 별거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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