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 귀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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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
작품등록일 :
2024.07.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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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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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 (4)

DUMMY

무극천의 말에 장요령은 침을 꼴깍 삼켰다. 지금까지 본 바로는 무극천은 권사였지 검사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검을 가르치겠다니 대체 무슨 속셈일까? 그러나 다른 마음으로는 기대가 일었다. 권사 마저도 익히게 만든 검술이라면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무슨 검술입니까?”


“랑검(狼劍)이다.”


“랑검이요?”


“그렇다.”


“창안자가 누구입니까?”


“귀유한, 북막의 투신으로 더 유명한 사내였지.”


무극천의 말에 모두 충격을 받은 나머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남궁현조차도 무극천을 주목할 지경이었으니 다른 이들이 느낀 놀라움은 말로 풀어낼 수 없는 것이리라.


“어떠냐, 배우고픈 마음은?”


“구배지례를 올리겠습니다.”


장요령이 넙죽 절을 하려 하자 무극천이 손사래를 쳤다.


“되었다. 네가 지금까지 군말 없이 잘 따라와 줬으니 하는 상이라고 생각하거라. 이제 검을 다오.”


무극천은 앞으로 나서서 한 차례의 검무를 펼쳤다. 늑대검이라는 이름만큼이나 포악하고 공격만을 위한 극단적인 검무에 장요령은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 외로 엄청나게.... 엉망인 검술이었다.


일단 내지르는 검격은 중검의 묘리를 담은 묵직한 일격이었으나 그를 받쳐주는 보법은 쾌검이나 연검을 즐겨 쓰는 이들이 사용하는 경쾌한 보법이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힘을 받아 저런 묵직한 일격을 날리는 것인지 영 짐작이 되지 않았다.


한 차례의 시범을 보여준 무극천은 장요령에게 검을 넘겨주었다.


“자, 한번 해보거라.”


투신의 검술이니 뭔가 큰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 장요령은 의심 속에서도 무극천이 보여준 검술을 그대로 펼쳐보았다.


그러나 일검을 내지를 때마다 파탄을 내는 보법과 검격은 허리가 휙휙 돌아가다 못해 하마터면 삘 뻔하질 않나, 애써서 성공했더라도 제대로 된 힘이 실리지 않았다.


몇 차례 반복하다가 욱신거리는 허리를 부여잡은 장요령이 물었다.


“이게 진짜 투신의 검술 맞습니까?”


“그럼, 내가 다 맞아보고 눈으로 익혀보면서 외운 것이니 정확하다.”


“끙, 그러면 한 번만 더 보여주십쇼. 이번에는 저쪽에서요.”


무극천의 시연을 다시 본 장요령은 이번엔 휘두르는 검의 궤적이 아닌 걸음을 면밀하게 살폈다. 검을 받아 들고 나서는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찍힌 발자국들을 신중하게 밟아가며 움직였다. 몇몇 발자국의 깊이가 다르다.


어느 정도 비밀을 확인한 장요령은 다시 한번 검무를 펼쳤다. 이번에는 제법 태가 나는 것이 이제서야 검술다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거 엄청나게 어려운데요. 보법의 강약이 제멋대로입니다.”


한편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윤영이 입을 열었다.


“장 소협, 한 번만 더 보여주세요. 얼른요.”


“허리가 나갈 것 같아서 안 되겠는데.”


“다 끝나면 침 놔드릴 테니 그냥 좀 하세요.”


침까지 놓아준다는데 어쩌겠는가, 장요령은 군말 없이 한 번 더 검무를 펼쳐보았다.


“이제야 알겠네요.”


“뭐가?”


“투신은 천재였어요.”


뿌듯하게 말하는 심윤영을 보면서 장요령은 이걸 욕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당연히 천재였으니까 중원에서 그 깽판을 놓고 칼침 안 맞고 돌아갔겠지. 마지막에 맞아 죽은 것이 흠이었지만.


“검술 자체가 투신의 몸에 최적화된 검술일 거예요. 다른 이들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고 스스로 무예를 개척한 자들만이 보여주는 특징인데, 허리가 아프다는 것이 그 증거죠.”


“투신은 허리에 뼈가 없었나 보네.”


“뼈가 없기보단 몸이 엄청나게 유연하고 탄력적이었겠죠. 동시에 심법으로 그 반동을 줄이는 것도 있었겠구요.”


심윤영의 지적은 맞는 말이었다. 장요령이 사용하는 신화충천검의 요체는 쾌와 난에 치우친 검이기에 묵직한 맛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전혀 맞지 않는 성질의 검술을 펼치려고 하니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숙부님, 이 검의 심법은 어떻게 됩니까?”


“심법? 그건 나도 모르는데?”


“예?!”


황당함을 넘어서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장요령은 무극천을 노려봤다. 심법도 없는 검술을 가르치려 하다니 자신을 주화입마에 밀어 넣어서 죽여버리려는 심산인가?


“아니, 검술과 맞는 심법도 없이 이걸 어떻게 씁니까. 내공을 잘못 돌렸다간 그대로 골로 가겠는데요!”


“검에 익숙한 건 네가 아니냐. 휘두르다 보면 뭔가 빡하고 떠오르는 것이 올 줄 알았지.”


“세상천지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장요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하늘이 복을 아무렇게나 내려주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연습하다 보면 떠오르는 것이 있겠지. 아니면 다른 검으로 유명한 문파에 가서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고.”


“물어보러 갔다가 맞아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습니다.”


“심 여관, 혹시 방법이 없겠는가?”


“글쎄요. 저도 무 선배님의 방법 말고는 생각이 나지 않네요. 다만 편견 없이 가르쳐 줄만한 문파라면 청성이나 종남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들을 만나는 것부터가 하늘에 별 따기라 어렵겠지요.”


한 마디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였다. 장요령은 우울한 기분을 느끼면서 검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거나 그 파괴력만큼은 천하에 둘도 없는 검이니 가능한 한 복원해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지나갈 즈음 소홍기가 도착했다. 그는 분위기가 몹시 엉망인 것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뭔 일 있었습니까?”


“뭔 일까지야. 거지는 빨리 말할 거 떠들고 가라.”


“거 참, 그새 못 봤다고 갱년기라도 오셨소? 봄날 날씨만큼이나 성격이 개지랄이구먼.”


“개지랄? 오늘 개 잡는 거 보여줘?”


괜히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장요령을 본 심윤영이 가볍게 지풍을 날렸다. 순식간에 아혈이 봉해지면서 쓰러지는 장요령을 무극천이 가볍게 받더니 마차 짐칸에 던져넣었다.


곤륜의 절기인 타통지는 살상력은 전혀 없는 무공이었다. 환자를 진맥하거나 몸속의 이상을 확인하기 위한 기술이었지만, 심윤영처럼 화후에 따라선 상대방의 몸에 내공을 밀어 넣어 퍼지게 해 먼 거리에서 점혈하는 데도 쓸 수 있었다.


“후개께서 오신 걸 보면 확인이 다 끝난 모양이네요.”


“물론이오.”


소홍기는 제갈흠의 명을 받고 일행보다 먼저 균현 쪽으로 향했었다. 균현에 나가 있는 개방의 방도들을 이끌고 균현을 감시하는 무당파 일원들의 위치와 경지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소이다. 걸리지 않고 몰래 들어가긴 몹시 어려울 것 같소.”


“현성 장로의 일파는 그렇게 크진 않았을 텐데요.”


“다른 이들도 몰려들었소. 현각과 현웅 두 장로에게 속한 자들의 얼굴을 봤으니 확실할 거요.”


“최대한 경지가 낮은 이들이 몰린 곳을 찾아주세요.”


“짧은 소견으론 이대로 남쪽으로 이동해서 방현을 통해 올라가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소. 융중산 쪽은 현성 장로 때문인지 감시망이 더욱 촘촘하다오. 아무튼 나는 쉬운 길을 찾아볼 터이니 보중하시오.”


소홍기가 떠나는 모습을 보는 무극천은 제갈흠에서 받았던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다 늙은 나이에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었다. 젊었을 적엔 이렇게 복잡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세월이 갈수록 세상은 더욱 어지럽기만 했다.


과오를 되돌리기 위해 나선 길은 무극천에겐 어깨가 무너질 것 같은 짐으로 다가왔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일이 이런 복잡한 사정으로 자신을 묶어버릴 줄 알았다면 그냥 복주 어딘가에 다 묻어버렸을 것이다.


상념에 빠져있던 무극천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마차에 던져놓았던 장요령이 원망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를 본 무극천은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심 여관, 여기 점혈 좀 풀어주게나.”


“아! 깜빡했네요.”


점혈에서 풀려난 장요령은 얼굴이 시뻘게졌다. 살면서 이렇게 간단히 점혈을 당한 적은 손에 꼽았는데 이번엔 자기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여자에게 당한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미친년 같으니라고! 이게 무슨 짓이야!”


“다시 묶어드려요?”


묻는 투였으나 이미 심윤영의 손에서는 지풍이 날아간 후였다. 허나 이번엔 장요령도 순순히 당할 생각이 없었기에 몸을 틀어 간단하게 피해냈다. 그러곤 어떠냐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하나 피한 것이 뭐 대수라고.”


“뭐?”


“이봐요. 댁들 돕자고 온 사람한테 애꿎은 화를 내고 그래요? 거기에 내가 초면부터 반말하는 거 참아주니까 만만하게 보이냐? 지가 못 해서 제대로 못 배웠으면 부끄럽다고 고개나 박을 것이지. 별꼴이야.”


쌓였던 억하심정까지 담아 쏘아붙이는 심윤영의 말을 듣는 장요령의 얼굴은 이제 붉으락푸르락 해지다 못해 창백해질 지경이었다. 서늘한 검광이 심윤영의 목덜미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이미 심윤영은 저 멀리 물러난 후였다.


“왜? 정곡을 찔리니까 막 속이 뒤집어지고 그래? 그러니까 이제 검 뽑고 덤비려고?”


“거기 가만히 있어라. 내가 아주 요절을 내줄 테니.”


장요령이 한 걸음 다가가면 심윤영은 네다섯 걸음은 멀어졌다. 곤륜파가 자랑하는 비룡축전이 펼쳐진 것이다. 장요령은 이젠 숫제 입에 거품까지 물고 심윤영을 때려죽이기 위해 죽어라 뛰어다녔다.


그때 둘 사이를 마치 적룡 하나가 질주하듯이 매서운 기세로 파고들었다. 보다 못한 무극천이 사슬을 던진 것이었다. 그저 가볍게 던졌을 뿐인데 바닥에 낸 고랑의 깊이 상당한 걸 본 둘은 순순히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쯤 하고 움직이는게 어떻겠느냐. 후개 말대로 방현으로 갈까?”


“아니요. 후개가 생각해 냈다면 저쪽도 생각을 했을게 뻔합니다. 차라리 융중산 쪽으로 돌진하시죠.”


“점혈 당하고 있느라 귀도 막혔어? 거긴 쫙 깔렸다는데 어떻게 가려고.”


이젠 숫제 반말투였다. 말이나 안 하면 밉지도 않지. 장요령은 어린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설명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멍청한 년아, 생각을 좀 해봐라. 방어선이 두꺼우면 무슨 소리겠냐?”


“뭔 소리인데?”


“동원된 인원수가 많다는 소리지. 그만큼 어중이떠중이 수도 제법 된다는 소리야. 그리고 실력있는 자들은 어차피 균현 근처에 다 몰려 있을 거란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방현으로 가든, 융중산으로 가든 똑같아. 차라리 융중산 쪽이 사람을 많이 깔아놨으니 내심 소홀해지기 마련이라고.”


예상외로 예리한 장요령의 지적에 심윤영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네.”


“굼벵이?!”


“둘 다 적당히들 해라.”


둘의 분위기가 다시 험악해지려고 하자 무극천이 나섰다. 말이 짧아지는 것을 본 장요령은 합죽이가 되었고, 심윤영도 어깨를 으쓱 한 번 하더니 마부석에 올랐다.


“그럼 가보자고요. 어디 굼벵이 구르는 재주가 얼마나 잘 맞는지 한번 봐야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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