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 귀가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손돌
작품등록일 :
2024.07.15 16:39
최근연재일 :
2024.09.02 21:15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3,153
추천수 :
0
글자수 :
119,146

작성
24.08.30 21:14
조회
56
추천
0
글자
9쪽

호북 (12)

DUMMY

“준비는 끝났느냐?”


율승은 현성을 바라봤다. 태연자약한 얼굴이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리는 것이 현성도 긴장을 제법 한 것 같았다.


“예, 장로님.”


율승은 검 손잡이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긴 세월 동안 든든하게 곁을 지켜준 물건이었으나 오늘만큼 무거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자신의 승패에 따라서 무당의 미래가 갈리게 되었으니 어찌 그 무게가 태산보다 못 하랴.


율승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을 열어젖혔다. 이미 마지막 비무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가득하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눈총을 이겨내며 율승은 비무대 위에 올랐다.


“장문, 하나 청을 드릴 것이 있습니다.”


“뭔데?”


“진검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율승의 요구에 마치 바람에 휘날리는 갈대처럼 술렁거림이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범여는 율승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담긴 결의를 느낀 것일까? 범여는 허리에 매고 있던 검을 풀어 장요령에 던져주었다.


장요령은 검을 받아 들더니 황당한 표정으로 범여를 바라봤다.


“뭐, 마지막이니 이 정도 흥을 띄우는 것은 괜찮겠지.”


“감사드립니다.”


율승은 범여에게 예를 표한 후 장요령을 향해 크게 읍을 했다.


“무당의 율승이오.”


“장요령입니다.”


이전과 다르게 장요령도 말을 짧게 하지 않았다. 둘은 검을 뽑아든 채 기수식을 취하며 서로를 노려봤다. 어느 한쪽도 섣불리 출수를 하지 않았다. 그저 상대를 바라보며 천천히 옆으로 몸을 움직일 뿐이었다.


그렇게 둘의 몸이 한바퀴를 돌며 서로 처음 선 자리로 돌아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상대를 향해 돌진했다. 율승은 매서운 기세로 검이 목을 향해 찔러 들어오자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그의 손에 잡힌 검이 원을 그린다.


그렇게 그려진 원을 따라 율승의 검이 장요령의 검을 아래로 누르며 검날을 타고 거침없이 올라간다. 이대로라면 손가락을 모조리 동강날 처지다. 장요령은 한 발더 앞으로 내딛으면서 검첨이 아래로 향하도록 세로로 세우며 율승의 검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했다.


그러나 율승은 다시 한번 원을 그렸다. 정반대의 검면을 묵직하게 누르는 느낌에 손목이 비틀릴 처지에 빠진 장요령은 팔에 단단히 힘을 주며 앞을 향해 뻗는다. 율승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검을 왼쪽으로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장요령의 앞섬이 일자로 잘려 나풀거린다. 조금만 깊게 들어왔다면 충분히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율승은 상대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상대의 눈빛이 차갑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기세다.


만만치 않은 것이 올 것임을 예상이라도 한 듯 율승의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장요령의 검이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그러나 이내 쏘아지는 공격은 예리하고 쾌속하기를 비견할 것이 없을 수준이었다.


순식간에 다섯 가닥의 검광이 난폭하게 율승을 덮친다. 전날에 보여주었던 초식에 율승은 맞서는 것이 아닌 물러남을 선택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다시 한번 박찬 그의 몸이 마치 허공을 부드럽게 떠다니는 구름처럼 움직인다.


다섯 가닥의 검로는 구름을 미처 가르지 못하고 한 점으로 수렴했다. 율승은 내친김에 몸을 날리며 우측으로 파고 들었다. 그러면서 손목을 향해 부드러운 일격을 쏘아낸다. 요령이 검으로 이를 받았으나 이내 서로 맞붙은 검은 원을 그리며 요령의 방어가 흩어졌다.


태극검, 유극이 무극이 되는 무당의 절세검공이 여지없이 위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신의 움직임은 순리(順理)로, 상대의 움직임은 역리(逆理)으로 뒤바꾸는 신공에 요령은 여지없이 밀려나고 있었다.


설명을 듣긴 했지만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다. 장요령은 이를 악물며 몸을 뒤로 튕겼으나 율승은 마치 참새를 노리는 매처럼 끝도 없이 달라붙는다. 빌어먹을 놈의 제운종! 율승의 움직임은 일견 느릿해 보이지만 들어오는 기세는 매섭기 짝이 없다.


장요령이 추격하는 율승을 향해 검을 뿌렸으나 율승은 이를 가볍게 파훼했다. 그러곤 비어버린 요령의 몸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장요령은 이를 튕겨내려 했으나 어느새 다시 한번 그려진 검은 요령의 검을 다시 걷어낸다.


요령은 몸을 피하며 율승을 바라봤다. 비인간적일 정도로 평온한 얼굴이다. 율승은 단 한번도 장요령을 상대로 방심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기는 그 순간까지 똑같은 표정일 것이다.


율승의 검 또한 그 표정만큼이나 기복이 없이 휘둘러진다. 다시 한번 상대의 방어를 무너뜨리는 순간 장요령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백척간두 진일보다!’


장요령은 속으로 되뇌면서 율승의 검이 밀고 들어오는 순간 몸을 앞으로 날림과 동시에 앞으로 굴렀다. 상대의 몸과 충분히 붙은 순간 요령의 몸이 용수철처럼 튕기며 물구나무를 서는 자세로 율승의 턱을 두 발로 올려친 것이다.


율승의 상대의 예상치 못한 일격에 놀라움을 느끼면서 간발의 차로 치고 올라오는 발을 피했으나 요령의 일격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치솟은 다리는 양쪽으로 벌려지며 풍차처럼 돌아가 율승의 가슴을 강타한 것이다.


율승의 자세가 흐트러지자 장요령은 그대로 몸을 세우며 검을 위로 뻗어 올렸다. 일련의 기격에도 불구하고 율승의 검은 흐트러짐 없이 장요령의 공격을 막아낸다. 그러나 검은 그럴지언정 몸은 그러지 못 했으니 처음으로 태극검이 위력을 떨치지 못했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건 아쉬웠으나 장요령은 한숨을 돌린 것에 만족했다. 율승은 자신의 태극검이 흐트러진 것에 충격을 받은 건지 상대를 추격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잠시간 멈춰서 있었다.


“놀라운 실력이오.”


율승이 비무를 한 이래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대를 보면서 방심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건만 내심은 그러지 않은 모양이오.”


“나는 방심을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요령이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답하자 율승의 돌부처 같은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어렸다.


“그대 같은 이를 두고 그런 결례를 범할 순 없지. 그러니 내 전력을 보여드리리다.”


율승의 기세가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아래로 침잠한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장요령은 이제 더 이상 실력을 숨기고 말 것도 없는 순간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신화충천검의 기수식을 취했다.


둘은 시작처럼 서로를 향해 다시 달려든다. 율승의 검이 원을 그리고 태극이 요령의 검을 휩쓸어 버리려는 찰나 장요령은 세 번의 검격을 쏘아냈다. 그러자 율승의 태극이 크게 흔들린다. 이전의 기격도 아닌 순수한 무공의 겨룸에서 밀린 것이다.


요령의 연격은 제각기 다른 힘을 담으며 율승을 연거푸 유린 했다. 한 줄기는 느리고, 한 줄기는 모든걸 베어버릴 예리함으로, 마지막은 그저 질풍같은 쾌격으로.


제 아무리 태극의 묘리가 유극을 무극으로 진압할 수 있다하더라도 제각기 다른 뜻을 담을 공격을 한 번에 진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장요령은 기세를 몰아 다시 한번 오화설영(五火焫靈)의 초식을 쏘아냈다.


이번에도 뒤로 물러나려던 율승은 옆구리를 화끈하게 스치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네 줄기의 느릿한 검로 아래로 숨어 들어온 다섯번째 검로가 쾌한 기세로 허공을 가르고 율승의 옆구리를 스친 것이다.


요령은 상대에게 자신의 공격이 닿았음을 보자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초식을 쏟아낸다. 율승은 좌우로 치고 들어오는 장요령의 검을 쳐내고 누르며 막아내었으나, 눌러진 검이 마치 그림자처럼 빠져나가고 자신의 심장을 향해 들어오는 검을 보아야했다.


삼화취정(三火取心), 이량흔이 가르친 오의 중 하나가 율승을 꿰뚫어 버리려는 찰나, 율승은 고집스럽게 검으로 원을 그리며 그 일격에 맞섰다.


“이미 늦었다!”


장요령의 검은 걷어낼 성질의 일격이 아니었다. 장요령은 승리를 확신하며 외쳤다. 그리고 율승의 검이 부질없이 장요령의 검에 부딪혔다. 그러자 방금까지 매섭게 파고들던 검이 멈췄다.


장요령은 손목을 부여잡으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단순히 검이 맞부딫힌거 뿐인데 손목이 나갈 뻔했다.


“유극이 무극이 되니 이를 음이요.”


율승은 나지막하게 이야기하며 부드럽게 검을 휘두른다. 검에 넘실거리는 흰색의 기운이 어리더니 이내 검을 얇게 감싸기 시작햇다.


“무극에서 유극이 나오는 이것이 양이니.”


새하얀 검기를 느리게 휘두르는 율승의 몸에서 마치 홍수를 보는 것 같은 기백이 느껴진다.


“음이 동하면 양이요, 양이 가라앉으면 음이니. 이것이 끝없이 순환하는 것이 태극이라.”


율승은 가볍게 바닥을 박차며 아래에서 위로 올려베었다. 요령은 이를 막고자 했으나 단번에 검이 위로 들리는 것을 느껴야했다.


“태극혜검.”


장요령은 벌어진 입 사이로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하제일인 귀가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죄송한 말씀을 전합니다. 24.09.03 53 0 -
공지 연재 시간 안내 24.08.21 38 0 -
24 호북 (13) 24.09.02 51 0 12쪽
» 호북 (12) 24.08.30 57 0 9쪽
22 호북 (11) 24.08.29 72 0 11쪽
21 호북 (10) 24.08.28 73 0 8쪽
20 호북 (9) 24.08.27 70 0 11쪽
19 호북 (8) 24.08.26 72 0 11쪽
18 호북 (7) 24.08.26 74 0 11쪽
17 호북 (6) 24.08.21 76 0 11쪽
16 호북 (5) 24.08.20 76 0 11쪽
15 호북 (4) 24.08.19 83 0 11쪽
14 호북 (3) 24.08.16 88 0 11쪽
13 호북 (2) 24.08.14 81 0 11쪽
12 호북 (1) 24.08.13 88 0 11쪽
11 안휘 (8) 24.08.12 93 0 11쪽
10 안휘 (7) 24.08.08 104 0 11쪽
9 안휘 (6) 24.08.07 105 0 11쪽
8 안휘 (5) 24.08.06 115 0 11쪽
7 안휘 (4) 24.08.06 121 0 11쪽
6 안휘 (3) 24.07.17 151 0 11쪽
5 안휘 (2) 24.07.17 171 0 12쪽
4 안휘 (1) 24.07.16 232 0 11쪽
3 항주 (3) 24.07.16 296 0 12쪽
2 항주 (2) 24.07.15 322 0 11쪽
1 항주 (1) 24.07.15 460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