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 귀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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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
작품등록일 :
2024.07.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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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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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 (3)

DUMMY

이량흔의 말에 장중부의 표정이 굳어졌다.


“돌아왔단 말이지....”


장중부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생각에 빠졌다. 항주 지회장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나가보겠다며 방을 떠났다. 오직 요령만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대공자님은 멸야차가 누군지 잘 모르시겠군요.”


이량흔은 요령의 표정을 힐끗 보고 설명을 시작하려 했으나 상처가 고통스러운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장중부가 대신 말하기 시작했다.


“멸야차는 20여 년 전 무림 제일인으로 뽑히던 자다. 너도 북적의 난에 대해서는 들어보았겠지?”


“교주님께서 신교의 지존이 되셨던 사건 아닙니까?”


“그래, 북막에서 내려온 투신이 강호를 활보하며 이름있는 문파는 닥치는 대로 다 때려 부수고 다녔던 시절이었지. 그때 신교 또한 만만치 않은 피해를 봤다. 가장 큰 문제는 당시 교주였던 이에게 있었다.”


장중부의 눈동자가 그때의 혼란을 회상하는 듯 가볍게 떨렸다. 이내 이량흔이 말을 받았다.


“당시 교주였던 천일광은 투신과의 결전 직전에 겁에 질려서 교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무림맹의 수좌에 있었던 도현 대사가 패해 무공이 폐해지고, 흑룡방주 모원회는 패사했지요. 그때 나서신 게 현 교주님이십니다.”


“북막의 투신은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신물을 걸고 비무에 나설 것을 제의했다. 만약 비무자가 도망치거나 싸움을 거부한다면 문파 전체를 쓸어버렸지. 천일광이 도망치고 교단 내부에서는 누가 대신 나설 것인지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어.”


요령은 전대의 비사를 들으며 충격에 빠졌다. 설마 선대 교주가 그렇게 추한 모습을 보였을 줄이야.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었지. 개죽음이었으니 오죽하랴?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섰다. 그리고 투신이 비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모두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도망갔던 천일광의 목을 들고 나타났으니까. 그는 나에게 말했다. 비무자가 도망쳤으나 기꺼이 나선 용기에 경의를 표하겠노라고. 신물을 넘겨준다면 돌아가겠다고 말했지.”


그 말을 끝으로 장중부는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무인이 어찌 꼬리를 말고 도망치겠느냐. 나는 그에게 도전했고 사지가 박살 나는 중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땅을 기어서 그의 신발이라도 물어 뜯으려고 발악을 했지. 투신은 토룡처럼 기어가는 날 보며 웃더구나. 그러곤 한번 더 기회를 주겠노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신교는 신물을 바쳤다. 신인옥이라는 하얀 보옥이었지.”


장요령은 하얀 보옥이라는 말에 가슴섶을 매만졌다. 자신의 품에 있는 이 보석이 설마 그 신인옥일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신인옥은 교의 귀물이지만 동시에 초대 교주가 잠들어 계신 신인묘를 여는 열쇠다. 그것이 있어야만 진정한 교주의 무공을 얻을 수 있으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지금 내가 교주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투신에게 도전했다는 교를 향한 헌신 덕이다.”


그 말을 끝으로 장중부는 입을 다물었다. 침울한 표정에서 비무의 패배와 껍데기만 물려받은 교주 자리에 대한 아픔이 배어 나왔다.


“그때 정파와 사파, 신교가 찾아낸 게 멸야챠 무극천입니다. 그는 양민을 해하는 무림인들을 잡아 족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상대가 어떤 세력 소속이던 가리지 않고 요절을 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무림공적으로 찍힌 적도 있었는데 자기를 추격하는 모든 이를 다 때려죽이곤 당당하게 무림공적의 오명을 벗은 전설적인 무인이었습니다.


강호의 난다긴다하는 고수들이 모조리 투신에게 패하였으니 마지막 동아줄이라는 심정으로 멸야차에게 투신을 죽여줄 것을 청했습니다.”


“그는 정파와 사파 세력을 만난 후 자리보전하고 있던 나를 만나러 왔다. 그리고 묻더구나. 복수를 원하느냐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고 멸야차는 그날 이후 투신을 찾아가 생사결을 벌였다. 듣기론 두 번의 생사결에도 결판이 나지 않았으나 투신은 두 번째 생사결 이후 북쪽으로 홀연히 떠나버렸고, 멸야차 또한 그를 쫓아 강호에서 모습을 감췄지.”


장요령은 생각보다 구질구질한 강호의 복수극을 들으면서 당황했다. 결론은 센 놈한테 개박살이 났으나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미친개한테 가서 대신 물어뜯어달라고 빈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아무튼 과거의 이야기는 충분한 것 같구나. 요령 너는 나를 따라와라. 멸야차를 보러 가야겠으니.”


“저.... 제, 제가요?”


“언제부터 교주의 말에 토를 달 수 있게 되었느냐? 잔말 말고 퍼뜩 앞장서지 못할까!”


“혹시 신물을 찾으러 가신다면 여기 있습니다! 그 노인네가 저한테 줬단 말입니다.”


장요령은 다급하게 품에서 신인옥을 꺼내 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가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이 몸을 지배한 나머지 반사적으로 행한 것이었다. 장중부와 이량흔은 요령의 손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신인옥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걸 너에게 줬다고?”


“예, 1장로를 때려눕히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주더군요. 교주님,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받을 것도 받았으니 이만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니, 무슨 꿍꿍이인지 직접 물어봐야겠다.”


요령은 죽을상을 지으며 나섰다.


***


요령에겐 불행이었지만 장중부에겐 다행히도 멸야챠 무극천은 시화루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아니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뚫어놓은 구멍을 수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왕삼이 제발 돌아가시라고 애원했으나 그는 막무가내로 자신이 고쳐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거 원 쉽지 않구먼.”


무극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멍은 나무로 대충 얼기설기 틀어막은 흉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화루의 고풍스러운 멋 덕분에 그것은 배로 끔찍해 보일 지경이었다.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던 무극천은 한숨을 내쉬며 손에서 망치를 내려놓았다.


시화루 너머에서부터 강렬한 내공을 뿜어내는 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20년 전에 침대에 누워서 복수를 갈망하던 젊은 무인은 이제 원숙한 고수가 되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무극천은 시화루를 나섰다. 장중부는 이미 시화루의 문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정말이군. 진짜로 돌아왔을 줄이야.”


“오랜만이구려. 교주.”


“서로 익숙하지도 않은 예는 생략합시다. 내가 묻고 싶은 건 이미 알고 있으리라 믿소.”


“투신 이야기겠군. 난 당신네들 부탁 대로 그를 따라잡아 죽였소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모습을 감춘 거지? 그게 사실이라면 전 무림의 영웅으로 칭송받고도 남을 텐데.”


“저 애송이에게서 아무것도 못 받은 거요?”


“신인옥이라면 이미 받았소. 설마 투신이 앗아간 모든 신물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오?”


무극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들고 다니기 위험한 물건들이지. 투신을 쓰러뜨리면서 나 또한 만만치 않은 부상을 입었다오. 그 상태로 강호에 모습을 드러냈다간 투신보다 더한 피바람이 불 것이라 생각했소.”


“그러면 지금 와서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무엇이오?”


“당연한 것 아닌가. 물건들의 원주인을 찾아주어야 하니 나온 거요.”


“그렇다면 부탁이 있소.”


무극천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떴다. 그는 내심 장중부가 다른 신물들을 노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행로에 내 아들놈을 데려가 줬으면 하오.”


“예? 아버지?!”


요령은 장중부의 선언에 경악하여 말을 높이는 것조차 잊고 말았다.


“요령, 너에게 교주로서 명을 내린다. 멸야차 무극천 대협을 따라 강호 문파의 신물들을 돌려주는 데 함께해라. 임무를 완수하기 전까지 너는 교에서 어떠한 지위를 가지지도 못할 것이며, 도움조차 받지 못한다. 알겠느냐?”


“아니, 이런 일이 어딨습니까. 제가 아무리 아버지 마음에 차지 않는 자식이라곤 하나....”


“닥쳐라! 네 놈이 강호를 떠도는 속셈을 내가 모를 것 같으냐! 너는 지금 교를 나가지 않으면 죽는다. 네 동생과 교주 자리를 되찾기 위해 표독스럽게 나서는 천 씨들 손에 말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세력을 찾아보겠다고 떠돌 바에 내가 명을 수행해라. 성공하고 돌아오는 날, 너는 소 교주가 된다. 네가 살 길은 이것뿐이니라!”


요령은 아버지의 선언에 말문이 막혔다. 장중부의 말대로 요령의 상황은 풍전등화나 다름없었다. 그는 장중부가 교주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낳은 자식이었기에 세력 싸움에서 외가의 등을 업은 동생에게 밀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렇기에 강호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기인이사들을 만나 힘을 얻고자 했지만 3년간 얻은 소득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장중부의 제안은 매력적이었으나 두려웠다. 설령 자신이 성공해서 돌아간다 한들 어떻게 소 교주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아버지의 말도 맞았다. 현 상황을 유지한다고 해서 살아남을 길은 없었다. 그저 죽음의 순간을 최대한 유예 할 수 있을 뿐.


무극천은 두 부자를 보면서 볼을 긁적거렸다.


“그런데 그 애송이가 싸움은 좀 할 줄 아는가? 아까 봤을 땐 별 볼 일 없었는데.”


“살아남고 말고는 이놈이 알아서 할 일이오. 뒤로 가나 앞으로 가나 죽을 길이라면 백척간두에서 몸을 내던져 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니. 대협께서는 부디 생각하신 바를 꼭 이루시길 바라겠소이다. 신물들이 모조리 사라진 이후로 현 강호의 상황이 녹록지 않으니 말이오.”


그 말을 끝으로 장중부는 예를 취한 후에 떠나버렸다. 무극천과 장요령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앞으로 갈 길을 생각했다.


“저....”


“무 숙부라고 부르거라. 신교의 대공자가 정파 영역에서 돌아다닌다고 소문이 났다간 구대 문파에서 후기 지수라고 꺼드럭대는 놈들이 수레로 달려들테니. 앞으론 내 조카라 하고 다니는 것이 좋겠다.”


“예, 무숙. 앞으론 어떻게 하실 예정인지요?”


무극천은 공손해진 요령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아까는 그렇게나 목이 빳빳하더니 이제는 순한 양이 된 걸 보니 얼굴을 갈아끼는데 타고난 놈이 아닌가?


“안휘, 남궁세가로 가자꾸나.”


***


이량흔은 홀로 돌아온 장중부를 보면서 말했다.


“공자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멸야차에게 붙여서 보냈네.”


“괜찮겠습니까?”


“요령이 녀석은 완전히 외통수에 몰렸어. 이걸 빠져나갈 방법은 판을 뒤엎는 수밖에.”


이량흔은 한숨을 내쉬었다. 교주께서 신인묘에 들어가셨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을.


“그래도 신인묘에 들어가실 수 있게 되었으니 상황이 악화되진 않겠군요.”


“아니, 보옥은 요령이 가지고 있네. 내가 갑자기 신인총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한다면 교의 사갈같은 놈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내 뒤를 캐겠지. 그리고 요령을 추적할 것이야.”


장중부는 말을 잠시 멈췄다. 어느새 그의 눈매는 매서운 절대자의 눈이 아닌 물기 어린 아비의 눈으로 변해있었다.


“내가 교주가 되던 날, 그 어린 것이 생전 처음 예복을 갖추고 수 많은 교도들 앞에 섰지. 그날을 난 잊지 못하네. 겁먹고 두려워서 주눅 든 아이의 어깨를 보는 것이 어찌나 괴롭던지. 교의 장로회에서 강권으로 날 천가와 맺어주었을 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네.


내 아들, 내가 교주가 되지 않았더라면 아무것도 모르고 자랐을 평범한 아이에게 놓여진 가시밭길이 얼마나 고될지. 그간 내 모든 힘을 기울여 천가의 마수가 요령에게 닥치는 것을 막아왔지만 슬슬 한계야. 오히려 멸야차와 같이 다니는 것이 더 안전할걸세.”


“대공자님께선 잘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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