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 귀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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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
작품등록일 :
2024.07.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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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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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 (1)

DUMMY

“숙부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왜 별호가 멸야차라는 흉악한 것이 되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무극천은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장요령을 힐끗 바라보았다. 둘은 항주를 떠나 안휘성으로 넘어가기 위해 한창 천목산을 오르는 중이었기에 때마침 무료한 참이었다.


“내가 한창 강호를 떠돌 때의 이야기이다. 아니, 그냥 직접 보여주는 편이 더 났겠구나.”


무극천은 말을 멈추고 허리춤에 매어둔 사슬을 오른팔에 칭칭 감았다. 마지막으로 사슬의 끝에 달린 손가락 두 개쯤 되는 두께의 원통형 철추를 손으로 쥔 채 앞으로 나섰다.


“코 묻은 돈 쌈짓돈이나 털어먹은 비루먹은 거지새끼들아! 앞으로 나오너라! 너희 야차 같은 놈들을 멸하기 위해 내가 왔노라!”


어찌나 목소리가 컸던지 바로 옆에 있던 장요령은 다급히 귀를 막았다. 그들 앞에 숨어 있던 다섯의 녹림도들도 다를 건 없었는지 혼비백산하며 튀어나왔다.


“씨발, 목청 좋다고 유세하냐!”


산적 한 놈이 악을 지르며 박도를 뽑아든 순간 순식간에 어깨 위가 허전해지더니 쓰러졌다. 무극천은 철추를 휘둘러 머리를 날려버린 것이다. 이내 무극천이 가볍게 손을 흔들자 쇠사슬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용틀임을 하며 다른 산적의 발목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힘차게 당기자, 산적은 몸이 허공에 붕 떠오른 채 날아왔다. 산적이 충분히 가까워졌을 때 무극천은 왼손의 주먹을 내질렀다. 끔찍한 폭음과 파열음이 울려 퍼지고 날아온 산적은 문자 그대로 그 자리에서 폭발해 육편과 핏물로 화해버렸다.


장요령은 전날 이량흔이 말한 일권일쇄가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리고 다른 산적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무기도 내팽개치고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극천은 그들을 내버려 둘 위인이 아니었다.


앞으로 튀어 나가며 다시 사슬을 날려 산적 하나를 낚아챈 무극천은 그대로 사슬을 휘둘러 옆에 있는 놈을 덮쳤다. 두 산적은 한 몸이 되어 절명했다. 너무 비현실적으로 죽어 나가는 동료들의 모습에 넋을 놔버린 놈의 머리통을 다시 한번 철추로 박살을 내버린 무극천 앞에는 이제 도망칠 의지조차 놓아버린 채 겁에 질려 주저앉아 소변까지 지린 산적만이 남았다.


“대... 대협,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앞으론 착하게 살겠습니다!”


산적은 무릎을 끓더니 손을 싹싹 빌면서 애원했다. 그 앞으로 다가간 무극천은 문답무용으로 걷어차버렸다. 입에서 내장 조각을 게워 내며 날아가는 산적의 모습에 요령은 저도 모르게 한기가 들어 팔짱을 꼈다.


“이렇게 멋진 등장 대사와 함께 나쁜 놈들을 혼내주니까 나보고 멸야차라고 하더구나.”


자랑스레 씩 웃는 무극천을 보면서 장요령은 미친 노인네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이가 들고 그렇게 말하고 다니니 좀 부끄럽더라. 그래서 요즘은 대사는 생략하지만 궁금하다길래 한번 보여줬다. 한데 이상한 일이 아니냐?”


“무엇이 말입니까?”


“천목산은 항주에서 안휘로 넘어가는 길목일 뿐 아니라 남궁세가의 선산이 있는 황산과 멀지 않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산적을 보기 쉽지 않은 곳인데.”


“아마도 요즘 남궁세가의 상황이 좋지 않아 그런 것일 겁니다.”


“좋지 않다니?”


***


남궁검민은 피곤한 눈가를 주무르면서 재경각에서 올라온 서류들을 검토했다. 어디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전부 돈이 부족하니 손을 벌리는 소리들 뿐이니.


“창천 남궁의 이름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짜증 난다는 듯 서류를 치워버린 그는 이내 종이 뭉치에서 편지 하나를 뽑아냈다. 안에는 합비성의 남궁가 장원을 사고 싶다는 내용과 함께 금액이 적혀있었다.


“이런 개새끼들.”


금액이 적어도 너무 적었다. 아무리 남궁가의 이름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이나 이딴 식으로 후려치려 들다니. 남궁검민은 분노에 차 편지를 구겨버렸다. 한때 남궁의 검에 그렇게나 아부를 떨고 무사를 빌려달라고 애원하던 새끼들이 이제 와선 벗겨 먹으려고 환장을 한 판이었다.


그러나 지금 남궁세가의 힘으론 현재 상황을 이겨내기엔 무리였다. 그저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버티고 있을 뿐. 그때 남궁가 장원을 울리는 기분 나쁜 울음소리가 들렸다. 짐승이 흐느끼는 듯하면서도 비명을 지르는 소음에 남궁검민은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남궁검민 또한 마음속 깊이 새겨진 울분을 마주했다. 시들어가는 남궁가를 지탱해야 한다는 중압감과 왜 하필 자기 대에 이러는 것이냐는 억울함으로 점철된 마음과 함께 밤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


무극천과 장요령은 어느새 안휘로 들어왔을 뿐 아니라 황산 인근에 도착하여 객잔에서 짐을 풀었다. 황산까지 들어가자는 무극천을 요령이 극구 뜯어말린 결과였다.


“여보게, 여기 소면 두 그릇 가져다주게나.”


“소면 말고 다른 걸 드시진.”


“돈 없다. 아무튼 남궁가 이야기나 더 해보거라.”


“과거 북적의 난은 잘 알고 계실 테니 넘어가고요. 그때 투신이 남궁의 가주를 꺾고 가져간 물건이 이만저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뭐, 다 한가락 하는 물건들이었지. 그런데 남궁가는 겉보기에 그리 귀해 보이진 않더구나. 꼬부랑글씨가 많이 새겨진 검이었지. 아마?”


“그것이 휘상들의 우두머리를 상징하는 물건이라고 하더군요. 이름하야 만상검(萬商劍)! 남궁세가가 무림 내에서 부유하고 강하기로 유명한 것이 휘상들의 지원이 있어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검을 뺏기고 나니까 상황이 급변했습죠.


남궁세가가 예전같지 않아지니 자기가 우두머리가 되겠다고 나오는 이들이 생겨났다지 뭡니까. 남궁이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기 직전이니 무사들도 다른 상단으로 많이 빠져나가고, 그렇게 약해지니 최근에는 칼부림까지 났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합비의 거점도 버리고 황산으로 들어 간거구요.”


“남궁의 무공이 만만치 않을 것인데....”


“싸움 잘 한다고 밥 안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돈이 없으니, 힘도 약해지는 것이지요.”


소면이 나오자 둘은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음식을 먹기 집중했다. 그때 옆자리에서 둘을 유심히 지켜보던 죽립을 눌러쓴 남자가 다가와 무극천 옆에 앉았다.


“두 분께서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구려?”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네만.”


무극천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폭사하던 산적의 모습이 뇌리를 스친 요령이 다급하게 나섰다.


“그냥 흘러가는 풍문들을 떠든 것 뿐입니다.”


“허, 풍문이라. 내가 제법 귀가 밝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자부하오. 그런데 만상검 이야기는 두 분에게서 처음 듣는 것이라 궁금하여 왔소이다.”


사내는 다 알고 있다는 눈길로 요령과 무극천을 훑어보았다. 무극천은 그 시선이 기분 나쁜지 눈이 점점 가늘어지고 안광이 새어 나올락 말락 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지켜보던 요령은 이마와 등줄기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런, 소협 어디 아프시오?”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것 참 미안하게 되었소. 내가 궁금증을 못 이겨서 실례를 했구먼. 이만 일어나 보겠소이다.”


사내는 자리를 떴고 그제야 무극천의 기세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숙부님, 아무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응? 그래, 그러자꾸나.”


“만상검 말만 나와도 저런 치들이 꼬이는 걸 보면 이미 황산 일대엔 휘상들이 사람을 다 풀어놓았나 봅니다.”


“저거 저놈 아무리 봐도 뒤가 구린 놈 같지 않으냐?”


“예?”


“아무래도 한 대 패봐야 할 것 같은데.”


무극천이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려 들자 요령은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요, 아닙니다. 숙부님. 이런 데서 소란을 일으키면 일에 큰 차질이 생길 겁니다.”


“만상검을 노리는 놈들이 몰려올까 봐? 상관없다 막는 놈들은 다 때려 부수고 지나가면 그만인 게야.”


“아니요. 그게 아니라 만상검을 돌려주는 일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자고로 일을 진행 함에 멋을 생각하셔야지요. 숙부님이 멸야차라는 별호를 얻으신 것도 멋진 대사 때문 아니겠습니까? 신물 문제도 멋을 한번 부려보시지요.”


그 말에 무극천은 솔깃한지 다시 소면 그릇에 젓가락을 담갔다.


“어디 말이나 한번 해보거라.”


“진정한 협객은 일을 하고 나서 생색을 내지 않는 것이지요. 한무제 시절 곽해라는 협객은 협상에 나서서 두 세력을 다독이고 공을 다른 이들에게 돌렸다 하지 않습니까? 숙부님도 그렇게 해보심이 어떠신지요?”


“글쎄, 그 방법이 무어라는 것이냐?”


“남궁세가 장원에 몰래 숨어들어서 가주 방 앞에 검을 세워놓고 몰래 빠져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하늘이 남궁가를 택했다는 소문이 날 것이고 휘상들의 혼란도 가라앉겠지요. 숙부님은 진정한 협객지도를 행하시는 것이고요.”


요령은 이쯤 오니 자기가 무슨 소리를 떠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고 있음에도 얼추 아귀가 맞는 내용을 토해내자 무극천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진정한 협객은 그래야 하는 것이지! 네 첫 모습 속에 이런 똘똘한 기재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구나.”


“어휴, 전부 살아남으려고 익힌 것 아니겠습니까.”


기분이 좋아진 무극천과 덩달아 상황이 안정화되자 안심한 장요령은 실제 피붙이끼리 풍길 법한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이며 맛나게 소면을 들이켰다.


한편 자기 자리로 돌아온 사내는 둘이 쑥덕거리는 것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저 둘이 아무래도 수상하단 말이지.”


“왜 그러십니까, 대장.”


“글세, 저 두 놈이 만상검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 아니냐. 북막의 투신에게 털린 이후로 만상검 이야기가 흘러나온 적이 있던가?”


“없었습니다.”


“그래, 그렇지.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놈 둘이 만상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거기에 저 노인네는 마치 만상검을 실제로 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더구나.”


“눈을 붙여둘까요?”


사내는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듣는 부하를 보면서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젊은 놈을 주시해라. 노인네는 별 볼 일 없어 뵈지만, 젊은 놈이 찬 검은 제법 귀해 보인단 말이지.”


부하는 그 말에 고개를 숙이며 객잔 밖으로 빠져나갔다. 사내는 혹시라도 만상검이 자기 손아귀에 굴러 떨어진다면 일어날 달콤한 미래를 상상했다.


자기를 업신여기던 재수 없는 남궁 직계 놈들, 그는 남궁세가 밑에 있으면서 당했던 수난을 떠올렸다. 쥐뿔도 없는 놈들이 옛 영화에 빠져서 거들먹거리는 것이 얼마나 보기 싫었던지.


남궁이 약해지자마자 그는 다른 상단에 투신했고 기꺼이 남궁의 무공을 상단에 바쳤다. 그날 이후 상단들의 무공이 눈에 띄게 성장하여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남궁의 가장 말단 방계로 태어나 이젠 남궁의 숨통을 노리는 이, 남궁연은 하늘이 내린 기회가 자신에게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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