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인 귀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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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
작품등록일 :
2024.07.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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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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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 (1)

DUMMY

“남궁검민, 이 새끼 완전 미친놈 아닙니까.”


장요령이 마차 뒤 칸에 앉아서 종이를 흔들면서 연신 침을 튀기는 열변을 토해냈다. 그의 손에 잡힌 종이는 수배지였는데 범인의 얼굴이 요령과 미묘하게 달랐다. 요컨대 그걸로 잡혀갈 일은 없겠지만 어디 가서 한 번씩은 붙들려서 고초를 겪기에 딱 좋았다.


이는 요령의 짐작대로 남궁검민의 작품이었다. 안휘성에 출두하여 황산현 참사 범인의 신상파기를 토설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요령의 얼굴과 비슷하게 묘사한 것이다.


장요령은 남궁검민이 조사를 마친 후 희희낙락하며 돌아가는 모습이 상상된 나머지 이를 바득바득 갈 수밖에 없었다.


“자기네 존장을 우리한테 떠넘기는 것부터 맘에 안 들었는데, 앞으론 남궁세가를 천하제일검가가 아니라 천하제일 좀생이 가문으로 소문내고 다닐 겁니다.”


씩씩거리는 장요령 옆에는 남궁현이 검 한 자루를 품에 안은 채 다소곳하게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극천이 떠나기 전 남궁천우는 산천 유람이 병환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면서 남궁현을 딸려 보낸 것이었다.


실상은 재건 되어가는 남궁세가에서 남궁현이 또 날뛰기 시작하면 감당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없어서 잠시간 무극천에게 맡겨놓은 것에 가까웠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궁현이 일상적인 일은 혼자서 다 하기에 특별히 손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거마비까지 제법 든든하게 받지 않았느냐, 좋은 것만 생각하거라.”


무극천의 말에 장요령은 허리춤에 달린 전낭을 쓰다듬었다. 은자를 빵빵하게 채워 넣은 것이 화를 좀 누그러지게 만드는 듯싶었다.


“그나저나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극천 일행의 주위로는 사람이 한가득이었다. 전부 등에 등짐을 하나씩 매거나 마차를 끌고 가는 사람들이었는데 행색만 보기로는 보따리 상인들이거나 표물을 나르는 쟁자수들이었고, 그들 틈새로 무기를 쥔 표사들도 제법 수가 많았다.


“여기가 그나마 호북으로 통하는 길 중에서 유일하게 돈을 안 내고 들어가는 길이니 그렇소.”


“무당파가 그렇게 심합니까?”


“그럼! 아주 도적놈들이 따로 없다니까, 내가 표행을 나서면서 이런저런 녹림 처사들하고 엮여봤지만, 도복 입은 산적들이 아주 최악이오.”


표사 한 명이 치를 떠는 표정으로 말했다.


“녹림 처사들이 진짜 도사지. 그네들이야 적당히 협상을 통해서 넘어갈 수 있지만 무당채 도적들은 말이 안 통하지 뭐요. 돈을 안 내면 절대로 못 들어가게 막는데 무공도 뛰어나서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다오.”


다른 표사가 진절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상인 무리는 무당파 성토대회라도 연 것처럼 누구는 무당파 도사한테 주먹질까지 당하고 전낭을 뜯겼네, 누구는 표물의 절반을 털려서 망할 뻔한 걸 간신히 틀어막았다는 둥 온갖 증언들이 쏟아졌다.


그들의 말을 듣던 무극천의 얼굴에 그늘이 깔리고 은근하게 안광이 피어올랐다. 천목산에서 터져 죽던 산적들의 모습이 떠오른 장요령은 불안한 나머지 은근하게 말을 걸었다.


“숙부님, 설마 무당파 제자들을 다 때려죽이실 건 아니지요?”


“내가 설마 그러겠느냐, 몇 명 팔다리를 뽑아놓기만 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그런 소리를 들으니 몹시 불안합니다.”


“뽑는 건 너무 하려나? 그러면 부러뜨리는 것으로 하자꾸나.”


“그냥 넘어가는 건 안 되겠습니까?”


“요령아, 모름지기 무인이라 함은 힘을 지닌 사람이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여기는 자를 뜻한다. 자기 손에 쥐어진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날뛰는 천둥벌거숭이는 세상에서 없어지는 편이 좀 더 도움이 된다.”


장요령이 무극천의 생각을 돌려보려고 꾀를 쥐어짜고 있는데 앞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를 본 상인 중 하나가 말을 걸었다.


“이보시오, 무슨 일이 있는 거요?”


“말도 말게, 앞에 무당파 놈들이 깔렸어! 이젠 여기까지 돈을 받겠다는구먼.”


늙수그레한 상인 하나가 분통 터진다는 듯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그 소식이 전해지니 상인 무리 중 상당수가 몸을 돌리더니 떠나버렸다. 그러나 몇몇 사정이 급한 표행이나, 상인들만이 울며 겨자 먹기로 길을 계속 갈 뿐이었다.


이를 본 무극천의 기색이 더욱 심상치 않아지자 장요령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이건 망해도 제대로 망한 것이다. 무당파에서 받을 융숭한 대접이 저 멀리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계곡으로 접어드는 입구에 하얀 득라(得羅)를 걸치고 검을 찬 도사 10여 명이 보였다. 그들은 튼튼한 통나무까지 베어와서 길을 틀어막은 상태였다.


“은자 열 냥.”


“열 냥!? 열 냥이요?”


상인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반문했다.


“무당파의 재건을 위해 받는 희사금이지요. 돈을 내고 이름을 적고 가신다면 무당산에서 표행길에 안전과 행운을 비는 제사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무당파 도사는 이젠 아주 익숙해졌는지 청산유수로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보던 상인은 부들부들 떠는 손길로 전낭에서 돈을 꺼내서 올려놓았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던 장요령은 기가 찬 나머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쯧쯧, 무당파가 완전 돈에 눈이 돌았나 보네. 무슨 통행비로 은자 10냥을 뜯어가?”


그제야 급하지 않은 상인들이 몸을 돌려서 떠나버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지난번에 무당파 장로에게서 통행비를 면제받을 수 있다길래 은원보를 냈단 말이야! 이걸 보라고!”


그때 한 상인이 품에서 종이를 꺼내 흔들면서 화를 냈다. 무당파의 제자 하나가 그 종이를 받아 펼쳐서 잠깐 읽더니 인상을 찡그리면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이건 무당파 장로의 직인이 아니오. 무당을 어지럽히는 역도의 직인이니 인정할 수 없소.”


“이런 개새끼들, 니들이 그러고도 도사냐! 이 애미애비도 모르는 호로새끼들아!”


그 말을 들은 무당파 도인들의 기세 대번 흉흉해지더니 욕을 먹은 제자가 검을 뽑아 상인의 목에 겨누었다.


“불만이 있거든 돌아가시오. 아니면 피를 봐야 하겠소?”


“내가 상인 생활을 하며 만나본 산적, 수적이 마차로 열 대분인데 이런 협박에 넘어갈 성으냐? 내 돈 물어 주던지 아니면 들여보내!”


상인은 되려 찌를 테면 찔러보라며 강짜를 부렸다. 그를 본 무당파 제자의 눈에 살기가 번들거리더니 검세를 가다듬었다. 상인은 그 모습에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그럼에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만두어라.”


그렇게 일촉즉발의 순간이 터지기 직전 한 도사가 훌쩍 날아오더니 상인과 제자 사이에 섰다.


“대인께 사과드립니다. 일전에 여기를 점거하던 이들은 무당의 기치에 반기를 든 역도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대인께서 그들에게 사기를 당하신 거 같군요. 오늘은 그냥 들여보내 드리겠습니다.”


도사는 상인에게 포권을 하며 길을 열라는 손짓을 보냈다. 상인은 그 모습에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물건들을 챙겨서 허겁지겁 들어갔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다 한들 민초들에게 검을 들이대선 안 되는 일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율승 사형. 소제가 잘못했습니다.”


“일이 고되니 마음이 날카로워진 것 같구나. 이제부턴 내가 설 테니 넌 돌아가 보거라.”


무당파 제자는 크게 고개를 숙이더니 자리를 떴다. 이 모습을 본 장요령이 비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거 참, 제운종까지 쓸 수 있는 진짜배기 무당 도사가 훈훈하게 도적질을 대신하겠다고 나서는 걸 보니 눈물이 다 나네요.”


“음...”


무극천은 일련의 장면들이 몹시 불편한지 나지막한 침음성을 낼 뿐이었다.


율승은 사제를 대신해서 자리에 섰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장로의 명에 따라서 통행비를 걷는 것이었지만 무당파가 이런 협잡질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욕을 먹어가며 묵묵하게 돈을 걷던 율승은 별난 일행을 마주했다.


옷은 평범한 촌로의 허름한 옷에 머릿수건을 쓰고, 햇빛에 그을려 구리빛 피부에 웅장한 체구를 자랑하는 노인이 모는 마차에 탄 기생오라비같이 반반하지만 어딘가 껄렁한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검을 품고 있는 노인까지.


“은자 10냥 맞는가?”


마차를 몰던 노인이 말했다.


“마차를 몰고 가신다면 추가 비용이 5냥 더 붙습니다.”


“15냥? 이 정도면 무당파가 아니라 녹림십구채 소속이라고 해도 믿겠는데요.”


껄렁한 청년이 기겁하며 말했다.


“녹림십구채?”


“녹림십팔채에 무당채까지 포함해서 십구채요.”


노인과 청년의 대화를 듣던 율승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말했다.


“불편하신 건 알지만 무당파 재건을 위해 조금만 호의를 보여주시지요.”


“15냥이 조그마한 호의는 아닌데?”


“요령아, 그냥 내어 주거라. 저 젊은 도장 얼굴을 보니 마음이 좀 아프구나.”


“아이고, 숙부님 저게 다 상술입니다. 딱 보면 견적이 나와요.”


“그냥 주래도.”


노인의 말이 짧아지자 청년은 가타부타 없이 은자 15냥을 꺼내 유승의 손에 쥐어주었다.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마차에 실린 짐도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


“짐도 추가금을 받소?”


돈을 건넨 것이 짜증이 난건 지 청년이 핀잔을 주었다.


“혹시 위험한 물건이 있는지 그저 확인할 뿐입니다.”


“그러시게, 다만 우리도 갈 길이 머니 빨리해 줬으면 좋겠네.”


노인이 허락하자 율승은 사제 하나를 불러서 마차의 짐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때 조사를 하던 무당의 제자는 짐을 살펴보다가 멍하니 하늘만 보는 노인의 검에 눈길이 머물렀다.


교어피(鮫魚皮)로 쌓인 손잡이에 옥으로 섬세하게 용머리가 조각된 검파가 그의 마음을 끌었다.


“어르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검을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제자가 공손하게 말을 건넸지만 노인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우리 삼촌이 매병이 와서 정신이 좀 오락가락합니다.”


“매병이요?”


옆에 앉아 있던 청년의 대답에 제자는 노인과 검을 번갈아 보더니 의아한 어투로 되물었다.


“원래 무인이시라 검을 쥐고 있으면 안정감을 느끼셔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항상 저렇게 둡니다. 근데 검은 왜 보시려고 그러시는지?”


“혹시 칼집 안에 뭘 숨기지 않았는지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호북에 앵속이 거래된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하는 절차이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무당 제자의 마음에는 저 검을 가지고 싶다는 탐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앵속을 숨겼다는 핑계로 검을 빼앗아 간다면 저 치들이 어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제자는 검에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하늘을 살펴보던 노인의 시선과 무당 제자의 눈이 마주쳤는데, 무당 제자는 갑자기 눈앞이 휙 돌아가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설마 고절한 고수였단 말인가? 그때 그의 귀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살인이다! 사람이 세 토막으로 썰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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