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선검향醫仙劒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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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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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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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청풍명월 靑風明月 1

DUMMY

다음날.

“후-.”

이연태는 한숨을 내쉬며 제자 언무쌍의 손목을 놓았다.

제자 녀석이 석 달 열흘을 계집을 품지 못하자 양기가 끓어올라 몸에 탈이 났다. 근래 들어 머리 색에 붉은 기운이 돌고 심화가 커져 요즘 짜증이 심했다.

아침에 강습을 하기 전 제자에게 물으니 의서를 들으면 어느 순간 글자가 흐릿해지기까지 한다고 말한다.

진맥을 하니 양기는 넘치고 정과 신이 어찌나 강한지 폭발 직전이다. 무진호가 준 괴이한 단약과 그의 체질이 만나 일으킨 부작용이었다. 계집을 품어 양기를 배출해야 했다.

제자에게 설명하자니 어이가 없었다.


그날 밤 바람은 파랗게 시원하고 달은 밝았다.

북경제일기루 헌원각.

1급 기녀들이 거느린 기원의 이름은 통상 원, 루 따위로 칭한다. 하지만 헌원각은 북직례 최고의 기원만큼은 원이나 루란 이름을 붙여야 하나, 각이라 불렀다. 또 통상 기원은 단체로 손님을 받는 2층 누각과 정원이 딸린 사합원四閤園양식을 취했다.

이와 달리 북경 제일기원 헌원각은 8각에 8층 전각이다. 따라서 명칭과 구조부터 그 특색이 달랐다.

게다가 그 위치도 자금성보다 높이는 아래나 홍등이 내걸린 높은 누각은 북경 어디서든 다 보였다.

이래서 높은 관리의 눈에 거슬렸으나 천도 이전부터 지어진 헌원각이라 관부에서도 허물지 못하고 명물로 자리 잡았다.

날이 어두워지며 헌원각의 불야성 아래로 사람들이 들어섰다. 그  중에는 무쌍도 있었다.

홍등과 붉은 주사로 칠한 입구가 휘영청 밝았다.

“어서 오십시오.”

중년의 총관이 그를 맞이했다.

“당신이 영가英家인가?”

무쌍이 능숙하게 물었다. 영가는 기원의 중간 관리자를 뜻했다.

“맞소. 다만 여기서는 총관이라 부르고 있소. 한데 초행인가 보구려? 공자.”

총관의 위아래로 훑던 시선은 찰나였다. 그의 입에 비릿한 웃음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어투가 반공대로 바꿨다.

금사금의를 입었으나 이곳을 출입하는 자치고 비단옷을 걸치지 않은 자가 없다. 또 대갓집 자제나 학식 높은 학자 혹은 당상관 지위의 관원은 수행원을 둔다.

총관의 이런 관점에서 무쌍의 평가가 내려졌다.

“묘묘야. 3층으로 뫼시거라. 손님은 초란에게 모시도록 하고.”

‘어린놈의  새끼가.’

총관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돌아섰다.

왜 아니겠는가? 그의 이름은 황교완이며, 서른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거인擧人이다. 다만 뜻한 바 있어 화류계에 몸담았다. 그 세월이 삼십 년이다.

그런데 아들뻘인 놈이 반말을 찍찍 내뱉었다. 그의 입장에서 못 볼 꼴을 본 셈이다.

비록 어린놈의 용모와 덩치가 제법이고 비단을 물들인 금사금의이나 대갓집 자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방에서 돈푼 꽤나 짊어지고 온 모양으로, 헌원각에서 객기를 부렸으니 창피를 단단히 줄 셈이다.

그가 어린놈에게 붙인 초란은 지금은 날개가 꺾인 기녀이나 탄금과 학문이 빼어났다.

“놈. 고쟁이까지 탈탈 털리고 가거라.”

갑자기 교언영색 황총관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이고. 풍대감님.”

그의 허리가 접혀져 머리가 발끝에 닿았다. 이 순간 어린놈의 기억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감히 비교 대상이 되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무쌍은 무시하는 총관의 낯빛에 혀를 찼다.

어디를 가든 텃세가 있는 법, 그 터줏대감의 수염을 건드린 듯하다.

‘장사치 속은 썩어 문드러져 그 똥은 개도 쳐다보지 않는다고 했거늘. 보나 마나 퇴기나 만나 술만 비우겠군.’

내심 푸념하며 동기를 따르던 그 앞에 기녀가 섰다.

“공자. 초란이라 하옵니다.”

높낮이가 없는 조용한 어투에 공손하게 숙인 머리가 무쌍의 눈에 들어왔다.

“좋군.”

초란이 고개를 들자 무쌍이 말했다.

초란은 빼어난 미인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반듯했다. 좌우대칭이 똑같고 이마가 넓다. 콧대는 높지 않으나 미간부터 섰다. 또 인중은 부담을 주지 않았다.

다만 입술이 파르스름해 병약해 보인다. 이것이 흠이었다.

“공자는 여기 분이 아니시군요.”

초란이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어찌 알았는가?”

“타고난 용모와 언변이나 복장으로 보아 기녀 애간장 꽤나 태웠겠어요. 그런데 저를 모르니 초행이 분명하옵니다.”

“네 사연이 남다른 면이 있나 보구나.”

하지만 무쌍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의 눈은 초란의 허리에 가 있다.

붉은 띠가 겹으로 둘렀다.

‘정인이 있거나 정절을 지킬 이유가 있다?’

기녀가 붉은 허리띠를 차는 이유는 다양하다. 남자를 상대할 때 마지막 한 올까지 벗는 수치심의 마지막 보루로 속옷 안에 두르기도 한다.

한데 초란은 보란 듯 옷 위에 두 겹이나 둘렀다. 결코 옷을 벗지 않는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기녀와 통정은 강제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총관이란 중늙은이의 의도는 성공한 셈이다. 오늘 무쌍은 기껏해야 술 몇 잔과 노래 몇 곡으로 헛물켜고만 말 일이다.

‘한번 준 정이 두 번은 안 될까?’

무쌍이 웃으며 누각을 올랐다.

누각의 삼층은 객잔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기녀들이 손님들을 접대했다.

초란이 누각 3층에 오르자 이목이 쏠렸다.

무쌍은 그들의 시선에서 흥미를 보았다. 마치 새로운 구경거리를 눈앞에 둔 지분거림이다.

“공자. 앉으세요.”

안쪽 탁자에 자리를 잡은 초란이 의자를 뺏다. 그러자 시비로 붙은 묘묘가 찻잔과 규과자(해바라기씨)를 내왔다.

“술은 어찌하랴? 난 맑은 술이면 족하겠다.”

무쌍이 초란만큼 건조한 어투다. 사람 접대를 떠나 분위기가 이러니 아무리 그라도 흥이 동하지 않았다.

“백주면 충분하오리까?”

“물어 무엇 하겠느냐? 쓴맛은 지금도 보고 있거늘.”

“후우. 눈치라도 있어 다행이오.”

초란이 반절은 평대로 말했다.

그녀도 이 자리가 수치스러웠다. 헌원각 3층에서 술을 따르는 기녀는 퇴기에 가까웠다. 얼굴에 두꺼운 지분이 바르고 한량들에게 웃음을 판다. 그러다 돈 많은 호구 하나를 물어 첩으로 들어가는 처지였다.

그녀가 헌원각의 각주와 사이가 틀어졌다 하나 여기까지 내려올 처지는 결코 아니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무쌍과 초란 사이에 침묵이 이어졌다.

손님이 돼 손님 대접을 못 받고, 기녀는 사정이 있어 냉랭했다. 그러는 사이 열 서넛이나 됐을 어린 기녀가 백주와 청경채를 내왔다.

“동기 이묘묘라 하옵니다. 공자. 요리는 잠시 후에 나옵니다. 심심하지 않게 소반을 내왔습니다.”

동기는 한 눈치를 했다. 자리가 냉랭하자 무쌍와 초란의 눈치를 봤다.

“녀석. 이리 오거라. 내 기원이 손님 자리를 정하고 홀대를 당하고 있다만, 마땅치 않아도 잔일하는 너희에게까지 박하지 않다.”

무쌍은 불만을 고스란히 표했다. 그러면서도 전낭에서 은자 한 냥을 꺼내 동기에게 줬다.

“상공. 너무 고맙습니다.”

이묘묘의 눈이 커졌다가 허리를 숙였다.

콩.

“이것아. 머리는커녕 쪽도 못 튼 년이 어디서 상공이냐? 앞에 공자가 네 정인이더냐?”

초란은 이묘묘의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그녀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지만, 얼굴에 인상이 많이 풀렸다.

이묘묘는 그녀가 예와 악을 가르치는 내리 기녀다. 초란이 일종의 큰언니 역할을 한다. 당연히 둘은 각별했다.

오늘 같은 경우 손님 심기가 불편하면 본색을 드러낸다. 꼬투리를 잡아 기녀에게 행패를 부리다나 동기를 때리기도 한다.

그런데 동기에게 은 한 냥이나 줬으니 사내다워 보였다. 그것이 객기든 호방함이든 말이다.

“탄사彈詞를 하겠어요?”

마음이 풀린 초란은  비파를 타고 노래 한 곡을 부르려 했다.

“좋다. 그럼 나는 고사鼓詞를 하마.”

 탁. 탁.

무쌍이 탁자를 두드렸다.

“훗.”

북방의 큰 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고사를 하겠다는 손님이 탁자를 때리니 이묘묘가 실소를 했다.

여자는 남방의 비파를 뜯고 남자는 북방의 큰 북을 두드려 합을 맞춘다. 이보다 좋은 합주는 없다. 하지만 큰 북이 없이 탁자나 두드리니 창唱을 망치기 딱 좋았다.

“그럼 시작하겠어요.”

위이이잉~.

비파를 뜯는 초란은 노래 제목도 말하지 않고 창을 시작했다.

“아~.”

“와아.”

객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과연 초란은 가무에 능한 예기였다. 남방의 비파 반주에 맞춰 탄사彈詞는 도입부터 사람의 감정을 녹였다. 곧 이어진 흐드러진 창은 더했다.

柳塘春水漫 花塢夕陽遲 유당춘수만 화오석양지

[버들나무 연못에 봄의 물은 넘치고, 꽃동산에 저녁볕은 더디네.] 

“좋구나.”

둥. 두둥.

무쌍이 감탄하며 손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본시 북방과 가까운 산서성은 큰 북을 두드려 가락을 맞추는 고사로 유명했다. 풍류가 남다른 무쌍이 어찌 그냥 넘어갔겠는가!

게다가 그가 고타로 산서 제일인 장봉익에게 배운 고사 실력은 발군이라 할 만하다. 거기에 손바닥에 내공을 불어넣어 절묘하게 탁자를 때리니 큰 북 못지않았다.

柳色黃金嫩 梨花白雪香 유색황금눈 리화백설향

[버들잎 빛은 황금같이 부드러움이요, 배꽃은 흰 눈처럼 향기롭네.]

그의 오언절구 답가가 울렸다.

그 목소리에 장대함은 큰 북소리처럼 울린 탁자 박자와 어울려 대붕이 기지개를 켜는 웅장함을 지녔다.

게다가 창 속에 담긴 배꽃을 초란에 비유해 칭찬하니 사람들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林風凉不絶 山月曉仍明 임풍량부절 산월효잉명

[수풀의 바람은 서늘함이 끊이질 않고, 산 위의 달은 새벽에 더욱 밝네.]

초란은 무심한 듯 답가를 받았지만, 무쌍을 새벽달에 비유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계속 이어지는 탄사와 고사의 답구는 오언절구로만 진행돼 둘에 학문의 깊이를 엿볼 수 있었다.

창이 일다경 동안 이어지며 헌원각의 시간은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급기야 최상층인 8층의 손님들까지 3층으로 내려와 합주를 구경했다.

柳幕鶯爲客花房蹀作郞 유막앵위객화방접작랑

[버들 장막에 꾀꼬리가 손님이 되고, 꽃방에 나비가 낭군일세.]

두둥. 따~악.

북 테를 때리는 격한 소리와 함께 무쌍이 마지막 답가로 창을 마무리 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창은 의미가 컸다. 초란, 오늘 너의 낭군은 나라는 뜻이었다.

“와~.”

짝. 짝. 짝.

잠시 조용하던 3층 객청이 우레 같은 환호에 들썩였다.

“하아~. 잡서에서 추린 추구推構 몇 구절로 사람들을 이리 놀리니, 기녀의 애를 몇이나 녹였습니까?”

초란은 한숨부터 내쉬며 무쌍에게 물었다.

“상공~.”

그때 동기 이묘묘가 몽롱한 눈으로 무쌍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아이는 무쌍의 맞은편에 앉아 제 할 일도 잊고 있었다.

“애가......,”

초란이 비파를 내려놓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예기 셋이 비파를 들고 탁자 주위에서 무쌍을 보고 있었다.

“이거 판이 커져버렸군.”

무쌍도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거. 다시 합주와 창을 해 보소.”

“저쪽 공자 술값은 내가 내겠네.”

관객이 되어버린 손님들이 열화와 같은 응원을 보냈다.

“그러면 불초 소생이 한곡 더....,”

“잠깐.”

무쌍의 말이 끊겼다. 황총관이 붉어진 얼굴로 다가왔다.


작가의말

산san님, 세비허님, 하늘나무숲님, 초사악님,  최고의망상님 댓글 감사합니다. 수정할 부분은 찾아서 바로잡겠습니다.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행운과 행복이 깃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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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70. 불한이율不寒而慄 1 +6 24.09.17 1,587 6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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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 팽두이숙烹頭耳熟 1 +14 24.09.14 2,066 75 12쪽
66 66. 천망회회天網恢恢 4 +10 24.09.12 2,450 77 12쪽
65 65. 천망회회天網恢恢 3 +7 24.09.11 2,433 78 12쪽
64 64. 천망회회天網恢恢 2 +10 24.09.10 2,525 77 12쪽
63 63. 천망회회天網恢恢 1 +9 24.09.09 2,658 89 14쪽
62 62. 용주 鎔鑄 4 +12 24.09.08 2,685 89 14쪽
61 61. 용주 鎔鑄 3 +8 24.09.07 2,675 88 12쪽
60 60. 용주 鎔鑄 2 +9 24.09.06 2,753 97 12쪽
59 59. 용주 鎔鑄 1 +10 24.09.05 2,860 95 12쪽
58 58. 과이불개 過而不改 3 +9 24.09.04 2,869 95 13쪽
57 57. 과이불개 過而不改 2 +7 24.09.03 2,868 90 14쪽
56 56. 과이불개 過而不改 1 +8 24.09.02 2,908 87 13쪽
55 55. 청풍명월 靑風明月 3 +10 24.09.01 2,992 89 13쪽
54 54. 청풍명월 靑風明月 2 +6 24.08.31 2,972 89 14쪽
» 53. 청풍명월 靑風明月 1 +7 24.08.30 2,981 85 12쪽
52 52. 학이시습 學而時習 3 +9 24.08.29 2,923 80 13쪽
51 51. 학이시습 學而時習 2 +10 24.08.28 3,094 76 15쪽
50 50. 학이시습 學而時習 1 +8 24.08.27 3,215 82 14쪽
49 49. 조정혈사 朝政血事 +5 24.08.26 3,409 72 17쪽
48 48. 화풍난양 和風暖陽 3 +7 24.08.25 3,438 81 14쪽
47 47. 화풍난양 和風暖陽 2 +8 24.08.24 3,487 82 14쪽
46 46. 화풍난양 和風暖陽 1 +10 24.08.23 3,724 8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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