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전 후 대기업이 나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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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動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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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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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31. 걱정 하지 마십시오.

DUMMY

변웅석 실장.

그는 감사 준비로 연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안전, 회계, 생산량.

세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 그래야 변속기 쪽 실장을 누르고 차기 사업부장 자리를 꿰찰 수 있다.

"제길... 완전 엉망이구만."

각 부처에서 보내온 점검 리스트를 확인한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엉망.

그 한 단어로 정의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군데 군데 어거지로 짜 맞춘 티가 나는 회계 장부부터, 들쭉날쭉한 UPH까지. 자신이 본사 직원이라도 좋다고 물어 뜯을 포인트가 너무 많았다.

"후우... 이건 어쩔 수 없어."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변속기 쪽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최소 5년, 길게는 20년이 넘어가는 장비들을 끄집고 생산량을 맞추고 있다. UPH가 일정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안전.

결국 차이점을 벌릴 반한 건 한 군데 밖에 없었다.

산업 재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시국이었기에 더더욱 안전에서 차이를 벌려야 했다.

똑똑-

골 머리를 싸 안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실장 실 문을 두들겼다.

"Y엔진 김지형 부장입니다."

"들어 와."

곧이어 김 부장이 쭈뼛쭈뼛한 걸음걸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변웅석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 다녀야 할 시기에?"

명백한 면박.

공 파레트 붕괴 사건의 앙금이 아직 가시지 않은 그였다.

"저... 결제 서류 올리러 왔습니다."

"그 앞에 놔두고 가."

"넵."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 김지형.

"..... 뭐해. 안 가?"

변웅석이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김지형 부장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서 있었던 것이다. 마치 할 말이라도 있는 듯이.

"그게... 지금 바로 확인해 주셔야 하는 서류라서."

"..... 감사 보다 급한 일이 있다는 거네?"

"외람되지만, 그렇습니다."

순간 변웅석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기가 죽어도 단단히 죽어 있을 김 부장의 대답에서 제법 강단이 느껴졌던 것이다.

"가져와 봐."

텁-

결제 서류를 받아 든 그는 곧장 첫 장을 넘겼다.

"...... 안전 점검 업체 고용 관련 비용 처리?"

"네."

"그건 이미 20세기에 맡기기로 했잖아?"

"그건 보전 측 작업을 돕는 조건으로 한 계약이고, 이건 다른 계약 입니다."

들썩들썩-

변웅석의 윗 입술이 신경질적으로 들썩인다는 사실을 알아 챈 김지형.

그는 재빨리 준비한 서류철을 건넸다.

"이건..."

"눈으로 보시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허. 일단 알았어."

변웅석이 기가 차다는 듯 서류 철을 받아 들었다.

'눈으로 보는 게 빠르다?'

평소였으면 그냥 넘어 갔을지도 모르는 대답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시국이 어느 시국인데 그런 어정쩡한 대답이라니.

'X 죽음을 당할 뻔 한 게 바로 일주일 전인데.'

변웅석은 미리 화를 낼 준비를 한 채로 첫 장을 넘겼다.

".......?"

그런데 그 순간.

변웅석은 가슴 속에 응어리 져 있던 화가 사르르 녹는 것을 느꼈다.

"이걸... 20세기에서 만들었다고?"

서류 철 속에는, Y엔진 공장 내부의 안전 미비 사항이 오목조밀하게 기록 되어 있었다.

얼마 전 보고 받은 것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양이었다.

'20세기가 안전 점검 전문 업체였나?'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바닥 꺼짐 부터 시작해, 판넬 속 마그네트와 마그네트의 거리까지.

전문 업체가 아니고서는 말이 안될 정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 20세기 능력 있네. 그냥 꿀이나 빨라고 계약 던져 줬더니, 이런 보고서도 만들어 오고."

한동안 서류를 훑어 보던 변웅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형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20세기가 그정도 일 줄은.."

"근데... 자료 퀄리티에 비해서 단가가 너무 쎈 거 아닌가?"

억 단위.

변웅석의 표정이 풀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웃는 낯은 아닌 이유였다. 유용한 서류였지만 단가가 지나치게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그때.

김지형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다음 말이 흘러 나왔을 때.

"똑같은 분량의 서류 철이 하나 더 있답니다."

변웅석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며 되묻고 말았다.

"...... 뭐, 뭐라고?"

"공개하지 않은 안전 미비 사항이 40개나 더 있다는 겁니다."

변웅석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찾았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메던 변속기 부서와의 '격차'를 찾은 것이다.




미래 자동차에는 해마다 500명의 신입사원이 입사한다.

연봉, 복지, 명예.

모두가 우러러 보는 신의 직장에 선택 받은 20-30대 젊은이들.


하지만 그들은 곧 깨닫는다.

입사만 하면 탄탄대로 일줄 알았던 미래 차 내부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미래 자동차, 인도 공장 생산량 20% 증가.]

[역대급 성과급. 금속 노조, 다가오는 7월을 대비한 총 파업 준비.]

[미래 자동차 임원단 480명, 금년 연봉 13% 인상.]


480명.

미래 자동차에 근무 중인 임원진의 머리 수였다.

누구나 입사 당시에는 속칭 별을 다는 꿈을 꾸지만, 대부분이 1년도 안되어서 포기하고 만다.

100분의 1.

100명의 신입 사원이 입사 하면, 그들 중 임원 타이틀을 따는 건 1명 뿐이었기 때문이다.


임원 타이틀을 거머쥐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케이스다.

실력과 운을 모두 겸비 했거나.

아니면 혈통을 타고 났거나.


변속기 실장 이용석.


그는 후자의 케이스였다.

미래 백화점 전무 이사를 어머니로 두고, 울산 시의원을 아버지로 뒀다. 타고난 혈통을 바탕으로 일찍이 사내 라인을 탔고, 그 결과가 바로 '실장'이라는 타이틀이었다.


"하하. 아이고, 당연히 문제 없이 지내고 있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끝나고 경주에 라운딩이나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네, 네.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보내 주신 리스트는 잘 받았습니다."


변속기 실장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전화를 주고 받던 그는 곧 지친 몸을 소파에 뉘였다. 그는 피로에 절어 있는 표정으로 팔을 들었고.

"여기 있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40대 남성이 그의 손가락에 담배를 꼽았다.

칙칙-

곧 장내를 가득 메우기 시작한 담배 연기.

익숙한 듯 실내 흡연을 시작한 변웅석은 다리를 꼰 채로 말했다.


"안전 쪽은 단도리 잘 쳤지?"

대답하는 남자는 듀얼 클러치 변속기 (DCT, Dual Clutch Transmission) 생산 부장 도정수였다.

"넵. 각 부장들에게 리스트 전달 했고, 금주 목요일 안에는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굳이 잘 하려고 아득바득 몸부림 칠 거 없어. 그냥 하라는 것만 똑바로 하면 돼. 무슨 말인지 알지, 도 부장?"

도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적어도 지시 하신 사항은 완벽하게 처리 해 놓겠습니다."

"사업부장, 조만간 내려올 거야. 그 자리에 누가 올라갈 건지는 말 안 해도 알 거고."

"잘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다가 아니다. '잘' 하겠다였다. 꽤나 만족스러운 대답에 이용석은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조만간이네.'

이미 본사 쪽 인맥과 이야기를 끝냈다.

이번 감사 때 엔진 쪽을 탈탈 털어버리기로. 회계나 생산 쪽은 엉망이긴 매한가지니, 안전 쪽에서 차이를 벌리라고.

'이걸 못 이기면 병X이지.'

본사 안전 관리부에서 점검 리스트를 건네 받았다. 똑같은 시험을 치는데 한 쪽은 맨 땅에 헤딩을 하고, 한 쪽은 오픈 북 시험을 보는 격이었다.

절대 질 수 없는 싸움이니 만큼 큰 긴장감도 없었다.




안전 점검 당일.

본관에서 대기를 하던 도현은 변웅석 실장의 개인 콜을 받았다.

"Y엔진이요? 네, 바로 가겠습니다."

안전 감사가 시작 되었고, 9개의 엔진 공장 중 Y엔진에서 감사가 시작 되었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전현우가 물어 왔다.

"Y엔진이야? 그나마 다행이네."

그나마 다행이다-

다르게 말하면, 다른 공장에 갔으면 완전 죽을 쒔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Y엔진은 올해로 5년차.

시업 20년 차인 Z엔진이나 18년차인 V엔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고장이 적을 수 밖에 없었다.

"허, 참. 내가 살다 살다 하청 업체가 안전 자문 업체로 지정 받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업무용 포터 뒷 자리에 몸을 실은 춘식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하청이 원청의 안전 자문을 맡는 건 20세기가 처음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은 도현의 공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미비 사항을 88개나 찾았으니, 변 실장도 어쩔 수 없었겠지."

"이 정도면 우리 회사 이름 바꿔야 되는 거 아닙니까? 20세기 테크에서 DH(도현) 테크로?"

그 말에 전현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야 할지도... 이 부장. 혹시 업체 차리게 되면 꼭 연락해 줘. 무슨 말인지 알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포터는 Y엔진 공장 앞에 도착했다.


"아, 오셨습니까. 어서 이쪽으로."


차에서 내리니 생산 관리 과장이 반색하며 도현 일행을 맞이 했다.

그의 표정에 맺힌 다급함을 캐치한 전현우가 물었다.

"설마, 벌써 안전 점검 시작한 겁니까?"

"네. 지금 이미 크랑크 쪽 라인 돌고 있습니다. 김 부장 님이 빨리 와 달라고 난리에요."

설마 벌써 시작 했을 줄이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전현우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렸다.

"12시에 시작한다고 들었는데..... 점검자 성격이 되게 급한가 봅니다."

"급하다 뿐이겠습니까. 이런 말 하면 안되지만, 완전 또라이입니다. 전기 배선 단자 커버까지 일일이 열어 보고 있어요."

배선 단자 커버. 전현우가 그 단어에 반응 했다.

"..... 배선 단자 커버 까지요? 설마... 류하성 부장입니까? 이번 안전 감사 책임자가?"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혹시 아시는 사이 십니까?"

"..... 알다 마다요. 그 새끼, 제 입사 동기입니다."

"입사 동기요?"

전현우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똥을 싸다가 끊긴 듯한 기분에 일행의 표정이 굳었지만,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는 못했다. 그만큼 전현우의 표정이 어둡고, 또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현장에 도착하니, 안전모를 낀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 왔다. 그 중 찢어진 눈에 무테 안경을 쓴 남자를 알아 본 전현우가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도현이 물었다.

"무슨 악연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후우-

심호흡을 한 전현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기부에서 저 새끼랑 악연이 아닌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겁니다."

이어진 전현우의 말에 따르면, 류하성은 악질 중의 악질인 인간이었다. 안전 지적 사항을 빌미로 로비를 요구하고, 거절하면 지독할 정도로 집요하게 지적 사항을 찾아낸다.

독사.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바로 독사였을 정도라는데.

"라인 신설할 때 저 새끼가 나오면, 최소 3번은 빠꾸를 먹는다고 보면 됩니다. 류하성 때문에 진급 꼬인 사람들을 세우면, 국민 공원 한 바퀴는 거뜬히 두를 겁니다."

평소 답지 않게 흥분한 전현우였는데.

우연의 일치일까.

저 멀리서 한 남자가 저벅저벅 다가 오기 시작했다.

"여- 전 부장, 여긴 웬일이야?"

류하성, 그가 전현우를 알아본 것이다.

".... 우리가 아는 척 할 사이는 아니지 않나?"

전현우의 적대 어린 반응에도 류하성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전현우 기술이사-? 너, 퇴사 했다더니 하청업체로 이직 했냐?"

푸흡-

류하성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명백한 비웃음.

전현우의 표정이 서서히 썩어 들어가는 걸 본 류하성은 거침 없이 말을 이었다.

"그 잘나가던 전 부장이 이 모양 이 꼴이 될 줄이야.."

"닥치고 하던 일이나 하지?"

"설마... 이 대리 사건 때문에 회사 그만둔 건 아니지?"

순간,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전현우가 류하성에게 달려 들었다.

"이 개만도 못한 새끼가!"

악에 받친 듯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전현우.

도현을 비롯한 20세기 직원들은 그런 전현우를 류하성에게서 억지로 떼어 냈는데.

생산 관리 과장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X 됐다..."

류하성은 이번 감사 실장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다

동시에 안전 미비 사항을 잡아 내는 실무진들 중 오야지이기도 했는데.

열과 성을 다해 모셔도 모자랄 판국에, 전현우가 그의 멱살을 틀어 쥔 것이다.



류하성이 안전 감사를 하러 떠난 뒤.

전현우는 한참이나 거친 숨을 몰아 쉬다가, 30분이 지나서야 겨우 진정하고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흥분해버렸습니다."

김지형 부장은 그런 그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

"죄송하면 답니까? 극진하게 모셔도 모자란 양반의 멱살을 잡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전현우는 축 쳐진 어깨로 연신 허리를 숙였다.

평소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는데.

도현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전 이사 님이 왜 그러시지..'

전현우는 그에게 꽤나 소중한 사람이었다.

도현에게 실력에 걸맞는 연봉과 인센티브를 보장해 주기 위해 사장에게 대들기도 했고.

학벌, 직책 같은 헛소문에 휘둘리지 않고 실력 하나 만으로 그를 평가해 주었기 때문이다.

실력에 대한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던 그의 약한 모습을 보자, 괜히 가슴이 아려오는 기분이었는데.

'이 대리가 도대체 누구길레..'

전현우가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한 건, 류하성이 이 대리라는 인물을 언급하고 나서 부터였다.

아마 깊은 사연이 있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도현이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에도 김지형 부장의 투덜거림은 계속 이어졌다.

"휴.... 이래서 하청 업체에 안전 고문 같은 걸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

"변 실장 님 지시만 아니었다면.."

꿈틀-

도현의 이마에 핏대가 서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회사에서 내쫓기듯 이직한 이유가 있다니까.."

김지형의 마지막 단말마가 울려 퍼지고.

"걱정 하지 마십시오."

도현이 입을 열었다.

".... 뭡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김 부장 님이 걱정 하시는 상황은, 일어 나지 않을 테니까요."

"뭐, 뭐라고요?"

순간 장내의 이목이 모두 도현에게로 쏠렸다.

전현우와 김춘식이 화들짝 놀라며 도현의 팔을 잡았는데.

"도현아, 너 갑자기 왜 그래?"

"이 부장. 나 때문에 그러는 거면, 안 그래도 돼."

김 부장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 했다.

".... 설마 안전 지적 사항이 단 하나도 안 나올 거라고 말씀 하시는 겁니까?"

김 부장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본청의 간부들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네."

하지만 도현은 늘 그렇듯 확신에 가득찬 어투로 대답했다.

[파악 하지 못한 위험 요소 : 0]

시스템 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지적 사항은 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류하성은 능수능란한 솜씨로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김 차장. 10번 라인 부터 30번 라인까지 맡아."

"네!"

"이 과장은 워싱 장비만 탈탈 털어."

"네!"

"다들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분위기 안 좋은 거 알지? 저번 달에도 전주 공장에서 사망 사고 났다. 사소한 안전 미비 사항 하나가 사망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빡세게 잡는다. 알겠나?"

안전 감사 팀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 했다.

"넵!"

그 말을 끝으로 4명의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마음 먹고 털면, 없는 고장도 만들어 낸다는 안전 감사의 스페셜리스트들이었다.

"나도 슬슬 움직여 볼까."

흐흐-

류하성은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채로 걸음을 옮겼다.

유유자적한 걸음 걸이였지만, 눈빛 만큼은 먹이를 찾는 독수리의 그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일이 재밌게 됐네.'

이런 곳에서 전현우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던 류하성이었다.

자기부 부장. 안전 관리팀 부장으로서 수도 없이 부딪혔던, 어찌 보면 라이벌 관계인 남자, 전현우.

퇴사 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설마 하청 업체로 이직 했을 줄이야.

'전 부장이 이직한 업체가 Y엔진 안전 고문 업체로 지정 됐다지?'

씨익-

류하성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짙어졌다.


안 그래도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

엔진 쪽은 탈탈 털어 버리고, 변속기 쪽은 최소한의 지적 사항만 잡으라는.

그런데 난데 없이 과거의 라이벌이 등장 했다.

꿩 먹고 알 먹고.

상부의 지시 사항도 완료하고, 과거 라이벌의 콧대도 눌려 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먼저 전기 판넬 부터.'

그의 시선이 Y엔진 헤드 V/G 서입 장치의 전기 판넬에 닿았다.

안전 문은 제대로 작동 하는지.

판넬 내부에 매뉴얼이 잘 구비 되어 있는지.

전선은 IEC 규격 대로 잘 배선 되어 있는지.

지적할 사항은 차고 넘쳤다. 그냥 입맛대로 골라 먹으면 된다고 생각 했다.

".......응?"

그런데.

막상 판넬을 열어 본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깨끗할 리가 없는데..."

분명 문제 투성이어야 할 판넬 내부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 했던 것이다.

방금 막 설치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

물론 시업 5년 차이니 만큼 여기 저기 먼지가 쌓여 있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적어도 안전 지적 사항은 아니었다.

"...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한동안 어처구니 없는 듯 멈춰 서 있던 류하성.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판넬 문을 닫았다.

"이 장비만 그런 거겠지. 운이 좋았을 뿐이야."

다른 장비들은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어?"

다음 장비도.

또 다음 장비도.

심지어는 안전 변칙 작업의 온상이라 할 수 있는 조립 라인까지.

"마, 말도 안돼..."

안전 지적 사항에 걸릴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마치 안전 감사 팀이 무엇을 중점적으로 보는지 알고 미리 준비하기라도 한 듯 말이다.

"류, 류 부장 님."

그때.

저 멀리서 팀원들이 쭈뼛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아, 안전 지적 사항이 하나도 없습니다."

"뭐, 뭐라고?"

"워싱 장비도 마찬 가지 입니다."

"버큠 장비 쪽에서 미허가 콘센트 하나를 잡아 내긴 했는데... 플렉시블 배관 작업도 꼼꼼하게 해놨고, 전선 스퀘어도 규격에 맞아서 크게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


예상치 못한 상황에 류하성의 두 눈에 초조함이 어리기 시작 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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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누군가의 빌런(2) +22 24.08.26 26,467 526 18쪽
17 17. 누군가의 빌런(1) +14 24.08.25 26,670 490 18쪽
16 16. 주사위. +19 24.08.24 27,394 491 20쪽
15 15. 이자까지 쳐서. +40 24.08.23 27,780 509 17쪽
14 14. 이 대리 얼굴을 어떻게 보라는 겁니까. +22 24.08.22 27,736 540 14쪽
13 13. 성공의 비결. +28 24.08.22 28,449 517 18쪽
12 12. 개판이네요, 솔직히. +22 24.08.21 29,481 53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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