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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動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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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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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더 자주, 그리고 많이.

DUMMY

20세기 미래 테크 사장실.

사장 김원식과 기술 이사 전현우는 어느 때처럼 티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탁-!


그때.

찻 잔을 내려 놓은 김원식이 갑자기 다리를 달달 떨기 시작했다.


"초절전 회로 시연회. 진짜 둘만 보내도 괜찮은 거야?"

호로록-

전현우는 담담하게 찻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네. 애초에 계약을 따 내라고 보낸 자리도 아니고, 그리 어려운 시연도 아니니까요."


YM 송기오와 학 테크 최 이사가 참여한 입찰이다.


그가 직접 나섰다면 모를까, 두 사람이 송기오와 최 이사를 꺾고 입찰할 가능성은 제로.


말 그대로 두 사람의 싹수를 확인하기 위해 보낸 것이었는데.


김원식은 설명을 들었음에도 불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시연은 시연이잖아. T엔진 측에서는 과장 급, 아니 차장 급이 나올 수도 있는데. 실수라도 하면 어떡해?"

"실수를 하라고 보낸 겁니다."

"...... 뭐라고?"


툭-

김원식은 들고 있던 골프 채를 내려 놓았다.


"그러다가 T엔진 쪽 인간들한테 미운 털이라도 박히면 어떡하려고 그래."

"애초에 T엔진은 저희 관할도 아니지 않습니까? 지어진 지 1년도 안 돼서 리툴링 프로젝트하고도 관련이 없고요."

"그건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십쇼. T엔진 쪽 인간들은 제가 안면이 있으니까요. 진짜 중요한 건, 두 사람이 현장에서 돌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냐 입니다."


척-


전현우가 다리를 꼬았고, 김원식의 표정이 미묘하게 틀어졌다.


"두 사람이 그 돌발 상황이란 걸 감당하지 못하고 큰 실수를 저지르면?"

"그건 그거대로 좋죠. 프로젝트에 참가 시키기에 한참 부족하다는 뜻이니, 키우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지 않습니까."

".... 하. 자기부 있을 때부터 알아 봤지만, 너도 보통 놈은 아니다 정말."


전현우는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애매하게 하는 놈은 필요 없습니다."


전현우는 자기부에 근무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거기에 평범한 놈들은 없었다.

난다 긴다 하는 인간들만 모인 곳이 바로 자기부인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부장자리 까지 꿰찼다. 비록 별은 달지 못 했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자가 바로 그였다.


"그런 사람들은 프로젝트에 방해만 될 뿐이니까요."

"..... 그래. 널 누가 말리냐."


마지못해 투덜거린 김원식이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일 이십 억 짜리 사업도 아니고. 엄격하게 선별해야 하는 건 맞지.'


고개를 돌린 김원식의 두 눈에 신뢰가 가득 차올랐다.

일 적으로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인간이 바로 전현우다. 적으로 만나면 피곤하지만 아군일 때는 그 누구보다 든든한 남자.


다른 경우라면 몰라도, 프로젝트에 한 해서라면 그의 말에 따라야 하는 게 맞았다.


전현우에 대한 신뢰가 한층 두터워지던 그때.


띠리리링-


전화 알림음이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전화 좀 받겠습니다."


전현우의 개인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다.


"여보세요."

"잘 지내셨습니까, 전 부장 님."

"누구?"

"T엔진 부장 명광호입니다."

"......!"


순간 전현우의 눈가에 이채가 스쳐갔다.

T엔진의 부장에게 전화가 걸려올 줄은 몰랐던 것.


'.... 결국 사고를 친 건가.'


이 시간에 T엔진 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올 이유는 많지 않았다.

시연회를 위해 T엔진에 방문한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사고를 쳤을 확률이 높았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전현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명 부장 님. 오랜 만입니다."

"하하.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더니, 이렇게 연락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 그러게 말입니다."


명광호와는 안면이 있었다.


애초에 울산 공장에 있는 부장들은 건너 건너 아는 사이일 뿐더러, 자기부의 특성 상 여러 공장을 방문하기에 몇 번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다.


그리고 전현우가 평가한 명 부장은 한 마디로.


"20세기 미래 테크의 초절전 회로 시연, 잘 봤습니다."


뱀 같은 남자였다.

속 마음은 숨기고, 항시 칼 한 자루는 품에 숨기고 다니는 스타일.


'조롱하려는 건가.'


굳이 전화를 걸어 시연회에 대한 평가를 늘어 놓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지금 저 말은 조롱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와서 대뜸 조롱을 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전현우는 곧바로 납득했다.


- 명 부장 님. 아무리 신생 공장이라지만, 직원들 상태가 너무 빠진 거 아닙니까?

- 전 부장 님,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과거 그 와 명 부장은 자주 부딪혔던 사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준비를 철저히 하셨더군요. 솔직히 감탄 했습니다."

"......."


명 부장에서 입에서 흘러나온 건 명백한 칭찬이었지만, 전현우는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게 아니라, 너무 엉망이라서 다른 쪽으로 감탄 했다고 받아 들인것이다.


'흠. 두 사람과는 여기까지인가 보군.'


전현우의 두 눈에 안타까움이 스쳐갔다.

명 부장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큰 사고를 친 게 분명 했다.

간만에 쓸만한 인재를 발견했나 싶었는데 쭉정이라니.


'뭐, 어쩔 수 없지. 전기 쪽은 다른 사람을 알아 보는 수 밖에..'


계획이 틀어졌지만,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큰 비용이 투자 되기 전에 싹수를 알아 볼 수 있었지 않은가?


"PLC나 HMI는 둘째 치고, 저희 쪽 고장을 고작 대리 급에서 잡아낼 줄은 몰랐습니다."


그때였다.


예상치 못한 명광호의 대답에, 전현우는 두 눈을 휘궁그레 떴다.


'고장을 잡아 냈다고?'


그 궁금증을 채 해소 하기도 전, 전현우는 두 눈을 튀어 나올 듯 크게 뜰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보고 들으셨겠지만... 이번 초절전 회로, 20세기 미래 테크에 맡기기로 결정 했습니다."

"..... 네?"

"사업부 쪽에는 제가 알아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단가는 R엔진 쪽이랑 똑같이 하면 좋을 거 같고요."


전현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 지금 저희에게 초절전 회로를 맡기신단 겁니까?"

"네."

"학 테크나 YM이 아니고요?"


전현우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 가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실력을 테스트 하려고 보낸 시연회인데, 갑자기 계약을 따오다니?


'잘 못 들은 건가?'


이쯤 되자 명광호 역시 이상한 것을 눈치 챘다.


".... 아직 보고를 못 들으신 겁니까?"

"무슨 보고 말입니까?"

".... 하긴, 두 사람 다 오늘 고생 했으니, 그럴 만도 하네요."

"......"

"자세한 이야기는 이 대리에게 들으시면 될 거 같습니다."

"..... 이 대리한테요?"

"네. 이 대리가 친절하게 설명해 줄 겁니다. 그건 그렇고.. 전 부장님은 참 부러운 사람이네요."

"....."

"회사 생활 복 중에 으뜸은 후임복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전 이사 님은 참 운이 좋으십니다."

"......?"


전현우는 두 눈만 깜빡일 따름이었다.

뜬금 없이 초절전 회로를 맡겼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후임복이니 뭐니 하는 소리는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 밖에 없었다.




회사로 복귀한 춘식과 도현.

그들은 곧바로 전현우의 호출을 받았다.


"그러니까, T 엔진 보전 측에서 변칙 작업을 하고 있었다?"

"네."

"그걸 너희가 밝혀 냈고?"

"저희가 아니고, 정확히는 이 대리가 발견 했습니다."


춘식이 손사래를 치며 도현을 가리켰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찬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마터면 저희 측 잘못으로 마무리 지어질 뻔 했습니다. 주 과장이란 사람, 얼마나 사람이 못됐는지.."

"......"

"이 대리가 아니었다면....."


전현우는 춘식을 무시하고 도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 이 대리. 어떻게 한 거에요?"

"네?"

"하드웨어 OT 센서가 문제라는 거. 어떻게 알았냐고요."

"......."


시스템 창이 알려 줬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렇게 말하는 게 맞겠지만.

'..... 정신병자 취급 받겠지.'

잠시 숨을 들이마신 도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행히 이런 질문을 받을 줄 알고,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 적절한 핑계를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PLC를 밀어 넣자 마자 장비 컨트롤 전원이 아예 꺼져 버렸습니다."

".... 그래서요?"

"컨트롤 전원이 꺼질 경우, 크게 세가지 문제 중 하나 입니다. 실제로 전원이 떨어졌거나, 잘못된 파일을 집어 넣었거나, 아니면 필수 인터록 신호가 OFF 되었거나. 그런데 전원도 멀쩡 했고, 파일 역시 정상 파일이었습니다."

"결국 남은 원인은 필수 인터록 신호 뿐이었다?"

"네. 필수 인터록 신호 중에서 OT 센서가 문제라는 건...."


전현우가 도현의 말을 끊었다.


"됐어요.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아 들었으니까."

"아, 네."

"그건 그렇고, 초절전 회로 입찰은 어떻게 된 거에요?"


도현은 천천히 상황을 설명 했다.

명광호 부장이 초절전 회로 입찰 건을 넘기는 대가로 이번 일을 묻고 넘어가자고 제시해 이야기까지.

물론 그 과정에서 최대한 춘식의 역할을 부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 과장님이 아니었다면 커버를 까보지도 못했을 거니까.'

이야기를 모두 들은 전현우의 눈빛이 묘하게 바뀌었다.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놈이 튀어 나온거지?'


단순히 테스트를 위해 보낸 시연회에서 입찰 건을 따왔다. 그것도 원청의 약점을 발견한 대가로 말이다.


도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보고 했지만, 이건 엄청난 위업이었다.

원청에게 쫄지 않을 수 있는 깡,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신을 모두 갖춰야 가능한 일인 것이다.


'잘 키우면.... 정말 가능성이 있겠어.'


놀라운 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겸손함.

눈 앞의 남자는 이제 겨우 서른 한 살이었다. 한창 피가 끓을 나이. 자신이 세운 업적을 강하게 어필하고 싶을 나이인데, 도현은 오히려 함께 있던 동료를 두둔하고 있었다.


꿀꺽-


전현우의 목젖이 꿀렁였다.

욕심이 났다. 실력과 인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저 남자가.

게다가 젊은 나이를 생각하면 앞으로의 잠재력은 차고 넘쳤다.


"이도현 대리."

"네, 이사 님."

"T엔진 쪽 초절전 회로 유지 보수는, 앞으로 이 대리가 전담하도록 해요."

"아, 알겠습니다."


도현은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을 빨리 올릴 수 있겠어.'


과거 였다면 업무가 많아졌다고 불평부터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업무를 쳐낼 수록 숙련도가 올라 간다. 그리고 숙련도를 올리면 현실에서 보상을 받는다.

전 이사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노다지 사냥터를 독점한 기분이네.'


마치 몬스터가 끝 없이 리젠되는 인스턴트 던전을 발견한 기분!

히죽히죽-

도현은 저도 모르게 헤벌쭉 웃고 말았는데.

"......."

춘식과 전현우는 그런 도현을 바라보며 흠칫 몸을 떨었다.


부르르-


'감전 된 이후로 머리 쪽에 이상이 생긴 게 확실해.'

'천재는 나사가 하나 빠져 있다더니.'


여러모로 연구대상이라고 생각한 두 사람이었다.




이명우는 손녀 딸, 현서가 먹을 저녁을 손수 준비 했다.


"우리 똥 강아지. 배 많이 고팠지?"


보글보글-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된장 찌개에 계란 찜. 거기에 잘 익은 김치 까지. 군침이 절로 나오는 메뉴가 아닐 수 없었는데.


"아냐 할부지! 빤니 와서 같이 밥 묵쟈!"

"허허. 그래 그래. 잠시만 기다리렴."


허허 웃으며 대답한 이명우는 곧 준비한 마지막 메뉴를 옮겼다.

제육볶음.

순간 현서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꼬기!... 꼬기다!"

"우리 강아지 고기 먹고 싶었어요?"

"스읍- 네에!"


얼마나 고기가 먹고 싶었는지, 침까지 흘리며 대답하는 현서.


순간 이명우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마음 같아선 매일매일 고기 반찬을 먹이고 싶은데..'


부모 마음이 다 그랬다.

내 새끼 입에 들어가는 거, 몸에 입히는 거. 다 최고급으로만 하고 싶지만, 솔직히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창 클 나이.

끼니 마다 원하는 만큼 고기를 먹이고 싶었지만, 빠듯한 살림에 큰 부담인 것도 사실.


'현서 엄마가 나가고 나서 부터였지.'


이명우는 말도 없이 사라진 며느리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미연이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궁핍하진 않았다.


네 가족 중 세 사람이 일을 하니, 힘들지만 애 하나 키우면서 저축도 꾸준히 할 수 있었는데.


주미연이 떠나고 나자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나도 일을 그만 뒀고, 도현이 혼자서 일을 하니..'


현서는 아직 다섯 살에 불과 했기에, 돌봐 줄 사람이 필요 했고, 명우가 그 역할을 자처 했다.


힘들어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며느리의 자리가 컸구나.'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이었다는 걸 깨닫듯이.

이명우는 최근에야 주미연의 빈 자리를 체감하고 있었다.

애를 키우면서 직장 생활까지 했던 며느리.

솔직히 말 한 마디 남겨 놓고 떠난 며느리가 미웠던 적도 많았지만.


'다 이유가 있겠지.'


주미연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지난 5년간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그 정도로 성실하고 착실했다.


"할부지 빨리 드세요!"

"어? 그, 그래."


손녀의 칭얼거림에 이명우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니, 현서가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자신이 밥을 먹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허. 할아부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응! 현서는 어른이 먹고 나서 나중에 먹는 거에요. 짜, 짱우유...서!"

"........"


짱우유서가 아니고 장유유서였지만 뭐 어떤가.

이명우는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밥을 떴다. 그제야 현서도 밥을 먹기 시작 했다.


'어쩜 저렇게 이쁘게 자랐는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녀였다.

그래서 더 미안 했다. 더 많은 지원을 해 주지 못해서.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못하게 해줘서.


순간 안방 서랍에 넣어둔 통장이 아른 거렸지만, 애써 고개를 흔들었다.


'아들내미와 손녀의 미래를 위해서야. 흔들리지 말자.'


아들에겐 비밀로 하고 있었지만, 현서가 어린이 집에 가 있는 동안 알바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은 돈이 벌써 400만원.


큰 돈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현서 대학 등록금이라도 하려고 모으는 중이었다. 미약하지만 아들 내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이명우였다.


삐삐삐삑, 띠리링!


그때였다. 난데 없이 현관 비밀 번호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아아!"

집 비밀 번호를 아는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공주! 이리 와!"

도현이었다.

"니가 이 시간에 웬일이냐?"

이명우는 현서를 번쩍 안아 든 아들에게 물었다.


지금 시간은 저녁 6시.

평소라면 아무리 빨라도 9시에 귀가하는 아들이었기에 의아함이 앞섰다.


"그냥.. 오랜만에 일찍 마쳤어요."

쿨 가이 이명우는 곧바로 납득 했다.

"그래? 마침 잘 왔다. 밥이나 먹자."

"네. 아버지, 이거."


그때.

도현이 팔에 쥐고 있던 상자 하나를 건넸다. 이명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받아 들었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없는 형편에 한우를 왜 사와? 제육 볶음 해 놨는데."

"제육은 나중에 먹으면 되죠."

"흠... 알겠다. 소고기 구워 줄테니, 일단 앉아라."


이명우는 난데 없이 소고기를 사온 아들이 탐탁지 않았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상황에 소고기라니. 평소 답지 않은 헤픈 모습에 살짝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이내 명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다 생각이 있겠지 뭐.'


매일 12시간 씩 일하는데, 한 번 정도는 사치를 부리고 싶었겠지.

그것도 자신을 위해 쓴 게 아니고, 가족끼리 먹자고 사 온건데 더 이상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 저, 이거."

"응? 이건 또 뭐냐? 용돈이라도 준비 한 거야?"

"네. 현서 봐주신다고 고생 하는데, 용돈 한 번 못 챙겨 드린 거 같아서요."


이명우는 아들이 건넨 봉투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화가 나서 그런 건 아니었고, 순간적으로 눈가가 붉어 지려는 걸 감추기 위해 인상을 쓴 것이었다.


'5년 째 옷도 안 사입는 놈이..'


그의 시선이 아들의 낡은 청바지에 닿았다.

군데 군데 찢어져서 맨 살이 보이는 것을 빈티지랍시고 입고 다니는 걸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는데.

이렇게 용돈까지 준비하다니.

명우는 뭉클한 심정으로 봉투를 받아 들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없는 형편에 용돈이라 해 봐야 얼마나 넣었겠는가.

10만원, 아니 5만원만 들어 있다 해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응?'

그런데.

건네 받은 봉투가 조금 이상 했다.

'너무 두툼한데?'

두툼을 넘어선 묵직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열어 보세요."

도현이 재촉 했고, 이명우는 떨리는 손길로 봉투를 열어 보았다.

"..... 이, 이만한 돈이 어디서 난 거냐?"

명우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만원 짜리만 들어 있어도 엄청나다고 생각 했는데. 봉투 속에는 샛노란 지폐가 가득 들어차 있었던 것이다.


"성과급 받았어요."

"니가 성과급을 받았다고? 아니, 받았다고 치자. 근데 뭔 놈의 성과급이 이렇게 많아!"


도현은 뒤통수를 긁으며 대답 했다.


"2억 짜리 계약을 따냈거든요."


따지고 보면 2억 이상이었다. T엔진 부장에게 눈도장까지 찍었으니까.


"니가 2억 짜리 계약을 따냈다고?"

"네. 새로운 거래처를 뚫었다고, 윗 선에서 인센티브를 넣어 줬어요."


도현은 퇴근 전 통장에 입금된 금액을 떠올렸다.

천 만원.

초절전 회로 입찰을 대가로 받은 돈이었다. 전현우 이사가 사장에게 적극 어필해서 인센티브를 지급해 주었던 것이다.


도현은 집으로 오는 길 그 돈을 모두 현금으로 인출 했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현실에 부딪혀 하지 못했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다.


"앞으로 더 자주, 그리고 많이 드릴게요. 감사... 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쑥쓰러웠지만, 꼭 해보고 싶었던 한 마디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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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성공의 비결. +29 24.08.22 28,859 519 18쪽
12 12. 개판이네요, 솔직히. +22 24.08.21 29,911 53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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