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제국의 황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김미습
작품등록일 :
2024.07.30 05:53
최근연재일 :
2024.08.2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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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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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쪽

돌아왔다 1990!

DUMMY

< 알립니다 :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모두 가상의 허구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



우당탕-탕!


폭우 속에 배달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폭우가 있는 날은 배달비가 평소의 4배로 치솟는다. 일종의 위험수당이라고 해야 할까? 나처럼 일당을 위해 나온 라이더들에겐 기회다.

그런데 빗물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중국산 싸구려 전기 자전거가 하수구에 처박혔다.


“이런 제길!”


욕을 내뱉을 시간도 부족했다. 바닥에는 배달 중이던 음식이 널브러졌다. 서둘러 배달 플랫폼 회사에 전화하여 상황을 보고했다. 상담 직원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혹시 크게 다치신 건 아니죠?”


직원은 기계적인 안부를 묻고는 이런 날씨엔 의례 자주 발생하는 사고라는 듯이 설명하며 대응 매뉴얼을 알려주었다.

고객에게 양해를 구한 후 나는 다시 음식점에 전화했다.


“배달 중에 넘어져서 음식이 망가졌습니다. 지금 즉시 새로 가능할까요?”

“아이고, 그게 오늘 마지막 주문입니다. 지금 재료가 없어서 또 만들지 못해요.”

“그럼 환불 조치해야겠네요.”


고객에게 다시 전화하여 환불을 이야기하자 쌍욕이 날아왔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재료가 떨어져서 환불 처리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야, 이 XX야! 환불이면 다야! 기다린 내 시간은 어쩔 건데!”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니 배달일이나 하고 사는 거야! 이런 씨X!”


전화인데도 허리를 굽히며 사과했다.

자존심? 그런 거 버린 지 오래다.

전화를 끊고 자전거를 살피는데 앞바퀴가 휘어있다. 그제야 내 몸에도 여기저기 찰과상이 생긴 것을 깨달았다.

더럽게 운수가 사나운 날이다. 배달 일을 나오지 말았어야 했나?

핸드폰을 켜자 두 아들의 사진이 나타났다. 어렸을 때 놀이공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그런데 그 위로 강화 유리에 길게 금이 가 있었다.

마치 내 인생을 상징하는 것 같아 갑자기 눈물이 났다.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공부 머리는 있어서 죽도록 공부하여 일류라는 SKY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IMF 이후라 대기업 공채 자리는 하늘에서 별 따기였다. 호기롭게 CPA(공인회계사)에 도전했으나 5년의 세월만 까먹었다.

간신히 중견 출판사 경리부에 입사하여 결혼도 하고, 두 아들도 얻었다.

그렇게 15년을 일했다.

그런데 인터넷과 스마트폰 때문에 출판업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50세를 앞두고 정리해고를 당했다. 이직하기엔 기술도, 나이도 애매했다.

어쩔 수 없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배달 일에 뛰어들었다.


‘이건 나를 위한 삶이 아니다!’


일부 곤충이나 동물은 암컷이나 새끼를 위해 수컷이 희생한다. 지금 나의 인생은 그런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식과 가족을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중이다.

물론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결혼하지 않고 오로지 날 위한 삶을 살고 싶다.


전기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그때였다. 2백 미터 정도 떨어진 성당의 지붕 꼭대기 십자가에 벼락이 떨어졌다.

콰과광!

너무 엄청난 위력의 에너지가 느껴져 온몸이 굳었다. 벼락이 떨어지는 걸 이렇게 가까이에서 목격하는 건 처음이었다.


‘장관이다!’


잠깐! 그런데 지금 내가 두 손으로 잡은 건 전기 자전거잖아?

그런 생각이 뇌에 떠오른 순간, 다음 벼락이 나에게 떨어지고 말았다.

쾅!


~*~


눈을 떴을 때 길바닥에 누워 있었다. 빗물은 여전히 쉬지 않고 내 얼굴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맙소사! 태어나 벼락을 두 번이나 맞다니!’


중학교 2학년 때 벼락을 맞은 적이 있다. 형에게 우산을 가져다주다가 학교 근처 큰 나무 옆을 지날 때 벼락을 맞아 기절했었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다.


‘맞으라는 로또는 안 맞고 벼락이나 처맞는 인생!’


멀리서 <가득 찬 골목에는> 노래가 들려왔다.


_당신 곁을 떠나겠다고 고백했지만-♬

_행복했던 기억을 간직했기에-♪

_사랑했던 당신의 얼굴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_영원의 시간이 흐른다 해도 그 마음 변할까요-♪


‘언제 적 노래야. 라디오인가?’


어느 가게인지 30년이나 지난 유행가를 틀고 있었다.

구시렁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는데 주위가 낯설었다. 분명 배달 중에 넘어진 동네가 아니었다. 주위에 전기 자전거도 없었다.


‘반바지?’


다리를 보니 낯익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어? 이건 어렸을 때 입던 반바지인데···.’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리고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은 어린 시절 살던 고향 동네였다!

두 손으로 몸을 만져보았다. 왜소했다.

설마?


‘그래, 기억난다! 30년 전, 중학교 2학년 때 벼락 맞았던 그 날이야!’


멀리서 들려오는 <가득 찬 골목에는> 음악 소리가 바로 그 증거였다. 이날 이 곡에 꽂혀서 가수 공일호의 팬이 되었다.


‘꿈을 꾸는 건가?’


그런데 분명 꿈은 아니었다.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 바닥에서 올라오는 빗물 냄새,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의 느낌까지. 모든 것이 생생했다.


‘꿈이 아니다. 과거로 온 건가?’


인터넷에서 그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높은 전압의 전기 에너지가 반응하면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단다. 그렇다면 벼락의 고에너지가 날 과거로 보낸 것인가?

아인슈타인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현대의 과학자들은 과거로 가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했다.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 몸이 과거로 온 것이 아니라 영혼이 과거의 나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열다섯 살, 벼락 맞았던 그 날로.


집으로 돌아왔다.

과거 그대로다. 길이 엇갈린 형은 이미 집에 와 있었다. 돌아가신 부모님도 두 분 모두 멀쩡히 살아계셨다.

“엄마!”

한동안 엄마를 끌어안고 울었다. 형과 여동생, 엄마는 그런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아까 우산 가지고 나갔다가 벼락을 맞아 죽을 뻔했지 뭐야.”


변명거리가 필요했다.

엄마와 여동생은 깜짝 놀랐고, 형은 벼락 맞아 죽을 뻔한 놈이 된 거냐며 놀려댔다.

아버지가 퇴근하시자 나는 더 크게 울었다.

평소에도 감수성이 풍부했기에 다들 그러려니 했다.


~*~


일주일이 지났다.

내가 다시 미래로 돌아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1990년. 지금 나는 열다섯 살, 중학교 2학년이다.

꼬물꼬물한 친구들과 학교 다니는 재미도 잠시, 나는 현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거와 똑같이 살 수는 없다.

어차피 죽도록 공부해서 SKY대학교에 진학한다고 한들, IMF가 올 것이고, 난 그저 그런 기업에 입사하여 평생을 노예처럼 일하다가 죽게 된다.

인문대가 아니라 공대나 의대를 간다? CPA조차 패스하지 못했던 나다. 공부는 좀 하지만 의대에 갈 실력은 안 되고, 공대에 간다고 해도 똑같이 회사원이라는 노예로 살게 될 것이 뻔했다.

어차피 돈 때문에 일하는 것 아닌가!


비트코인에 올인하면 모든 것은 끝난다.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한 게 2009년이었던가? 처음에 1비트코인이 얼마였더라? 10원? 100원? 그랬던 것이 2020년 이후 1억까지 간다.

이것을 현금화하는 건 2020년 이후. 앞으로 30년 뒤의 일이다. 비트코인은 그냥 노후 대비다.

그럼 그다음은? 주식이다.

가장 많이 오른 건 사과컴퓨터다. 2002년 1주당 1천 원까지 내려갔던 주가는 이후 급등하며 두 번의 분할을 하게 되는데 한 번은 10배 분할을 하고, 그다음은 7배 분할을 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2002년에 사과컴퓨터 주식을 1백만 원으로 1천 주를 구매했다고 치자. 70배 분할을 하게 되므로 1천 주였던 주식은 10년 후 7만 주가 된다. 거기에 2020년 이후엔 주당 2백 달러가 넘어가게 되니 1천 4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80억 원이 된다. 만약 2002년에 1천만 원으로 1만 주를 구매한다면 1,800억을 벌게 된다.

문제는 사과컴퓨터 주식도 2009년 이후, 즉 20년 후에나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2002년에 사과컴퓨터에 올인하고, 2009년 이후에 사과컴퓨터의 주식을 팔아 비트코인에 올인하면 30년 후엔 전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과컴퓨터의 주식을 현금화하는 2009년까지는 아직 20년이나 더 남았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사야 하는 주식은?

바로 에스전자다.

서둘러 신문을 펼쳤다. 그리고 에스전자의 주가를 확인했다.


‘맙소사! 에스전자 주식이 1주당 2천 원도 안 하잖아?’


내 기억에 앞으로 10년 후에는 최소 20배가 오르게 된다.

지금 한가하게 학교나 다닐 시간이 없다. 이미 나는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 아닌가. 지금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한들 무슨 소용인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한 푼이라도 벌어서 에스전자 주식을 사야 한다. 문제는 무슨 핑계를 대고 학교를 그만두느냐는 거다. 학교를 그만둔다고 하면 분명 부모님은 미친놈 보듯이 대할 게 뻔했다.

무슨 핑계를 댈까 고민하며 신문을 뒤적이다가 강남 아파트 시세에 관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맞아! 주식 말고 크게 오르는 게 하나 더 있었지!’


나는 부모님에게 달려가 말했다.


“엄마, 우리 강남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 가요!”

“갑자기 강남은 무슨 얘기야?”

“앞으로 강남 아파트가 아주 크게 오를 거예요. 30년 뒤엔 30억이 넘어갈 겁니다!”

“뭐? 삼십억? 오호호!”


엄마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안 되겠다. 뭐라도 믿게 할만한 스토리가 필요했다.


“벼락 맞은 후 꿈에 조상님이 나타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정말이에요. 우리는 꼭 강남의 아파트로 이사 가야 합니다!”


내가 꿈 이야기까지 말하자 엄마의 표정은 다시 심각해졌다.


“강남이면 아마 1억 5천도 넘을 텐데 어떻게 그곳으로 이사를 하니?”

“지금 우리 집 시세가 5천 정도니까 모자란 1억은 은행에서 대출받으면 되잖아요!”


부동산을 생각하자 머리가 팡팡 돌았다.

분명 강남 아파트로의 이사는 크게 남는 장사다. 문제는 1억이라는 대출금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1억은 엄청나게 큰돈이다. 도시 근로자 평균 연봉이 1천만 원도 안 되던 때니까. 1천만 원이 뭐야. 한 5백만 원은 되려나? 한 푼도 안 쓰고 10년 혹은 20년 이상 모아야 만들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개인 사업을 하고 계시던 아버지에겐 그리 무리한 금액은 아니었다.


“강남 아파트라···.”


다행이다. 부모님은 장고에 들어가셨다.

사실 강남 아파트가 앞으로 크게 오를 거라는 것은 신문과 뉴스를 열심히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거였다. 이때도 강남의 부동산 투기 열풍은 큰 화제였으니까. 지금 이 열풍에 올라타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파주 땅도 팔아야 하는데···.”


맞아, 파주 땅! 그래, 이때쯤이었지.

아버지에겐 파주에 논 2천 평이 있다. 그런데 이게 좀 애매한 크기다. 딱히 쌀은 많이 나오지 않는데 농사짓는 데에 들어가는 돈이 오히려 더 크다. 해마다 적자가 나니 아버지는 이 땅을 팔려고 하시는 중이다.


“아버지! 파주 땅 저한테 주세요!”


당황한 아버지가 커진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과거 아버지는 파주 땅을 6백만 원 주고 파셨다. 하지만 15년 후, 이 땅 바로 옆에 대기업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게 되고, 이후 2천 평의 가치는 자그마치 30억이 된다.

에스전자 주식은 15년 후 20~30배 정도 오르고, 강남의 아파트는 10배 정도 오른다. 하지만 파주 땅은 무려 500배다, 500배! 6백만 원이 30억이 되었으니까.

사과 컴퓨터 주식과 비트코인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파주 땅이 바로 노다지다.


“농지는 안 돼. 법적으로 논은 농사짓는 사람만 소유할 수 있어.”

“그럼 제가 직접 농사지을게요!”

“네가 농사를 짓겠다고? 허 참···. 그리고 그 땅 삼촌들한테도 지분이 있어서···.”


이미 삼촌들과 땅을 팔기로 합의가 된 모양이었다. 사실 농사는 파주에 사는 삼촌이 지었으니까.


“그럼 그 땅 제가 사겠습니다.”

“허허, 녀석 보게. 네가 산다고? 무슨 돈으로?”

“그 땅 6백만 원에 파실 거죠? 제가 6백만 원 만들어오겠습니다. 그러니 파는 걸 1년만 미뤄주세요!”


내가 강하게 나가자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아셨는지 아버지의 눈빛이 달라지셨다.


“정말 네가 6백만 원을 만들어오겠다는 거지?”

“네. 1년 후에 제가 그 땅 사서 직접 농사짓겠습니다.”


사실 엄마는 땅 파는 걸 반대하셨다. 그런 상황에 나까지 나서니 아버지도 흔들릴 수밖에.


“좋다. 그럼 매물로 내놓은 거 거둬들이마.”


사실 아버지는 아직 어린 내가 진짜로 6백만 원을 벌어 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으셨을 거다. 그저 땅 파는 것을 좀 더 고민하기 위한 변명이 되었겠지.

하지만 난 1년 후, 파주 땅을 내 명의로 바꿔 놓을 거다.


‘그깟 6백만 원쯤이야. 흐흐흐. 두고 봐. 앞으로 10년간 파주에서 나오는 땅 매물은 모두 내가 사들일 테니까!’


~*~


사실 열다섯 살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군다나 지금은 1990년 아닌가.

어릴 때부터 신문 배달 일을 한 친구 병호를 찾아갔다.


“신문 배달하면 한 달에 얼마나 받아?”

“3만 원.”

“뭐? 3만 원?”

“응.”

“겨우?”

“그래서 보통 한 신문사 말고 두 신문사의 신문을 함께 돌려. 그럼 5만 원. 그리고 우유 배달까지 같이하면 3만 원 더 추가해서 8만 원. 그리고 저녁 석간까지 하면 2만 원 더해서 10만 원은 벌 수 있지. 석간은 많지 않거든. 그래서 2만 원이야. 석간은 지금 자리가 없고.”

“그럼 넌 한 달에 10만 원을 버는 거야?”

“에이, 아니지. 나는 오래 했거든. 나 같은 베테랑은 돌리는 부수 자체가 달라. 그래서 15만 원 정도 받아. 하지만 넌 경험이 없으니 15만 원은 어려워. 최대가 8만 원에서 10만 원이야.”


맙소사! 그렇구나. 지금은 1990년이다.

아마 9급 공무원 초임이 40만 원에 훨씬 못 미칠 거다.

600만 원이라는 돈은 이 시대 도시 근로자 초임 연봉의 2년 치에 해당하는 큰돈이었다. 아버지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신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월 10만 원씩 번다고 해도 1년이면 120만 원. 600만 원에 어림도 없다.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


학교 다니며 낭비할 시간이 없다. 학교는 나중에 직업을 얻는 데 필요한 것. 하지만 난 취업할 생각이 없거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노동을 통해 내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거다.

엄마는 우리를 혼내실 때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다.


“공부하기 싫으면 벽돌공장에 가서 일이나 해!”


농담처럼 하시던 말이 진짜가 될 판이다.

우리 집 근처에는 벽돌공장이 있는데 거기서 일하면 한 달에 35만 원은 벌 수 있다. 그럼 1년이면 420만 원.

새벽에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을 하면 월 8만 원씩 1년이면 96만 원. 대충 100만 원이라고 하면 520만 원.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잘해서 2~3개월만 더 연장해 달라고 하면 얼추 6백만 원을 맞출 수 있을 거 같다.

문제는 그러려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한다.

하지만 만약 6백만 원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다고 말했다간 내가 헛바람 들었다며 당장 파주 땅을 파실 게 뻔하다.


‘하, 이걸 어쩌지?’


상속 문제 등 형제와 친척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파주 땅을 나 혼자 먹으려면 6백만 원을 주고 사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6백만 원을 벌려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데 설득력 있게 그만둘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우선은 아버지에게 6백만 원을 빌리는 걸로 할까?’


어차피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천천히 갚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거절하시면? 당장 팔아버리겠다고 마음을 바꾸실 수도 있다.


~*~


고민은 학교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30억짜리 파주 땅을 어떻게 하면 내 것으로 만들지 일주일째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뒤통수로 책가방이 날아왔다.

퍽!

묵직한 책가방에 맞아 뒤통수가 얼얼했다.


‘씨발, 그게 바로 오늘이었던가?’


우리 반 반장 윤상진. 이 녀석은 나한테 열등감이 있는 놈이다. 덩치와 키는 나보다 컸지만, 얼굴은 나보다 못생겼고, 성적도 나를 쫓아오지 못했다. 뒷자리에 앉아 못된 놈들과 장난을 꾸민 이 녀석은 내 뒤통수에 대고 책가방을 던졌다.


“미안하다. 실수였어. 깔깔깔!”


녀석이 다가와 부어오른 내 뒤통수를 문지르고는 깔깔거리며 자기 책가방을 들고 돌아갔다. 이후 옆에 있던 다른 두 놈도 다가와 부어오른 내 뒤통수를 만지며 깔깔거렸다. 아마 뒤통수가 부어오르는지 아닌지 내기를 한 것 같았다.

이 당시 나는 온순한 성격이었고, 덩치 큰 놈들과 싸우고 싶지 않아 그냥 참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냥 넘어갈 순 없지.’


난 필통에서 단단한 볼펜을 하나 꺼냈다.

녀석들은 남자 중에 키가 큰 순서대로 뒤에서 세 놈이다. 반면 난 키가 작은 순서대로 앞에서 세 번째였다. 녀석들의 덩치는 성인에 가까웠지만 난 이제 겨우 어린이 티를 벗은 수준이었다. 그러니 주먹으로 상대가 되겠는가. 어림도 없다. 얻어터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하지만 손에 무기가 있으면 얘기는 달라진다. 더군다나 나는 군대까지 다녀와서 볼펜 한 자루만으로도 기습을 통해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잠깐!’


그때였다. 머리에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잘하면 이 사건을 이용해서 학교를 그만둘 수도 있겠다. 당시엔 쓰레기들과 엮이는 게 싫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좀 깊게 엮일 필요가 있다.

비장한 표정으로 왼손에는 볼펜 한 자루를 쥐고 뒷자리에 앉은 윤상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가방 던진 게 너냐?”

“뭐?”


녀석은 대답하지 않고 비웃었다. 그리고 나를 무시하듯 노려볼 뿐이었다.


‘멍청한 놈! 지금 이 몸 안에는 반백 년을 살아낸 중년의 독사 한 마리가 들어있단다. 너희 같은 애송이들이 감히 상대될 거 같아?’


일상이 아닌 특정 사건의 경험에 대한 기억은 정확하게 오래도록 남는다.

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셋!

둘!

하나!

그리고 교실 문이 열리며 종례를 하기 위해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여기까지 내 기억과 정확히 일치했다.

살기넘치는 눈빛과 함께 내공을 끌어올려 녀석에게 외쳤다.


“이 가방 네가 던진 거냐고!”


윤상진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교실 안의 모든 눈이 날 향하는 게 느껴졌다. 당연히 담임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바로 눈치챘다.


“거기 무슨 일이야?”


녀석의 눈빛도 차가워졌다. 이 녀석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나 보다. 눈치도 더럽게 없는 놈.


“그래, 내가 그랬다.”


난 서 있고, 녀석은 앉아 있었다. 내가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왼손에 들고 있던 볼펜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녀석의 안경을 벗긴 뒤 오른손으로 녀석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볼펜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다시 내공을 끌어올려 힘껏 외쳤다.


“선택해! 왼쪽? 오른쪽?”


녀석은 내 행동에 당황하며 본능적으로 두 팔을 얼굴 위로 올렸다. 이건 외통수였다. 담임만 없었으면 힘으로 날 제압했겠지만 지금 이 교실 안에는 담임이 있다.

나는 다시 소리쳤다.


“선택하라고! 왼쪽! 오른쪽!”


서둘러 다가온 담임이 볼펜을 높이 들고 있는 내 왼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냐니까!”


담임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날 제압했다.

물론 눈을 찌를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되면 장애가 생기게 되고, 난 이놈한테 평생 손해배상을 하며 끌려다닐 테니까. 기적처럼 다시 돌아왔는데 순간의 선택으로 인생을 망칠 순 없지.


“이 녀석이 먼저 제 뒤통수에 가방을 힘껏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이 세 놈이 제 뒤통수가 부어올랐다며 낄낄거리며 만졌습니다.”


다른 두 놈도 왜 자기들까지 걸고넘어지냐며 눈을 부릅떴다.


“정말이야?”

“...네.”

“너희 모두 따라와!”


그렇게 나는 세 놈과 함께 담임 손에 이끌려 학생부실로 향했다.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


학생부실 가운데에는 커다란 탁자가 놓여있고 양쪽으로 의자 10개 정도가 놓여있었다.

의자에 앉자마자 담임의 심문이 시작됐다.


“머리에 가방을 던졌다니, 무슨 얘기야? 왜 그랬어?”

“죄송합니다. 장난으로 그랬습니다.”


상진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오, 예! 기회다.

쾅!

나는 두 손으로 있는 힘껏 탁자를 치고는 벌떡 일어나 소리 질렀다.


“장난? 장난이라고!”


그러자 담임이 나를 향해 버럭 화를 냈다.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선생이 우습게 보여?”


담임의 얼굴을 보며 외쳤다.


“선생님! 저는 방금 머리가 터져 죽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장난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죽지 않았잖니!”


나는 담임에게 다가가 담임의 손을 잡고 내 뒤통수로 가져갔다.


“이렇게 부어올랐는데 장난이라고요?”

“어머! 너 이거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제야 담임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내공을 끌어 올려 살기 넘치는 눈빛과 큰 소리로 선언했다. 싸움은 기선 제압이 최우선이거든.


“잘 들어! 난 내일 부엌칼을 가져와서 너희 셋 모두를 찔러 죽일 거야. 그러니 선택지는 총 3개다. 첫째, 살고 싶으면 내일 학교에 나오지 마. 둘째, 학교에 나와서 내 손에 죽는다. 셋째, 학교에 나와 날 죽이고 살인자가 된다.”


세 놈은 물론 담임까지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윤상진을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잘났어? 그렇게 똑똑하고 강해? 그럼 선택해봐 이 씨발 새끼야!”


쾅!

그렇게 말하고는 학생부실 문을 발로 차고 나왔다. 그리고 속으로 웃었다. 히히히.


정말 내일 죽일 거냐고?

미쳤냐! 살인자로 인생 망칠 일 있어?

내 계획은 ‘미친놈’ 작전이다.

당당하게 학교에서 3명의 살인을 예고했는데 학교가 가만히 있을까? 부모님도, 학교도 날 학교에 보내지 않을 거다. 미친놈을 학교에 보낼 순 없으니까. 그렇게 퇴학 처리되면 난 벽돌공장에 다니며 돈을 벌 생각이다.


교실로 돌아오자 집에 가지 못한 아이들 시선이 모두 나에게 꽂혔다.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반 친구들에게 외쳤다.


“너희 사람 죽이는 거 못 봤지? 내일 보게 될 거야. 내가 내일 칼 가져와서 저 세 놈 찔러 죽일 거거든. 난 한다면 하니까 모두 기대해! 사람 죽이는 거 보기 싫은 사람은 내일 학교 나오지 마라!”


그렇게 살벌한 말을 던지고는 가방을 가지고 교실을 나왔다.

뒤통수로 아이들의 겁에 질린 표정이 느껴졌다.


‘순진한 것들. 아마 친구들은 방금 내가 한 말과 살기 넘치는 내 눈빛을 담임에게 그대로 전할 거다.’


그럼 담임은 더욱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겠지.

모든 건 내 계획대로 전부 진행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엄마를 부여잡고 울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물론 연기였다.


“흑흑흑! 머리가 터져 죽을 뻔했다고요! 내일 꼭 세 놈 전부 죽여버릴 거예요!”


놀란 엄마는 서둘러 학교에 전화했다.


“선생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애가 내일 친구들을 죽이겠다고 난리를 치는 겁니까?”


어머니는 그렇게 오랜 시간 통화했다.

통화가 끝나자 엄마는 나에게 이야기했다.


“너 내일 학교에 가지 마라.”

“아뇨! 저는 내일 반드시 악마 같은 세 놈을 제거하는 복수를 할 겁니다!”


짝!

엄마는 내 따귀를 힘껏 때리셨다.


“이 미친놈아! 정신 차려! 살인자 되고 싶어?”


아씨, 내가 너무 나갔나?

우리 부모님은 상당히 엄하고 무서운 분들이시다. 최소한 자녀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정도(正道)가 있다.


“그놈들은 제대로 된 벌을 받게 만들어줄 테니 넌 그냥 기다려라.”


주눅 든 나는 방구석으로 가서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게 서너 시간 고민하는 척했다.


‘안 되겠다. 그냥 지금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하는 게 낫겠어. 살인 욕구가 꺼질 기미가 안 보이니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면 설득이 될 거야.’


원래 계획은 내일 학교에 칼을 가져가는 거였다. 그럼 분명 퇴학당할 테니까. 그런데 엄마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그보다는 덜 충격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할 거 같았다.


그런데 학교에서도 상황이 꽤 심각하게 돌아갔나 보다.

저녁 8시가 넘어 그 세 놈의 부모와 담임 그리고 학생부장 선생님까지 함께 사과하겠다며 우리 집을 찾아왔다.

자식이 사고를 쳤고, 피해자인 내가 녀석들을 죽이겠다고 경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으니 부모들 역시 가만있을 순 없었겠지.

담임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 가관이다.

반 아이들 모두가 난 착한 아이인데 상진이 녀석이 이유 없이 도발했다며 날 두둔했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난 학교에서 꽤 조용하고 착하며 성실한 학생이다. 하지만 학급의 권력은 상진이 패거리가 모두 잡고 있어서 아이들이 상진이 편을 들 줄 알았는데 내 편을 들었단다.


‘환장하겠네. 언제부터 다들 그렇게 정의로웠다고!’


아마 나의 도발이 다른 아이들까지 용기 내어 대항하게 하였을 거다. 혼자서는 연약한 존재지만 전체가 뭉치면 한없이 강하고 정의로워지는 존재가 인간 아니던가.

특히 나는 반에서 항상 1등을 할 정도로 성적도 우수하다. 선생님들 역시 나에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신 거 같다.

그러더니 그 세 놈의 부모가 모두 내 앞에서 무릎 꿇으며 나에게 빌었다.


“미안하구나. 우리가 자식 교육을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니 그 화는 우리한테 내고 애들은 용서해주렴.”

‘어라? 이게 아닌데?’


이건 내 계획에 없던 거다. 지금 여기 온 부모들도 학교 측에 항의하여 날 등교 못 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분위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담임과 학생부장이 세 놈의 부모에게 연락하여 상황이 심각하다고 겁을 준 모양이었다.

지금 정리해야 한다!

나 역시 무릎 꿇고 이야기했다.


“저는 그 녀석들 얼굴 보며 학교 다닐 자신이 없습니다. 살인자가 될 수 없으니 저는 학교를 그만두겠습니다!”


내 말에 부모들 표정이 굳어졌다.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네가 이렇게 그만두면 우리 애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학교에 다니겠니.”

‘아씨,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그러게, 날 왜 건드냐고!’


이렇게 생각하며 입을 삐죽이는데, 문제는 상진이 아버님이었다.


“아니다. 그럴 필요 없다. 우리 애가 잘못했으니 그만두더라도 우리 애가 그만둬야지.”

‘어라?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 되지!’


난 더욱 단호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상진이 혼자 그만둔다고 해결이 되겠습니까? 그냥 저 혼자 그만두는 게 낫습니다!”


그러자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마치 상진이 아버님이 무언의 압박을 보내는 것 같았다. 결국 다른 두 부모도 항복을 선언했다.


“그래. 우리 애가 잘못했으니 우리 애를 전학시키마.”

“정 그렇다면 우리 애가 전학을 가야겠지.”

‘아씨, 이게 아닌데!’


속이 타들어 갔다. 빨리 학교부터 그만두고 벽돌공장에 일하러 나가야 하는 데 이 인간들이 도움을 안 준다. 더군다나 상진이 아버님은 인품이 올곧다. 상진이와는 전혀 다른 성품이다.


“그럼 우리 애들이 전학을 가는 걸로 마무리합시다.”

“어차피 일주일 뒤엔 방학이니까 성민이 너는 학교에 안 나와도 돼.”


담임이 쐐기를 박았다. 아예 학교는 나오지 말란다.

이러면 어영부영 방학이 지나가고, 학교를 그만둘 명분은 사라지게 된다.


“그게 아니라 제가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니까요!”


나의 간절한 울부짖음은 통하지 않았다. 셋 다 내일 바로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키겠다는데 대꾸할 방법이 없었다. 나의 부모님도 만족한다는 표정이셨다.


‘하-씨, 내가 너무 강하게 나갔나 보다.’


망했다. 꼴 보기 싫은 놈들이 전학 가는 건 좋은데 문제는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

선생님들과 세 녀석의 부모들이 돌아간 뒤, 어머니는 잠들기 전까지 왜 살인하면 안 되는지 잔소리를 하셨다.


‘진짜 미치겠네!’


~*~


방학만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 벽돌공장으로 향했다.

이번과 다음 방학 때 공장에서 일한 돈과 신문 배달한 돈을 합쳐 100만 원 정도를 만들어 아버지께 드리고 나머지 500만 원은 외상으로 해달라고 할 계획이었다. 그럼 아버지도 거절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벽돌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후끈한 공기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한쪽의 가마에서는 점토로 만든 벽돌을 높은 온도의 불로 굽고 있었다.


“저기···.”

“어떻게 왔어요?”

“여기서 일하고 싶습니다!”

“뭐? 푸-하하하! 여봐! 이 꼬마가 여기서 일하고 싶대!”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모두 웃음이 터졌다.

일하는 사람들 모두 덩치와 근육이 장난 아니었다. 틀에 모래가 섞인 점토를 채우고 말린 뒤, 도자기 굽듯이 구워야 하는 일은 모든 과정을 자동화 없이 오직 인간의 노동력만으로 진행 중이었다.


“방학 동안만 아르바이트할 수 있을까요?”

“아이고, 힘든 일을 하겠다고 찾아온 건 기특하다만 네 체격으로 이런 노가다는 무리야.”


결국 퇴짜를 맞고 나왔다.


‘이젠 어디로 가서 일자리를 구하지?’


나이가 어리고 덩치가 작다 보니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때였다. 공장 안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라스트 연주회>였다.


‘이 명곡이 이때 유행했구나.’


그리고 함께 떠올랐다. 가요계의 역사를 바꾼 ‘타이즈&가이즈’의 빅 히트곡 <넌 모르지>!

남자 멤버 셋이 여성들의 점유물이었던 타이즈를 입고 나오며 비주얼 쇼크를 주었고, 무엇보다 가요계에서는 생소했던 랩 장르의 음악을 선보인 선구자였다.

TV 방송에서 이들을 처음 본 나는 <넌 모르지>의 춤과 노래에 빠져 살았다. 아니, ‘타이즈&가이즈’는 나뿐만 아니라 이 시절 청소년 절반 이상의 우상이었다. 가요계는 <넌 모르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한국 대중 가요계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 곡이다.

이 곡을 방송에서 처음 들은 건 고등학교 1학년 봄. 1992년이다. 그리고 지금은 1990년! 2년 전이면 곡과 춤이 아직 미완성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곡은 완성되었더라도 춤은 미완성일 가능성이 컸다.


‘그래, 노래와 춤을 팔자!’


그들의 자리를 빼앗겠다는 게 아니다. 6백만 원이라는 푼돈으로 빅 히트곡을 넘겨주겠다는 거다. 셋이 이 곡으로 벌어들일 돈을 생각하면 6백만 원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씨익-!

내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겠습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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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마초 24.08.06 11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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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테스트 24.08.04 118 2 12쪽
5 간장 양념 치킨 24.08.03 131 1 14쪽
4 소중한 추억 속의 나 +1 24.08.02 136 4 12쪽
3 넌 모르지 24.08.01 140 3 12쪽
2 멍청이 24.07.31 166 3 11쪽
» 돌아왔다 1990! +5 24.07.30 216 3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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