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제국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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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습
작품등록일 :
2024.07.30 05:53
최근연재일 :
2024.08.2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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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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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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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와이프

DUMMY

“우선 음표와 악보 보는 법을 알아야 해.”


그녀가 내 바로 옆에 앉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하얀 피부와 향긋한 비누 냄새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마치 하늘에서 강림한 선녀가 내 옆에 앉아있는 거 같았다.


“누나는 몇 살이에요?”

“열여덟. 고2.”

“이름은요?”

“문미령.”

“저는 열여섯이고 지금은 학교 안 다녀요.”

“학교를 안 다녀?”

“검정고시로 1년 빨리 졸업했어요.”

“아하, 검정고시.”

“누나, 혹시 치킨 좋아해요?”

“치킨? 좋아하지.”

“그럼 학원 끝나고 우리 집에 같이 가요. 부모님이 치킨집 하거든요.”

“그래? 너랑 가면 공짜야?”

“당연하죠!”

“그래, 그럼.”


아싸! 작업 성공이다.

사실 회귀 전 와이프도 74년생이었다. 난 아무래도 두 살 연상과 결혼할 팔자인가 보다. 회귀 후에도 이런 미녀와 인연이 닿다니.

사실 회귀 전 와이프도 대단한 미녀였다. 오죽하면 별명이 ‘출판계 최고 미녀’였을까. 내가 연상인 아내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도 바로 아내의 미모 때문이었다.

그런데 회귀 후 아내보다 더 예쁜 여자를 만나다니!

난 정말 여복이 있나 보다.


‘미안해, 여보. 그래도 우리 충분히 같이 살아봤잖아?’


와이프와는 사랑해서 결혼했고, 그렇게 아들 둘도 얻었다.

행복한 날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생엔 다른 여자와 사랑을 해보고 싶다.


‘당신도 다른 남자 만나. 그럼 되지, 뭐.’


~*~


학원이 끝난 후, 나와 미령 누나는 우리 치킨집으로 향했다.

문 앞에 걸어둔 청사초롱을 발견한 미령이 말했다.


“어머, 가게 앞에 청사초롱이 걸려있네?”

“어때요? 이쁘죠?”

“응.”

“제가 건 거예요.”

“왜? 저건 결혼할 때 사용하는 거 아냐?”

“보면 그냥 기분이 좋잖아요.”


청사초롱의 붉은색과 푸른색은 음양의 조화다. 즉, 남녀의 만남을 뜻한다. 그리고 안에서 빛나는 빛은 이들 커플의 미래를 밝혀주는 빛이다.


‘이런 목적은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잘 맞아떨어지네.’


미령과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여동생이 가게 일을 돕고 있었다. 여동생이 나와 함께 들어오는 미령을 보자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엄마! 작은오빠가 여자 데려왔어!”


그러면서 나와 미령을 째려보았다.


‘이 요망한 것!’


여동생은 회귀 전 와이프에게도 시누 짓을 엄청나게 했었다. 그때 괴로워하던 아내를 생각하면 지금도 열불이 난다.

엄마가 반기며 물었다.


“어머, 누구야? 엄청 예쁘네?”

“피아노학원에서 저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세요.”

“아, 그래?”

“안녕하세요. 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오늘은 성민이가 치킨 맛있다고 엄청나게 자랑해서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잘 왔어요. 거기 아무 데나 앉아요.”


배달 다녀온 아버지도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가 나와 같이 있는 미령을 보고는 잠시 멈췄다. 난 미령을 아버지에게 소개했다.


“저희 아버지세요.”

“안녕하세요? 피아노학원에서 성민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름은 문미령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아버지는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간 뒤 어머니 귀에 대고 속닥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며 묻고 있었다.

그때 미령의 호출기가 울렸다. 숫자 메시지를 확인한 미령이 물었다.


“혹시 친구도 여기 오라고 해도 돼? 이 근처래.”

“네. 오라고 하세요.”


미령은 잠시 가게를 나갔다.

그러자 여동생이 다가와 따졌다.


“뭐야? 여긴 왜 데려왔어? 둘이 무슨 관계야?”

“피아노학원 알바 선생님이라니까.”

“피아노 선생님치고는 너무 예쁜데? 저렇게 예쁜 여자 처음 봐.”

“그건 나도 그래.”

“설마 지금 작업하는 건 아니지?”

“쪼그만 게 별소리 다 하네!”


그렇게 여동생과 옥신각신하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미령이 자신의 친구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미령의 친구를 보는 순간, 기절할 뻔했다.


‘다, 당신이 왜 여기서 나와?’


미령의 친구는 다름 아닌 회귀 전 내 와이프다.


‘둘이 친구라고?’


어쩐지. 교복이 눈에 익더라니.

진짜 인연의 끈이라는 게 있는 건가? 여기서 와이프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황망한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어라? 잠깐!’


내 기억에 와이프 친구 중 미령은 없었다. 결혼식에서도 본 적이 없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렇다는 건,


1) 중간에 둘이 절교했거나

2) 해외 이민 등으로 연락이 끊어졌거나

3)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


라는 얘기인데···. 설마 몇 년 후에 있을 일풍 백화점 붕괴 사고 때 목숨을 잃게 되는 건가? 아니면 교통사고?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미령과 와이프는 나란히 앉아 우리 집 대표 메뉴인 간장양념 치킨의 맛을 보았다.


“어머, 너무 맛있어!”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나 이런 거 처음 먹어 봐.”

“단맛과 짠맛 그리고 튀김 옷의 식감이 너무 절묘해.”


나는 와이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내는 고등학교 때도 예뻤구나.’


아직 뺨에 남아 있는 젖살이 귀엽게 느껴졌다.

하지만 미령이 피부가 더 하얗고, 얼굴도 훨씬 더 예뻤다. 아내도 예쁜 얼굴이었지만 미령 옆에 있으니 그저 평범하게 보이는 착시가 일어났다.

평생 와이프가 공주라며 생각하고 살았는데 지금 보니 와이프는 공주 옆에서 시중드는 시녀처럼 보였다.


‘그래, 미령이라는 친구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


나는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좁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내는 특정 날짜만 되면 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웬 혼술이야?>

<오늘이 내 친구 미령이 생일이거든. 그년 제삿날은 기억이 안 나는데 이상하게 생일은 잊어버리지 않네.>

<친구가 죽었어?>

<응.>

<왜 죽었는데?>

<미령이는 나보다 훨씬 더 예뻐서 연예인 지망생이었거든.>

<헐, 당신보다 훨씬 더 예뻤다고?>

<응. 근데 얘가 연예기획사랑 계약했는데 사장이 완전 미친놈이야. 어디 무슨 조폭 출신이라는데 미령이를 마치 접대부처럼 취급했다니까.>

<접대부?>

<여기저기 방송계와 영화계 힘 있는 사람들 술 따르게 하고, 호텔에도 끌려가고.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때리고, 협박하고···. 계약을 잘못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어. 예쁘게 태어난 게 죄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실 나도 연예인 지망생이었는데 미령이 그렇게 되는 거 보고 완전히 접었지.>


그래. 분명 그때 말한 친구 이름이 ‘미령’이었다.

와이프가 연예인의 꿈을 포기한 건 미령이라는 친구 때문이다. 그녀는 계약을 잘못한 탓에 온갖 지저분한 일은 다 겪고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 버렸다.

그리고 그 미령이 내 앞에 있다.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고!’


치킨을 다 먹어갈 때쯤, 내가 말을 걸었다.


“누나들 연예인 지망생이죠?”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연예인 해도 될 만큼 예쁘니까요. 제가 누나들이어도 연예인 되고 싶을 거예요.”


두 사람 모두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연예기획사랑 계약할 때는 신중해야 해요. 기획사 사장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아봐야 하고, 계약도 꼭 변호사 통해서 하고요. 연예계는 계약 한 번 잘못하면 인생 송두리째 날아갑니다.”

“너, 그런 걸 어떻게 잘 알아?”

“저도 연예인 되려고 기획사 연습생 하고 있거든요.”


기획사 연습생이라는 말에 미령과 와이프가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연습생이라면··· 가수?”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키도 작고, 얼굴을 보니 배우는 아닌 거 같고···.”


그러면서 뭐가 그렇게 웃긴 지 둘이 한참을 깔깔거린다.

그래도 여보, 당신이 그렇게 웃는 건 아니지 않아? 회귀 전에 나랑 결혼까지 했으면서.


“아무튼, 누나들 계약할 땐 꼭 저한테 먼저 물어보세요.”

“네 기획사가 어디인데?”

“진수현과 키키 소속사요.”


그러자 두 사람의 표정이 변했다.


“요즘 수현이 형 대마초 문제로 시끄럽긴 한데 믿을만한 회사예요.”


믿을만한? 뭐 최소한 소속 연예인을 술집 접대부 다루듯이 하지는 않을 테니까.

예쁜 여자는 특히 더 조심해야 하는 곳이 바로 연예계다.

더군다나 지금은 아직 90년대.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무기로 휘두르는 야만의 시대다.


“그런데 누나들은 배우와 가수 중 뭐가 목표예요?”


미령은 미모로만 보면 배우 지망이고, 와이프는 가수 지망일 거 같았다.


“난 가수.”

“난 배우.”


이런. 둘이 반대로 말하네. 미령은 가수를, 와이프는 배우를 꿈꾸고 있었다.


“그럼 우리 식사 끝나면 노래방이나 갈까요?”


두 사람에게 정말로 재능이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그때 형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넌 일 안 하고 앉아서 뭐 해?”


그러고 나서 내 앞에 앉아있는 두 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두 여자의 미모를 확인한 형의 몸이 얼어붙었다.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내가 두 미녀와 함께 가게를 나가자 부모님과 여동생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 요즘 뭘 하고 다니는 거야?”

“그냥 피아노학원 보내달라고 해서 학원 끊어줬지.”

“두 분 곧 손자 보시겠네요.”


여동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형은 책가방을 구석에 던지며 울 듯이 외쳤다.


“나도 당장 학교 때려치우고 연예인 할래요!”


- - -

우리는 상가 지하에 있는 노래방으로 갔다.

미령과 와이프는 들어오자마자 <마네킹은 나를 비웃지>의 번호를 누르고 부르기 시작했다.


_ 파란 양말을 올려 신은 - ♬

_ 넌 매일 미소를 간직한 마네킹 - ♪

_ 빨간 립스틱 뒤에는 모두가 다 아는 모습 - ♬


노래와 춤 모두 완벽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았다.

가사 그대로 가슴에 꽂히는 것이, 마치 미령은 불행하게 펼쳐질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는 듯했다.


둘을 바라보며 결심하자 운명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무언가 바뀌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한 번 해보자!’


내가 이렇게 회귀한 것도 어쩌면 과거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닐까?

기차가 다른 철로로 갈아타는 것처럼 우리의 운명도 분기점에서 다른 인생으로 갈아타는 중이었다.


~*~


애즈기획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진수현의 무책임한 행동에 실망한 김현우와 이재성은 다른 매니지먼트 회사를 찾기 시작했고, 애즈기획의 공동 설립자였던 박수남이 애즈기획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박수남은 애즈기획의 경영과 매니지먼트를 총괄했던 터라 그의 이탈은 애즈기획에 치명적이었다.


“꼭 나가야겠니?”

“이미 장현천의 타이즈&가이즈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현천의 매니저를 하고 싶어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크게 내쉰 최만수가 말했다.


“알았어.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


최만수 역시 지금 상황에서 그를 잡아둘 명분이 없었다.

그렇게 창립 멤버였던 박수남이 애즈기획을 떠났다.

주춧돌 하나가 빠졌다. 최만수 사장은 회사가 당장에라도 무너질 거 같아 두려운 생각이 몰려왔다.


‘이러다가 공황장애 오겠네.’


최만수가 회사의 미래를 두고 고민할 때 내가 미령과 와이프를 데리고 사무실에 나타났다.

최만수 사장은 내 뒤에 서 있는 미령과 와이프를 보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모든 것을 알았다.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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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작곡 천재 24.08.17 87 1 12쪽
18 추락 24.08.16 91 1 11쪽
17 부도 24.08.15 90 1 14쪽
16 투자 +1 24.08.14 93 1 13쪽
15 성덕 클라스 24.08.13 91 1 13쪽
14 투서 24.08.12 93 1 12쪽
13 질투는 나의 힘 +1 24.08.11 110 3 13쪽
12 복수 24.08.10 113 2 13쪽
» 와이프 24.08.09 389 3 12쪽
10 뮤직비디오 24.08.08 114 3 12쪽
9 자수 그리고 거성기획 24.08.07 106 1 12쪽
8 대마초 24.08.06 110 3 12쪽
7 조경수 사업 24.08.05 113 1 12쪽
6 테스트 24.08.04 118 2 12쪽
5 간장 양념 치킨 24.08.03 131 1 14쪽
4 소중한 추억 속의 나 +1 24.08.02 136 4 12쪽
3 넌 모르지 24.08.01 140 3 12쪽
2 멍청이 24.07.31 165 3 11쪽
1 돌아왔다 1990! +5 24.07.30 214 3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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