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제국의 황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김미습
작품등록일 :
2024.07.30 05:53
최근연재일 :
2024.08.2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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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1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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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이

DUMMY

서울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내가 알기로 ‘타이즈&가이즈’는 별도의 기획사 없이 음반을 낸 독립 레이블이다. 최초로 선진 연예 기획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도입한 애즈(AS)엔터테인먼트도 이제 막 등장한 시대라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멍청이!’


멍하니 열차 밖 풍경을 바라보다가 깨달았다.


‘전학이 아니라 합의금을 요구하면 되는 거잖아!’


난 왜 이렇게 멍청할까?

세 놈이니 한 놈당 2백만 원의 합의금을 받으면 모든 게 끝나는 문제였다. 아니면 상진이 놈에겐 2백만 원을 받고, 다른 두 놈에게는 백만 원씩만 받아도 4백만 원이다. 나머지는 신문 배달을 하며 갚아 나가면 된다.


‘그런데 지금 물가에 그런 합의금이 가능하긴 한가?’


아니지. 잘해야 상진이 놈에겐 1백만 원, 나머지 두 놈에겐 50만 원씩 받을 수나 있으려나? 그래봤자 합이 2백만 원.


‘에라, 잊자! 그렇다고 지금 말을 바꿀 순 없지. 어차피 꼴 보기 싫은 놈들 사라진 건 후련하니까!’


이때까지도 내가 바꾼 과거가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알지 못했다. 이땐 왜 몰랐을까? 모든 선택은 결국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


나는 타이즈&가이즈의 광 팬이었다. 당연히 팀의 리더 장현천의 집을 알고 있다.

응암동에 있는 그의 집 앞에 섰다. 기억 그대로였다. 1층짜리 아담한 단독주택이다. 앞으로 2년 후에 이 집 담벼락에는 팬들이 남긴 낙서로 가득해지겠지.

초인종을 누르자 장현천 어머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세요?”

“현천이 형 있나요?”

“없는데 누구니?”

“형을 잠깐 만나러 왔습니다.”


안에서 장현천의 어머니가 나오셨다. 장현천은 72년생이고 난 76년생이니 친구는 아니었다. 한참 어려 보이는 내가 장현천을 찾으니 이상해 보였나 보다.


“왜 온 거니?”

“현천이 형에게 꼭 보여줄 것이 있어서요.”

“그게 뭔데?”

“노래와 춤이요.”


그제야 알겠다는 듯 장현천의 어머니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코첼라(Coachella) 클럽에 가보렴. 오늘 거기에 들른다고 했거든.”

“아, 고맙습니다!”


나는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혹시 너도 음악을 하려는 거니?”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의 뉘앙스가 미묘했다.


“하지만··· 형은 대한민국에서 마이클 잭슨만큼 성공한 가수가 될 겁니다! 두고 보세요!”


이 말을 남기고는 바로 돌아서서 뛰었다.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조금 도움이 되었으려나? 미래를 알고 있는 나에게 지금 장현천 어머니의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나에게 그런 말을 들은 장현천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정말로 내 아들이 마이클 잭슨만큼?

아니면 그저 철없는 아이의 헛소리쯤으로 흘려들을까?

분명한 것은 앞으로 2년 후, 내가 했던 말은 사실이 될 거란 점이다.



클럽 코첼라는 이 당시 송파구 문정동 로데오 거리에 있었다. 이곳은 록 밴드 ‘아리랑’의 리더 강대진이 음악을 하기 위해 만든 지하 연습실이었는데 이왕 만드는 김에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술도 파는 클럽으로 만들었다. 장현천은 타이즈&가이즈로 활동하기 전, 록 밴드 ‘아리랑’에서 키보드를 연주했었다.


지하철을 타고 한참 만에 도착한 문정동 로데오 거리는 그야말로 썰렁했다.


‘참, 여기도 나중에 부동산 가격이 엄청나게 오르지.’


하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우선은 장현천을 만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클럽 코첼라는 말만 들어봤지 실제로 와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하로 내려가자 음산하면서 특유의 곰팡냄새가 코를 찔렀다.

코첼라 안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없었고 강대진과 장현천 그리고 ‘타이즈&가이즈’의 멤버 우태석이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앨범 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누군가 들어오는 것을 느낀 강대진이 말했다.


“아직 영업시간 전입니다.”


그리고 내 모습을 확인한 강대진이 약간 짜증 섞인 말투로 외쳤다.


“여긴 애들이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야!”


그리고는 장현천과 우태석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문을 잠가놔야겠어.”


강대진이 의자에서 일어나자 내가 대답했다.


“현천이 형도 아직 미성년자잖아요?”


내가 열다섯이니 나보다 네 살 많은 장현천은 열아홉이었다.


“뭐?”


당황한 강대진이 나와 장현천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장현천과 우태석은 웃기는 꼬마가 나타났다는 듯 깔깔대며 웃었다. 먼저 우태석이 말했다.


“하하. 뭐 저런 당돌한 놈이 있어.”

“너, 날 만나러 온 거니?”


장현천이 나에게 물었다. ‘아리랑’에서 활동하며 공연도 했으니 나를 팬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네. 현천이 형에게 보여줄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보여줄 것이 있다는 말에 셋 모두 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들 눈엔 난 그저 이제 막 어린이 티를 벗은 중학생 청소년이지만 이 몸 안에 들어 있는 영혼은 이미 반백 년을 살아낸 중년 남자다.


나는 당당하게 클럽 앞에 있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악기 연주 없이 오직 입으로만 ‘타이즈&가이즈’ 불멸의 히트곡인 <넌 모르지>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_두- 두- 두두 두- 빠- 빠, 방-!

_넌 모르지! 이날이 지나가 버리면-♬

_다른 이가 나에게 프러포즈한다는 사실을-♪

_지금도 너는 정말, 정말로 모르고 있어요-♬

_헤어지자는 말을 했었어-♪

_이별 고백 전에 속마음은 이미 떠나 버렸어-♬


어렸을 때 수백, 수천 번은 따라부르며 췄던 춤이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장현천 수준으로 음정과 박자를 맞추며 완벽하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노래가 끝나자 장현천과 우태석이 멍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짜식들! 놀랐구먼! 이걸 얼마에 받고 팔면 되려나?’


춤과 노래를 합쳐 어떡하든 500만 원 이상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장현천이 물었다.


“너 뭐야?”

“네?”

“뭔데 아직 발표하지도 않은 노래와 춤을 알고 있는 거냐고.”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이런, 벌써 노래와 춤을 완성한 건가?

그때서야 정확한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방송을 통해 이 곡을 듣게 된 건 1992년 봄이었고, 실제로 음반이 발매된 건 1991년이다.

특히 장현천은 <넌 모르지>곡을 만들어서 우태석과 마르스를 영입했기 때문에 우태석을 영입한 지금 시점에는 이미 <넌 모르지>가 작곡은 물론 춤까지 거의 완성되어 있던 거였다.


‘망.했.다!’


환장하겠네. 뭐라고 변명하지?

그때였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는데 우태석이 단정하듯 나섰다.


“얘 현천이 열성 팬이야. 그러니 노래와 춤을 전부 알고 있지. 아마 우리가 연습하는 걸 몰래 지켜봤을 거야.”

“그럼 우리 1호 팬이 되는 건가?”

“1호 팬? 하하하!”


기분이 좋은지 장현천과 우태석은 크게 웃었다.


“너네 멤버 한 명 더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어? 쟤 어때?”


뭐야? 마르스는 아직 영입 전인 거야?

대박이다. 강대진은 세 번째 멤버로 날 추천했다.


“한 번 테스트나 해보지, 뭐.”

“그럴까, 그럼?”


맙소사! 정말 날 ‘타이즈&가이즈’의 멤버로 뽑아준다고?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미래가 바뀌는 건가? 마르스 대신 내가?

너무 당혹스러웠다.

물론 ‘타이즈&가이즈’의 멤버가 되면 좋지만, 그럼 마르스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과거로 왔지만, 도둑질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양심의 문제였다.


‘하지만 난 돈이 필요하다!’


6백만 원! 아니, 더 많으면 좋고! 파주 땅을 최대한 많이 사두어야 하니까!


‘그래, 딱 1집까지만 함께 활동하자. 그리고 마르스에게 내 자리를 넘겨주는 거야!’


마르스는 ‘타이즈&가이즈’ 해체 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때 내가 나서서 충분히 도움을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장현천이 말했다.


“다른 노래 좀 불러 볼래?”

“다른 거요? <환장하는 나를> 불러 볼까요?”

“뭐야? 그것도 알고 있어?”


<환장하는 나를>. 1집 수록곡인데 <넌 모르지>가 큰 성공을 하면서 함께 히트한 곡이다. 춤과 곡의 가사가 퇴폐적인 분위기를 연상시킨다며 한때 방송 금지까지 당했었다.


_ 빠바밤 빰! 빠라라 빰빠바 빠라빠라 - ♬

_ 절대, 과거로 돌아갈 순 없다 GO! - ♪


노래를 시작하는데 우태석이 끼어들며 끊었다.


“뭐 우리 노래야 잘하겠지. 우리 곡 말고 다른 거 해 봐.”

“다른 거요?”

“응. 요즘 유행하는 ‘앰블런스’ 노래 같은 거 있잖아.”


앰블런스. 1987년 혜성처럼 나타난 남성 3인조 댄스 그룹이다. 기계 체조를 연상시키는 댄스로 80년대 후반의 가요계를 평정했다. 사실상 댄스 아이돌 그룹의 시초나 다름없었다.

나는 요즘 한창 유행 중인 <이혼하고 싶어>를 부르며 춤을 췄다.


_ 이혼하고 싶지만, 너무 오래 같이 살았어- ♬

_ 너무나 오래 살았어- ♪

_ 이혼하자 말해도 듣는 척도 안 하네- ♬

_ 정말로 척도 안 해요, 후- ♪


사실 이 곡은 이 당시엔 좋아했던 곡이 아니다. 작년에 이 곡이 발표되었을 때 난 고작 열네 살이었다. 열네 살짜리가 이런 곡의 가사를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랬다가 내가 이곳으로 오기 불과 3년 전에 우연히 인터넷 방송에서 듣게 되었고, 곡이 아주 마음에 들어 가사를 외웠었다.

노래를 마치자 강대진의 감상평이 먼저 나왔다.


“와, 저 어린놈이 어떻게 이 노래의 가사를 저렇게 찰지게 전달할 수 있는 거지? 너 혹시 결혼 해봤냐? 크크크.”


뒤이어 장현천과 우태석의 평가가 이어졌다.


“노래를 특출나게 잘하는 건 아닌데 아주 묘한 부분이 있어. 감정 전달이 잘 된다고 할까? 곡의 주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부르는 거 같아.”

“춤도 저 정도면 기본기는 충분해. 박자 감각도 있고.”


뭐야, 이 분위기는? 정말로 내가 멤버로 뽑히는 건가?

인생이 이렇게 풀리는구나! 엄마! 저 가수가 되려나 봐요!


‘겨우 1집이 뭐야. 만약 된다면 해체할 때까지 그냥 가자! 타이즈&가이즈 멤버로 벌어들인 돈을 파주에 투자하기만 하면 500배다! 마르스 인생은 내가 돈으로 갚으면 되지!’


장현천과 우태석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 심각하게 의논하기 시작했다.


‘오, 제발!’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나에게는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장현천이 고개를 돌려 나에게 물었다.


“너, 몇 살이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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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성덕 클라스 24.08.13 92 1 13쪽
14 투서 24.08.12 94 1 12쪽
13 질투는 나의 힘 +1 24.08.11 110 3 13쪽
12 복수 24.08.10 11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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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뮤직비디오 24.08.08 114 3 12쪽
9 자수 그리고 거성기획 24.08.07 106 1 12쪽
8 대마초 24.08.06 110 3 12쪽
7 조경수 사업 24.08.05 113 1 12쪽
6 테스트 24.08.04 118 2 12쪽
5 간장 양념 치킨 24.08.03 131 1 14쪽
4 소중한 추억 속의 나 +1 24.08.02 136 4 12쪽
3 넌 모르지 24.08.01 14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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