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급 파일럿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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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DUMMY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유나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의아함에서 거수에 대한 분노로 번져간 것이다.


“적은 거수입니다. 파괴와 살육만을 목적으로 삼는 괴물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어떻게 존중하면서 싸우는 겁니까···?”

“인격적인 존중을 하라는 게 아니야. 적으로서 존중을 하라는 거지.”

“······예?”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굳이 납득을 시킬 생각도 없었다.

이미 유화는 이유나가 그런 반응을 보이리란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 질문을 한 건 이유나가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이전에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처럼, 유화가 그녀의 입장이었으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을지 그대로 말해주었을 뿐이다.


“그거 말고는 딱히 내가 해줄 말이 없네.”


유화에게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은 열 명도 넘었고, 그 중 딱 한 명만 그의 말을 이해했다.

흰소리로 치부하며 무시할지, 자기 것으로 만들어 받아들일지는 그녀에게 달린 문제다.


“···죄송합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감정이 조금 가라앉은 것인지 이유나가 표정을 원래대로 되돌리며 사과의 말을 전해왔다.


“괜찮아. 이해해.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 미친 소리처럼 들릴 거라고.”

“아닙, 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았습니다.”


모든 파일럿들은 거수에 대한 분노를 마음 속 깊은 곳에 품고 있다.

전쟁 초창기 국군이 우주군 사관학교 생도와 테스트 파일럿들을 징집할 때 이런 ‘분노’ 또한 징집의 조건 중 하나로 보았을 정도로.

언제 끝나는지 기약도 없는 전쟁. 다음엔 언제, 얼마나 더 강해져서 나타날지 모르는 적. 그 적과 홀로 맞서싸워야 하는 입장이 되면 웬만한 정신으로는 버티지 못하니까.


“존중, 해보도록 노력하···.”


그 순간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이유나의 말을 잘랐다.

정비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들은 제각기 홀로폰이나 사방을 두리번 거리면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코드 레드!”

“현 시간부로 코드 레드 발령! 움직여!”


이윽고 사방에서 코드 레드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홀로폰을 꺼낸 이유나 역시 상황 파악을 끝마쳤는지 인상을 찌푸리고는 유화를 향해 말했다.


“코드 레드입니다. 기지 관할권 내에 거수가 출현했다는 뜻입니다. 대피하십시오.”

“······.”

“김기태 소령께서 안내를 해드릴 겁니다. 저는 이만.”


예의를 갖춰서 말한 뒤 이유나는 몸을 돌려서 격납고의 한가운데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둘을 따라오고 있었던 김기태가 유화의 곁으로 다가왔다.


“선배님,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뇨. 잠시만요.”

“···예?”

“보고 싶은 게 있어서.”


눈에 띄는 흰 머리칼. 유화는 그 머리카락을 눈으로 좇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돈되지 못하고 혼잡해진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이유나가 깊이 심호흡하고는 외쳤다.


“전원 주목!”


마나가 터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천연 각성자. 태어날 때부터 몸에 마나를 품고 살아온 그녀는 목소리에 마나를 섞어 전달할 수 있었다.


“현재 강릉 기지 관할권에 거수가 출현했다! 사할린스크에서 놓친 놈이거나, 거기서 분열된 놈으로 추정된다. 확실한 건 여기서 15km 떨어진 지점에 있다는 것이다. 고작 5분 거리에 거수가 있다.”


메카의 정비를 이어나가던 병사들이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금 바로 출격한다! 전원 작업 마무리하고 철수하도록! 8중대장!”

“예!”

“파손된 오른팔의 수복 작업은 어디까지 진행됐지?”

“출격 전까지 마무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럼 8중대도 철수해.”

“예!”


이유나의 몇 마디 말에 빠르게 상황이 정리되었다.

그것이 파일럿의 존재감이었다.

아무리 기지의 규모가 커지고 사람이 많아진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것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 메카와 그것을 조종할 수 있는 파일럿이다.


그 사실을 재차 눈으로 확인한 유화가 중얼거렸다.


“예전 같지 않기는 무슨···.”

“예?”

“아, 혼잣말이에요.”


현역 복귀를 부탁하며 우주군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느니 요즘은 이빨이 많이 빠졌다느니 우는 소리를 했던 강재구의 말이 떠올랐다.

우주군의 위상은 곧 파일럿의 위상으로 직결된다. 나름 후방으로 분류되는 기지에서 이 정도라면 전방은 물론이고 우주군 전체의 위상은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남은 이유는 하나 밖에 없는데···.’


군의 위상과 함께 말한 또 다른 이유.


‘메카는 업그레이드 되는데 생환율은 줄어들고 있다···.’


“부관님.”

“예, 선배님!”

“전투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장소가 있을까요?”


묵직한 엔진 소리를 내며 가동되기 시작한 제니스 블레이드로부터 등을 돌린 유화의 물음에 김기태 소령이 대답했다.


“예. 지휘통제실로 모시겠습니다.”




#




“야 너 왜 아직 안갔냐?”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니까.”


김기태의 안내에 따라 지휘통제실에 들어가자 사복 차림의 강재구가 날선 목소리로 유화를 맞이했다.

정황상 퇴근 직전 사이렌이 울려 그 차림 그대로 돌아온 듯했다.


“하긴, 그래. 괜히 밖으로 대피하는 것보다 여기가 더 안전하긴 하지. 구경이나 하고 있어.”


강재구가 턱짓으로 구석 자리를 가리켰다.

유화는 군말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폈다.


“여기는 대한민국 CDA 동해 전투 단장 강재구 소장이다. 사할린, 하코다테. 응답 바란다.”

“사할린 기지 사령관 보리스 준장입니다.”

“하코다테 기지 사령관 야마시타 소장입니다.”

“사할린과 하코다테에서 놓친 거수가 있었나?”

“아닙니다. 저희는 확실히 요격을 끝마쳤고 근해를 이 잡듯이 뒤져 생명 징후가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씨발 저건 뭐야!!”


강재구의 사자후가 지휘통제실과 통신기 너머 두 기지의 사령실을 뒤흔들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퇴근을 준비하다가 지휘통제실에 들어와 상황에 대응하던 장교들이 한순간 얼어붙었다.

상황과 연관이 없는 유화만 여유롭게 지휘통제실 한구석에서 믹스 커피를 만들어 타먹고 있었다.


“확실히 요격을 끝마쳐? 지랄하네! 그러면 어떻게 카파급 세 마리가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보고에 누락 된 내용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말해!”

“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부, 분열하는 거수 같습니다···!”

“분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분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게···어, 어.”

“씨발! 보리스 똑바로 대답 안 해?!”

“음, 맛있다.”


잘하네.

구석에서 믹스커피를 홀짝이던 유화는 강재구가 욕을 섞어가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주억였다.


본래 강재구는 아무리 화가 나도 소리를 지르는 타입이 아니었다. 오히려 말이 없어지고 표정도 평온해진다. 겉보기에는 화가 났는지 모를 정도로.

두꺼비라는 콜사인도 이런 특징 때문에 생도 시절 별명이 두꺼비였던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다만 장성이자 지휘관으로서는 적당히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오히려 나을 터. 저건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

강재구의 그런 계산이 먹혀들었는지 허둥대던 러시아인 지휘관이 정신을 차렸다.


“파, 파일을 전송했습니다. 저희가 전투 중에 촬영한 것입니다.”

“설명해.”

“이번에 저희가 요격한 거수는 총 세 개의 개체였습니다. 이 중 아예 관련이 없는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흡사한 형태였습니다. 둘 다 저희 생태계의 갑각류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다만 하나는 닭새우를 닮았고 하나는 가재를 닮았습니다. 집게가 있고 없고의 차이로 구분하면 쉽습니다. 그, 저희가 처음 요격한 개체는 닭새우처럼 생긴 개체였습니다.”

“다음.”

“해당 개체는 저희 기지의 크라스니 프리자크(Красный Призрак)가 요격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 무장인 검으로 몸통을 두 개로 베었고 상반신과 하반신이 둘 다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는데···.”


러시아 지휘관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하면서 자료를 넘겼다.

그가 말한 가재를 닮은 거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하반신이 방금 설명드린 닭새우처럼 생긴 개체에게서 베어낸 몸통과 상당 부분 일치합니다. 가재처럼 생긴 개체는 닭새우를 요격하고 이틀 뒤에 나타났는데, 아마 해당 개체는 재생 능력을 가진 게 아닌지···.”

“······.”

“강 제독님?”

“···다른 건?”

“예?”

“가재를 닮은 개체도 토벌했다고 했잖나.”


강재구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유화가 아는, 진심으로 분노한 강재구였다.


“음.”


믹스 커피를 홀짝이던 유화는 컵이 다 빈 것을 확인하고는 입맛을 다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개체를 토벌할 때도 냉병기를 사용했으면 놈의 사체가 토막 났을 거 아닌가. 거수에게서 베어낸 몸뚱이가 재생해 다른 거수가 됐으면 재생된 개체도 재생 능력을 갖추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옳지 않나? 그 놈은 몇 토막 났나.”

“···그게, 여섯 개 이상이었습니다.”

“참모장, 지금 동해안에서 감지된 거수가 세 개라고? 그런데 여기랑 울릉도랑 오사카로 오고 있다?”

“아직은 그렇습니다. 추가적인 정황은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해군에 연락해. 함대 출격시키고 전군에 비상 걸라고. 작전 참모, 울릉도 기지는 절대 수심 깊은 곳으로 나가지 말고 섬을 사수하는데 집중하라고 전달하고 후쿠오카 쪽에도 지원 요청해. 부관, 내 전투복 가져오고 천유화 넌···.”


감정을 다스리며 천유화가 앉아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린 강재구가 한순간 멈칫했다.


“이 새낀 또 어디 갔어.”


강재구의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




“이건 누구지?”


손목에 찬 홀로폰에서 반투명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해가 조금씩 저물어가는 시간이라서 그런지 홀로그램이 한층 더 선명하게 보였다.

미상의 수신인에게서 걸려오는 전화. 유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선생님?

“···제가 번호 알려드렸었나요?”

-박성호 귀환자님께 여쭤봐서 알았어요.


귀환자 관리 본부에서 일하는 자신의 담당자, 서예나였다.


-선생님, 어디 계세요?

“······.”

-강릉 가신다고 하시고 나가셨잖아요. 오늘. 그 친구분이 초대해주셨다고 해서.

“네.”

-지금 뉴스에서 강릉에 대피령 내려졌다고 기사 떴어요.


작은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선생님, 아직 거기 계세요?

“네.”

-아직도 강릉에 계시냐고 물어본 거예요. 전화 끊겼는지 확인하는 게 아니라.

“···네.”

-대피, 안하셨어요?

“······네.”

-아···.


홀로그램 너머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설마 다치신 건 아니죠?

“네. 멀쩡해요. 박성호 그 친구한테 물어보면 알 겁니다. 제가 어디 가서 다치고 다닐 만큼 몸이 허약하진 않···.”

-다칠 수도 있는 행동을 하려는 건, 아니죠?


홀로그램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유화가 쓴웃음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 하지마요. 탑에서도 위험한 일 하셨다면서 왜 또···!

“후배가 위험해서요. 친한 후배는 아니긴 한데···그렇다고 제가 손 놓고 구경만 하는 성격은 못돼서.”


거대한 메카에 탑승해 있고 인공지능과 함께 싸운다고는 하나 파일럿은 본질적으로 혼자 전장에 나섰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은 수없이 많았다. 유화가 현역일 때는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유화는 상황을 바꿀 만한 힘이 있었다.


“후우···.”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혔다.

유화의 시선이 부서진 도시를 향했다. 웬만한 빌딩만 한 크기의 대검으로 땅을 짚은 채 위태롭게 서 있는 메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미안합니다. 예나 씨.”

-선생님? 아···!


유화는 홀로폰의 버튼을 눌러 전화를 끊었다.

그는 부서진 건물에서 나온 얇고 긴 철근 하나를 집어 손에 들었다.


그오오오오!


건물을 두부처럼 뭉개버리면서 메카를 향해 달려드는 지네처럼 생긴 거수.

그 거수를 바라보며, 유화는 철근을 쥔 손을 어깨 위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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