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로 대마법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제영운
작품등록일 :
2024.07.31 09:39
최근연재일 :
2024.09.18 17:30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1,076,402
추천수 :
24,102
글자수 :
297,669

작성
24.08.01 12:00
조회
41,402
추천
607
글자
12쪽

2화

DUMMY

영민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들 살려달라고?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어. ······응, 내가 그럴 수만 있다면 살려주고 싶지.’

꿈을 꾼 지 7일째.

열흘? 보름쯤인가?

마법사는 그동안 물 한모금 마시지 않는 것 같다.

바로 뒤에 작은 물웅덩이가 있던데 본체만체다.

영민은 화가 났다.

‘알지, 알아. 목구멍에 물이 넘어가겠어? 그런데 당신, 잘못 생각하는 거야. 아들이 좋아하겠어? 사는 데까지는 살아야지. 할만큼은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손을 놓든가!’

자신은 그런 충고를 할 자격이 있다.

정말 할 만큼 다 해보고, 온갖 노력도 하고.

그래도 안 되니까 투석을 포기한 거다.

마지막은 맘 좀 편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죽으려고.


* * *


영민은 납골당 건물 앞에 섰다.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 마법사잖아.’

당연히 똑똑하겠지.

마법.

게임처럼 몬스터 몇 마리 잡고 레벨 올려서 마우스 딸각이면 실력이 오를 리가.

그쪽 세계는 엄연한 현실.

어떤 환경인지 몰라도 마법이라니? 현실에서 마법 습득이 쉬울 리 없다.

뛰어난 재능에 각고의 노력이 보태어졌겠지.

영민은 노력만으로는 재능을 넘을 수 없다는 걸 안다.

왜?

재능있는 사람도 함께 노력하는 세상이니까.

심장이 녹아내릴 듯한 마법사의 간절한 눈동자.

그 눈빛만 봐도 그는 발악에 가까운 무엇을 하는 중이다.

오직 아들을 위해서.

‘그래. 뭔들 못해? 혹시 모종의 음모가 깔렸다고 한들?’

마법사가 속일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설령 나를 이용한대도 원망하는 마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를 선택했을까? 비슷해서?’

저 마법사의 신비한 마법이 우리의 어떤 공통점을 발견하고 서로 연결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마법사와 내가 만나지 않았을까?

그런데 대화는 마법으로 어떻게 안 돼?

무슨 언어 통역 마법 같은 건 없나 봐. 아니면 멀어서 안 되거나.

‘내가 필요하니 찾아오는 건데 말이 안 통하니.’

도와줄 의향? 있다. 있고말고.

젊었을 적에는 봉사도 열심히 다녔는데 결혼한 뒤부터는 이타심이 사라졌다.

내 것.

내 사람.

나를 도와준 사람, 내게 보탬이 되는 사람.

이런 경우에만 지갑이 열리고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바뀐 가치관이 썩 마음에 든다.

바꿀 생각? 전혀 없다.

내가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편하고 좋은 걸 왜?

진작 그렇게 살았으면 이 꼴도 안 났어.

그런데 마법사에게만큼은 돕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마법사 아들내미 진짜 잘생겼던데. 기럭지도 장난 없고. 앞날이 아까워. 정말 너무 아깝잖아. 차라리 수작이라도 부려봐. 까짓거 죽기 전에 좋은 일 한번 하지 뭐.’


영민은 생각을 털어버렸다.

그리고 잠시 우두커니 서 있다가 납골당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마침 천수가 입구 옆 계단에서 내려왔다.

시원한 실내만큼이나 반가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형! 오셨어요.”

“응.”

“날 더워서 걱정했는데 신수 훤하시네요. 다행이에요.”

“그래? 고마워.”


그러고 보니 한 일주일 혈색이 참 좋다.

몸속은 썩어 문드러졌는데 겉은 멀쩡하다니.

‘마법사가 힘을 썼나? 어디 구석에 박혔는지도 모르는 먼 곳에서? 마법이 그 정도로 만능이라고? 설마.’


영민은 천수와 함께 아들을 향해 걸어갔다.

다 아는 길이지만 천수가 있어서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운 것도 같다.

‘다 된 거야. 죽기 전에는 갑자기 힘이 난다잖아. 그거 아니면 뭐 있겠어? 큭큭······.’

천수는 영민의 웃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요즘 좋은 일 있어요?”

“있지.”

“뭔데요.”

“있다가 말해줄게.”


영민과 천수는 나란히 어느 한 곳에 섰다.

영민의 아들 앞이었다.

유골을 모신 우윳빛 항아리는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고, 그 주위로 어여쁜 꽃들이 빈 곳을 꽉 채웠다.

영민은 천수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다정하게 말했다.

“고마워. 신경 많이 썼네.”

“뭘요.”

영민은 아들의 유골함이 있는 옆 칸을 가리켰다.

비어있는 그곳은 자신의 자리였다.

“나 안개꽃 좋아한다.”

“으이그. 또 시작이네요.”


두 사람은 게임으로 인연을 맺었다.

젊었을 적에 RPG 즉 롤플레잉 게임에서 만난 사이.

한 1년 게임 속에서 붙어 다니다가 현실에서 만나 형, 동생이 되었고, 그 뒤로도 6년을 함께하며 게임을 즐겼다.

영민은 결혼하고 아들을 낳으며 게임을 중단했지만, 천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다음 달에 현실 가상게임 출시한다고 시끄럽던데 얘는 아직도 20년도 넘은 게임만 하고. 참 한결같다니까. 그래서 내가 더 좋아하지만.’


언젠가부터 친구도 뭣도 다 끊었지만, 천수만은 남겨 두었다.

천수는 이 납골당의 직원이고, 아들은 여기에 있으니까.

그거 아니라도 천수는 의리가 깊은 사람이어서 남겼을 거다.

너무 정이 들어서 도저히 끊어낼 수 없기도 하고.

끊고 싶지도 않았다.


‘곰탱이 박천수. 박봉에 시달리고 고물차 끌지만 뭐 어때? 듬직하고 우직하고 진국이지.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지만 얘는 믿어도 돼.’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남에게 손 안 벌리고 밥 안 굶고 살면 된 거지.

차 없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굴러가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

게다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도 계속하잖아.

작년에 참한 라오스 아가씨와 만나서 결혼하고 예쁜 딸까지 얻었다.

‘난 뭘 좋아하더라? 생각이 안 나네.’

영민은 천수가 무척 부러웠다.


“형, 여기요.”

“그래.”

영민은 건네받은 흰 장갑을 끼고 유골이 모셔진 작은 창을 열었다.

닦을 것도 없지만 흰 수건으로 정성스럽게 유골함을 닦았다.

‘아들. 너무 일찍 하늘에 가서 억울하지? 인생이 원래 그래. 너무 슬퍼하지는 마.’

영민은 살며시 창을 닫았다.

‘죽을힘을 다해 투석하고 관리해도 최대 6개월 본다. 6개월 넘기면 그 후로는 남의 손 빌려서 반식물인간으로 살다가 1년쯤 뒤에 가는 거야.’

영민이 장갑을 벗으며 희게 웃었다.

‘안과 의사 말 들었지? 당뇨망막병증 초기래. 아들 보고 싶어서 그런가 봐. 나, 이래도 투석 받아야 할까?’


그는 여전히 결정하지 못했다.

아들이 가고 나서.

내가 나를 놓으면 아들이 슬퍼할까 봐 노력했다.

나를 보고 슬퍼할까 봐.

그 마음은 아직도 여전하지만 6개월도 안 남았는데.

자신보다 중한 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난 정말 지쳤다.


‘아들, 나는······. 아니야, 더 생각해 볼게.’

영민은 한참 묵념하고 자리를 벗어났고, 천수는 납골당 입구까지 땡볕 속을 함께 걸어서 그를 배웅했다.

“더운 데 그냥 있지. 안 그래도 되는데.”

“고마워서 그러죠.”

“응? 뭐가?”

“결혼 부조금요. 주셔도 너무 주셨어요.”

“야. 언제 적 얘기를 하냐. 뭐야? 그럼 적게 냈으면 나 미워했겠네?”

“아, 뭔 소리예요.”

“그러니까.”

“딸 돌잔치 때도······.”

영민은 천수의 등을 팍 때렸다.

“고맙기는 내가 고맙지. 내가 너 있어서 얼마나 안심인지 몰라. 나 죽고 돈 남으면 다 너 줄 거야.”

“별소릴 다하네요.”

“아, 몰라. 내 아들 잘 봐달라고.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해. 다 줄 만하니까 주는 거야. 그건 신경 쓰지 말고 저녁에 시간 있어?”

“뭘 또 물어요. 당연히 있어야죠.”

“그래.”


한 달에 한 번.

시간 없다고 하면 난리가 난다.

영민은 아들을 방문하면 반드시 식사와 술을 사주니까.

천수는 영민이 그럴 때마다 부담스럽고 한편으로는 가슴 아팠다.

딸을 얻고 보니 알겠다.

겉으로 내색은 안 해도 속은 엉망진창이겠지.


‘이 형은 정말 잘살아야 하는데······.’

좋은 형.

진짜 좋은 형.

영민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이미 친형이었다.

어릴 적부터 양아치, 건달, 깡패와 어울려 다니고 경찰서도 들락거리고.

그러다가 영민을 만나면서 바뀌었다.

어어 하다가 돌아보니 그 생활을 청산해 있더라.

보육원 친구들에게도, 아니 그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얘기들까지 다 하고.

영민은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힘들 때마다 술이며 밥이며 배가 터지도록 포식하게 해줬고.

일자리도 부지런히 물어다 줬었지.

지금 이 직장도 영민이 서울에 먼저 자리를 잡은 뒤 힘써서 소개해 준 것이었다.

영민은 월급 적다고 투덜거리지만 누가 소개해 줬는데 그럴 리가.

평균 월급은 충분히 된다.

덕분에 자리를 잡았다.

쾌적한 환경.

칼같이 지켜지는 출퇴근 시간. 쉬운 업무.

장소가 장소인 만큼 손님들도 점잖고 친절해서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절대 못 들어올 자리.

진작에 평생직장으로 삼았다.


천수는 실실 웃으면서 영민의 팔짱을 꼈다.

“흐흐. 형.”

영민은 질색하며 천수를 밀쳤다.

“덥다. 좀.”

“소고기 먹고 싶어요.”

“오. 네가 웬일? 콜. 저녁 7시. 한 시간 전에 전화할게. 술도 한잔하자.”

천수는 빙긋 웃었다.

“밥만 먹자고요. 나머지 시간에는 게임 해야죠.”

“안 잊어먹었네?”

“하하. 형 15년 만에 복귀하는데 어떻게 잊어먹어요? 15년 넘나요?”

“몰라. 그런데 게임은 내일 하자. 계정 만들고 이것저것 찾아보고 그러면 시간 다 가. 같이 할 시간도 없을걸?”

“오늘 토요일인데요? 저 곧 퇴근하잖아요. 시간 실컷 되죠.”

“오늘은 약속 있어. 그냥 저녁에 봐.”

“아! 아까 좋은 일 있다고 하셨잖아요.”

“어.”

“좋은 일이 뭔데요?”

영민이 저만치에서 다가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있어.”

“아, 뭐냐고요.”

영민은 택시에 탄 후 차 문을 탁 닫고 창문을 내렸다.

“오늘 이혼해.”

“예?”

“기사님, 가정법원요.”

“자, 잠깐만요!”

“기사님, 출발해주세요. 시간이 좀 촉박해요.”


* * *


이혼 재판은 금방 끝났다.

아들의 장례를 완전히 치른 후 바로 이혼 소송을 걸었으니까 거의 1년을 끌었다.

영민은 이제는 과거에 아내인 차미희와 갈라서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2, 3년을 더 끌었을지도 모르는 일.

미희는 재산분할에서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발악했고, 영민은 주지 않으려고 더욱 발악했다.

치열한 싸움 끝에 영민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변호사 비용을 상당히 썼지만 미희에게는 돈 천만 원으로 끝냈으니까.

영민이 원한 결과.

거기에 쓴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영민과 미희는 약간 떨어져서 법원 계단을 내려왔고, 사람들은 두 사람의 발걸음만 보고 상황을 짐작했다.

남자의 얼굴과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는데 여자는 정확하게 그 반대.

절박함의 차이랄까.

미희의 욕심은 혀를 내두를 정도라 무섭게 달렸지만, 영민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었다.

유명 로펌 변호사를 3명이나 써서 기간을 단축한 것이다.

미희가 결혼 기간에 이 남자, 저 남자와 놀아난 것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있었다.


법원 계단을 다 내려선 두 사람.

미희가 날카롭게 말했다.

“좋니? 좋아? 내가 다 달랬어? 아니면 반이라도 달랬어? 달랑 3억이야. 그것만 주면 떨어져 준댔잖아.”

영민은 실소했다.

“너한테는 3백 원도 아까워.”

“뭐?”

“3억이 뉘 집 개 이름이야?”

“살아준 게 얼만데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냐? 내가 받을 위자료 변호사 입에 처넣어 가면서 1년이나 날 괴롭혀? 대가리 어떻게 된 거 아냐?”

“말하는 본새 봐라. 지금까지 본색 감추느라 애썼네.”

“니 잘못이야. 니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아니. 네가 원래 그런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패시브로 대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 17:30 +1 24.08.26 16,953 0 -
53 53화 NEW +8 18시간 전 5,979 220 13쪽
52 52화 +17 24.09.17 9,388 277 13쪽
51 51화 +17 24.09.16 10,724 336 12쪽
50 50화 +17 24.09.15 11,842 309 12쪽
49 49화 +25 24.09.14 12,706 335 13쪽
48 48화 +63 24.09.13 13,735 348 19쪽
47 47화 +11 24.09.12 14,181 382 12쪽
46 46화 +15 24.09.11 14,634 441 12쪽
45 45화 +15 24.09.10 15,404 412 13쪽
44 44화 +14 24.09.09 16,324 413 12쪽
43 43화 +9 24.09.08 16,796 470 18쪽
42 42화 +15 24.09.07 16,925 432 13쪽
41 41화 +23 24.09.06 16,954 410 12쪽
40 40화 +11 24.09.05 17,461 436 13쪽
39 39화 +21 24.09.04 17,881 480 13쪽
38 38화 +13 24.09.03 18,144 479 13쪽
37 37화 +15 24.09.02 17,796 462 14쪽
36 36화 +16 24.09.01 17,941 423 13쪽
35 35화 +5 24.08.31 18,387 424 13쪽
34 34화 +13 24.08.30 18,522 414 12쪽
33 33화 +10 24.08.29 18,511 410 12쪽
32 32화 +12 24.08.28 18,447 430 12쪽
31 31화 +9 24.08.27 18,521 418 12쪽
30 30화 +11 24.08.26 18,539 449 12쪽
29 29화 +4 24.08.25 18,513 414 12쪽
28 28화 +6 24.08.25 18,751 453 12쪽
27 27화 +12 24.08.24 19,065 450 12쪽
26 26화 +9 24.08.23 18,927 476 12쪽
25 25화 +8 24.08.22 19,167 459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