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부터 시작하는 천재 작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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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크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02 17:13
최근연재일 :
2024.08.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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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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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 진상혁

DUMMY


오영희.


졸업 직후, 졸업 작품으로 바로 등단.


대한민국이 낳은 천재 작가라는 소리를 들으며 서른에 낸 ‘밥맛’이란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인 한국 문학계에 염증을 느껴 교육계로 이직.


글은 거의 절필하다시피 한 오영희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맛으로, 나름 즐겁게 살고 있었다.


‘요즘 애들이란 참.’


오영희는 학생들이 사라진 텅 빈 강의실을 보며 웃었다.


‘10년 전에도, 100년 전에도, 요즘 애들은, 요즘 애들인 모양이지.’


까무잡잡한 신입생 진상혁이 바보처럼 한국대의 유명인사 홍채연을 바라보던 장면은 참으로 웃겼다.


‘사랑에 빠진 애들이 그렇지.’


첫눈에 반한다.


그 말을 오영희는 믿지 않았지만, 왠지 진상혁과 홍채연은 그런 모양이었다. 홍채연 역시 그런 눈이었고, 진상혁 역시 그런 눈이었다.


‘어디 한번 사랑에 빠진 학생의 글을 볼까?’


그래서 오영희는 진상혁의 글이 흔한 사랑 글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기대감으로 펼친 진상혁의 글은 오영희의 예상과 달랐다.


[시궁창]


원고엔 생각지도 못한 제목이 쓰여 있었다.


‘······?’


그뿐만이던가? 제목부터 다르다 싶었더니, 첫 문장 또한 다른 학생들과 달랐다.


[어머니는 먹다 만 설렁탕을 아까워해서, 물을 부어 끓였다. 그럼 두 그릇이 된다며 낄낄거렸다.]


진상혁의 글은 흔한 어린 학생들이 으레 그렇듯, 비유와 묘사가 집어넣어 진 현학적이고 이해가 안 되는 글이 아니었다.


그저 어미와 아들의 실랑이가 적힌 짧은 글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그 짓거리가 시궁창에 물을 붓는 짓과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치, 직접 겪은 듯 간결하게 적힌 글이었다.


사락-


오영희의 손에 원고가 넘어갔다.


삐뚤빼뚤.


글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는 듯한 거친 악필로 쓰인 새빨간 원고.


분명,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문장.


오탈자는 기본. 이게 소설인지, 산문인지 모를 정도로 엉망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원고에 써진 글자 하나하나가 오영희의 눈에 콕콕 박히기 시작했다.


‘··· 스토리가 좋아서 읽히는 건가?’


그래서 오영희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왜지?’


이유를 찾기도 전이었다. 몰입감이 좋은 짧은 원고는 오영희의 손에서 순식간에 끝이 났다.


[시궁창]

[진상혁]


추운 겨울날, 아궁이에 뗀 불 같은 글을 손에서 놓지 못하던 오영희는 결국 휴대폰을 들었다.


“안 조교.”

[예, 교수님.]


이유 모를 끌림을 멍하니 곱씹던 오영희의 입이 결국 열렸다.


“학생 하나 좀, 불러줘.”


그러나 불행하게도, 진상혁은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한 번만, 한 번만 일할 기회를 주시면···!!”


전 재산 80만 원에, 아득바득 턱걸이로 학교에 들어가 받을 수 있던 장학금도 없었던 머저리 진상혁은 지금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애송이, 지랄 말고 어서 공부나 하러 가!”

“공부할 돈이 없습니다. 형님!”


어쩌면 희대의 천재일지 모르는 진상혁은 인력 사무소의 팀장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일자리를 달라고.



***



노가다 아재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호탕한 타입과 예민한 타입. 어쨌든 둘 다 밑천이 없기에 싸움이 나면 극한으로 치닫는다는 특징이 있었다.


한때 나 또한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주 잘 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형님!


그래서 최대한 납작 엎드려 일을 달라 했다.


아재들에게 잘 보이는 방법은 일을 잘하는 거, 단 하나뿐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아재들에게 변명은 최악이다.


그냥 결과를 보여줘야 했다.


“뭐야. 저 애송이 꽤 하네?”

“그래, 미장일 달라고 할 땐 미친놈인 줄 알았어.”

“형님은 어떻게 저런 놈을 알았어?”

“찡찡거리지도 않아. 묵묵하네.”


젊은 놈이 귀해진 미래와 달리, 이곳에선 젊은 놈은 골칫덩어리 그 자체였다. 돈만 보고 들어왔다가 사고 치는 놈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보니까 덩치도 제법 크네.”

“쓸 만하겠는데?”

“그러니까, 저놈 다치게 하지 말고 일들 해! 저놈 없어지면 이번 일 큰일 나!”


그래서 나는 일을 구하기 위해 과거, 나를 그나마 챙겨주던 인력 사무소의 팀장 전응석을 찾았다.


군인 출신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닌지, 젊은 시절의 전응석은 내가 알던 시절보다 덩치가 컸다.


눈가에 흉터가 남아 흉악해 보이는 얼굴도 그대로였다.


-야, 진상혁이! 너 정도면 아직 괜찮아!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냐. 술 좀 그만 먹고. 더 이러면 내일 일 내가 못 줘···!!


하지만 군인 출신인 것과 별개로 그때도 마음이 약했던 전응석답게, 지금도 마음이 약했다.


애원하는 내 모습에 결국 일감을 주지 않았던가.


‘예전부터 팀 꾸려서 일했다는 소리 들어서 다행이지.’


마지막 포대를 옮기며 나는 할당된 일을 끝냈다. 그 모습에 전응석이 나를 불렀다.


“어이. 애송이, 일로 와봐.”

“예!”

“야, 군필답다? 빠릿빠릿해?”

“아이, 이 정도야 당연한 거죠.”

“자, 받아라. 오늘 일당. 생각보다 잘해서 주는 거야. 이 새끼, 해봤다는 말 거짓이 아닌가 봐?”

“······?”


전응석이 건넨 종이봉투는 꽤 묵직했다. 초록색 돈의 개수를 세던 나는 깨달았다.


“···근데 이거, 생각보다 많이 주신 거 아닙니까? 이렇게까지···.”


당황한 내가 입을 열자, 담배를 꺼내 문 전응석이 말했다.


“야, 너 아니었으면 한 명 더 고용했을 일이야. 난 또 왠 새파란 애새끼가 와서 일 달라고 하길래 골칫덩어리가 기어들어왔나 했더니···.”


담배 연기를 내뿜던 전응석이 내 이름을 불렀다.


“상혁아.”

“······?”


전응석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편이었다. 사람 쉽게 떠나고, 쉽게 오는 노가다 판이라 오래 본 사람이 아니면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었다.


“다음에 또 불러도 되냐?”


그리고 전응석이 이름을 부른다는 건 마음을 열었다는 신호였다.


‘뭐지? 이 형이 이렇게 쉽게···?’


내가 당황한 얼굴로 서 있자, 전응석이 물었다.


“뭐야? 싫어?”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학교 다닌다 그랬지? 최대한 피해서 연락할게.”

“감사합니다!”

“그동안 몸 관리 잘하고, 얼른 옷 입고 가라.”


나를 보면 한숨만 폭폭 내쉬던 과거의 전응석과 달랐다.


예전엔 친해지는데만 3년이 걸렸다.


먼지와 시멘트 가루가 낀 작업복을 캐비닛에 넣으며 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일단 돈이 급하다 보니, 무작정 온 건데···.’


하지만 거울 속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아.’


탈의실 속 거울에 비친 모습은 술과 담배에 찌들었던 전생의 얼굴과는 달랐다.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는 젊은 놈의 모습이었다.


전응석도 그랬다.


‘형도 젊었지.’


나이가 뭔지.


젊음. 그거 하나 때문에 더 사람을 쉽게 믿는 거구나.


괜스레 헛웃음이 나오는 깨달음이었다.


나는 캐비닛에서 옷을 갈아입고 소지품을 챙겼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연락을 확인했다.


과거 일감을 기다리던 습관 탓이었다.


“······?”


그런데 중고로 산 휴대폰에 남겨진 낯선 연락이 있었다.


주말에 집에 내려와 일하라는 어머니의 문자도 아니었다.


[상혁 학생. 안 조교입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연락이었다.


[오영희 교수님이 학교 끝나고 한번 보자고 하시는데, 시간 되는 날 있으실까요?]


과거엔 내 원고에 신랄한 비판을 했던 교수가, 지금은 나를 찾고 있었다.


‘왜지?’


영문을 모르는 나는 얼빠진 얼굴로 한참 동안이나 휴대폰을 응시했다.



.

.

.



“이것 참. 제가 교수인지, 상혁 학생이 교수인지 모르겠어요.”


오영희의 연구실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작문과 읽기를 가르치는 교수답지 않게, 오영희의 연구실은 텅 비어 있었다.


가득 쌓인 건 원고지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일단 내 잘못이 맞아 사과를 했다.


왜냐하면 나는 오영희와의 면담을 두 번이나 미뤘다.


‘··· 교수 면담보단, 돈이 먼저인 상황이라.’


지금 당장 언제 생활비가 없어질지 모르는 형편인데, 당장 달려가서 일을 해야지. 교수를 보러 갈 정신이 있겠는가.


안 그러면 학교고 뭐고 당장 길바닥에 나앉아야 할 판국인데 말이다.


“··· 돈이 급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머리를 긁적이던 나는 그냥 솔직하게 답했다.


“돈이 급해요?”


내가 끄덕이자 오영희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침묵하던 오영희는 본론을 꺼냈다.


“제가 진상혁 학생을 부른 이유를 알아요?”


오영희의 성격은 뻔했으니, 강의 퇴출이 아닐까 싶었다.


“제 잘못이니 받아들이겠습···.”


하지만 오영희의 대답은 달랐다.


전응석처럼 내 예상과 달랐다.


“저는 상혁 학생이 쓴 글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서 불렀어요.”

“······?”


오영희는 내가 휘갈겨 쓴 글을 서랍에서 꺼내며 물었다.


“글 배운 적 있어요? 진상혁 학생.”


어떻게 보면 수치스럽기도 한 글이었다.


치부를 드러낸 글이었다.


실제로 어머니와 싸웠던 기억에서 쓴 글이니까. 그래서 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 없,습니다.”


내 대답에 오영희가 나지막이 말했다.


“역시. 그럴 것 같았어요. 어설프거든요.”


오영희의 말이 이어졌다.


묘사라고는 없고, 은유보단 직설이 많죠. 주어와 목적어가 바뀐 것도 있고. 아, 하지만 이 점은 구어체 같아서 괜찮았어요.


길어서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어젯밤에 밤새 일한 탓일 수도 있었다. 뭐 어쨌든 결론은 그거 같았다.


‘또, 이전과 같나.’


과거에 오영희에게 혹평을 들었던 글에 대한 재능.


-글을 잘 쓴다는 소리를 들었나 보죠?

-근데 이건 글이 아니에요. 진상혁 학생.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겠답시고, 첫 단추 제대로 한번 끼워보겠답시고 다 내려놓은 것도 소용이 없나 싶었다.


‘그냥 노가다로 돈 모아서 주식에 꼬라박는 게 최선의···.’


한숨을 쉬며, 다시 한번 꿈을 포기하려던 때였다.


“근데, 재미있었어요.”

“······?”

“신기하더라고요. 글을 배운 적 없는 것 같은데, 대화와 짧은 묘사만으로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나갈까. 결국, 이 대화 상황 자체가 시궁창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래서 제목을 이렇게 썼나?”


문학적 구조나 기법 따위는 모르는 내게는 참 어려운 말이었다.


“······.”


그냥, 그 순간에 느꼈던 내 감정이 시궁창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진상혁 학생.”


오영희가 내가 쓴 ‘시궁창’의 원고를 건넸다. 얼마나 꼼꼼히 읽었는지, 새빨간 펜으로 적힌 짤막한 메모와 교정이 원고에 가득했다.


“학생들이 글을 쓰면서 흔하게 하는 실수가 뭔지 알아요?”

“...? 잘 모르겠습니다.”


망설이던 내 대답에 오영희가 웃었다.


“온갖 기교를 써서 자신의 경험을 포장하는 거예요. 솔직히 대다수의 학생들이 겪어봤자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하겠어요. 겪어본 거라곤 부모님에게 혼난 것, 친구들과 싸운 것, 시험 성적이 낮게 나온 것, 이 정도겠죠.”

“······.”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걸 희대의 역작처럼 포장해서 내요. 그럼 제가 뭐라고 대답할까요?”


오영희의 말에 나는 무심코 이 수업을 들으며 오영희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이건 글이, 아니다?”


어벙한 내 대답에 오영희가 웃었다.


“오, 맞아요. 그건 일기죠. 기교를 부린 일기. 그리고 기교는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거예요.”

“······.”

“그럼 쉽사리 따라 할 수 없는 재능은 뭘까요?”


말이 이어질수록 나는 오영희가 왜 이 말을 나에게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어졌다.


“··· 모르겠습니다.”

“알면서 그러시나.”


오영희는 손에 들린 원고를 툭툭 쳤다.


“이런 거예요.”


재능.


오영희는 내가 자존심을 내려놓고 드러냈던 나의 치부가 재능이라 말하고 있었다.


“모든 이들의 삶에 존재하는 날것을 쓰는 거죠.”


오영희는 한 번도 있어볼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그것이, 내게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묻고 싶어요.”


나는 원고를 받아 들며 깨달았다.


“내게 글을 배워볼 생각 없어요?”


쿵-


쿵-


오영희의 말에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었다.


“진상혁 학생.”


그리고 심장이 뛰는 건 스물다섯의 진상혁이 아니었다.


“재능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 속에 있는 마흔다섯의 진상혁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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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3. 진상 24.08.10 168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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