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부터 시작하는 천재 작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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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크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02 17:13
최근연재일 :
2024.08.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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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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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순수문학

DUMMY

덜컹-


그렇게 무사히 돌아가는 길이었다.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하숙집으로, 채연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 미치겠네.’


그런데 지하철은 평소와 달리 침묵만 가득할 뿐이었다.


평소라면 채연이가 요즘 읽었던 책에 대해 재잘재잘 이야기를 할 텐데.


-위인들을 재해석한 글이 요즘 인기래요. 그래서 저도 읽어봤는데···.


하지만 오늘은 조용했다.


지하철에 탄 다른 사람들까지 조용해서, 왠지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계속 뜨거워진 목을 쓸어내리기만 했다.


-··· 등단하겠습니다.


아니면, 그저 지하철에 달린 전등을 보며 눈을 깜빡거리거나.


오영환이 채연이를 지키기 위해 등단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나는 등단하겠다고 답했다.


사실상 채연이를 좋아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어떻게든, 채연이의 곁에 있겠다고 말한 건데···.’


침이 꼴깍 넘어갔다.


채연이도 그걸 아는 건지 말이 없었다. 옆에 앉아 있으나, 채연이가 이렇게 말이 없었던 적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애초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지레 김칫국을 들이마신다고 할까? 채연이도, 이런 나를 좋아할까? 작가가 된 나를···.


[다음은 성내, 성내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


“··· 가, 볼게요.”


침묵하던 채연이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말해야 한다는 건 아는데, 입으로 나오지가 않았다.


“예. 조심히···.”


플랫폼으로 내리던 채연이가 갑자기 고개를 휙하니 돌렸다. 그리고 다급히 물었다.


“잠깐만요.”


무더위가 남아 있는 늦여름이었다.


“상혁 씨.”

“······?”


하늘이 높아지고, 새파랗게 물들어가는 늦여름.


지상역의 창문이 보이는 그 앞에서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채연이가 나를 향해 물었다.


“혹시, 우리 무슨 사이인지 물어도 될까요?”


쿵-


그러자 심장이 뛰었다.


쿵- 쿵-


과거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돌아오지 않을, 회귀 전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 꿈을 이뤄주기 위해 노력한 여자였다.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버리고 나에게 왔던 여자였다.


[문이 닫힙니다. 문이···.]


그 여자에게 해준 게 무엇이었나.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언제나 후회로 가득 찼던 인생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생까지 후회할 순 없었다.


그래서, 그냥 몸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


턱-


나는 닫히는 문 사이를 빠져나와, 채연이의 앞에 섰다. 채연이가 나를 놀란 얼굴로 보고 있었다.


“··· 좋아합니다.”


어차피 해야 할 답은 하나뿐이었다.


“정말로 좋아합니다. 채연 씨.”


이번 생에서까지, 늦게 답할 순 없었다.



.

.

.



“좋나 봐요?”

“··· 예? 예?”

“얼굴이 아주 폈네. 입술은 왜 만져요?”


오영희가 턱을 괴며 내게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속일 필요 없어요. 채연이가 말하고 갔으니까. 교제 축하해요?”

“······.”


‘이 집안 사람들은 나를 괴롭히는 걸 좋아하나? 그리고 채연이는 왜, 그걸··· 아니, 이모니까 말할 수도 있지···.’


얼굴이 잔뜩 달아올랐다.


“그만하십시오.”


오영희가 시켰던 독후감 과제를 꺼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제발요.”

“후후. 좋을 때네요. 말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진정이 안 되고.”

“제발, 그만해 주십시오.”

“역시, 놀리는 맛이 있다니까.”


킬킬대며 웃던 오영희가 내가 건넨 과제를 받으며 물었다.


“아버지는 뭐래요?”

“··· 그, 후우. 문하생이 될 생각이 없냐고 제안하셨습니다.”


과제를 넘기던 오영희가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문하생이요?”

“예.”

“근데, 그걸 받지 않았어요?”


그리고 진심으로 놀란 얼굴로 내게 물었다.


“예. 거절했습니다.”

“··· 왜요? 아버지 밑에 있으면 이름뿐이라도 도움이 되긴 할 텐데.”

“··· 세상에 지름길은 없다고 생각해서 거절했습니다.”

“허참···. 몇 살이라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내 대답에 오영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아버지가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요? 아버지가 채연이를 많이 아끼시거든요.”


나는 오영희의 질문에, 장장 30여 분 동안 화를 내던 오영환을 떠올렸다.


‘··· 정말 아끼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


나는 오영환의 요구 사항을 말했다.


“··· 등단을 요구하셨습니다.”

“하긴, 채연이까지 걸렸으니까 작가의 재능을 포기시키긴 아깝고, 안정적일 수 있는 걸 굳이 찾자면···, 등단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네요.”


오영희가 씩 웃었다.


“정식 작가라는 명함, 상견례할 때 편하잖아요?”

“··· 제발, 그만 놀리십시오.”

“놀리는 게 아니라 사실인데 뭐 그래요.”


과제를 내려놓은 오영희가 덧붙였다.


“그리고 틀린 말은 아니에요. 이제 슬슬, 등단을 해야 할 시기긴 해요. 결정하지 않으면 포지션이 애매해질 테니까요.”

“··· 대중문학 작가인지, 순수문학 작가인지, 말씀이십니까.”

“아버지가 그것까지 말했나 보군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영희가 한숨을 쉬었다.


“사실 전 무슨 큰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대중문학 작가로 알려진 일본의 유명 작가도 순수문학상을 받으며 순수문학 작가로 등단했는데 말이에요.”


어깨를 으쓱이는 오영희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순수문학을 쓰면, 신춘문예 입선 가능성이 높아집니까?”

“그렇죠. 거의 모든 신문사의 신춘문예가 순수문학을 선호해요. 순수문학을 쓸 줄 알면, 다른 모든 글을 쓸 수 있다는 말과도 같거든요.”


아마도 오영희의 말로 추측건대 순수문학은 가장 기본적인 골조의 글인 듯했다.


“그럼, 순수문학을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마흔다섯.


그 나이를 먹고 알게 된 건, 세상에 자존심 부려보아야 쉽게 풀리는 일은 없다는 거다.


상대방이 원하는 걸 일단 주면서 상황을 만들어야, 원하는 대로 세상이 흘러가는 법이었다.


“그걸 원한다면 해주면 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내 말에 오영희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물론, 자신은 없었다.


“오영환 선생님께서 저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 기존의 문학계 인사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방법은 그것뿐이다.


“그래서 이번엔 순수문학을 쓰고 싶습니다.”


어차피, 결국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참여문학의 경계가 흐려지는 날이 온다. 그냥, 문학이 문학이 되는 날이 온다.


“교수님은, 제가 순수문학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질문에 오영희가 웃었다.


“··· 이때까지 상혁 학생이 쓴 글들은, 따지자면 대중문학이자 참여문학이죠. 특히, <악역>의 경우에는 그래요.”


대중문학은 대중을 위해 쓰인 문학이고, 참여문학은 사회를 반영해 사회의 문제를 부각하는 문학이다.


하지만 순수문학은 그 문학들과는 달랐다.


“그래서 이때까지 써온 소설들과는 결이 다를 거예요. 어쩌면 평소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르죠.”


순수문학은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며 예술성을 표현하는 것을 일컫는다.


오로지 글만으로 예술성을 표현해야 했다.


“하지만···.”


오영희가 나를 보며 답했다.


“해보지 않고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등단을 하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등단을 위해 그들이 가장 원하는 문학을 내가 써주면 될 일이었다.



* * *



‘문제는 순수문학이 대체 뭐냐는 건데···.’


나는 도서관 구석에 박혀, 오영희가 빌려준 이론 책들을 뒤적거렸다.


[순수문학.


전기, 수필, 영화 등등 다른 매체로 표현할 수 없는 순수성을 가진 문학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 인간의 깨달음, 인간의 감정 등 좀 더 심리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시대적 암시는 어느 정도 허용된다. 시의 경우 감각적인 언어로 쓰인 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 이게 읽히는 건지, 튕기는 건지. 나원 참.’


오영환이 채연이를 책임지려면 등단하라고 하니, 순수문학을 써야 하는 건 맞았다.


그래서 공부라는 걸 좀 해보려 했다.


그러니까, 문학 이론을.


왜냐하면 애초에 나는 정식으로 글을 배운 사람도 아니니, 문학 이론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순수문학이란 건, <멋진 인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고 보면 돼요.


오영희가 내준 과제로 순수문학에 대해 어렴풋이 감만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한 거다.


-사실, 애초에 순수문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받아들이기 어렵긴 해요. 순수한 문학이란 건 뭘까?

-배경에 시대상이 들어가고, 시대상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면, 순수문학이라고 볼 수 있을까? 시대상을 알린다면, 그것 또한 참여문학이 되는 게 아닐까?


당연히 내가 쉽게 이해할 리가 없었다.


“후.”


2학기에 들어서 전과 준비를 하면서, 문학 공부도 하면서, 학점도 챙기면서 12월에 있을 신춘문예를 준비하려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문학 이론은 정말 모르겠다고 하니, 오영희가 뭐라고 했더라.


-거 봐요. 재능이라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그런 걸 외우고 글을 써야 봐줄 만해요.


이해할 수 없는 소리만 하고 있었다.


‘··· 후, 반년밖에 안 남았는데.’


내후년 신춘문예? 오영환의 성격상 그게 될 것 같은가? 절대 불가능이었다.


‘아마도 벼르고 있겠지.’


머리를 쥐어싸매며 책을 펼치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


뺨에 차가운 무언가가 쓱, 닿았다. 고개를 돌리니 채연이가 비타민 음료를 들고 와 있었다.


이젠 한결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은 채연이가 내가 문학 이론에 대해 메모한 노트 밑에 사각사각 글을 적기 시작했다.


[뭐 하고 있어요?]


‘왠지, 옛날로 돌아간 기분인데···.’


과거에, 회귀하기 전에도 채연이와 이렇게 장난을 치곤 했다.


‘이미, 옛날이긴 하지만···.’


나는 웃으며 채연이의 글 밑에 답변을 적었다.


[순수문학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신춘문예에 순수문학 형식으로 내볼까 해서요.]


단정한 채연이의 글씨체 밑에 40년 묶인 아저씨 같은 글씨가 적혔다.


[으. 순수문학 이제 그만 듣고 싶어요. 할아버지한테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희한하지.


예전엔 이렇게 노트 위에 글 쓰는 게 느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미래엔 왜 그렇게 모든 게 느리다고 짜증을 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세상이 참 빨라진 건지.


내가 빨라졌던 건지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입버릇처럼 순수문학은 예전 같지 않다고 하거든요.]


채연이의 문구를 보며 문득 깨달았다.


[할아버지라면? 오영환 선생님이요?]

[예. 자세한 건 모르지만, 할아버지 어릴 적엔 순수문학만 쓰셨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세월이 변하게 한 건 세상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사유, 사유, 사유.


세상에 대한 사유를 그렇게 외쳐대던 오영환이 어릴 적엔 순수문학만 썼다니, 의외였다.


내가 아는 오영환은 참여문학을 쓰는 오영환뿐이었다. 실제로 오영환이 유명해진 것도 참여문학을 쓰기 시작한 시절부터였다.


-일단 공부해 보고, 안되면 그냥 순수문학을 읽어요. 시든, 소설이든, 극본이든 뭐든요.


그러자 문득 오영희의 말이 떠올랐다.


-상혁 학생이 잘하는 거잖아요.


나는 채연이를 바라보았다.


-겪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거.


채연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내 시선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나는 채연이가 적은 문구를 바라보다, 채연이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채연 씨. 혹시, 선생님의 글 어떤 게 있는지 아십니까?”

“······?”


이곳은 도서관이었다.


“선생님의 글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수많은 책들이 가득한 도서관.


그것도 온갖 구하기 어려운 희귀 도서들이 가득한 대학교의 도서관이니, 오영환의 초창기 도서는 손쉽게 구할 수 있을 터였다.


‘고작, 두 편의 글을 써냈다고 작가라도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를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순수문학에서 참여문학으로 변한 오영환의 작품을 읽으면, 내게 큰 도움이 될 거란 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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