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부터 시작하는 천재 작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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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크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0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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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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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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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작가의 자질

DUMMY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비교적 여유가 생긴 내가 하루 종일 붙잡고 있는 일은, 바로 소설 <악역>의 원고를 다듬는 일이었다. 물론 오영희와 채연이의 도움을 번갈아가며 받았다.


“이건 상철보단 봉길이 할 법한 생각 같아요. 그래서 스포일러가 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네요.”


놀라운 건, 채연이가 생각보다 편집자의 재능이 있다는 점이었다.


쉼터 구석에 앉아 작품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봉길이 착한 놈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상철의 입에선 나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나가는 행인이나 반장의 입에서 나오는 것도 좋겠네요.”

“어, 맞아요. 정보가 주어졌으나 상철이 그 사실을 거부하는 걸로 가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오영희도 인정할 정도였다.


-채연이한테 물어보는 것도 좋을걸요?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기묘할 정도로 오영희는 채연이의 성격, 재능 등 모든 걸 꿰고 있었다. 교수와 학생이 그 정도로 친밀할 수 있는 걸까?


“혹시···”


그래서 입을 열었다.


“······?”


내 말에 채연이가 긴장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오영희 교수님과는 무슨 사이입니까?”


내 질문에 채연이가 입을 벌리더니, 푸흡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상혁 씨는, 그걸 이제 물어보는 거예요?”


왠지 민망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 없다는 소리 많이 듣긴 합니다만.”

“그럼, 한번 생각해 봐요.”


채연이가 내 어깨 위에 턱을 올리며 눈을 깜빡였다.


“제가 오영희 교수님과 무슨 관계일지.”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시선을 피하며 고민했다.


‘···성이 다르니까 가족은 아닌가? 그런데, 성격이 좀···.’


확실히 얼굴은 다른 편이었다. 오영환과 오영희는 누가 봐도 부녀 관계일 정도로 서로 닮아있었다.


하지만 닮은 점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심코 답했다.


“···친척···?”

“딩동댕!”


채연이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이모예요. 이모.”


그러자 과거에 채연이와 연인이 되었던 일련의 과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흔한 연애 스토리는 아니었다.


‘왠지, 성격이···.’


시골 촌놈이 대학교에 입학해 서울에 올라왔다고 한참 들떠 있던 시기였다. 채연이에게 내가 어떻게 보였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런데 채연이는 그런 나를 눌렀다. 여러모로.


“···그러고 보니, 성격이 많이 닮···.”


그 순간, 채연이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물었다.


“칭찬이에요?”


나는 그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칭, 칭찬입니다.”

“하긴, 엄마보다도 이모 닮았단 소리 많이 듣거든요.”


채연이는 이내 시선을 쉼터의 꼬마들을 향해 돌렸다.


“이런 봉사활동을 다니는 것도 그렇고, 엄마 아빠 말 안 듣는 것도 그렇고.”


안다. 채연이가 이런 나를 만나 부모님 속을 얼마나 썩였을지.


‘이번만큼은···.’


내가 손에 들린 원고를 내려다보며 남몰래 다짐하던 때였다.


“근데, 이제 거의 원고 완고에 가깝나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말이에요.”


쉼터에서 다른 꼬마들의 눈치를 보던 채연이가 내게 속삭였다.


“지혜랑, 그 아저씨께 보여줘야 하지 않아요?”


그 말에 성지혜와 전응석이 떠올랐다.


‘···보여줘야 하긴 하는데···.’


왠지 망설여졌다.


‘아직, 바뀐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가.’


소설을 보여준다 한들, 지금은 달라진 게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망설여지는 것 같았다.


‘전응석은 몰라도···.’


나는 성지혜를 바라보았다.


성지혜는 여전히 쉼터의 구석에 있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는 않았다.


성지혜의 앞에는 문제집과 교과서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어떻게든 현실을 타파해 보려는 성지혜의 발버둥이었다.


“···근데, 지혜는 학교에 가서 공부는 못합니까?”


그래서 의문이 들어 채연이에게 물었다.


“그게 아버님이 학교까지 찾아온다더라고요. 사실 여기도 찾아와요. 그래서 쉼터 선생님들이 대충 지혜가 지금 없다고 둘러대고는 있는데···.”


그러나 채연이의 답은 허망했다.


“세상, 참 야박하죠.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와 혈연이라는 이유로 떨어질 수 없으니까요.”


불행하게도 그건 현실이었다.


혈연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폭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건. 그러자, 나는 내 원고를 떠올렸다. 방금 전까지 채연이와 같이 보고 있던 <악역>의 원고를.


‘이왕, 이게 세상을 변하게 할 원고라면···.’


나는 그 원고를 보며 말했다.


“채연 씨.”

“네?”

“이 원고의 엔딩을 바꾸고 싶은데···.”


내 말에 채연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떨 것 같습니까.”

“···엔딩이요? 지금 결말도 나쁘진 않은데, 무슨 엔딩으로 바꿀 건데요?”


지금은 상철이 결국 무너지는 엔딩이었다. 봉길을 범인으로 오해한 대가였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변하게 하려면 좀 더 확실한 결말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나는 채연이의 귓가에 추가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삭였다.


어쩌면, 아주 흔한 이야기였다.



***



한편, 문학정원의 대표 고길진은 한 마리의 하이에나처럼, 에세이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시작은 진상혁의 한마디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에세이가 유행한 거군요.”


당연한 흐름이었다.


외환 위기 이후,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여유를 더욱 갈구했다. 필연적으로 타인의 깨달음과 여유를 배울 수 있는 에세이가 유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길진은 에세이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제기랄, 하나같이 형편없는 글들만 잔뜩이야.’


마땅한 에세이를 찾지 못해 고길진은 우울해졌다.


“저기··· 편집장님.”


새로 뽑은 직원의 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진상 작가님, 신작이···”


“투고 안 받는다고 몇 번이나 말했냐?”


고길진은 책상에 붙어 앉아 문학정원의 이메일로 오는 원고들만 확인하고 있었다.


‘문장이 거지 같은 건 그렇다 쳐. 근데 재미도 없는 글을 가져오면 어쩌자는 거야···!’


그도 그럴 것이, 에세이는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다.


까다로운 대문호들이 지키고 있는 소설 분야.

감정적인 것을 넘어 이제는 우주로 떠나버린 시 분야.

이젠 거의 종교 수준에 이른 자기계발서 분야.


이들은 각각 상대적인 진입 장벽이 있다.


소설은 못 쓰면 욕을 바가지로 먹고, 시는 원로 시인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출판계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자기계발서는, 알다시피, 커리어가 있어야 쓸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에세이는 천사 같은 분야였다.


그래서 온갖 ‘글 좀 출판해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고길진을 괴롭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냥, 작가님이 쓰시면 안 되나?’


왠지 ‘심청’이 쓴 자서전 같던 <멋진 인생>이었다.


진상혁에 대한 말들이 여기저기 문학계에 돌고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관련 업계의 예상은 좋지 않았다.


‘오영환이 그렇게 기대해도 결국 망하겠지.’

‘모든 신인 작가들이 그렇잖아.’

‘오영환 작가님의 특징이지, 설레발치는 거.’


누구보다 문학의 순수성과 선구성을 강조하지만, 누구보다 가장 고리타분한 업계가 아니던가.


‘그나저나, 그런 소문들은 작가님이 한 번 등판해서 글만 쓰면···!’


무심코 진상혁을 떠올린 고길진은 문학정원으로 투고된 원고들을 확인하며 달칵거렸다.


직원은 고길진을 다시 한번 주목시키려 애썼다.


“정말로 확인 안 하실 거예요? 진상 작가님 신작이에요.”


화면을 보며 손가락만 움직이던 고길진의 손이 멈췄다.


“뭐라고?”


고길진은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진, 상, 작, 가, 님, 신작! 이요.”


보통 작가들의 신작은 적어도 1~2년은 걸려야 나온다. 그런데 진상혁의 신작이 나왔단다!


“초고를 완성했으니까, 한번 봐달라고 연락···”

“진상 작가님이라면 진작에 말했어야지! 이 멍청아!!”


고길진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부터 말했는데요···?”

“요즘 애들은 싹수가 없어.”


고길진은 짜증을 내며 부리나케 직원의 자리로 달려갔다. 진상혁의 신작이라니, 놓칠 수 없었다. 컴퓨터 화면을 확인하려던 고길진은 책상 위에 놓인 새빨간 원고 뭉치를 발견했다.


‘역시, 원고는 이렇게 직접 손에 잡히는 게 제맛이지.’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이 시기에도 원고를 고수하는 진상혁이, 고길진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악역]


고길진은 흡족한 기분으로 진상혁의 간결한 필체로 적힌 원고를 넘기기 시작했다.


사락-


그리고 원고를 넘기던 고길진은 곧 깨달았다.


‘뭐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멋진 인생>이 나온 지 이제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진상혁의 글 솜씨가 더 좋아져 있었다.


‘글이 좀 더 매끄러워졌어.’


그전에도 매끄럽지 않은 글이라곤 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더 다듬어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 글은 좀 더 달랐다. 좀 더 매끄럽고, 좀 더 잘 읽히고, 좀 더 흥미롭고, 좀 더···.


‘현실 같잖아.’


소설 속 주인공 상철이 봉길을 조사하기 위해 탐문 수사를 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주민들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일이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기시감을 느끼며 고길진이 원고를 넘겼다.


스토리 자체는 평범했다. 주인공인 ‘상철’이 범죄자인 ‘봉길’을 쫓는 이야기.


그러나 중반부가 넘어가자 이야기는 급변했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잘못됐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 문구가 등장한 순간, 고길진은 떠올렸다.


‘설마, 이 소설···?’


상철은 꼬마의 말을 듣고 자신의 수사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봉길과 꼬마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자 상철은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다.


[학교에 꼬마가 자주 나가지 않았던 건, 촌지를 낼 돈이 없었던 꼬마가 선생님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꼬마에게 술 심부름을 시켰던 것도 봉길이 아니었다. 꼬마의 아빠였다.


꼬마의 아빠는 회사가 망한 날 이후부터 손찌검을 했고, 엄마는 꼬마 아빠의 폭력을 피해 도망간 지 오래였다.]


오히려 꼬마는 아빠에게서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그 폭력에서 꼬마를 지켜주고 있던 사람은, 고길진이 <악역>이라 생각했던 봉길이었다.


[봉길은 악역이 아니었다.


그럼, 범인은 누구인가.]


그 순간, 고길진은 단정한 글씨체로 적힌 그 한 줄에 전율이 일었다.


[악역이 필요했던 건 누구인가.]


고길진이 냅다 소리쳤다.


“공장, 공장 빨리 찾아!”

“예?”


직원이 멍청하게 되물었다. 지랄 맞은 고길진답게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이 책 뽑아내려면 지금 계약한 공장으론 어림도 없을 테니까, 당장 공장 찾고! 너는, 지금부터 이거 교정 들어간다!”


먼 훗날은 아닐지 모른다.


“표지 디자인 할 디자이너 빨리 찾고!!”


시간이 지난 먼 훗날엔, 이 책의 판매량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고길진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지금이어야만 했다.


이 소설이 나오는 건 지금이어야만 했다.


“아는 문화예술 기자들 싹 다 연락 돌려! 진상 신작 나왔다고! 제목은, <시대의 초상>.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이런 단어 들어가면 다 오케이라고 해!”


지금은, 모두가 이런 소설을 바라고 있을 터였다.


“이 책, 내가 장담한다.”


그래서 고길진은 장담했다.


“50쇄 본다.”


1쇄는 2천 부. 즉, 불황기에 말도 안 되는 수량인 10만 권의 판매량을 고길진은 장담했다.


어쩌면 누군가는 흔한 이야기라며 욕을 할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다.


[아직 유괴범은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꼬마는 혼자였다. 쏟아지는 세상의 폭력에서 그 꼬마는 혼자였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악역을 찾는 일이 아니었다.]


고길진의 뒤로 <악역>의 마지막 장면이 보였다.


[나는 그놈이 갇힌 유치장 문을 열었다.]


상철의 짧은 서술로 끝나는 진부한 열린 결말이었다.


[이제, 내가 악역이 될 차례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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