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부터 시작하는 천재 작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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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크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02 17:13
최근연재일 :
2024.08.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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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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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순수문학

DUMMY

채연이가 골라준 오영환의 책은 어마무시했다.


한평생 글만 쓴 사람이 아니랄까 봐, 작품의 수도, 쓴 문학의 종류도 많았다.


‘··· 동화까지 썼나.’


그래서 오영환은 순수 문학과 참여 문학, 그 둘 다를 써본 드문 인물이었다.


쉽게 말해, 관찰만 하던 작가가 현실을 알리는 작가가 되었단 말이다.


[오영환의 <뒤축>은 순수 문학으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오영환의 순수 문학 시절 <뒤축>은 달관한 사람 마냥, 그저 사람을 관찰하면서 쓴 글 같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고무신 뒤축 박아 넣다 보니, 이대로 골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같이 했다. 그러다 보니, 한날은 정신이 빠져나와, 정신이 일하는 내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개인을 연민하지도, 공감하지도 않고 그냥 쓴 글이었다.


[나는 고무신의 뒤축을 박아 넣고 있었다. 고무 공장 구석에 있는 고무를 뽑아내는 기계와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참여 문학으로 취급되는 오영환의 글은 달랐다.


[오영환의 <간장 공장 공장장>은 참여 문학으로 분류된다.]


잰말놀이 단어이기도 한 오영환의 참여 문학 <간장 공장 공장장> 속에선, 간장 공장 공장장이던 성환이 화학간장 사건의 여파로 길거리에 나앉게 된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이틀에 한 번 간장에 밥 찍어 먹으면, 고비를 넘길 수 있겠지. 공장장도 다시 될 수 있겠지. 성환은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한 편의 블랙 코미디 같았다.


[“자랑스러워하십시오. 여러분들은 나가실 때 간장을 받게 될 겁니다. 여러분들이 피땀 흘려 만든 간장을···.”]


퇴직금도 간장으로 받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리는 소설이었다.


그야말로 말하는 것 같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도 모르냐고.


‘이게 오영환의 삶인가.’


오영환의 작품은 관찰에서 사유로 변했다.


즉, 변화 혹은 깨달음.


아마도 그 단어들이 오영환의 인생을 축약하는 단어일 터였다.


‘만약에···.’


그러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로 글을 쓸 수 있다면.’


오영환은 신춘문예 중 ‘한성신문’을 콕 집어 얘기했다.


한성신문.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이자, 달리 말하자면 가장 고리타분한 작가들이 모여서 심사하는 신춘문예.


-한성신문 정도는 되어야 인정해 주마.


역사가 긴 만큼 이 신춘문예의 권위는 다른 신문들에 비해 높았다.


‘어쭙잖은 순수문학보단, 효과가 좋을지도.’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오영환은 왜 순수문학에서 참여문학으로 변했지?’


남의 삶을 관찰하기만 했던 오영환이 어떻게 남의 삶을 알리게 된 건지.



.

.

.



그렇다고 오영환을 만나자니 귀찮은 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오영환은···, 버거운데.’


어디 가서 한 성깔 한다는 소리 들어봤고, 심지어 회귀 전엔 채연이한테 그 소리를 들었는데도···.


그래서, 내가 결국 선택한 방법은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선생님, 어떠신 분입니까?”


나는 손에 든 음료 캔을 따 채연이에게 건네며 물었다. 내 질문에, 내가 딴 캔을 받은 채연이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할아버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채연이의 손에 들린 음료로 눈길이 갔다.


“··· 선생님 글을 읽다 보니, 선생님이 어떠신 분인지 알고 싶어져서요.”


아직까지도 채연이의 음료 취향은 적응이 안 된다. 왜 하필 솔의···. 됐다. 여기까지 하자.


어차피 채연이가 남한테 취향을 강요하는 성격도 아니니.


“음···. 할아버지라.”


2학기의 시작은,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즈음이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교정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있던 채연이가 음료를 마시며 내 질문에 답했다.


“옛날 얘기 많이 하시긴 해요.”

“옛날 얘기요?”

“네. 저는 재미있어서 듣는데, 다른 친척들은 싫어하시죠. 근데, 상혁 씨도 옛날이야기 듣는 거 좋아해요?”

“··· 그냥, 그럭저럭 듣습니다.”


물론,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어른들의 옛날이야기가 재미없는 대다수의 이유는, 어린아이에게 제 고통을 전가하는 이야기가 전부라서 그런 거니까.


-상혁아. 네 아빠 노름돈 만들어 바치느라 엄마가 힘들었는지 아니? 근데 네가 이러면 되겠어. 안 되겠어.


딱히 좋았던 건 아니었다.


모두가 힘들었던 그 시절에, 아무리 행복한 사람들 없다 한들, 그 이야기 하염없이 들어주는 건 국민학교 다니던 꼬마에겐 힘든 일이었다.


내 대답에, 갑자기 채연이의 손이 내 볼 위로 올라왔다.


“이어···?”


볼이 아프지 않게 늘어났다. 당황한 내가 채연이를 바라보니, 채연이가 한마디를 던졌다.


“바보예요? 싫었으면 싫었다고 해도 돼요.”

“······.”

“다른 사람도 아니고.”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티가 난 모양이다.


당황해 눈만 굴리고 있으니, 채연이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크흡.”

“······??”


그리고 내 볼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바보처럼 잡아당겨진 볼을 만지고 있으니, 채연이가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이야기는 좀 달라서 재미있을 거예요.”

“······?”

“할아버지는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글에 하소연 집어넣는 거 되게 싫어하셨거든요.”


채연이가 내가 따준 캔을 만지작거리며 덧붙였다.


“독자들이 그냥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나 뭐라나. 그래서, 옛날 얘기도 그냥 하셨어요. 하소연보다는 그냥 할아버지가 겪은 이야기들이었죠.”

“어떤 이야기입니까?”

“예전엔 바나나 먹기 귀했는데, 자기는 먹어봤다거나 그런 거요.”

“바나나가요?”

“네. 예전엔 엄청 귀했대요. 아무나 못 먹는 음식이었다던데요? 그걸 저한테 자랑하더라니까요. 진짜 웃기셔.”


하긴, 평범한 집안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채연이도 모난 구석 없이 자라서, 늘 미안하다는 생각을 예전에도 했으니까.


“학교도 자동차 타고 등교하셨대요. 그래서 다른 애들이 참 부러워했다고. 도시락에 계란이랑 소시지 반찬은 꼭 있었고···.”

“그 시절에요?”

“네. 그래서 대학도 가셨죠. 증조할아버지 따라 시공부를 하고, 그 시절 대학교 다니며 온갖 있는 척 없는 척 다 부리고 다니다가···.”


채연이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정신을 차리셨대요.”

“······?”


흔한 그 시절, 잘 사는 부잣집 도련님의 이야기처럼 흘러갈 것 같던 오영환의 이야기는 다른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대학교 다니면서 시인이랍시고 쏘다니는 애들, 겉멋 들어서 꼴 보기 싫다고 했다면서, 세상 돌아다니다가 정신 차렸대요.”


지극히 오영환스러운 생각이라 웃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정신 차리시게 되었다는 말은···.”

“···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단 말일걸요?”


채연이가 고민하다 말했다.


“할아버지가 쓴 동화 중에 <우물 안 개구리>라는 책도 있어요. 잘난 체하면서 우물 안에서만 놀던 개구리가 바깥의 황새에게 잡아먹히는 내용이죠.”


‘··· 동화 맞아?’


그 시절 동화가 잔혹했다곤 하지만, 이래도 되나 싶은 내용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채연이에게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셨답니까?”

“··· 부끄럽다고 하셨어요.”

“··· 예?”


부끄러운 게 있었을까 싶었다.


정말 이해가 안 돼서 나오는 의문이었다.


하숙집 월세 못 내서 주인집 할머니에게 빌어야 한 적도 없었을 테고, 엄마가 버려진 줄 알고 주워온 낡은 빗자루가 사실 주인이 있어 경찰한테 혼났던 적도 없었을 텐데.


오영환은 그런 삶을 몰랐을 텐데 싶었다.


“무지한 게 부끄러웠다고 하시더라고요.”


“······.”


하지만 그 대답을 들으니, 나는 내가 방금 했던 생각이 질투란 걸 깨달았다.


‘추한 놈.’


그리고 동시에 이해가 갔다.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을 다 통달한 척 글을 쓰는 게 부끄러우셨대요.”


순수 문학을 쓰던 오영환이 참여 문학을 쓰게 된 계기가.


채연이가 나를 향해 웃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지금도 가장 좋아하시는 시는 ‘서시’예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서시.


나라를 빼앗긴 현실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시인이 스스로가 부끄러워 썼던 시였다.


‘··· 부끄럼이라.’


그것 또한 개인의 감정이다.


그렇다면 오영환의 이야기는 순수 문학에 속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였을까.


한 줄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는 그림은 부끄러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수십 년 전, 운 좋던 한 화가의 이야기였다.


[세상물정 모르고, 그림을 그리던 그 시절이 부끄러워 그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수십 년 전, 운이 좋았던 사진사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띠링-!


이젠 익숙해진 MP3의 알람이 귓가에 울렸다.



* * *



남자는 남들과는 달랐다.


노라조 양장에 구두를 신고 다니는 그는 동네에서 유명했다.


어릴 적부터 도시락 반찬에 계란이며 소시지며, 온갖 맛난 것들을 넣어 다니고, 학교에 차를 타고 등교했던 남자는 동네 유명 인사였다.


그래서 남자는 마카오 신사라 불리며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그뿐만이던가.


남자는 대학이라는 곳에 갔다.


중학교도 못 가던 이들이 천지던 시절이다. 다른 지역으로 고등학교 가는 걸 유학이라 부르던 시절에, 남자는 대학이란 곳을 갔다.


그곳에서 남자는 그림을 배웠다.


유화, 소묘, 조각 등등.


팔자 좋게 배우다 일본으로 유학도 갔다. 미적인 아름다움이 뭔지 추구하며 그렇게 남자는 살았다. 화가라면 무조건 그냥 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참 속 편하게 살았다.


그렇고 놀고, 그림 그리고, 온갖 기교를 부리며 설명하고, 전시 몇 번 하니 남자를 아는 이들이 남자를 희대의 천재라며 띄워주었다.


그림에 대해 잘 아는 이도 없던 시절이니, 남자는 그렇게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남자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림 그리려다, 우연히 한 아이를 만났다.


저 너머, 공장에서 일한다는 아이였다. 남자는 공장에서 일한다는 아이 중 이렇게 어린아이를 처음 봤다. 그래서 남자는 아이에게 물었다. 언제 이곳에 왔냐고.


그러자 아이는 답했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공장에 시다로 왔단다.


왜 왔냐 물으니 아버지가 아파 병원비를 대야 한다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공장에 보냈다 한다.


남자는 먹던 빵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허겁지겁 그 빵을 먹었다. 그 모습이 눈에 밟혔던 남자는 가끔씩 빵을 주러 아이를 만나러 갔다.


화가라는 말에 아이는 눈을 반짝거리며, 남자를 멋지다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남자는 아이를 볼 수 없었다.


남자는 아이를 찾았다.


빵 봉지 몇 개씩 들고 방직공들이 사는 곳을 찾아가 물으니, 다들 순순히 답했다. 우유를 주니 사람들은 아예 남자를 아이의 집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아이의 집은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셋방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아이는 없었다.


셋방 주인이 말했다. 아이는 죽었단다. 아이가 죽었단다. 이유는 모른단다. 죽었단다, 죽었단다. 그 말만 반복해서 되뇌던 남자는 줄 사람 잃은 빵을 그곳에 두고 나왔다.


낡은 셋방이 가득한 골목은 어두웠다. 그 아래, 문풍지 찢어진 창문에서 새어 나온 불빛에 번쩍거리는 그의 구두가 보였다.


구두에 잘 차려입은 그의 양장이 비쳤다.


남자는 그 모든 게 부끄러워졌다.


그가 가진 것이 한없이 부끄러워, 남자는 가방 속에 넣고 다니던 물감과 붓을 모조리 강가에 버렸다.


부끄럽다. 부끄러워.


그림은 부끄러워 그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세상물정 모르고, 하늘에 동동 뜬 채 그림을 그리던 그 시절이 부끄러워 그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사진은 미싱 공장이었다.


사람이 돌고, 돌고, 돌아가는 미싱 공장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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