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부터 시작하는 천재 작가 생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누크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02 17:13
최근연재일 :
2024.08.27 21:20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4,208
추천수 :
207
글자수 :
155,130

작성
24.08.06 21:20
조회
188
추천
10
글자
12쪽

2. 심청

DUMMY

나는 손에 들린 채연이의 유품인 MP3를 만지작거렸다.


'확실히....'


이 MP3에 들어있는 파일은 내가 생각한 소설 속, 주인공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소설이 잘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주마등처럼 소설 속 주인공의 인생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빨리 완성하긴 했지만....'


오영희가 내게 말했던 시간은 2주.


내가 글을 완성한 건 고작 3일이었다.


MP3 덕분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인생을 겪을 수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사기 능력이 아닌가.


'그래. 다 좋아.'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왜지?'


나는 내가 들고 있는 원고를 빤히 바라보았다.


'분명, 나쁘지 않은 이야기 같은데....'


하지만 미묘하게 미완성인 이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느 부분 때문에 미완성인지 정확히 집어낼 순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사실, 오영희에게 물어보면 해결될 문제긴 하다.


[문예창작학과 정교수 오영희]


[연구실]


근데, 오영희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쓴 이야기를 오영희 교수에게 검사받으려니 좀, 쑥스러웠다.


'빌어먹을, 진상혁. 내려놓는다며... 내려놓을 자존심이 아직도 산더미냐.'


수북해진 원고지만을 든 채, 차마 오영희의 연구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앞에서 서성거리던 때였다.


터벅-


오영희의 연구실로 다가오는 한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 상혁 씨?"


익숙한 목소리였다.


"...!"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환하게 웃고 있는, 문예창작과 와는 거리가 먼 동양학과 채연이었다.



.

.

.



"왜 연락 자주 안 보냈어요? 제가 큰 맘까지 먹고 전화번호까지 줬는데."

"죄, 죄송합니다."


어쩌다 보니, 채연이와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사과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영희 교수님, 점심시간에 찾아가면 뵙기 힘들어요."

"아. 점심... 시간이었군요. 그건, 몰랐습니다."

"오영희 교수님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데. 밥시간은 칼같이 지키는 거. 오영희 교수님, 밥순이잖아요."


채연이의 성격은 여전했다.


통통 튀고, 솔직하고, 밝고, 예쁘고.... 문제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대상이 오영희인 게 문제지만.


"... 그, 그래도 교수님인데. 목소리를 좀 낮춰야 하지 않을까요?"


내 말에 놀라던 채연이가 새하얀 손을 올려 입을 틀어막았다.


"아. 목소리가 너무,... 컸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연이가 버벅거리며 답했다.


"조, 조금요?"


밥순이라는 단어가 조금 크지 않았나 싶다. 학생들이 힐끔힐끔거리면서 채연이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 채연이가, 유명해서일 수도 있고.'


밥을 같이 먹을 줄은 몰랐던 터라, 나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제일, 싼 게 뭐였지?'


사실, 오늘 점심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멋진 인생>을 쓰느라 3일 치, 알바를 쉬었기 때문에 다음 달 생활비가 조금 모자랐다. 하숙집에 돌아가 밥을 먹을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자요."

"...?"


눈앞에 식권 한 장이 내밀어졌다.


흰쌀밥에 제육, 그리고 계란 하나,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학식 식권이었다.


"제가 사는 거 아니니까, 맘 편히 받아요."

"... 하지만."


내가 채연이가 건넨 식권을 거절하려 하자, 채연이가 혼을 내듯 내게 다가왔다.


"쓰읍. 제가 그랬잖아요."

"...?"


그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이... 아니, 오영희 교수님 밥순이라고."


잠깐. 앞에 뭔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귓가에 속삭이는 채연이의 목소리가 적응이 되지 않아, 고개를 휙하니 돌렸다.


목이 뜨거웠다.


그 광경에 식당 아주머니가 혀를 차며 물었다.


"어여, 안 살 거야?"

"아, 아닙니다."

"제육 2개요!"


내 반응에 웃던 채연이가 냉큼 식권 두 장을 내밀며 덧붙였다.


"오영희 교수님, 제육 엄청 좋아해요. 그래서 제육 식권을 미리 이만큼 사놓거든요. 거기서 3개 정도 슬쩍하는 건, 뭐 귀엽게 봐주시죠."


나는 금방 나온 제육 세트를 들고 채연이와 식당 구석에 앉았다.


숟가락을 가져오고, 물을 떠 오다 보니, 잠시 숨 돌릴 틈이 생겼다. 그러자, 열기가 올라 홧홧하던 머리가 퍼득거리며 돌아갔다.


'잠깐만....'


숟가락을 내미는 채연이를 보며 의문이 들었다.


'왜, 거기 있었지?"


그리고 깨달았다. 문예창작과 만큼이나, 자주 오영희 교수의 연구실에 방문하는 내가 못 봤을 리가 없었다.


문득 드는 의문에 입을 열려던 그 순간이었다.


"혹시, 채연 씨...."

"왜 거기 서 있었냐고요?"


채연이가 먼저 선수를 쳤다. 당황한 나머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뭐. 뻔하죠. 상혁 씨랑 비슷한 거 때문에요. 오영희 교수님 유명하잖아요?"


그 대답에, 문득 회귀 전의 채연이를 떠올렸다.


나를 위해, 작가가 되는 게 꿈이던 나를 위해 원고를 여러 출판사에 내고 다니던 채연이를 말이다.


순간, 목이 메어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


그때였다.


침울해진 분위기를 눈치라도 챈 건지, 채연이가 내 숟가락 위에 제육을 얹었다.


"...?"


"으음, 근데, 상혁 씨는 무슨 일로 오영희 교수님 연구실 앞에 있었어요?"


"... 저, 저요?"

"네. 상혁 씨는 왜 그곳에 있었어요?"


그러자, 잊고 있던 고민이 다시 떠올랐다.


"아.... 그게."


아직 미완성처럼 느껴지는 그 원고.


그 원고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침묵하자, 눈을 깜빡이던 채연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고민 같은 거 있어요?"


고민이라면, 오영희 교수에게 원고를 보여주기 전에,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받고 싶다는 거다.


하지만 내 편협한 인간관계로 인해 대뜸 부탁을 해봤자 받아줄 만한 사람은 전응석뿐이었다.


'... 근데, 응석이 형은 활자엔 취미가 없는 사람인데.'


그러면 남은 건, 단 한 명뿐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앞의 채연이를 바라보았다. 내 시선에 채연이가 웃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왜요?"


그 질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 혹시,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내 질문에 채연이가 눈을 크게 떴다.


'거절인가?'


나도 모르게 눈을 찡긋 감을 찰나에, 채연이가 대답했다.


"얼마든지요!"


정말, 오랜만에 보는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

.

.



[멋진 인생]


채연이의 손에서, 새빨간 원고지에 한 글자 한 글자 채워 넣은 원고가 넘어갔다.


사락- 사락-


내 글을 읽고 있는 스물넷의 채연이가 적응이 안 돼, 멀찌감치 교정에 가득한 벚꽃들만 바라보았다. 물론 힐끔힐끔 채연이에게로 가는 시선을 어쩔 순 없었다.


그때였다.


채연이의 머리 위로 새하얀 벚꽃 잎이 한 장 떨어졌다.


'... 벚꽃?'


그러자 잊고 있던 시간이 체감이 되었다.


'아..., 벌써 회귀한 지도 한 달 반이 지났구나.'


회귀란 거 하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줄 알았는데, 내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놈이 아니라서 그런가.


그저, 바쁘게만 살았다.


그래도, 시궁창 같던 삶을 바꿔보고 싶어 바쁘게 살았던 거니, 후회는 없다.


꿈을 이루기만 하면, 바뀔지도 모르니.


'채연이가....'


내 옆에 앉아있는 채연이가, 살아가기만 한다면야. 상관없었다.


"...?"


'아.'


그래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뻗어진 손이, 채연이의 머리 위에 올라간 벚꽃 잎을 잡았다.


당황하며, 나는 손을 내렸다.


"... 미안합니다. 그, 벚꽃이 머리 위에 떨어져서."


그 순간이었다.


툭-


채연이가 그 손 위에 내가 쓴 원고를 올려놓았다.


"괜찮아요."


그리고 눈을 휘며 웃던 채연이가 덧붙였다.


"좀 아쉽긴 한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모양이었다 나를 보고 채연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내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말했다.


"그나저나, 왜 이 소설 제목 멋진 인생이에요?"


뭔가, 아까부터 자꾸 휘말리는 기분인 건 내 착각인가. 나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자, 채연이가 불쑥 뭔가, 아까부터 자꾸 휘말리는 기분인 건 내 착각인가. 나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자, 채연이가 불쑥 얼굴을 내밀고 물었다.


"왜, 부루퉁해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그, 그런 건 아닙니다만."


내밀어진 얼굴을 피하며 답하자, 채연이가 큭큭거렸다.


"제가 너무 놀려서 그래요?"


채연이가 덧붙였다.


"실제 성격은 소심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여전한 성격이었다.


붉어진 얼굴로 채연이의 시선을 피하던 나는 결국, 슬그머니 채연이를 보며 답했다.


"아시면, 그만해 주시죠.... 채연 씨."

"그럼, 제 질문에 먼저 대답해 주실래요? 상혁 씨."


쿵-


가슴속에서 간질간질하게 피어오르는 부름. 그 부름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 오영희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를 영감으로 글을 써서, 멋진 인생이라고 이름 지은 겁니다."


그러자 채연이가 물었다.


"왜, 그 이야기가 왜 멋진 인생과 관련이 있어요?"

"......"


그 질문에, 나는 채연이를 잠시 바라보았다.


"오영희 교수님이 한 선택은..., 제가 하지 못하는 선택이니까요."


고개를 숙인 내 대답에, 잠시 침묵하던 채연이가 웃었다.


"... 부모님께, 그만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거요?"

"... 네, 그렇습니다."

"근데...."


장난기 어린 목소리만 가득하던, 채연이가 다정하게 물었다.


"그거, 지금도 할 수 있지 않아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이었다.


"...?"


그래서 그 질문에 나는 바보처럼 대답했다.


"그러게요. 사실..., 지금도 할 수...."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때였다.


"그리고, 그건 시작이잖아요."


채연이가 나에게 속삭이듯 덧붙였다.


"부모님에게서 자식이 독립하는 건, 인생의 첫 번째 단추죠."


그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아....'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이 원고가 미완성처럼 느껴졌는지. 오영희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치곤, 소설 속 주인공은 오영희를 닮아 있지 않았다.


아버지의 휘광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고, 움직였던 오영희를 닮지 않았다.


이건 고작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멋진 인생>에서 심청이가, 원치 않던 판소리를 시키는 아버지에게 심청이가 되기 싫다 외치는 건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리고, 오영희라면....'


고작 싫다 말하는 걸로 만족하지 않을 거다.


"제가 아는 오영희 교수님은, 싫다 말하는 걸로 만족하지 않을 걸요."


그랬다.


아버지를 뛰어넘을 거다.


심청이가, 고작 아버지에게 심청이가 되기 싫다 말하는 엔딩을 맞지 않을 거다.


나는 대답했다.


"그러겠네요. 오영희 교수님이라면..."


나는 오영희를 떠올리며 상상했다.


"딸이 아버지를 떠나야 멋진 인생이라고 하겠죠."


심청이가 더 완벽한 판소리를 만들어, 고수인 아버지를 떠나 홀로 살아가는 엔딩.


그러자 MP3엔 없었던, 소설의 진정한 엔딩이 떠올랐다.


동시에 내 귓가에 구슬픈 심청가가 울려 퍼졌다.


[애고, 애고, 아부지요. 아부지요.]


공양미 삼백 석에 딸을 팔아버린 아버지를 원망하는 심청이의 노래였다.


[심청이, 학규를 향해 우는디!]


심청이가 잃어버린 친구를 그리워하며 만들어낸, 심청이만의 판소리였다.


[아부지는, 나를 왜 버렸소? 눈을 뜨고 싶어, 공양미 삼백 석에, 실은, 딸내미를 팔고 싶었던 게 아니었소?]


심청이는 무대 위에서 피를 토하며 노래했다.


[나는 알고 있었소.]


아버지를 만족시킬, 아버지를 뛰어넘을 심청가였다.


[그래서, 간 거요. 인당수에, 그래서, 간 거요. 아부지. 아부지.]


눈앞에 그리듯 떠오른 영감에, 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때요."


내 눈앞엔 이 모든 영감을 준 채연이가 있었다.


흩날리는 벚꽃잎과, 따스한 햇빛이 내리는 4월의 어느 날.


"제 의견이 도움이 되었어요?"


그 아래 채연이가 나를 향해 웃었다.


그래서, 문득 떠올렸다.


[하지만 모른다.]

[한 줄기의 빛을 다시 찾는다면,]


잊고 있었던 '진상혁' 파일의 마지막 구절을.


[시궁창에도 볕 들 날이 올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노가다부터 시작하는 천재 작가 생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이때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연중 공지입니다. 24.08.28 39 0 -
공지 연재 시간은 매일 9시 20분입니다. 그리고 제목 '또' 변경 예정입니다. 24.08.16 86 0 -
27 7. 이단아들 24.08.27 65 6 12쪽
26 7. 이단아들 24.08.26 75 6 12쪽
25 6. 순수문학 24.08.25 76 7 11쪽
24 6. 순수문학 24.08.24 89 4 13쪽
23 6. 순수문학 24.08.23 88 5 13쪽
22 6. 순수문학 24.08.22 97 6 12쪽
21 6. 순수문학 24.08.21 104 6 12쪽
20 5. 천재 24.08.20 118 9 13쪽
19 5. 천재 24.08.19 118 9 13쪽
18 5. 천재 24.08.18 124 6 12쪽
17 5. 천재 +1 24.08.17 129 6 14쪽
16 4. 작가의 자질 24.08.16 123 7 12쪽
15 4. 작가의 자질 24.08.15 136 7 12쪽
14 4. 작가의 자질 24.08.14 143 7 13쪽
13 4. 작가의 자질 24.08.13 138 6 13쪽
12 4. 작가의 자질 24.08.12 163 7 13쪽
11 3. 진상 +1 24.08.11 163 11 13쪽
10 3. 진상 24.08.10 169 9 12쪽
9 3. 진상 24.08.09 176 6 14쪽
8 2. 심청 24.08.08 181 8 14쪽
7 2. 심청 24.08.07 185 8 11쪽
» 2. 심청 24.08.06 189 10 12쪽
5 2. 심청 24.08.05 211 10 14쪽
4 1. 진상혁 24.08.04 226 11 15쪽
3 1. 진상혁 24.08.03 262 11 15쪽
2 1. 진상혁 24.08.02 287 11 12쪽
1 1. 진상혁 24.08.02 373 8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