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부터 시작하는 천재 작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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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크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0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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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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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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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 천재

DUMMY

나는 오영환이 나를 부른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유를 추리자면 세 가지 정도로 좁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번째, 오영환은 ‘진상’이 나라는 걸 안다.


그날, 내가 오영환과 오영희의 관계에 끼어든 그날에, 오영환이 <멋진 인생>의 저자를 눈치챈 것 같다고 오영희가 말했으니까.


아마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자 부른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차라리 이거면 다행이지.’


두 번째, <악역>의 영화화 관련 문제.


오영환의 성격을 생각해 봤을 때, <악역>으로 재단까지 만들었으니 영화화로 인해 난 화는 이미 풀렸을 거다. 이 선택지는 제외해야 했다.


‘그럼···.’


세 번째.


“··· 괜찮을 거예요. 할아버지 성격은 그렇지만, 사실 남들 잘 챙기시는 분이에요.”


채연이가 잔뜩 긴장한 나를 보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괜찮을 거라고.”


나는 채연이를 향해 억지로 웃었다.


채연이 때문에 부른 거라면 참으로 곤란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 서 있는 채연이를 보았다.


채연이의 곁에 있다 보면 어쨌든, 한 번은 어떻게든 만날 인물이었다. 도망쳐 봤자 달라질 건 없을 터였다.


“후···”


나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의 문을 열었다. 그곳엔 잔뜩 인상을 쓴 얼굴의 오영환이 앉아 있었다.


오영환이 나를 발견하곤 입을 열었다.


“역시, 너였나.”


나는 오영환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그땐 제대로 된 인사를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든 나는, 오영희의 연구실에서 스쳐 지나갔던 오영환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진상’의, 진상혁입니다.”


나는 오영환을 향해 손을 뻗었다.



***



거기까지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오영환은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봐도 어린놈이라, '이놈은 진짜 천재구나'라는 생각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냥 진상이라는 신인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그 작가를 제 문하생으로 넣고 싶어 부른 결과가 거기까지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할아버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쪽같은 외손녀가 툭 하고 등장한 순간, 오영환의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그리고 손녀딸의 등장에 헤벌쭉해진 오영환은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 채연아.”


오영환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홍채연의 등장을 반겼다.


“죄송해요. 따로 뵈러 가야 하는데.”

“죄송하긴 무슨. 채연이가 오는 건 언제나···.”


홍채연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답하던 오영환은 깨달았다.


‘잠깐만.’


왜? 진상, 이놈과 채연이가 같이 온 거지? 오영환은 부른 놈과, 부르지 않은 귀한 손녀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분노였다.


분노 속에선 의문이 피어올랐다.


‘설마···.’


글을 써 다부진 오영환의 손가락이 분노로 이리저리 구부러졌다. 마치 한 쌍의 커플 같은 둘을 바라보며, 오영환은 쉴 새 없이 생각했다.


‘영희가 이어줬나? 하지만 우리 채연이를 어디서 비렁뱅이와···!!’


그러나 오영환이 보아도 비렁뱅이라기엔, 나름 채연이와 잘 어울리는 진상혁의 모습이었다. 키도 오영환보다 컸다. 얼굴도 저 정도면 모나지 않게 생긴 것 같았다.


‘아니! 그럴 리가!’


오영환의 머릿속에선 둘이 결혼까지 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그 장면에 오영환의 입술은 파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영, 영희가···.”


왠지 존재만으로도 열받게 하는 진상혁에게, 오영환은 최대한 분노를 억누르며 물었다.


“··· 영, 희가 채연이랑 함께 가라 그러더냐.”

“그렇습니다만···.”


진상혁의 말이 흐려졌다. 오영희가 보냈단 말이다. 그러자 오영환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눈치가 빠른 오영희가 아니던가.


둘을 같이 보내야 하는 이유라면 하나뿐이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뿐이다! 자신에게 미리 보일 생각인 거다!


‘그래, 저놈 나름 전도유망한 작가니까 채연이를 보내도···.’


하지만 곱씹을수록 오영환의 속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채연이를 보내긴 개뿔···!!’


귀한 손녀딸을 갑자기 찾아온 날강도에게 줄 순 없었다.


어느새, 감정에 휩쓸려 본질은 사라지고 왜곡되었다.


오영환이 가장 싫어하는 행위를, 오영환은 지금 하고 있었다. 오영환은 분명, 진상에게 당부하고 앞으로의 문학의 방향성을 의논하기 위해 진상을 불렀는···.


“괜찮을까요?”

“아니요. 할아버지 화내기 직전이신 것 같은데.”


물론 홍채연과 진상혁은 지금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어떡하죠.”

“일단, 할아버지가 어떻게 나오시는지 보고···.”


하지만 서로 속삭이는 모습이 오영환을 자극했을 뿐이었다.


“너네, 무슨 사이야!!!”


그런데 말이다.


“예?”

“그게···!”


오영환의 분노 섞인 고함 한 방에, 진상혁과 홍채연의 얼굴이 동시에 새빨갛게 변했다.


그랬다.


오영환은 이성을 잃고 말았다.


“이, 이, 이···!!”


‘진상’이 자신의 뒤를 이을 대한민국의 문학 천재라 점찍었던 대문호 오영환은 없었다.


그래서 제 문하생으로 들이고 싶었던 오영환은 없었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감히 우리 채연이를!”


외손녀를 눈앞에 두고 빼앗긴 주책바가지 할아버지 오영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


오영환이 분노를 누그러뜨린 건, 장장 30여 분이 지나서였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나는 숨을 들이쉬며 생각했다.


‘과거보다는 낫나···?’


결혼 소식을 알리기 위해 채연이의 집에 갔던 날 맞이했던 그 숨 막히는 침묵보다는 나았다.


물론 지금도 오영환이 완전히 화를 푼 건 아니었다. 여전히 목소리는 성이 나 있었다.


“너 말이다. 우리 채연이를 데려갈 생각이면···.”

“할아버지, 아직 그런 사이 아니에요···!”

“그런 사이가 아니긴 무슨! 모름지기 남녀란 붙어 있다 보면 정이 생기고! 그렇고 그런 사이가! 잠깐, 채연이 너, 아직이라 그랬나?!”


오영환이 이런 성격이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지만···.


“크흠. 할아버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상혁 씨, 부른 이유가 뭐예요?”

“상혁 씨이? 상혁 씨이?!”


어쩌면 오영희의 선구안일지도 모른다.


채연이를 데리고 온 덕분에, 오영환의 본질적인 화가 희석되었다. 하지만 오영환이 이 정도로 채연이를 아낄 줄은 몰랐다.


“아, 할아버지 진짜. 저 그럼 다음 달부터 할아버지 보러 안 갈 거예요?!”

“······.”


그 말에, 오영환이 분노를 참으며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매섭게 나를 바라보았다.


“일단, 둘 다 앉아라.”

“예.”


드디어 자리에 앉았다. 식전으로 나온 수프가 다 식어 차가워질 때까지 오영환의 분노는 잦아들지 않았다.


“······.”


식은 수프를 뒤적거리며 오영환은 나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채연이를 지킬 자신은 있나?”

“그헙.”


갑자기 나온 질문에, 목에 걸린 수프가 다시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할아버지!”


채연이가 오영환을 말렸지만,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작가라는 게 잘못하면 얼마나 배고프고 힘든 직업인지 아나? 작가란 직업은, 누군가를 먹여 살릴 만한 직업이 못 된다.”

“······.”


그 질문에, 나는 회귀 전을 떠올리고 말았다.


‘하지만···.’


먹고 살기 좋은 직업을 선택해도, 나는 채연이를 지키지 못했다. 내 꿈을 지키려 했던 채연이를 지키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걸 본 건지, 오영환이 말했다.


“··· 후. 일단 너, 등단해라.”

“······?”

"채연이를 지키고 싶다면 등단해라 이 말이다!”


깜짝 놀란 나는 고개를 들어 오영환을 바라보았다.


“예?”

“알잖나! 네놈은 아직 등단 작가가 아니다! 글을 써도, 작가로서의 자부심이 부족하지 않았나?”


한결 차분해진 오영환의 눈이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왜 그런 줄 아나? 니가 등단하지 않으면 그냥 대중 문학 작가일 뿐이다. 그래서 비평가들이 아니라, 나 같은 원로 작가들이 너의 글에 날뛰는 거다.”


나는 아직 문인협회에 등단하지 못한 상태였다.


고길진의 문학동네는 이제 막 창업한 소규모 출판사로, 그런 문학동네가 주는 문학상은 문인협회에 작가로 등단할 수 있는 규모의 문학상이 아니었다.


“문학 작가가 아닌, 대중 문학 작가에게 무슨 비판을 하겠나. 비평가들도, 협회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놈들 안 봐도 뻔해. 운 좋은 대중 문학 작가라고 무시하고 있을 거다.”


오영환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이번 작품은 솔직히 운이 좋았어요.


오영희도 내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나는 문학 작가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다 때가 되면 죽어 흙으로 돌아갈 놈들이지.”


오영환은 메인으로 나온 요리를 나이프로 자르며 말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허례허식을 챙기고, 자신이 가진 것을 한없이 부풀려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네 결과물을 봐주기라도 할 거다.”


현실적인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영환이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하지만 내 밑에서 글을 배운다면 등단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다.”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


아직은 문하생이 많은 시절이다.


오영환은 십여 명의 문하생을 배출했고, 그중 대다수가 문학계에서 내로라하는 원로 작가로 자리 잡았다. 오영환의 명성 덕분이라 말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확실히, 오영환의 문하생이라는 타이틀은 등단에 버금갈 만했다.


‘이것 때문에 보자고 한 건가?’


그런데 말이다.


-전 물길을 틀 힘이 없으니, 새로운 물을 길어 오기로 했거든요.


왠지 오영희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긴장이 한결 풀렸다. 오영환이 나를 보고 싶어 한 진짜 목적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답했다.


“··· 등단하겠습니다.”


문하생이 되라는 오영환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었다.


“내 밑에 들어오면 신춘문예나 문학상 따위, 필요 없을 텐데도? 신문사나 출판사가 널 뽑아 등단시켜준다는 보장도 없다. 이미 네놈, 고길진한테 붙었잖나.”


오영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너를 중심으로, 문학계의 이단아라 불리는 놈들이 모이고 있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기존 놈들이 너를 가만히 둘 것 같나.”


오영환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를 떨어뜨리려 안달이 난 신문사나 출판사도 있을 터였다.


“선생님이 대단하신 분이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변화가 가득한 이 시대에 기존의 길로 가는 건 소용이 없다.


아무리 오영환이라 할지라도.


“진짜로?”

“예.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과는 별개입니다.”

“나를 존경한다고? 진짜냐?”

“거짓말을 제가 왜 하겠습니까.”


[최초의 계간지 ‘사유’]


수십 년 전, 한국 최초의 문학 계간지를 만들고, 문학 신문을 창설해 세상에 한국의 문학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던 오영환이 있었기에, 지금의 오영환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오영환의 방법은, 이제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그럼 지금, 나를 거절하고 계속 영희 밑에서 배우겠다는 거냐?”

“··· 그렇습니다.”


오영환이 내 대답에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물었다.


“왜?”


나는 그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 답했다.


“··· 세상은 결국 변하지 않습니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글을 쓰며 배운 것들이다.


“변하지 않는 건, 정도를 걷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응석, 성지혜, 오영희에게서. 과분할 정도의 성과는 그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가장 빠른 길은, 언젠간 가장 멀어지는 길이 된다.


채연이를 지키려던 내가, 가장 멀어지는 길을 택한 것처럼.


사회적 변화가 몰아치며, 문학계도 변화를 겪던 이 시기도 그랬다. 머지않아, 누군가의 문하생이라는 타이틀이 아무런 소용이 없어지는 시기가 올 것이다.


내 대답에 한쪽 눈썹을 추켜올린 오영환이 한숨을 쉬었다.


“후. 하나같이, 고집불통인 놈 천지야.”


그리고 덧붙였다.


“그럼 등단해라.”


하지만 오영환은 여전히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


“등단해서 보란 듯이, 그 누구도 너에게, 아니 채연이 에게 뭐라고 못할 정도로 성공해라. 하지만 못한다면···.”


오영환이 나이프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네놈 찾아갈 거다. 이놈아. 알겠나?”


하지만 서슬 퍼런 목소리와 별개로, 오영환의 목소리는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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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천재 24.08.20 119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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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5. 천재 24.08.18 125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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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4. 작가의 자질 24.08.12 163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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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3. 진상 24.08.10 169 9 12쪽
9 3. 진상 24.08.09 176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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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심청 24.08.07 185 8 11쪽
6 2. 심청 24.08.06 189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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