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부터 시작하는 천재 작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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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크바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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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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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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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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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상

DUMMY

오영환이 집요할 정도로 <멋진 인생>을 비판한 결과는 이전의 시대와 달랐다.


전문가의 말이라면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는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였다.


오영환이 알던 세상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작가님, 여기까지 하시는 게···.”


편집자의 말에 오영환은 헛웃음을 지었다.


“안다, 나도 안다.”


오영환은 쏟아지기 시작한 온갖 기사들을 보며 숨을 들이켰다.


[한국 문학의 새로운 도전, <멋진 인생>이 문학계를 어떻게 그리는가.]

[원로 문학가들이 젊은 문학가들을 보는 행태는, <멋진 인생> 그 자체다.]

[<멋진 인생>이 보여준, 문학의 세대교체. ‘진상’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화면 속엔 한국 문학계의 현실이 <멋진 인생>과 다를 바 없다는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젊은 문학가들은 ‘심청’이며, 원로 문학가들은 ‘심청의 아버지’다.


오영환이 바라던 상황은 이런 게 아니었다.


<멋진 인생>이 베스트셀러 1위를 찍어버리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오영환의 비평으로 인해, <멋진 인생>을 읽는 독자들은 기존의 독자들과 결이 달랐다.


그래서 아무리 오영환이 뭐라 한들, 그 기세를 멈출 수는 없었다.


“어디 가십니까, 작가님!”


오영환의 내려앉은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성난 듯한 눈썹이 한없이 움직였다.


으리으리한 대저택을 나서며, 오영환이 매섭게 답했다.


“딸애한테 간다.”


오영환은 지금 당장 이 가슴속 한구석에 자리 잡은 씁쓸한 분노를 풀어낼 대상이 필요했다.


[문예창작과 정교수, 오영희]

[연구실]


쾅!


그러나, 오영환이 도착한 곳에서 마주한 대상은 자신을 배신한 딸이 아니었다.


“··· 처음 뵙겠습니다.”


까무잡잡한 얼굴의 왠 어린놈이었다.


“오영희 교수님을 뵈러 오셨습니까? 오영희 교수님은 지금 중간고사 회의에 들어가셔서···.”


그리고 그 어린놈이 오영환을 쳐다보고 있었다.



* * *



관상, 그거, 나이가 들면 믿게 될 수밖에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상을 믿는 게 아니라, 세월을 먹으며 얼굴에 남는 표정을 믿는 거다.


자주 웃으면 눈가에 주름이 많다.


성질을 자주 내는 사람이면 볼이 불독처럼 볼록하게 올라온다. 미간에 주름이 있으면 성질이 더러운 경우가 많다.


노가다를 할 때, 보통 이 법칙은 완벽하게 부합했다.


“누구지?”


그리고 갑자기 오영희의 연구실에 찾아온 눈앞의 노인 역시, 만만치 않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사납게 올라간 적이 많았는지 눈매가 날카롭게 올라가 있었다.


어머니가 생각나는 눈매였다.


힘들게 살아서 날카롭게 올라갈 수밖에 없는 눈매. 어머니의 눈매가 떠올라 나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 오영희 교수님 밑에서 글을 배우는 학생입니다.”

“허.”


내 대답에, 노인이 비아냥거렸다.


“그 애, 아직도 작가 키운답시고 날뛰나?”


그러자 나는 알 수 있었다.


“··· 예.”


자세히 보니, 노인은 오영희를 닮은 얼굴이었다.


“어디, 애비 얼굴에 먹칠하는 걸 좋아하는 딸 얼굴 좀 보려 했더니만.”


한국 문학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인물. 살아있는 도중에 문학관이 만들어진 인물이며, 동시에 오영희의 아버지이자, 내 소설의 모티브인 오영환이었다.


“도망친 거군?”


오영환이 뒷짐을 지며 내게 물었다.


“··· 그나저나, 넌 어른이 묻는데 대답도 안 하는 거냐?”


과제를 받으러 왔다 생긴 날벼락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나는 무심코 오영희의 책상에 올려진 내 책을 발견했다.


[멋진 인생]


왠지 그 위에 그려진 심청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 오영희 교수님은 도망친 게 아닙니다.”

“······?”


그래서 오영희의 자리에 앉은 오영환에게 대답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오영희 교수님, 정말 갑작스러운 회의가 생기신 겁니다. 그래서 저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생각한 건지, 오영환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래서 나는 먼저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마도 나 역시 겪어본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대답을 원하신 게 아니라는 거, 압니다.”

“······?”


그 순간, 혀를 차던 오영환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뭐라는 거냐? 영희가 널 이렇게 가르치더냐? 어른의 속내를 마음대로 파악하라고?”


오영환은 주눅이 들 만큼 매섭게 대답했다.


하지만, 고작 3개월을 오영희와 함께했더니 익숙해진 모양이다. 나는 오영환에게 되물었다.


“그럼, 이곳에 오신 이유는 무엇이십니까.”

“······.”

“연락은 하시고 오신 겁니까?”


오영환이 침묵했다.


“아니라면, 이곳엔 왜 오신 겁니까.”


잘 알고 있었다.


‘과거의 나는, 결국 끊어내지 못했지.’


칼로 무 베듯이 베어낼 수 없는 관계가 있었다.


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자신을 닮았으며, 베어내기엔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살점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 정말 화를 내고 싶어서 오신 겁니까?”


그래서, 온갖 이유를 붙여서라도 보고 싶은 관계가 있다. 함께하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지는 걸 알면서도 보고 싶은 관계가 있다.


“······.”


오영환은 내 질문에 침묵하기를 택했다. 침묵하던 오영환이 내게 말했다.


“영희는 지 같은 애들만 작가로 키울 생각이냐?”

“······.”

“나가라.”


손짓을 하며 오영환은 나를 내보냈다.


허리를 꾸벅 숙여 마지막 인사를 하려던 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선생님.”


오영환이 내 말에 고개를 들었다.


“이야기는 한 번 들어주시죠.”


그리고 나는 그 시선에 숨을 들이켰다. 분명, 회귀 전의 삶을 다 합쳐서도 오영환의 삶보단 짧다.


하지만, 잃은 적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 있었다.


“··· 정말 오영희 교수님이 선생님의 얼굴에 먹칠하길 원하시는지.”


세상의 모든 불행은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하지만 그 불행은 죽을 때까지 남는다.


끝맺지 않은 이야기가 영원히 흠으로 남는 것처럼.


“적어도, 한 번만 물어봐 주시길 바랍니다.”


오영환은 머지않아 병상에 눕게 된다.


그렇게 그렇다 할 마지막 유작 없이, 가장 아끼던 딸 오영희의 면회를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다가 임종을 맞이한다.


자신의 뜻을 거슬렀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오영환의 마지막 유언은 ‘영희를 보고 싶다’였다고 한다. 오영희가 수업에서 직접 내뱉은 적이 있으니, 틀린 건 아닐 터였다.


“정말, 돌이킬 수 없어지기 전에.”


그걸 아는 나는 난생처음 남에게 진심 어린 충고라는 걸 꺼냈다.



* * *



오영환이 가졌던 본래의 목표는 사라졌다.


오영희에게 화를 내고 사라진다는 목표는 흐지부지되었다. 어린놈의 말 때문이었다.


-돌이킬 수 없어지기 전에, 한 번 정도는, 들어주십시오.


운전대를 잡고 학교를 나서려던 오영환은 버르장머리 없던 어린놈의 말을 곱씹었다.


‘고작, 그 어린놈이 뭘 안다고···.’


주먹을 쥐며 분노를 삭이려 하던 오영환은 그 순간, 알아차렸다.


‘······.’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었다.


의문이었다.


어린놈의 말을 듣고 생긴 의문이었다.


사실 오영환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오영희의 배신이라 생각했다. 애비가 만들어준 길을 버리고, 제 길을 가는 오영희의 행동을 배신이라 여겼다.


제 얼굴에 오영희가 먹칠하고 싶어 난리가 났다 생각했을 뿐이다.


‘애비의 얼굴에 먹칠하고 싶은 딸이 아니라면, 왜 이런 책을···.’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멋진 인생>을 보았다.


수십 년 동안 펜을 잡아 생긴 굳은살이 보였다. 굳은살이 박인 자신의 손을 꾹 쥐고 있던 오영환이 손을 폈다.


“······.”


이유 모를 배신감에 끝까지 읽지 못했던 책이었다.


이야기를 한 번만 들어달라는 어린놈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려, 오영환은 그 책을 다시금 펼쳤다.


사락—


그러자, 글자가 움직였다.


오영환의 눈앞엔 무대가 펼쳐졌다.


심청이 제멋대로 ‘심청가’를 끝내고 내려온 무대 뒤였다.


[“애비 얼굴에 먹칠을 하려고, 심청가를 제멋대로 부른 거냐?!!”


그는 심청에게 화를 냈다. 심청의 멱살을 쥐고, 관객들을 가리키며 화를 냈다. 저분들을 모셔오기 위해 이 애비가 얼마나 납작 엎드려 기었는지, 아냐며 화를 냈다.]


심청의 아버지는 심청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심청을 위했지만, 방법을 몰라 어긋나 버린 아버지의 분노였다.


“······.”


그래서 책을 넘기던 오영환의 손은 점차 느려졌다.


심청은 그를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심청은 말했다.


어느새 책은 마지막 장이었다.


[“아부지요.”]


이야기의 끝은, 슬피 우는 심청의 한마디였다.


[“난, 미희로서 아부지를 뛰어넘고 싶었소.”]


오영환은 딸을 향하던 이유 모를 원망이 깡그리 사라지는 걸 깨달았다.


“······.”


그리고 눈앞엔, 제 딸이 서 있었다.


“아버지?”


연구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제 딸이 있었다. 오영희를 보던 오영환이 책을 내려놓았다.


“······.”


몇 년 만에 본 딸의 얼굴은 제 얼굴을 닮아가고 있었다. 눈가에 진 주름부터, 매서운 입매까지. 저를 가장 닮아 지극히도 아끼던 딸이었다.


그런 딸의 모습에 수많은 말이 머릿속을 오갔다.


왜 이딴 책을 썼나, 왜 이걸 쓰겠다고 미리 얘기하지 않았나, 왜 나를 뛰어넘고 싶다고 진작에 말하지 않았나, 왜···.


“잘 지냈냐.”


입술을 달싹거리던 오영환이 덧붙였다.


“애비 얼굴도 보지 않는 딸이 어디 있나.”


이 아버지를 보러 오지 않았느냐.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결국 그것이었다. 오영환이 마음속에 있던 말을 꺼냈다.


그 대답에, 오영희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오영환의 손에 들려 있던 <멋진 인생>을 발견했다.


“···그 책 때문에 오신 거 아니에요?”


오영희가 웃었다.


오영환이 쓴 두 개의 비평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영환의 비평에 틀린 말은 없었다.


[비평 ⎮ “문학의 퇴보: 젊은 세대가 잃어버린 깊이와 가치”]

[비평 ⎮ “한국 문학, 감성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 균형 잡힌 사유의 중요성”]


그곳에 담긴 건, 오롯이 오영환과 오영희의 이야기였다.


진상혁은 그것을 적었을 뿐이다.


“···왔었지.”


하지만 가장 사소한 개인은, 사회를 이루는 법이다. <멋진 인생>을 전부 읽은 오영환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유를 깨닫고 말았다.


“이젠, 됐다.”


“······?”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영희 너를 자꾸 보려 했는데···.”


사회는 개인의 경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인은 사회를 구성하는 조각이었다. 결국, 개인은 사회였다.


“듣고 싶은 말이 있어 너를 보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으니, 이젠, 됐다.”


즉, <멋진 인생>은 보편적인 이야기였다.


오영환이 그렇게 추구하던 보편적인 세상의 이야기였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될 이야기. 아주 일찍이거나, 아주 늦게거나.


오영환이 달라졌다.


“······.”


그 사실을 알아챈 오영희는 문 앞에 놓여 있던 포스트잇을 떠올렸다. 오영환을 이렇게 바꿔놓을 만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과제, 나중에 받아가겠습니다.]

[진상혁]


그 종이를 바라보던 오영희가 덤덤히 사실을 고했다.


오영희가 벽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포스트잇을 붙이며 말했다.


“아버지.”


“······?”


“그 <멋진 인생>, 제가 봐주긴 했지만, 제가 쓴 건 아니에요.”


당황한 오영환이 미간을 찡그렸다. 하지만 오영희는 덤덤히 포스트잇을 보며 말했다.


자식이기에 오랫동안 할 수 없었던 진실이었다.


“전, 아버지를 뛰어넘을 만한 재능이 없어요.”

“······.”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오영희가 내뱉었다.


“······.”


가장 자신을 닮은 딸이기에, 애써 오영환이 부정하고 있던 사실을 말했다.


“제가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이렇게라도 아버지를 뛰어넘고 싶었어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그런 오영희의 모습에, 오영환 역시 떠올렸다.


“정말, 오영희 교수님이 선생님의 얼굴에 먹칠하길 원하는지.”


어린놈의 얼굴이 가물거렸다.


최근에, 오영희가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친다는 그 어린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믿기지 않는 나이였다. 만약 그놈이 이 소설을 쓴 거라면, 그놈은 그야말로 천재였다.


자신도 가지지 못한 사유를 이른 나이에 가진, 그야말로 천재.


“그래.”


그러자 세월과 현실에 매몰되어 오영환이 잊고 있었던 호승심에 불이 붙었다. 오영환 역시 시대가 낳은 천재라 불리던 작가였다.


“어디 한번 뛰어넘어보거라.”


그래서, 오영환은 답했다.


“이 애비도 가만히 있진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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