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부터 시작하는 천재 작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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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크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02 17:13
최근연재일 :
2024.08.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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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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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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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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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6. 순수문학

DUMMY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오영환에게 한 원고가 도착했다.


아직 소설의 제목을 정하지 못했다는 쪽지가 붙어 있는 원고였다. 제목을 지어달라는 거냐며, 진상 이놈은 싹수가 없다며 노발대발하던 오영환은 무심코 원고를 넘겼다.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원고에 오영환은 그만 흠뻑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한 달, 그 글을 읽고 또 읽던 오영환은 깨달았다.


‘이 놈, 순수 문학을 쓴 건가?’


소설에 심취하다 보니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왜냐하면 오영환의 손에서 넘어가는 원고는 기존에 ‘진상’이 쓰던 글과는 달랐다.


‘벌써 썼다고?’


솔직히, 으레 젊은 놈들이 그렇듯, 대중 문학을 쓰면서 한성 신문에 인정받으려 할 줄 알았다. 굽히지 않고 드세게 치받아 올 거라 생각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후에야 순수문학을 쓸 줄 알았더니만.’


그런데, 진상은 달랐다.


진상은 자존심을 굽히고 순수문학을 써왔다.


그것도 오영환이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를. 그 점에서 진상에 대한 호감도가 아주 조금 회복되었다.


젊은 작가들치고는 하지 않는 도전이었다.


[집에 돈 보낼 때마다, 네 오라비와는 다르다며 쏟아지는 칭찬들도 좋았다.]


게다가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소설 속의 대사가 그 시절을 연상케 했다.


마치 그 시절을 살아본 놈이 쓴 이야기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진상이 ‘경애’처럼 느껴졌다.


‘진상, 이 놈, 이 시절에 살아보기라도 한 거야?’


그래서 이야기는 담백하게 느껴졌다.


경애의 심리는 한없이 우울한데도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그 시절에 살아 숨 쉬던 ‘경애’라는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덤덤히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때였다.


소설 속에서 ‘마카오 신사’라는 놈이 등장했다. 그리고 오영환은 거기서 직감했다.


[그 신사는 일본까지 유학 간 화가란다.]


진상이 어째서 자신에게 이 소설을 보냈는지.


[그 신사는 애순에게 빵을 주곤 했다.


경애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놈.’


주연이라기엔 악하고, 조연이라기엔 억척스럽다.


‘이런 인물도 쓸 줄 알아?’


‘경애’라는 인물은 오영환이 태어나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인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영환의 작품 세계는 언제나 둘로 양분되어 있었다.


철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


그리고 그 도련님이 보는 힘든 사람들.


오영환이 겪은 세계는 그랬다.


‘이놈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지?’


하지만 진상의 작품 세계는 달랐다. 오영환의 작품 세계에서 한층 더 나아갔다.


생각해 보면 진상의 소설은 늘 그랬다.


<멋진 인생>도, <악역>도, 이 소설까지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사회에서 외면받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썼다.


‘경애’처럼.


애순이 죽고, ‘마카오 신사’에게 ‘경애’가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에서 오영환은 확신했다.


[“난, 당신이 싫어요.”]


‘경애’가 ‘마카오 신사’를 향해 하는 말이었다.


‘애순’이 사라졌으니, ‘경애’의 다음 질투 대상은 ‘마카오 신사’였다. 결핍을 가지고 있는 ‘경애’가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결말이었다.


물질적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근본적인 감정.


[“사람 좋은 척하지 말아요. 빵만 주면 애순이를 도와준 것 같았나요? 그냥 한번 거지 적선하듯이 던져주면 당신 맘이 편했나요?”]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 같은 애들,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경애’의 대사는 오영환에게, 나아가 심사위원 모두에게 묻는 말이나 다름없었고, 오영환은 부끄러워졌다.


‘등단하라고 했더니···.’


제 좋을 대로 산 늙은 작가들의 콧대를 부러뜨릴 만한 작품을 들고 나왔다.


그 원로 작가라는 놈들도 쉬이 쓰지 못할 글이었다.


문학계에 생각보다 가난한 놈들이 적으니, 장담할 수 있었다. 어디서 부잣집 도련님 놀이하다가 글 하나 떠서 작가인 척, 교수인 척하는 놈들이 천지삐까리지 않던가.


[무제]


그러자, 진상 이놈이 왜 제목을 짓지 못한 이 글을 자신에게 보여줬는지 알 수 있었다.


‘힌트를 달라는 거군.’


심사위원은 오영환과 같은 문학계의 원로들이다. 그들을 혹하게 만들 만한 제목은 그 누구보다 제가 잘 안다.


하지만, 하나뿐인 귀한 손녀딸을 생각하자 순간 진상에 대한 짜증이 밀려들었다.


‘무릇 작가라면, 스스로 알아내야지···!!’


그래서, 오영환은 분노를 눌러 담아 꾹꾹 문자를 썼다.


[네가 알아서 해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진상혁이 자신의 문하생 제안을 거절한 것처럼.


“······.”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던 오영환은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느지막이 문자 하나를 추가했다.


[그렇지만···.]

[······.]


엄청난, 오영환의 용기였다.



* * *



12월의 연말이었다.


지이잉-


약속 장소에서 채연이를 기다리던 나에게 잊고 있었던 문자가 도착했다.


“···??”


그러니까 정확히는, 신춘문예까지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에라 모르겠다며 던져버린 소설 제목에 대한 문자였다.


[오영환 선생님]


나는 추위에 새빨갛게 변한 손으로 화면을 확인했다.


[네가 알아서 해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그리고 답장의 내용은 내 예상과 같았다.


‘후.’


역시나였다.


‘문하생 거절의 여파인가···?’


오영환은 제목을 쉽사리 지어주지 않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거참. 등단 요구는 본인이 하셨는데, 제목 지어주는 것쯤은 안 되나···.’


그랬다. 나는 아직도 이번 작품의 제목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쉽사리 정할 수가 없었다.


물론 작품은 완성했다.


하지만 제목도 작품의 일부가 아니던가. 도입부만큼이나 제목도 중요했다.


그래서 채연이와 의논하다 오영환의 이야기가 나와서, 오영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 할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해 보는 건 어때요?


게다가 왠지 오영환이 지어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 보낸 건데 말이다.


어쨌든 오영환의 인생이 담겨있긴 하니까.


‘거절인가.’


나는 휴대폰을 닫으며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직 시간이 남긴 했지만···’


아직 신춘문예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매년 초에 한 번씩 하는 거니, 급하게 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겨울이었다.


‘이제 슬슬 정해야 하는데.’


시간이 흘렀단 말이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전과 신청도 하고, 소설을 마무리하고, 그리고···


내년에 영화도 나올 예정이었다.


- 생각보다 빠른 거 아닙니까?

- 그게 어른들의 사정이랍니다. 투자자들 쪽에서 최대한 빨리 회수하라는 이야기가 많답니다.


고길진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 그래도 작가님이 손해 보는 건 없을 겁니다. 망하면 망하는 대로 원작이 좋다고 소문날 거고, 성공하면 홍보가 톡톡히 될 테니까요.


그 덕분인지 요즘 들어오는 인세도 다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다.


과거의 나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이잉-


“······?”


[그렇지만···.]

[좋은 글이었다.]


뒤늦게 날아온 오영환의 문자에 당황한 나는 한참 동안 오영환의 문자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과거와 달리 사람들도 내게 호의적이었다.


‘운 좋은 놈이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나라면 나를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연말이라 가족들끼리 나온 사람들도 있었고, 커플들도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채연이가 없었던 날의 나는 그랬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새빨갛게 변한 내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작은 손이었다.


쿵- 쿵-


심장이 뛰었다.


누군지 보지 않아도 알았다.


나에게 채연이는 그런 존재였다.


“왜 이렇게 손이 차가워요?”


그리고 역시나 채연이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잡아줘야 하나?”


코트를 입은 채연이가 새빨갛게 된 볼로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채연이는 분명 예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었다.


- 왜 이렇게 차가워?

- 내가 잡아줘야 하나?


문득 떠오른 그 기억에, 나는 채연이의 손을 꾹 잡았다.


그러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사실, 나는 운이 좋았던 게 아닐까.’


시궁창 같다고 생각한 그 과거에도.


어쩌면 나는 운이 좋았을지 모른다.


과거의 나는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지만, 채연이가 있던 시절은 즐거웠고, 행복했다.


바보처럼 고생하던 그 시절도, 퇴근 후 채연이를 만나면 행복했다.


그러니까 운이 좋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러자 문득 ‘경애’가 떠올랐다.


[“저도 그렇게 보내요. 아버지가 많이 아프셔서, 이번 달부터는 500원 남기고 보내기로 했어요!”]


같은 고통을 가진 ‘애순’의 한마디에 질투가 모조리 사라진 ‘경애’도 운이 좋았을지 모른다.


‘애순’을 만났기 때문이다.


왜냐면 ‘경애’는 어쩌면 ‘애순’을 만나 기뻤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운수 좋은 애라며 ‘애순’을 싫어하던 ‘경애’의 화가 한 번에 풀려버렸겠는가.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 같은 애들,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마카오 신사’에게 ‘우리 같은 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화를 냈을까.


어쩌면 ‘경애’는 ‘애순’을 만났으니 운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힘들었던 지난날의 삶에 대한 회한이 채연이 앞에서는 부질없어지는 것처럼.


“···? 무슨 일 있어요?”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보던 채연이가 손을 뻗어 내 얼굴을 감쌌다. 채연이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새빨갛게 변한 내 볼에 채연이가 웃었다.


“추워서 그런가?”


나는 환하게 웃는 채연이를 바라보다 답했다.


“··· 그냥,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어? 그 제목 고민하던 소설 말하는 거죠?”

“예. 맞아요.”

“그 소설의 제목이 제 얼굴 보고 떠오른 거예요?”

“네.”

“어···, 왜지?”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는 내 행동에 채연이의 눈초리가 새초롬해졌다.


“뭔데요? 뭐길래, 이렇게 뜸을···.”

“제목은···.”

“······?”


나는 내 뺨을 잡은 채연이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리며 제목을 말했다.


“‘운수 좋은 애’로 하고 싶습니다.”


채연이가 물었다.


“··· 왜요?”

“··· 어쩌면, 좋아했을 것 같아서요.”


내 대답에 채연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런 채연이를 향해 말했다.


“경애도 그 아이를 만나 저처럼 좋아했을 지 모르잖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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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순수문학 24.08.25 76 7 11쪽
24 6. 순수문학 24.08.24 89 4 13쪽
23 6. 순수문학 24.08.23 87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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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5. 천재 24.08.18 124 6 12쪽
17 5. 천재 +1 24.08.17 129 6 14쪽
16 4. 작가의 자질 24.08.16 123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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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4. 작가의 자질 24.08.12 162 7 13쪽
11 3. 진상 +1 24.08.11 163 11 13쪽
10 3. 진상 24.08.10 169 9 12쪽
9 3. 진상 24.08.09 175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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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 진상혁 24.08.04 226 1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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