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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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최근연재일 :
20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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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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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MMY

“아악!”

 

우악스러운 손길이 새빨간 머리채를 거칠게 잡았다. 쓰고 있던 안경은 어디론가 날아가버린지 오래였다.

 

“쥐새끼 같은 게, 잘도 도망을 쳤겠다.”

 

산적이 허리춤에서 투박한 칼을 빼들었다.

 

“원래는 물건만 뺏고 목숨은 살려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생각이 바뀌었어.”

 

남자가 중얼거리며 칼을 휘두르자, 머리채를 잡힌 소녀가 몸부림을 쳤다. 칼날이 빗나가 낡은 외투를 찢었다. 찢어진 외투가 펄럭이며 산 아래에 쓰러진 산적들의 시체 쪽으로 날아갔다. 하나같이 이상한 모양새였다.


난데없이 푹 꺼져버린 바닥에 끼어 허리가 부러진 자.

분명 손에 들고 있었을 도끼를 놓쳤는지 제 다리에 도끼날이 박힌 자.

내린 눈에 덮여있던 부러진 나무를 향해 돌진해 배가 관통된 자.

넘어진 곳에 하필이면 바위가 있어 머리가 깨진 자.


누군가 설산에서 불운한 죽음을 맞았다고 해도 네 명이 한꺼번에 이런 식으로 기이하게 죽는 것은 어딘가 이상했다.

 

“내가 죽인 게, 아니라고······.”

 

칼을 든 남자의 눈에 핏발이 섰다.

 

“입 닥쳐라, 마녀!”

 

소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어진 것은 차가운 칼날이 살갗을 파고드는 느낌 대신,

으직,

무언가가 으깨지는 소리, 그러니까······ 구체적으로는 사람 머리 같은 것이.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공포 속에서 소녀는 머리채를 쥐고 있던 남자의 손이 스르르 풀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풀려났다.

그럼에도 공포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눈을 뜨지 않으면 다음은 내 차례일지도 몰라.’

 

그럴 수는 없었다.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돌아왔던가.

 

‘이번엔 기필코, 전해야 해.’

 

그렇게 눈을 뜸과 동시에 머리 위쪽으로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왔다.

슈욱, 퍽.

마침내 겨우 뜬 눈앞에 보인 것은 머리의 형태가 일그러진 마지막 산적과, 그것을 붙잡고 있던 곰의 이마에 박힌 석궁이었다.

 

“헉,”

 

소녀는 숨을 들이키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쪽으로 겨누었던 석궁을 천천히 내리는 검은 머리의 소년이 있었다. 앳된 얼굴에 비해 지나치게 냉랭한 금빛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

 

소년은 곧장 두꺼운 겉옷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며 몸을 돌렸다.

 

“아, ······!”

 

그제야 소녀는 소년이 향하고 있는 거대한 성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앞을 가리던 눈발 탓에 내내 흐릿하게만 보였던, 앨버의 대공성이 마침내 눈앞에 있었다. 

 

“도착해버렸다······.”

 

그 사실을 깨닫자, 긴장이 풀리며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맑아져가는 하늘 탓에 눈이 부셨다.

햇빛이 눈을 찔러서인지 눈물이 줄줄 흐렀지만 닦을 힘도 없었다. 걸을 힘도 모두 바닥났다. 제멋대로 꺾이는 무릎을 원망하며 소녀는 점점 멀어져가는 소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같···이······.”

 

가 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하지만 긴장이 풀려서일까.

 

‘몸에 힘,이······.’

 

풀썩.

시야가 점차 어두워지며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와서······!’

 

“죽고 싶지···않······.”

 

처절한 중얼거림만을 남기고 소녀의 시야가 까맣게 닫혔다. 감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저벅저벅.

어느샌가 걸음을 멈추고 다가온 소년이 어이없다는 듯 짧게 혀를 찼다.

 

“다치기 전에 구해줬는데 왜 쓰러졌지.”

“놀라서 기절한 것 같은데요.”

“별······.”

 

떨떠름한 표정의 소년 곁에 선 기사가 몸을 굽히고 소녀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내버려 두면 죽을 텐데, 데려가야 하지 않을까요?”

 

소년의 시선이 소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에 닿았다. 남루한 행색과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화려한 목걸이였다. 일순 그의 금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알아서 해.”

 

무심한 듯 짜증이 서린 투로 대답하는 소년의 뒤에서 덩치 큰 기사가 붉은 머리 소녀를 등에 업고, 근처에 떨어진 안경을 주웠다. 천천히 성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그들의 뒤에서 육중한 문이 다시 닫혔다.

 

“그런데 도련님, 눈이 좀 그친 것 같지 않습니까?”

“착각이겠지.”

 

소년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눈이 갑자기 그칠 리가 없잖아.”


***


붉은 머리 메이드, 밀리는 불행했다.

정확히 말하면, 불행을 몰고 다녔다.

가장 첫 번째로, 그녀는 고아였다. 불행을 몰고 다니는 만큼 ‘정상적인’ 가정의 사랑받는 딸로 자라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고 모두들 생각했다. 밀리 본인은 한술 더 떠 본인의 불행이 부모에게 미쳐 진작에 죽은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 그녀는 빨간 머리였다.

알비오니아 제국의 사람들에게 빨간 머리는 불길함의 징조였다. 드물기도 했거니와, 오랜 시간 악명으로 역사에 기록된 이들이 죄다 붉은 머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말뚝에 박아 죽인 폭군, 성녀 행세를 하던 마녀, 교수형을 당한 해적, 반역을 꾀한 기사단장 등···

때문에 붉은 머리를 가진 사람과는 대체로 결혼도 교류도 꺼리는 사람이 많았다. 밀리는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어쩌면 부모가 제 머리색을 보고 자신을 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 번째로, 그녀는 한 집에서 세 달을 넘겨본 적이 없었다.

밀리는 길거리 고아치곤 불운하게도 예뻤지만, 다행히도 제법 똑똑했다. 덕분에 머릿수건으로 머리 색을 감추고 적당히 아둔하지만 싹싹하게 구는 소녀를 연기하면 하녀로 일하기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붉은 머리를 감춘다고 해서 그녀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운은 막을 수가 없었다. 꼭 그녀가 맡는 심부름에서는 잦은 마차 사고나 사기 거래가 일어났고, 혹은 거래자에게 변고가 닥치기도 했다. 부엌데기 하녀로 일하고 있으면 잠깐 눈을 뗀 사이 냄비에 불이 붙기 일쑤였고, 버섯이나 산나물에는 꼭 독성이 강한 것들이 운 나쁘게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불운의 중심에 선 밀리 본인만은 꼭 신체적 피해를 입지 않았다. 누구라도 그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선 꼭 머리를 감싼 수건이 눈치 없게도 스르르 미끄러져 버렸고 말이다.


―미안하지만, 저택을 나가줬으면 좋겠구나.

―주인님께서 퇴직금은 조금이나마 챙겨 주실 거야.

―재수 없게, 빨간 머리였잖아?

―오갈 데 없는 고아를 받아줬더니 처음부터 우릴 속였구나!


불행을 몰고 다니는 빨간 머리 메이드.

어느 순간에는 입소문이 퍼져 녹색 눈과 머릿수건만으로도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이 늘어났고, 그녀가 자라며 점점 아름다워지면서 우연한 불행 대신 추잡한 자격지심과 소유욕에 희생당하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일하는 메이드 주제에 감히 작은 주인인 내게 콧대를 세워?

―너, 내 아들에게 요사스러운 저주를 걸었지? 내가 봤다!


퇴직금을 받고 짐을 챙겨 인격적인 대우와 함께 저택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오래전 일. 마지막에는 요부나 마녀로 낙인찍혀 맨발로 쫓겨났다.


네 번째로, 그녀를 도와준 사람은 죽었다.

맨발로 쫓겨나 지저분한 차림으로 거리를 걷는 미소녀. 심지어 멀리서도 눈에 드는 풍성한 빨간 곱슬머리에 볼품없는 옷차림.

최악의 방식으로 악한 자들의 눈에 띌 위기의 그녀를 구해준 것은 마을에 혼자 살고 있던 노파였다.


―아가, 배고프지?


자신이 불행을 옮긴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는 곳마다 버림받고 손가락질당하는 것에 지친 소녀는 문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수프 향기에 이성을 붙잡을 수 없었다.


노파에게 원래 병이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밀리를 집에 들이고 하루가 다르게 노파의 몸이 쇠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 때문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건 싫어.’

 

그렇게 떠나기로 결심하고 노파 모르게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이제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노파, 캐서린이 밀리를 불렀다.

 

ㅡ애쓸 것 없다. 난 곧 죽으니까.

ㅡ그런 말씀 마세요!

ㅡ네가 화낸다고 내가 더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지. 그러니 내 부탁을 들어주렴.

ㅡ······뭔데요?

 

노파의 부탁은 언뜻 간단했다.


―이 목걸이를 북쪽의 가장 끝에 있는 영원한 겨울의 성에 가져다드리렴.

―나는 살아서 다시 그 땅을 밟지 못할 모양이다.


북쪽 가장 끝, 영원한 겨울의 성.

알비오니아 최북단, 앨버 영지를 다스리는 에인스워스 가문의 명성은 한때 대단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몇십 년 전부터 눈보라가 그치지 않기 시작하며 대공은 성 안에 칩거했고, 점차 그 세력도 약해지며 영지를 찾는 사람이 없게 되어 전설 비슷한 존재로 남게 되었다고 했다.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한 생각이었다.

사정사정해서 삯을 더 얹어주고 탄 마차는 사고가 났다.

혼자서 산을 넘으려니 늑대나 곰 같은 짐승을 맞닥뜨렸다.

짐승을 따돌리고 안심할 때쯤 산적을 만났다.

밀리는 그만 편해지고 싶었다.


―이거, 드릴게요! 가져가세요! 대신에 저는 놔주세요!


그 다음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목걸이를 받아든 산적들이 무어라 낄낄댔던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 직후 세상이 뒤집히더니······.


“미안하지만, 저택을 나가줬으면 좋겠구나.”


정신을 차려보니 과거로 돌아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다섯 번째로,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꾸만 불우한 어린 시절로 회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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