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최근연재일 :
2024.08.29 00: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323
추천수 :
0
글자수 :
113,128

작성
24.08.08 08:00
조회
13
추천
0
글자
11쪽

-

DUMMY

늘 일사불란하던 대공성의 사람들이 혼비백산한 얼굴로 소리를 치며 뛰어다녔다. 밀리는 멍하니 정지된 상태 그대로 정신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 모든 소리가 전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아득했다. 순간 현기증이 일어 눈을 감았다. 웃기게도 이곳에 온 뒤로 그녀를 괴롭히던 불안이 잠깐이나마 사라진 것이 느껴졌다.


“하하, 그러면 그렇지······.”


행운이라니, 그 얼마나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던가. 아수라장 속에서 익숙한 편안함을 느끼는 기분이 못내 서러웠다.

다시 시작된 눈보라가 밀리의 뺨을 스쳤다.

그것 봐, 밀리. 네겐 역시 불행이 어울린다고.

꼭 누가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

 

손님을 배웅하는 에인스워스 대공의 일정은 사고로 인해 취소되었다. 

 

“대공께서 머리를 다치셨다, 의원은, 티렐 선생은 어디있나?”

“예? 선생님께서는 단골 약재상의 납품 문제로 그저께 잠깐 영지를 비우셨습니다···!”

“젠장, 하필! 그럼 자네라도 따라오게.”

 

말에서 떨어진 대공이 머리를 다친 이후로 어떻게 해서 다시 성까지 돌아왔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시 손님방으로 돌아온 밀리는 침대 위에서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불안이 밀려왔다.


‘이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ㅡ미안하지만, 저택을 나가줬으면 좋겠구나.

ㅡ너, 내 아들에게 요사스러운 저주를 걸었지? 내가 봤다!

ㅡ오갈 데 없는 고아를 받아줬더니 처음부터 우릴 속였구나!

 

‘높은 확률로 그들은 대공의 사고가 내 탓이라며 나를 내쫓을 거야.’ 

‘아니? 아니면 혼란으로 인해 나 같은 게 있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렸을 지도 몰라.’

‘계속 여기 눌러앉아 있다간 다음엔 대공비나, 대공자가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는데······’

 

“···이대론 안 돼.”

 

밀리는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무슨 생각을 하든 결론은 하나 뿐이었다. 자신은 이곳에 있으면 안 됐다.


‘최대한 빨리 사라져주자.’


결심이 서니 행동은 빨랐다. 다행히 창밖을 보니 언제 치고 있었냐는 듯 눈보라는 그쳐있었다. 마리아가 챙겨준 음식 꾸러미는 크고 무거워서 이것을 들고 몰래 빠져나가기엔 무리였다. 결국 밀리는 꾸러미를 해체해 스튜가 들어있는 단지는 내버려두고 기름종이로 포장된 햄과 치즈, 빵이 들어있는 봉투만을 챙겨 다시 포장했다. 

서둘러 로브를 걸친 그녀는 머리카락이 모두 숨겨질 정도로 커다란 후드를 뒤집어 쓰고 손님방을 빠져나왔다. 모든 사람이 정신이 없었으므로 그 혼란을 틈타 뭔가 급한 일이 있는 체 하며 뛰어다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시 ‘국경의 요새들’ 에서 읽은 성의 또다른 출구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주방 쪽 문은 제외하고 제일 가까운 곳으로.

 

***


‘알비오니아 제국 북부의 국경을 대대로 지켜온 앨버 대공 알렉시스 에인스워스가 낙마 사고로 머리를 다쳐 중태에 빠졌다.’


제국민 중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면 열 명 중 열 명이 그를 비웃었을 것이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군마가 흥분한 이유 또한 터무니 없긴 마찬가지였는데, 나뭇가지에 쌓여있던 눈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놀란 것이라고 했다.

차라리 누가 지어낸 말이었다면 좋았을테지만, 그 광경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목도해버린 탓에 모두가 그 말도 안 되는 불행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사경을 헤매는 부친의 손을 꼭 쥐고 있는 아도니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


아도니스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는 대공의 곁에 앉아 잠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평소처럼 유쾌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난생 처음 보는 아버지의 위태로운 모습에 괴로워진 나머지 아도니스는 창밖으로 애써 시선을 돌렸다. 언제 눈보라가 몰아쳤냐는 듯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게 갠 뒤였다.

낙마 사고? 웃기는 소리다. 이것은 사고도 우연도 아니다. 이것은 저주다. 아도니스는 확신했다.

문득 무언가가 그의 시야에 이물질처럼 잡혔다. 눈빛이 가라앉았다. 망토를 뒤집어 쓴 누군가가 서쪽 샛길 쪽의 성곽 뒷문을 향해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 살피는 것처럼 두리번거리며 걸음을 빨리하는 것이 수상했다.

 

‘침입자인가?’

 

그는 조그만 석궁을 집어들고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지만, 몇 시간 전까지 불어왔던 눈보라 탓인지 공기는 몹시 차가웠다. 밀리는 쌓이다 만 눈을 밟으며 성곽에 난 작은 문을 향해 걸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선량했다. 때문에 그녀가 혼자 돌아가겠다고 하면 걱정하며 붙잡거나, 동행을 자처할 것이 뻔했다. 가뜩이나 대공이 날씨로 인해 사고를 당했으니 더했다.

하지만 그 사고의 원인은 분명 자신인 것에 밀리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때문에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나갈 셈이었다.

그렇게 성곽 문 앞에 다다른 순간,

슈욱. 탁.

뭔가가 정수리를 스쳐지나가 눈 앞의 벽에 박혔다. 화살이었다.

 

“꺅!?”

 

밀리는 깜짝 놀라 그자리에 서서 홱 뒤를 돌아보았다. 화살이 스쳐지나간 탓에 덮고 있던 후드 위쪽이 반으로 갈라져 벗겨져버렸다.

 

“아···?”

 

창가에서 그녀를 향해 석궁을 겨누고 있던 사람이 미간을 찌푸리며 팔을 내렸다. 아도니스 대공자였다.

대체 왜? 방금 전의 화살이 조금만 더 낮았더라면 자신은 죽었을 지도 모른다. 그가 찡그린 얼굴로 뭐라 소리치고 있었지만 머리가 얼어붙어서인지 듣고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공포에 질린 밀리의 몸이 벌벌 떨렸다.


"어, 얼른 도망쳐야 해······.“


그녀는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문이 등에 닿을 때까지.

 

***

 

‘뭐하는 계집애지?’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며 아도니스는 생각했다. 그 빨간 머리 계집이 성의 비상문으로 나온 것을 본 것이 벌써 두 번째다. 게다가 방금은 누가 봐도 좀도둑 같은 모습이었지 않은가? 그자리에서 죽이는 대신 적당히 겁만 주고 그 통로를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친절히 묻기까지 했음에도 그 빨간 머리는 대답 대신 성곽 바깥으로 도망을 쳐 버렸다. 뭔가 이상했다.

 

“헉, 헉······”

 

먹은 것도 없는데 달리려니 숨이 가빴다. 비상문 바깥으로 나오자 저만치 열린 성곽문 너머로 나부끼는 빨간 머리가 보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에 성곽 병사 중 아무나 불러 저 계집을 잡아오라고 할 셈이었다. 

 

“···뭐야,”

 

갑작스레 아도니스는 뼛속까지 한기가 드는 기분에 몸을 떨었다. 푸르던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고, 세찬 바람과 함께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또다시 눈보라였다. 그것도 마른하늘에 갑자기 생겨나버린. 아도니스는 저도 모르게 머뭇거렸다. 그러나 밀리는 개의치 않고 눈보라를 향해 계속 달려갔다.

미쳤군. 살인적인 날씨다. 북부에서는 이런 날씨에 절대 맨몸으로 산길에 들어서지 않는다. 죽을 게 뻔하니까.

죽일 생각까진 없었다. 당황한 나머지 아도니스는 소리쳤다.

 

“멈춰! 거기 서!”

 

하지만 그런 생각을 알 리 없는 밀리는 그저 달렸다.

젠장, 아도니스는 괜히 겁을 줬나 후회하며 별 수 없이 그녀를 뒤쫓았다.

 

***

 

갑자기 또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밀리는 이제 놀라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그녀를 따라다니는 불행 중에 어디 말이 되는 게 있기나 했던가? 국경을 수호하는 기사인 앨버 대공이 낙마를 하는 마당에.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저 허약한 도련님은 그녀를 쫓아올 수 없을 터였다. 그뿐인가, 눈보라가 앞을 가려서 석궁도 제대로 쏠 수 없을 게 뻔했다. 물론 눈길에서 고생을 하게 되긴 하겠지만, 산적에게 쫓기면서 올라왔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내려가는 쪽이 우스워 보일 지경이었다. 잘못돼서 죽어버린다고한들 과거로 되돌아가기밖에 더 할까.


“영영 죽어도 뭐, 좋겠네.”


지긋지긋한 불운에 자조적으로 내뱉던 그 때였다.

크르르릉···

사람 몸집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들개들이 침엽수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날씨에 짐승이 왜, 자꾸······”


방금 전까지 그냥 죽어버려도 괜찮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산에서 들개들에게 산채로 뜯어먹히는 것은 안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 보면 아직은 꽤 제정신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벌벌 떨며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책에서 이럴 때엔 천천히 움직이라고 했던 것을 되새기며······.

다행히 효과가 있는지 들개들은 빠르게 달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물러나는 속도만큼 기회를 보며 거리를 좁혀오고 있어 이대로라면 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과연 뒤로 물러나면서 성곽까지 가는 게 가능할까? 밀리는 자신이 없었다.

손에 쥔 종이봉투가 로브 안에서 부스럭거렸다.


‘여차하면 이걸 던져서······.’


생각하며 다시 침착하게 뒤로 걸음을 옮기는데, 칼바람을 뚫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빨간ㅡㅡ, ㅡ려?”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를 부르는 것 같았다. 우습게도 방금 전까진 달아나려고 안간힘을 썼음에도 이상하게 그 목소리를 듣자 안도감이 몰려왔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니까······.”


밀리는 작게 중얼거리며 들개들을 자극하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팔을 올려 O자를 만들었다. 그 와중에도 착실히 뒤로 나아가고 있어, 이제는 목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화살을 쏠 테니까, 그 화살까지만 유인해!”

 

멀리 떨어져 있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것을 알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엔 뒤돌아서 뛰어!”

 

또다시 팔로 O를 그렸다. 효과가 있을지 의심할 겨를 따윈 없었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 것도 잊어버렸다. 밀리는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신경을 곤두세워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들개 하나가 인내심이 바닥난 것처럼 앞발을 구르며 크게 위협적인 소리를 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괜찮을 거야.”


저번에도 날 도와줬잖아. 한 번 구했는데 두 번을 못 도와주겠어? 입술을 깨물며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있으니 마침내 툭, 하고 뭔가 발치에 걸렸다. 힐끗 내려다 보니 바닥에 꽂힌 화살이었다. 밀리는 고개를 들었다.

 

“뛰어!”

 

그리고 몸을 돌려 달렸다. 성곽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문에서 머리를 내민 검은 머리 소년이 석궁을 장전하며 그녀를를 소리쳐 불렀다. 뒤에서는 컹, 컹, 개처럼 짖으며 달려오는 들개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쿵, 쿵, 심장이 미칠 듯 뛰었다. 

 

“헉, 헉, 헉···”

 

쌓인 눈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아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창백한 얼굴에 박힌 황금빛 눈동자가 눈앞에 있었다.

 

“빨리!”

 

그의 곁을 스치며 뛰어들어가자, 그는 석궁을 내려놓고 곧바로 몸을 날려 문을 닫았다.

 

“살았,···”

 

크르르르르,

문틈 너머로 위협적인 이빨이 드러난 주둥이가 보였다.

 

“안 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4 - 24.08.29 6 0 10쪽
23 - 24.08.27 8 0 10쪽
22 - 24.08.26 13 0 10쪽
21 - 24.08.15 14 0 11쪽
20 - 24.08.14 16 0 10쪽
19 - 24.08.13 12 0 10쪽
18 - 24.08.13 16 0 9쪽
17 - 24.08.12 10 0 10쪽
16 - 24.08.12 17 0 10쪽
15 - 24.08.11 11 0 10쪽
14 - 24.08.11 14 0 10쪽
13 - 24.08.11 11 0 10쪽
12 - 24.08.10 11 0 10쪽
11 - 24.08.10 16 0 10쪽
10 - 24.08.10 14 0 10쪽
9 - 24.08.09 16 0 10쪽
8 - 24.08.09 9 0 11쪽
7 - 24.08.09 17 0 12쪽
6 - 24.08.08 12 0 12쪽
» - 24.08.08 14 0 11쪽
4 - 24.08.08 15 0 11쪽
3 - 24.08.07 17 0 15쪽
2 - 24.08.07 16 0 13쪽
1 - 24.08.07 19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