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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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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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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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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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MMY

“꽉 잡아. 놓치면 버리고 간다.”

 

그렇게 말한 그가 석궁을 쥔 쪽 팔을 밀리에게 내밀었다. 뭘 잡으라는 거지? 석궁을? 아니면 설마, 팔을······? 머뭇거리고 있으니 그가 서늘하게 빈정거렸다.

 

“쏴본 적도 없을 것 같은데, 설마 네게 내 무기를 맡길까.”

“······.”

 

할말이 없었다. 밀리는 그의 팔을 잡는 대신 소맷자락을 붙들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조심스레 안쪽으로 진입했다.

처음 들어올 때보다는 그래도 길의 폭이 조금 넓어져 있어 둘이서 걸어들어가는 것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퍽.

 

“아얏,”

“쯧.”

 

폭이 넓어진 대신 천장의 높이가 몹시도 불규칙해져있어 조금만 방심해도 머리를 부딪히기 십상이었다. 밀리는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천장에 부딪힌 머리를 문지르다가 급히 멈춰섰다. 하마터면 앞서가던 아도니스의 등에 부딪힐 뻔했다. 그녀는 그의 어깨 너머를 내다보며 물었다.

 

"뭐가··· 있나요?”

“바닥이 심상치가 않아. 조심해야겠어.”

 

그의 말에 바닥을 살펴보니, 그간 어두운 색의 바위였던 바닥에 군데군데 은은하게 푸른 빛을 띄는 반투명한 색이 섞여있었다.

 

“이건······ 얼음인가요?”

“보다시피.”

 

그는 대답하며 언제부턴가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로 얼음을 쿡쿡 찔러보았다. 대체로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쩌적.

 

"······공자님, 앞에!"

"······나도 알아. 가만히 있어."

 

어떤 것은 금이 가는가 싶더니 이내 쩍, 갈라지며 다리가 푹 빠질 정도로 깊은 틈을 만들기도 했다. 맹수의 아가리같은 그 틈을 보니 식은땀이 흘렀다.

어쩔 수 없이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는 것 같은 절차 덕에 자연스레 걸음이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문득 그가 쥐고 있는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붉은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보니 동백꽃 봉오리였다. 그러고보니 동백 가지를 좀 가져오려다가 이곳을 발견한 것까진 좋았는데, 정작 챙기려던 동백은 챙겨오지 못한 것을 뒤늦게 떠올렸다.

 

'이따가 달라고 해 봐도 괜찮을까? 아니면 나중에 버릴 때 주워온다던가···'

 

퍽.

 

"아얏!······헉,"

 

잡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낮은 천장이 나타나 어김없이 이마를 부딪혔다. 부었나 싶어 이마를 문지르는데, 어쩐지 발 밑의 감각이 섬찟했다. 반사적으로 아래를 쳐다봤다. 어둠에 익숙해진 덕인지 이내 바닥에 그러지는 불규칙한 실금이 보였다.

 

“위험해요!”

 

반사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여 되는대로 아도니스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깡마른 몸은 쉽게 끌려왔고, 바닥은 아까 전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쩍, 하며 갈라졌다. 방금 전까지 그가 딛고 서 있던 바닥은 완전히 꺼져버렸다.

 

“······”

“······”

 

급하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그를 품에 안은 꼴이나 다름 없었지만 붕괴가 더 일어날까 싶어 숨을 죽여야만 했다. 아도니스 또한 그것을 느꼈는지 불쾌함을 즉각 표출했을 법한데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쿵, 쿵. 내 것인지 그의 것인지 모를 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얼음이 쪼개지며 울리던 소음과 진동이 마침내 완전히 멎고 고요해져 바람 소리만이 남았다. 그제야 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만 놓지.”

“네···”

 

품에 안고 있던 온기가 사라지자 그 자리를 찬 바람이 메웠다. 엄청난 한기가 뼛속까지 사무치는 듯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지나치게 생소하고 살벌한 이 추위가, 어쩐지 위험하게 느껴졌다. 오래 있다가는 온기를 모두 빼앗기고 죽을 것처럼.

하지만 마냥 빨리 걸었다간 또 얼음 바닥이 무너질까 두려워, 최대한 정신을 똑바로 차리며 걷는 것 외엔 별 수가 없었다. 아도니스 또한 밀리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우리의 보폭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이 막연한 두려움에도 끝은 있었다. 좁았다가 낮아졌다가 하던 꼬불꼬불한 길 끝이 갈수록 환해지고 있었다. 출구가 있거나, 빛이 들어오는 틈이 있거나, 아니면 자체적으로 광을 내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저기 보세요, 점점 환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인 대공자의 걸음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간 것이 느껴졌다. 어둡고 좁은 길 끝에 마치 문처럼 난 작은 구멍으로 발을 디디자, 갑작스레 쏟아지는 빛에 눈이 부셨다.

 

"와······."

 

갑작스럽게 넓어진 내부에는 곳곳에 종유석과 석순처럼 뾰족하게 자란 고드름들이 가득했다. 어둑어둑한 동굴에서 푸른 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얼음들은 꼭 수정 같아 제법 장관이었다. 밀리는 할 수만 있다면 얼음 조각을 하나 꺾어다 기념품처럼 챙겨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수정과 달리 얼음은 실내에선 녹아버릴 테지만.

여러 차례 회귀한 탓에 그녀도 나름대로 산 햇수가 되는 편이지만 단언컨대 이 동굴은 살면서 본 광경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정말 아름답네요······.”

 

아름다운 풍경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아도니스조차도 눈을 크게 뜨고 안을 둘러보는 것을 보면 그에게도 제법 깊은 인상을 남긴 게 분명했다.

 

“동굴에는 들어왔으니, 이제 여신을 부를 차례로군.”

 

어쩌면 그렇게까지 깊은 인상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잠깐 동굴을 살펴보면서도 그는 이곳까지 온 목적을 잊지 않은 듯 했으므로. 다시금 목적을 상기한 밀리는 고민에 빠졌다.

 

“동굴 아무데서나 여신을 부르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목걸이의 빛이 저희를 깊숙한 곳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해서요. 그냥 동굴 안 아무 곳이기만 해도 괜찮았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안으로 깊이 들어올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싶고.”

“흠.”

 

그녀의 말이 제법 일리가 있다고 느껴졌는지 아도니스는 평소처럼 신랄하게 반박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목걸이를 감고 있는 손을 들어올렸다. 목걸이는 여전히 빛이 나고 있었다. 

다만 안쪽에서 빛을 반사하는 얼음들 탓에 정확히 어디서 더 빛이 강해지는지는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아도니스는 목걸이를 거두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걸로는 어렵겠는데."

"그렇겠네요."

 

맥이 탁 풀렸다. 다시 말해 이제부터는 목걸이에 마냥 의지할 수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어디일까.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축성 같은 의식이었다. 그러면 제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사제나 신상도 없으니 그걸 대체할 무언가도 필요할텐데······.

 

“······아!"

"말해."

"여기 어딘가에 눈이 쌓인 곳이 있다면 그곳일 것 같아요."

"설명해 봐."

 

밀리는 눈이 쌓인 곳을 찾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으며 말했다.

 

"어딘가에서 눈이 들어왔단 얘기니까요. 창문 같은 틈이나 구멍이 있는 거겠죠. 거기로 빛도 들어올 거고, 그리고······"

"그리고 여신도 들어온다? 구멍으로? 무슨 좀도둑이야, 여신이?"

"···그, 그런 게 아니라! 신성은 빛의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하늘에서 내려다본다고 여기니까요!"

"그냥 던진 말에 그렇게까지 구구절절 변명할 건 없는데."

"······."

 

밀리는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농담을 저렇게··· 그보다 농담 같은 걸 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고? 그녀의 당황스러운 심경은 안중에도 없는지 그는 태연하게도 동굴을 돌아다녔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니까. 축성을 하려면 제단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평평할 거고, 사제도 신상도 없으니 여신의 은총이 직접 내려야하니 빛이 드는 구멍이 있는 곳일테지. 저기, 저곳처럼······ 음?"

"아?"

 

아도니스는 대충 아무 곳이나 그럴듯하게 가리키다 순간 손을 멈췄다. 밀리 또한 대수롭지 않게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가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완벽하게 두 사람이 방금 막 이야기를 나눈 것과 일치하는 생김새의 바위가 거짓말처럼 놓여있었다. 

갓의 윗부분이 넓고 평평하며 기둥은 가늘고 긴 버섯 같은 형태의 암석이었다. 게다가 그 위에는 크림을 두껍게 올린 것처럼 눈이 쌓여있었다.

 

"······."

"······."

 

은은한 푸른 빛을 내뿜는 동굴 한가운데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있으니 더욱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동굴 위쪽 틈새에서 새어들어오는 빛이 먼지 등을 반사하며 길게 이어진 것이 보였다.

밀리는 그쪽으로 다가가 대공자가 묘지에서 했던 것처럼 눈을 털어냈다. 눈을 모두 털어내고 빛이 들어오는 틈을 올려다보니 해가 지지 않았음에도 걸려있는 반투명한 달이 보였다.

어쩐지 이곳이 맞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아도니스쪽을 돌아보았다. 그 역시 달을 보고는 그녀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묵묵히 손에 감아둔 목걸이를 풀기 시작했다.

금속이 찰랑이는 소리와 함께 그가 목걸이를 암석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하나 뽑더니 망설임 없이 자신의 손바닥을 가로로 그었다.

 

“······!”

 

뚝뚝, 선혈이 목걸이 위로 방울방울 떨어졌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밀리는 깜짝 놀라 숨을 삼켰다.


‘그러고보니 수호자의 피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있었지···’


자신이 직접 절차 내용을 전달해놓고 깜빡 잊어버리는 바람에 지나치게 놀란 것이 살짝 창피했다. 정작 당사자인 아도니스 본인은 통증 탓인지 미간을 살짝 찌푸린 것 외에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쩐지 그 위로 내리쬐는 빛이 더욱 강해진 것 같았다. 희망이 생겼기 때문일까. 손바닥에 낸 상처는 금세 잊어버린 듯, 그는 기대감에 찬 얼굴로 눈을 빛내며 밀리가 선 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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