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최근연재일 :
2024.08.29 00: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319
추천수 :
0
글자수 :
113,128

작성
24.08.08 16:00
조회
11
추천
0
글자
12쪽

-

DUMMY

밀리는 비명을 지르며 아도니스의 곁으로 다가가 같이 문을 밀었다. 하지만 들개들이 밀어대는 힘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죽는 건 둘째치고 성에 들개 무리가 침입하여 곁에 있는 대공자부터 시작해 다른 사람들까지 해칠 지도 몰랐다. 억울했다.

 

“왜, 왜 항상!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냐고···!”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쿵, 악에 받쳐 이마로 문을 들이받는데 문득 곁에 있던 아도니스가 이상할 정도로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봉투엔 뭐가 들었지?”

“네, 네?”

“네가 들어오면서 떨어뜨린 저 봉투 말이야. 뭐가 들었냐고.”

 

그제야 밀리의 눈에 나뒹굴고 있는 종이 봉투가 보였다. 그러고보니 저걸 미끼로 쓸 생각을 해 놓고 금세 잊어버리고 있었다. 밀리는 숨이 차오르는 와중에도 재빨리 대답했다.

 

“빵이랑, 햄이랑, 치즈요!”

“잘됐네. 잠깐만 막아봐.”

 

그가 문에서 손을 떼자 갑자기 엄청나게 버거워졌다. 힘을 주느라 몸에서 땀이 비오듯 났다.

 

“저, 못 버티겠는데요!?”

“버텨.”

 

그는 종이봉투에서 햄과 치즈를 꺼내고는 작게 뜯어낸 햄 조각을 문 틈으로 던졌다. 순간 문을 압박하는 느낌이 확연하게 주춤했다.

 

“좋아.”

 

치즈 한 조각도 뜯어 던지자 들개 한 마리가 더 떨어져나간 것 같았다. 효과를 확인한 그는 망설임없이 남은 치즈와 햄 덩어리를 석궁에 꽂은 뒤, 그대로 문틈을 겨누곤 들개들의 뒤쪽으로 발사했다.

슈욱. 퍽. 

그다지 멀리 날아가진 않았는지, 화살이 땅에 꽂히는 소리가 났다. 들개들이 일제히 그쪽을 향해 달려가는 소리가 이어졌다.

 

“됐···! 꺅!”

 

쿵! 온몸의 체중을 실어 문을 막고 있던 밀리는 문앞을 밀어대던 들개들이 사라지자 중심을 잃고 몸통 박치기로 문을 닫아버린 꼴이 됐다. 

 

“하아, 하아, 하아······”


살았다······.

긴장이 풀리니 문에 기댄 몸이 스르르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닥에 쌓인 눈 때문에 엉덩이가 온통 젖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일어날 기운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 아도니스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인근의 조경용 바위 위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피해다녀서 민폐를 끼치지 않는 방법은 더이상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한숨을 쉬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

“너, 뭐야.”

“예···?”

 

어느새 몸을 일으킨 아도니스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뭐냐고, 너······”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는데······”

“눈이 있으면 보라고.”

 

그가 신경질을 내며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하늘만이···


“···어?”

“대체 넌 뭐길래 성 밖으로 나가면 눈보라가 치고, 들어오면 멈추는 거야?”

“······.”


그러나 밀리 자신도 답을 알지 못했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인근 영지에 볼일이 있어 운 나쁘게 자리를 비웠던 에인스워스 가문의 주치의, 티렐은 비보를 듣고 서둘러 돌아왔다.

 

“외상의 처치는 완료했습니다. 다만······”

 

쓰러진 에인스워스 대공의 상태를 살핀 뒤 환부에 적절한 약초와 연고를 바른 티렐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문제는 머리 안쪽입니다. 어떤 손상이 있는지 열어서 확인해 볼 수도 없으니······.”

“그럼, 뭘 어떡해야 합니까?”

“안정적인 환경에서 깨어나시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똑같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공비 안나그레타는 축 늘어진 남편의 손을 꽉 쥐었다.

 

“얼마나···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오래는 어려울 겁니다.”

 

티렐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생명의 징후가 너무나 약하십니다. 호흡도, 맥박도 모두··· 점점 약해지고 계세요.”

“그러면 이렇게 손 놓고 있는 것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단 말입니까?”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전하의 상태는 이미 의학의 영역 바깥입니다. 신성력에 기대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신성력은 교회의 고위 성직자만이 다룰 수 있는 신의 힘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대주교 이상의 인물이 신성력을 다룰 수 있었다. 문제는 대주교 이상의 사제들은 마을마다 있는 작은 신전이 아닌, 지역 단위의 대형 교구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영지에서 가장 가까운 교구는 쉬지 않고 말을 달려도 꼬박 3일이 걸리는 거리였다.

 

“아무것도 섭취하지 못하고 계시니··· 일주일을 넘기는 것은 어려울 겁니다.”

“전하의 몸 상태로 북부 교구까지 가는 게 가능할까요?”

“무리로 보입니다.”

 

머리를 다쳐 쓰러진 사람을 흔들리는 마차에 태워 설산을 지나 전속력으로 타지까지 데려간다니. 가다가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새삼 놀랍지도 않아 모두들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현재로선 북부 대주교를 이곳으로 모셔오는 방법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군.”

“유감스럽게도, 그렇습니다.”

“시도는 해 봐야겠지. 채비하게, 로엔그린 경. 데려갈 인선은 자네가 직접 고르고.”

“예, 전하.”

 

안나그레타는 수척해진 얼굴로 서재로 향해 북부 교구에 보내는 편지를 적어 가장 빠른 기사, 로엔그린에게 건넸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다가 문득 크리스탈 함에 보관된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우로라의 별.

여신이 자신의 첫 신자에게 제국과 함께 내린 보상.

그저 화려할 뿐인 그 장신구에 전해 내려오는 또다른 전설을 떠올리던 대공비는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지.”

 

***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밀리는 관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지 않았다. 자신과 기이한 기상 현상의 접점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성의 비상통로를 사용한 것이 내가 본 것만 벌써 두 번째야. 서쪽 샛길은 문도 벽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어두어 외부인은 찾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누가 널 이리 보냈지?”

“저희 할머니요······.”

 

아도니스 또한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두 사람은 서쪽 성곽문에서 들개와의 사투를 벌인 직후, 정문에서도 똑같은 실험을 하고 온 참이었다. 그가 지켜보고, 그녀는 성곽 바깥으로 걸어나갔다는 뜻이다. 정말로 5분도 안 되어 하늘은 시커매졌고,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해 밀리는 머리카락에 온통 눈이 엉겨붙은 채로 허겁지겁 성 안으로 뛰어 들어와야 했다. 그러자 하늘이 화창해진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거짓말하지 말고. 누가 보냈냐고 묻지 않았나?”

“진짜 저희 할머니라니까요···?!”

“그걸 지금 나더러 믿으라고?”

 

아도니스는 캐서린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지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현재 다른 것에 열중한 밀리는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에게 불행을 안기는 무언가는 그녀가 대공성 바깥으로 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에이든?”

 

그렇게 2층 복도로 올라온 두 사람은 서재 쪽에서 나오던 대공비와 주치의, 그리고 기사 한 명과 마주쳤다.

그들은 엉망이 된 두 사람의 몰골을 보고 약간 놀란 듯했지만, 기사는 갈 길이 바쁘다는 듯 이내 대공비와 대공자에게 허리를 숙여보였다.

 

“곧장 출발하겠습니다.”

“갑자기? 어딜 가는 건?”

 

아도니스의 물음에 안나그레타는 손을 내저어 기사를 보내고는 수심에 찬 목소리로 대신 대답했다.

 

“북부 지역 교구로 간단다, 에이든. 로엔그린 경이 네 아버지를 도와주실 대주교님을 모셔올 거야.”

“그게 무슨······ 티렐 선생이 돌아왔는데도 방법이 없단 말씀이세요?”

“송구합니다만 도련님, 전하의 현재 상태로는 신성력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런, 북부 교구는 아무리 로엔그린 경이라도 3일은 걸리는 곳이잖아요······!”

 

망연자실한 아도니스에게 다가온 안나그레타가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언제나처럼 따뜻했지만, 불안정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져 아도니스는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대주교에게 신성력 치유를 위해 방문을 요청하는 전갈을 적어 보내는 것 정도였단다······. 로엔그린 경을 믿어보자. 그가 늦지 않게 돌아오기를 기도하자꾸나.”

“······네, 어머니.”

 

죽어가는 가족을 둔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밀리 역시 침통한 표정으로 그들 모자의 곁을 지켰다. 그런데 문득 반짝이는 무언가가 그녀의 시야에 걸렸다.

 

‘......?’

 

살짝 고개를 들어보니 대공비가 나온 서재 안쪽, 투명한 크리스탈 함 안에서 밀리가 가져온 목걸이가 묘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그 빛을 보는 순간 무언가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그럼 어머니, 좀 쉬세요. 저는 아버지를 보고 올라가겠습니다.”

“그러렴.”

 

때마침 아도니스가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밀리는 아도니스를 향해 작게, 하지만 아직 멀리 떨어지지 않은 대공비도 들을 수 있게끔 물었다.

 

“공자님, 대공 전하 말인데······”

“말해.”

“신성력을 지닌 치유의 보물을 쓰면 되지 않나요?”

 

돌아서던 안나그레타의 발걸음이 얼마 가지도 못하고 멈췄다. 반면 아도니스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하, 하고 이해했다는 듯 짧게 실소했다.


“갑자기 웬 보물 타령인가 했더니, 그쪽이었나?”

“그쪽···이요?”

“은총의 성유물이 사실 치유의 잔이고 가문에서 감추고 있다는 개소릴 주장하는 것들 말이야.”

“······.”


밀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려던 말을 아도니스가 선수쳐버린 탓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어쨌든 미처 숨기지 못한 그녀의 표정을 포착한 아도니스의 눈빛에서 약간이나마 누그러졌던 적대감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하자, 밀리는 황급히 정돈되지 않은 말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비슷하긴 한데 조금 달라요. 일부러 감추셨다는 말은 처음 들어요.”

“그럼 네가 들은 건 뭔데.”

“그게, 그, 보물의 진정한 모습은 사실 봉인, 되었다고 하던데······.”

“뭐?”

“그···으래서 공작가 분들도 잘 모르실 거라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요······.”

“하, 무슨 말도 안 되는······ 애초에 그러면 그걸 네가 아는 건 말이 되나? 개수작도 정도껏···”


명확히 아는 이야기를 어디서 주워들은 것처럼 말하자니 왠지 모르게 찔려서 저도 모르게 쭈뼛거렸다. 그의 말이 맞았다. 공작가 사람들도 잘 모를 거라는 얘기를 생판 남인 자기가 아는 건 말이 되나? 앞뒤가 맞지도 않는 말을 내뱉으며 자괴감에 빠져있는데,


“바깥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구나.”


돌아보니 아도니스의 인사를 받고 복도 반대편으로 향하던 대공비가 서재 문간에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가 들어오라는 듯 우아하게 손짓했다.


“어머니?”

“들어가서 마저 이야기할까.”


아도니스는 밀리의 이야기를 단칼에 자르지 않고 발언권을 주는 것에 납득하지 못한 듯 했지만, 밀리는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알고 있다.’


밀리는 불만스럽지만 고분고분한 아도니스의 뒤를 따라 식은땀을 흘리며 대공비의 서재로 들어섰다.

이 이야기를 모르는 척 꺼낸 것이 잘한 일인지, 주제넘은 짓인지는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한 채였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채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4 - 24.08.29 6 0 10쪽
23 - 24.08.27 8 0 10쪽
22 - 24.08.26 13 0 10쪽
21 - 24.08.15 14 0 11쪽
20 - 24.08.14 16 0 10쪽
19 - 24.08.13 11 0 10쪽
18 - 24.08.13 16 0 9쪽
17 - 24.08.12 10 0 10쪽
16 - 24.08.12 17 0 10쪽
15 - 24.08.11 11 0 10쪽
14 - 24.08.11 14 0 10쪽
13 - 24.08.11 11 0 10쪽
12 - 24.08.10 11 0 10쪽
11 - 24.08.10 16 0 10쪽
10 - 24.08.10 14 0 10쪽
9 - 24.08.09 16 0 10쪽
8 - 24.08.09 9 0 11쪽
7 - 24.08.09 16 0 12쪽
» - 24.08.08 12 0 12쪽
5 - 24.08.08 13 0 11쪽
4 - 24.08.08 15 0 11쪽
3 - 24.08.07 17 0 15쪽
2 - 24.08.07 16 0 13쪽
1 - 24.08.07 18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