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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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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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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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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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MMY

“다음은?”

“어, 여신께 빌어야 한다고 했으니까······ 기도를 올리면 되지 않을까요?”

 

솔직히 그녀도 잘은 몰랐다. 하지만 인간이 신을 부르는 방법이라고 생각나는 것은 기도 뿐이었으니까. 다만 아도니스에게는 그것이 충분한 답이 되었는지, 그는 그대로 저녁달이 보이는 천장을 향해 무릎을 꿇고는 피가 흐르는 손을 맞잡았다.

밀리는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피가 팔꿈치를 타고 흘러 검푸른 바닥을 장식하는 것이 신경쓰였다. 퍼뜩 무언가 머리에 스친 그녀는 최대한 기도에 방해되지 않게끔 소리 죽여 가방을 뒤적거렸다.

 

‘있다!’

 

하얀 종이에 싸둔 것은 각종 약초였다. 개중에는 타박상에 쓰는 것도 있었다. 밀리는 조용히 그것을 손바닥으로 눌러 짓이겼다.

 

‘붕대. 붕대로 쓸만한 게······.’

 

아쉽게도 가방에 붕대는 들어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뭔가 걸친 것들을 활용해야 할 것 같았다.

입고 있는 치마와 겉옷 등의 붕대 활용 가능성을 살펴보던 밀리의 눈에 띈 것은 달랑거리는 머리 리본이었다. 곱슬머리에 숱도 많은 그녀의 머리카락은 풀어두면 감당하기도 어렵고, 사람들에게 쉽게 감추기 위해서라도 늘 땋아두곤 했지만 이 상황에선 그냥 머리를 푸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괜히 옷을 찢는 소리로 기도를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목덜미로 바람에 새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리를 풀고 리본 안쪽에 짓이긴 약초를 바른 밀리는 아도니스에게로 다가갔다. 기도를 방해했다간 또 무어라 핀잔을 들을 게 뻔해 끝날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의 옆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리본의 길이를 가늠하고 있는데,

 

“뭐 하는 거지?”

 

바로 옆에서 갑작스럽게 들린 음성에 밀리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새 기도를 마쳤는지 눈을 뜬 아도니스가 밀리와 리본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가 움직이자 풀어헤친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도 덩달아 움직였다. 아도니스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넘실대는 곱슬머리를 힐끗 쳐다봤다. 정말 엉망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손 주세요. 상처 내셨잖아요."

"상처? 아."

 

빻은 약초가 묻은 붕대를 보여주자 대공자는 그제야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유난 떨 것 없어. 별 것 아니야."

"지혈이랑 소독을 해서 나쁠 건 없을 거예요."

"안 죽으니까 신경 꺼."

"생명에 지장이야 없겠죠. 그래도 아프잖아요."

"······."


그 침묵에 탄력받은 밀리는 쐐기를 박듯 한번 더 말했다.

 

"손 주세요."

"······귀찮게."

 

그는 결국 다친 손바닥을 내밀었고, 밀리는 조심조심 약초 부분이 상처에 닿게끔 하여 붕대를 감았다. 상처가 쓰라린지 약간 움찔거렸지만 모른척하고 붕대를 감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야."

“방금 건 실수였어요. 죄송해요.”

 

그의 눈빛에서 살기가 나오는 것 같아 성의없이 사과하고 시선을 돌리는 순간,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무슨··· 헉,”

 

그리고 이내 깜짝 놀라 입을 막았다.

 

“또 뭐야?”

“고, 공자님. 저기··· 목걸이가.”

 

암석 위에 올려둔 목걸이는 온데간데 없었다. 

남아있는 것은 목걸이에 박혀있던 보석이 표면에 장식된 황금색 잔 뿐이었다.

 

“정말로 잔이··· 됐잖아.”

 

아도니스도 약간 넋을 잃은 듯 했다. 성배의 존재를 믿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누구보다 간절했기에 여기까지 왔지만, 그것이 실감나지 않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멍한 낯을 보이는 그의 앞에서 밀리는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했다. 목걸이가 잔으로 변했다는 점에서 신비한 물건이라는 점은 맞겠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효과를 갖추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랬다면 괜히 시간 낭비를 한 셈이 될 거고 죽어가는 대공을 살리기 위해 다른 방법을 더 빠르게 알아봐야 할 것이다.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 직접 시험해보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액체를 담기만 하면 어떤 상처나 병이든 낫게 하는 성수로 바꿔준다고 했으니, 액체를 담아 마셔보고 상처가 낫는지 확인하면······

 

“줘 봐.”

“!”

 

갑작스레 허리춤에 손을 뻗어온 아도니스 때문에 밀리는 깜짝 놀라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 그녀가 놀라건 말건 신경조차 쓰지 않는 기색으로 그는 밀리의 허리춤에 달린 단지의 뚜껑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녀처럼 성배의 효능을 시험해볼 생각이 든 듯 했다. 하지만 그건 아까 스프를 담아왔던 통이라 아쉽게도 비워진지 오래였다.

 

“뭐야, 비었잖아.”

“수프는 아까 다 먹었으니까요······.”

“아이씨.”

“이거라도 괜찮으시면.”

 

다행히 밀리에게는 다른 물병이 있었다. 아도니스는 머쓱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수프 냄새만 남은 빈 병을 돌려주고 그녀가 내민 물병을 받아들었다. 안에 든 것은 이제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차였다. 담아올 땐 따뜻해서 마개를 열기만 해도 김이 났는데, 이젠 김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병을 기울여 옅은 갈색이 나는 차를 잔 안에 붓는 아도니스를 밀리는 지켜보았다. 슬쩍 잔 안을 들여다 보아도 변화가 발생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성수가 되긴 한 걸까? 왠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밀리는 저도 모르게 그를 쳐다보았지만 잔을 기울이는 태도에 망설임은 없었다.

그러던 중 그의 손에 감긴 천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 그러고보면 방금 전에 피를 내는 과정에서 손바닥에 상처를 냈었다.

 

“마셔.”

“저도요?”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는데.”

“그렇지만 저는 다친 데가 없는··· 아야!”

 

갑작스럽게 무릎을 찔러 오는 손길에 밀리는 비명을 질렀다. 

 

“다친 데가 없다고?”

“있었네요······”

 

넘어질 때 무릎이 까진 것도 모르고 돌아다닌 모양이었다. 그녀가 고통에 울상을 짓는 것을 본 아도니스는 코웃음을 치더니 밀리에게 잔을 내밀었다. 안에는 그가 마시고 남은 차가 들어있었다.

 

“너도 마셔, 없어지나 보게.”

“···감사합니다.”

 

친절한 건지 아닌건지, 참 복잡한 사람이었다.

아도니스는 그렇게 밀리에게 잔을 건네고는 먼저 저벅저벅 걸어나갔다. 잔이 차가워서인지 차도 완전히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맛은 늘 마시던 맛과 별반 다르지 않아 한번에 입 안에 털어넣은 밀리는 가방 안에 잔을 챙긴 뒤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그가 손끝으로 찌른 무릎의 쓰라림은 아직도 좀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어떤 상처든 치료해준다는 효능은 믿을만한 게 못 되었던 걸까. 

그의 손바닥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을테니, 눈치챈 게 분명했다. 빠르게 귀환해야만 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

 

다행히 동굴을 나오는 것은 들어오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었다. 갑자기 통로의 높낮이나 폭이 달라지는 일도 없었고, 느닷없이 바닥이 무너지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산의 아래쪽으로 향하는 길이다보니 조금 더 사람이 드나든 티가 나는 듯 했다. 물론 그것도 상대적인 흔적일 뿐 한참 전부터 사람의 발길이 끊긴 것 같지는 했지만.

 

문제는 동굴을 빠져나온 뒤부터였다. 날이 어둑어둑했다. 해가 지고 있었던 것이다.

 

“······.”

“······.”

 

혹독한 추위를 자랑하는 제국 최북단의 설산에서 밤을 맞이하는 것은 죽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대공성까지 올라오는데 걸렸던 시간이 두세 시간쯤 되지 않았던가. 그 사이에 해가 완전히 져 버릴 것은 확실했다.

 

“······역시 노숙은,”

“얼어 죽지.”

“그렇죠?”

“그냥 빨리 내려가는 수밖엔 없어. 올라오는 것보단 빠르겠지. 뒤처지지 마.”

“네에.”

 

 최악의 선택지 중 차악을 선택한 둘은 최대한 빠르게 산을 내려갔다. 다행히 동굴 입구에서 조금 더 내려가니 낯익은 갈림길이 보였다. 노을빛이던 하늘이 점점 보라색과 남색으로 물들고 있었지만 여기부터는 왔던 길이라는 사실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하아, 하······”

 

내려가는 걸음에 힘이 실린 밀리와 다르게 아도니스의 숨은 애써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을 정도로 거칠어져 있었다. 체구에 비해 두툼한 외투는 보온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장시간 걸치고 있기엔 무거워서 몸에 무리를 준게 틀림없었다. 살은 커녕 근육조차 없는 깡마른 체구이니, 악으로 버티는 데도 한계가 온 것 같았다. 몸을 조금 더 따뜻하게 하면 괜찮아질까 싶어 근처의 나뭇가지들을 저도 모르게 힐끔거리자 그가 밀리를 쏘아보았다.

 

“정신 사납게 왜 그렇게 두리번거려?”

“아, 횃불 같은 게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고요.”

“횃불은 왜.”

“길이 어둡기도 하고, 음. 짐승이 나타나면 호신용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틀린 말은 아닌데, 애초에 짐승의 표적이 되지 않는 게 제일 좋지 않나. 아니면 피하는 것보다 싸우는 데 더 자신 있어?”

“······그건 아니죠.”

 

횃불에서 온기를 받는 방법도 실패하니 밀리는 더 이상 권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그가, 아니면 자신이 성에 도착하기 전에 졸도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수밖에는.

 

하지만 아도니스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것과 맞물려서, 걸음걸이 역시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똑바로 걸으려고 하면 확연히 느려져 뒤처지기 일쑤였고, 다시 보폭을 맞춰 빠르게 걸어올 때면 휘청거렸다. 역시 체력에 한계가 온 게 분명했다. 부축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걸 허락해 줄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제일 신경쓰였다. 어쩌지.

역시, 이 방법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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