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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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최근연재일 :
20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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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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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MMY

표정 탓인지 얼굴의 분위기 탓인지 별로 호의적인 시선은 아니었다. 눈빛만으로 축객령을 내릴 수 있다면 꼭 이런 느낌일 것이라고 밀리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태연한 척 최대한 빠른 속도로 쟁반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인사와 함께 종종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아니, 나서려고 했다.


“다 먹은 식기는 내가 가져다 놓으면 되는 건가?”

“네?”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가려다 말고 멈춰선 밀리가 아도니스 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빵을 찢어 수프에 넣는 동작 그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평온하게 말했다.


“가려는 것 아냐? 그럼 다 먹고 나서 남은 식기는 내가 직접 가져다 놓으면 되냐고.”

“······아,”


이 질문에서 네 그렇습니다! 라고 답변을 할 사람이라면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녀는 말의 의도를 눈치채고 다시 문에서 멀어져 적당한 거리의 벽 쪽에 섰다.


“죄송합니다! 다 드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가 가지고 내려가겠습니다.”

“흠.”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아도니스는 식사를 시작했다.



지루할 정도로 특별할 것 없는 식사 시간이 지나가고,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느긋하게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밀리가 그의 방에서 가지고 나온 말끔한 식기는 상당히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웬일이야, 정말로 다 드셨네······."

"혹시 밀리 네가 오는 길에 남은 음식 먹은 건 아니지···?"

"······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양파 혼자 깐다는 말이나 지켜."

"이럴 수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양파 꾸러미 쪽으로 향하는 리사의 모습을 보며 에이미와 루시가 웃었다.




그리고 다음 날도, 밀리는 아도니스의 식사를 챙기게 되었다. 오늘도 귀족 도련님의 식사가 맞나 싶은 반 그릇 정도의 죽과 말린 과일과 견과류 정도가 전부였다.

그 외에는 달라진 점이 없었다. 벽에 붙어서 그의 식사가 끝나길 기다리는 그녀에게 그가 말을 걸어왔다는 점까지 그대로.

 

“계속 그러고 서 있을거야?”

“······?”

 

꼭 서 있는 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방까지 식사를 갖다주고, 식사가 끝난 뒤의 식기를 가지고 부엌으로 돌아가는 업무 외의 지시를 받지 못했던지라 밀리는 혼란스러워 눈만 꿈뻑거리다 뒤늦게 물었다.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니. 밥 먹는데 시킬 일이 뭐가 있어, 먹여달라고 할 것도 아니고.”

 

그럼 뭔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삼키고 있자 그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레 말했다.

 

“너라면 밥 먹는 내내 누가 서서 지켜보고 있는데 넘어가겠어?”

“아, 그건··· 그건 그렇죠! 그러면 바깥에서 대기할까요?”

“그렇게까지 할 건 없고.”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창문 근처에 놓인 의자를 엄지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서 있으니까 신경 쓰여. 눈에 안 띄게 앉아 있어.”

“알겠습니다······.”

 

엉덩이에 닿는 부분은 고급 실크로 감싸고 푹신한 양털 솜을 채운 의자는 몹시도 푹신했다.

그렇게 식사 담당 이틀만에 밀리는 앉아서 아도니스가 식사를 마치는 것을 기다리게 되었다.


*

 

셋째 날은 유독 힘들었던만큼 의자에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게 그리 기꺼울 수 없었다. 아침에 방에서 쥐를 발견해 사투를 벌이느라 이른 오전의 사용인 식사시간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고프다.’

 

하도 난리를 쳐댄 덕에 갈증이 나 마신 물 한 잔은 가뜩이나 빈 속을 더욱 깔끔하게 청소해버려 허기를 심화시킬 뿐이었다. 물을 괜히 마셨다고 후회하며 동시에 요동치는 배가 큰 소리를 내지 않기만을 바랐지만, 세상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꼬르륵.

 

“······.”

“······.”

 

그리고 또 꼬르르륵.

젠장. 처음은 어떻게 모른 척 넘겨보려 했건만, 두 번째 소리는 여봐란듯이 더 크게 방을 울려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준이 아니었다.

창피함을 감추지 못한 (사실 타인이 보기에 그녀는 제법 웃기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밀리는 저도 모르게 아도니스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한쪽 뿐이었지만.

 

“굶었냐?”

“······그게, 네.”

“왜, 뭐 잘못했어?”

 

들어온지 얼마 안 된 걸로 아는데 벌써 사고를 쳤어? 묘하게 비웃듯 덧붙이는 그 말투가 약이 올랐다. 약간 욱했지만 꾹 참고나니 한숨이 밀려왔다.

 

“오전에 방에서 쥐가 나왔어요. 그래서 그걸 잡다보니, 식사 시간을 못 맞췄고요.”

“아.”

 

짧은 납득을 한 그는 기대한 것보다 재미가 없다는 듯 반응하며 노골적으로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도 밀리는 내심 저 악의적인 농담과 질문이 더 이어지지 않아 안도했다.

그렇게 한참 식사를 이어나가던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받아.”

“네? 아!”

 

몸이 지친 탓인지 모르게 넋을 놓고 있던 밀리는 갑작스러운 부름에 움찔거렸다. 정신을 차리니 그가 던져준 빵을 가까스로 낚아챈 뒤였다.

 

“먹어.”

“······감사합니다, 공자님!”

 

좀전의 시비와도 같은 대화로 깎아먹었던 호감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성격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참 헷갈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밀리는 빵을 베어물었다. 호밀이 들어간 빵은 특유의 고소함 덕에 매력이 있었지만, 수프나 우유 없이 그냥 마시기엔 다소 뻑뻑했다. 물론 그것을 입밖으로 낼 순 없으니 그저 감사하는 얼굴로 맛있게 먹어야만 했다.

 

“······하아.”

 

······한심해하는 얼굴로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니 그마저도 다 티가 났던 것 같지만.

 

“안 뻑뻑하냐?”

“······음, ······괜찮아요!”

“한참 씹다가 삼키느라 대답도 늦게 해놓고 그렇게 말하는데 너라면 믿겠어?”

“······.”

 

한참 그녀를 보던 그는 침대 바깥으로 손을 뻗었다. 자세히 보니 그곳에는 설렁줄이 있었다. 무언가 위화감이 들었지만 그가 설렁줄을 당기자 바깥에서부터 들려오는 복도의 발걸음 소리에 금방 잊어버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빌이었다.

 

“부르셨어요, 도련님?”

“빵이랑 죽 한 그릇 더 갖다줘.”

“?!······ 예, 알겠습니다! 가자, 밀리.”

“네!”

“아니, 넌 거기 앉아있고.”

“네?”

 

그의 식사를 가지고 오가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던 밀리는 이어진 명령에 의자에서 일어나던 자세 그대로 엉거주춤하게 멈춰버렸다. 그러나 아도니스는 물론이고 빌도 그 말에 별다른 의문이 없는지 고개만 꾸벅이고 물러갈 뿐이었다. 결국 그녀는 슬그머니 다시 자리에 앉아야 했다.

부연설명 없이 조용히 마저 식사를 하는 그를 앞에 두고 한없이 어색한 시간이 흐를 즈음, 빌이 식사를 들고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빌을 본 아도니스는 뜬금없이 밀리를 향해 턱짓했다.

 

“저쪽에 갖다 줘.”

“······?”

“······저요?”

 

자연스럽게 두 사용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무언가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그 눈빛에 밀리는 필사적으로 자신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려고 애썼지만 잘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의 주인은 우아하게 식사하며 태연하게 말했다.

 

“앞으로 저 녀석한텐 오전엔 내가 따로 시킬 일이 있어서, 식사는 내가 먹는 시간에 같이 먹는 걸로 한다. 2인분씩 준비해.”

“!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 봐.”

 

이것 참,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구만······. 빌이 작게 중얼거리며 나가는 것을 보며 밀리는 수저를 들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사 중에 자신을 쳐다보는 고용주의 시선을 느낀다면 상황이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몇 번 그녀를 주시하는 시선과 눈을 마주치자 결국 밀리는 한숨과 함께 머뭇거리며 입가로 수저를 가져가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솔직히 조금 부담스러워서요······.”

“넌 나 다 먹나 감시하는데 난 그러지 말란 법이 있나?”

“아니, 제가 언제 감시를 했다고 그러세요.”

 

어쩐지 억울해져 목소리를 높이자 그가 더 해 보라는 듯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맥이 빠졌다. 그와 대화를 그다지 많이 섞어보지 않아도 슬슬 파악이 되었다. 저 비꼬는 말투는 반응을 강하게 할 수록 말려들게 된다. 살아도 한참을 더 살았는데 더 말려들면 자신의 꼴만 우스워졌다. 순식간에 평정심을 되찾으니 부담으로 뻣뻣하던 손도 뻔뻔하게 입과 그릇을 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방법은 효과적이었는지, 밀리가 더이상 대꾸하지 않자 아도니스도 식사를 다 마치고 먼저 말을 걸 때까지 이 이상의 시비를 걸어오지 않았다.

 

“제게 오전에 시키실 일이 있다고 하셨죠? 그럼 언제까지 오면 될까요?”

“아, 그거.”

 

흠, 아도니스는 턱을 괴고는 한참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한 2주 남았던가.”

“네?”

“있어 봐, 좀 기다려야 되니까.”

“······?”

“식사는 평소대로 가져와. 일 시작하면 부를테니까.”

“알겠습니다.”

 

맥락을 알 수 없는 대화 끝에 남은 건 어쩌다보니 매일 오찬을 그와 함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어쨌든 ‘그녀의 기분’ 같이 아무 의미 없는 요소를 제외하고 객관적으로 손해될 것은 하나도 없기에 밀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사소한 의문이 드는 것은 있었다.

설렁줄이 침대 바로 옆에 있었다면 그녀는 왜 굳이 그의 식사가 끝날때까지 내내 방 안에서 민망한 대기를 해야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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