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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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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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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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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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MMY

***

 

오전에 시킬 일이 있다며 식사 시간이 강제로 옮겨졌지만 아도니스는 정말로 밀리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주지 않았다. 결국 그녀가 얻은 것은 여유 있는 오전과 그의 말을 받아치는 스킬 정도였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낮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밀리는 곧장 잠에서 깨어나 용수철처럼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을 시작하고서 오전 시간에 예고 없는 방문이 있던 적은 처음이었지만 오래 몸에 밴 습관은 몸을 절로 움직이게 했다.

 

“무슨 일이세······ 공자님?!”

 

마리아나 리사일 것으로 예상하고 방금 막 침대에서 나온 모습 그대로 재빠르게 달려가 문을 연 밀리는 눈앞에 선 말끔한 모습의 아도니스 대공자를 보고 약간 남아있던 졸음이 단번에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얜 이 시간에 왜 내 방에 왔어?

 

“너 꼴이······.”

 

찾아온 그도 적잖이 놀란 표정을 한 덕에 그녀는 그제야 스스로의 상태를 떠올렸다. 방금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는 산발로 풀어헤쳐진 상태에 옷은 잠옷, 씻지도 못한 맨얼굴까지······ 완전히 엉망이었다!

밀리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그 역시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대신 살짝 시선을 피했다.

 

“죄송합니다······ 하녀장님이신줄 알고······.”

“아니, 됐어······ 너 그보다 앞은 보여?”

“아.”

 

안경을 쓰지 않고서도 새벽 어스름에 자신의 얼굴을 한번에 알아본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시력 때문에 안경을 쓰는 게 아니라서요······. 그으래서 무슨 일이실까요?”

“뭐? 그럼 왜······ 아니지, 아침에 시킬 일 있다고 했잖아. 오늘부터야. 5분 내로 준비하고 나와.”

“네!”

 

그녀는 재빠르게 문을 닫고 한 손으로는 머리를 빗어내리며 땋고 반대 손으로는 근무복을 찾아내 다리를 꿰었다. 공동 욕실까지 가긴 어려워 세수는 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그녀에게는 얼굴의 반절을 차지하는 커다란 안경이 있었다.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자 그는 여전히 언제나처럼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참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큰 소리 내지 말고 따라와.”

“네.”

 

***

 

새벽의 대공성은 몹시도 조용했다.

아도니스는 꽤 걸음이 빠른 편이었다. 그의 키가 밀리보다 컸다면 보폭 탓에 따라가느라 벅찼을 것이다.

부지런히 발소리를 죽여 그를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복도의 분위기가 낯설었다. 잠이 덜 깬 채로움직인 덕에 차마 예전에 보았던 성의 구조도를 떠올리지 못해 여기가 어디쯤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거의 다 왔어.”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아도니스는 걸음을 멈추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변성기에 걸쳐있어 완전히 낮아지지 않는 목소리가 목구멍을 긁는 소리가 났다.

그가 걸음을 멈춘 곳은 살짝 열린 문 앞이었다. 틈 안으로 보이는 실내는 불을 켜지 않아 어둑어둑했다.

여닫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직접 문을 열어두었는지 밀리까지 같이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당겨 여는 모양새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들어가보면 창이 많이 나 있는 방이었다.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아 미약한 빛만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창유리가 이루고 있는 그림들이 순차적으로 건국 신화의 가장 첫 부분, 여신과 형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작은 예배당인 모양이었다.

밀리가 창문을 다 둘러볼 즈음 아도니스는 입가에 검지를 세우며 조용히 앞쪽으로 나아갔다. 사제들이 설교를 진행하는 단상 뒤쪽으로 돌아간 그는 단상 아래 무언가를 보더니 그녀에게 손짓했다.

 

“······!”

 

밀리는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막았다. 단상 아래에 있는 것은 갓난 새끼 두 마리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어미고양이 한 마리였다. 반쯤 탈진하여 숨을 쉬는게 고작인 어미는 눈동자를 굴려 이쪽을 보았다. 그런 것도 모르고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은 본능적으로 어미의 젖에 앞다투어 달려들기만 했다.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얌전히 굴길래 쫓아내지 않고 뒀더니 새끼를 배고 있던 모양이야.”

“아······.”

 

그러고보면 임신한 길고양이들은 종종 안전한 출산 및 양육 환경 조성을 위해 인간에게 친한 척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점에서 이 고양이는 야무지게도 이 성의 주인을 보호자로 잘 골랐다고 할 수 있었다.

 

“앞으로 매일 와서 돌봐줘. 그게 네 오전 업무다.”

“아, 네!”




갓 태어난 동물을 돌본다는 것은 해 본 적 없는 일인지라, 밀리는 설레면서도 걱정이 들었다. 귀여운 동물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어쨌든 오랜 세월 주변에 불행과 사고를 달고 다닌 입장에선 자신 때문에 죄 없는 짐승이 잘못될까봐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심란한 표정으로 축축한 털이 달라붙은 엉덩이들이 꼼지락대는 것을 넋 놓고 보던 밀리가 문득 물었다.

 

“이름은 있나요?”

“······.”

“······? 이름이 없나요?”

“······큰 녀석은 야옹이.”

“오······.”

 

작명이 너무 성의없는 것 아닌가? 물론 이 말을 입 밖으로 낼만큼 그녀는 용감하지 못했다.

 

“나머진 아직. 네가 지어.”

“네에······.”

 

삼색 털이 섞인 야옹이의 젖을 문 새끼들은 색이 제각각이었다. 턱시도 고양이와 삼색 고양이. 구분하기는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야옹이의 상태가 예민할 것을 고려하여 두 사람은 물과 삶은 닭고기를 가져와 예배당 구석에 두고 조용히 나왔다.

 

“업무에 필요한 게 있으면 매일 오전에 나한테 직접 요청해. 음식이든, 물건이든, 혹은 권한이든.”

“네, 공자님.”

 

시간은 아도니스의 식사 시간과 가까워져 있었다. 지시사항을 확인한 밀리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주방에서 오늘치 식사를 받아오기 위해 몸을 돌렸다.

 

“야.”

“네?”

 

아니, 몸을 돌리려고 했다. 아도니스의 부름에 다시 그 쪽을 보게 되었지만.

 

“언제까지 공자님, 공자님 할거야?”

“······?”

“너 이제 앨버 성의 메이드 아냐?”

 

그러면 공자를 공자라고 부르지 공녀님이라고 부르나? 무슨 소린가 싶어 미간을 찌푸리지 않게 위해 애를 쓰던 중, 성 안의 다른 사용인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이 떠올랐다.

 

“아, 죄송합니다, ······도련님?”

 

아도니스는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부르면 되는 건가 긴가민가 했지만 아무래도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여기서도 오답을 말했거나 멍청한 소리를 했다면 또 핀잔을 줬을 거라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그의 꼬인 성격이 실감났다.

원하는 대답을 듣자 흠, 하며 자기 방으로 가 버리는 아도니스를 보며 밀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예전에 읽었던 책의 기억에만 의존해 고양이를 기르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고양이를 기르기 위해 필요한 권한이라면 자신에게 말하라던 아도니스의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도서관 출입 허가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품 안에 ‘고양이의 배설물로 보는 건강 상태’ 서적을 가지고 방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깔끔하던 밀리의 방 앞에 귀퉁이가 살짝 젖은 커다란 상자와 꾸러미를 내려놓는 빌과 마주쳤다.

캐서린과 살던 집이 드디어 정리된 모양이었다.

 

“아, 밀리. 마침 잘 됐다. 문 좀 열어봐. 방 안에 놔줄게.”

“감사해요, 빌.”

 

빌은 고개만 끄덕이며 가져온 상자를 모두 방 안에 넣어주었다. 물건이 별로 없어 딱히 그녀가 돕겠다고 나설 필요도 없었다.

 

“그럼 수고해.”

“네!”

 

빌이 떠나고 혼자 남은 방에서 밀리는 쌓인 상자들을 노려보았다. 버려도 되는 것들까지 모조리 가져왔는지, 가진 것에 비해 짐이 약간 많아 보였다. 통상적인 이사에 비하면 형편 없는 전재산이었지만, 그만큼 그녀는 가진 게 없었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무엇은 버리고 무엇은 가져와달라 부탁하지도 않았는데(감히 그런 것을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그들 입장에선 멋대로 버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 입장에서 밀리는 주군의 생명의 은인(?)인 셈이고 그런 그녀의 물건을 운반하고 재산을 처리해주는 일을 맡았으니까.

 

“하아, 그럼 큰 것부터 차근차근······.”

 

입주 하녀들은 주일에 격주로 일을 교대하는데 마침 내일은 휴무일이었다. 짐을 처리하기엔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뜻이다.

밀리는 차근차근 가장 큰 상자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

 

“더 나올 게 있나?”

 

커다란 상자들에는 그녀가 가진 의류들과 수집 해둔 책 몇 권, 그리고 원래 사용하던 낡고 작은 가구나 물건들이 빠지지 않고 들어있었다. 그것들을 새 방에 요리조리 배치시키고 나니 꼭 몇 년 전부터 이 방에서 생활해 온 것만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없을 것 같은데······.”

 

그럼 이건 뭐지? 직전까지 풀어 정리한 상자보다 약간 더 작은 크기의 상자 몇 개가 아직 풀어지지 않은 채 그녀의 앞에 놓여 있었다.

 

“잘못 왔나?”

 

타당한 가능성을 입 밖으로 중얼거리면서도 밀리는 상자를 가져가 포장을 뜯고 있었다. 잘못 도착했든 어쨌든 상자에 이름이 써 있지 않은 이상 내용물을 확인해야 주인을 찾아 줄 수 있을 게 아닌가.

다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아, 어······.”

 

상자를 열자, 가장 먼저 인식한 것은 내용물이 아니라, 끼쳐오는 향이었다. 아주 그리운, 맡기만 해도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할머니······.”

 

상자 안에 차곡차곡 개어져 들어있는 것은 캐서린의 옷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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