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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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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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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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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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MMY

목이 터져라 얼마나 외쳤을까. 이제는 자신의 몸에도 눈이 쌓이고, 추위가 의식을 좀먹기 시작했을 즈음, 온통 새하얗던 시야 끝자락에 붉은 것이 일렁거렸다. 사람이었다. 

아도니스는 겨우 정신을 붙잡고는 그쪽으로 달려나갔다.

 

“거기, 멈춰!”

 

가까워질수록 윤곽이 선명해지는 그 모습은 웬 여인의 뒷모습이었다. 자신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인지, 여인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일정한 속도로 계속 앞만 보고 걸었다. 눈 속에 발이 푹푹 빠지는 상황에서 아도니스는 여인을 따라잡기 위해 젖먹던 힘을 쥐어짜내 달렸다.

호흡이 턱끝에 차고 날숨에서 단내가 날 때쯤에야 아도니스는 가까스로 그녀를 붙잡을 수 있었다. 가느다란 어깨가 손에 잡히자, 붉은 머리가 물결쳤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힘으로 그는 그녀를 돌려세웠다.

 

“···구해, 줘···”

 

가쁘게 숨을 쉬며 그가 내뱉듯이 말했다. 원망스러운 체력 탓에 서 있기도, 고개를 들기도 힘들었다. 얼굴도 모를 그녀에게 반쯤 매달린 아도니스가 불현듯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니, 구하지 마.

스스로 내뱉은 말에 놀란 아도니스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내뱉었다. 구해줘. 아버지를 살려줘.

역광 탓일까? 햇빛을 등진 그녀의 얼굴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후광처럼 자리한 태양빛이 눈부셔서일까,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고장난 기계처럼 다시 한번 그가 중얼거렸다. 구하지 마.

 

구해줘. 아니, 구하지 마. 구해줘. 구해줘. 아니, 구하지 마. 구해줘.

구하지 마. 구하지 마. 구하지 마.

왜 네가 구해야만 해?

왜?

 

눈물로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그녀의 얼굴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알 수 없이 서러웠다.

 

가지 마···

 

그는 정신을 잃었다.

 

***

 

“헉,”

 

잠에서 깬 아도니스는 퍼뜩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미친 듯 쿵쾅거렸다. 갑작스러운 기상에 당황스러워 눈을 깜빡이니, 눈물이 뺨을 타고 후두둑 떨어졌다. 당황스러운 기분은 주체할 줄 모르고 흐르는 눈물에 한층 더 배가 되었다.

 

“꿈······.”

 

분명 무슨 꿈을 꾸었던 것 같은데, 엄청나게 추웠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며 꿈을 기억해내려고 있으면, 어쩐지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갑작스러운 오한에 양팔로 몸을 감싸는데, 별안간 폐를 바늘로 찔린 것마냥 기침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콜록콜록콜록콜록! 예고 없이 터져나온 기침 소리에 근처에서 대기하던 사용인이 재빨리 물이 든 잔을 가지고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한 채로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다 넘긴 아도니스는 그제야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었다. 기침 탓인지 평소와 다르게 형편 없이 쉰 목소리가 나왔다.

 

“얼마나 지났어, 내가 돌아오고.”

“그게··· 닷새입니다.”

“······뭐?”

 

가뜩이나 흰 아도니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창백하게 질렸다.

일주일 내에 아버지를 살려야한다는 말을 듣고 무리해서 움직였는데, 5일이나 쓰레기처럼 침대에서 보냈다고? 

그는 그만 죽고 싶은 기분이 됐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힘이 나는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 아버지는······?”

 

하인은 대답 대신 미소지었다.

좋은 소식으로도 가슴이 이렇게까지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아도니스는 그때 처음 알았다.

 

“먼저 일어나셔서 도련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가시겠어요? 아니면 식사부터···”

“식사는 무슨 식사···!”

 

눈가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애써 참으며 아도니스는 서둘러 방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아버지!”

 

아도니스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도 개의치 않고 복도 끝 부친의 방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이마에 붕대를 감은 채 의식을 잃고 누워있던 대공, 알렉은 상체를 세워 곁에 앉은 아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들이닥친 아들을 보며 짓궂게 웃었다.

 

“에이든. 너무 늦게 일어난 것 아니냐? 해가 중천인데.”

 

아도니스는 농담을 받아치지도 못하고 목이 메는 것을 꾹 참으며 그저 다가가 그를 와락 껴안았다. 언제나 신경질적이고 무뚝뚝한 그에게서 걱정 탓인지 다소 칭얼대는 듯한 억양이 묻어났다.

 

“언제 깨어나셨어요······.”

“어제 오후에.”

 

말없이 아들의 동그란 뒤통수를 쓰다듬는 남편을 대신해 대공비, 안나가 대답했다. 가만히 아버지의 쓰다듬을 받던 아도니스의 시야에 자신의 눈동자 색과 비슷한 황금색의 화려한 잔이 잡혔다. 그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눈치챈 안나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카밀리아 양의 도움을 받았지.”

“······.”

 

거슬리는 외부인 계집애가 드디어 밥값을 한 것이 뭐 대수라고, 함께 구해 온 치유의 잔을 바라보는 아도니스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아주 희미한 호선을 그렸다.

 

***

 

대공이 깨어났다.

덕분에 모든 생을 통틀어 거의 처음으로, 밀리는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를 만끽하고 있었다.

게다가 생사를 오가던 영주가 깨어난 덕분에 대공성의 사람들은 근래 들어 가장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어 그녀를 찾지 않았다. 마음이 편한데 몸까지 편한 상태라는, 상당히 낯선 감각은 나쁘지 않았고, 될 수 있는 한 즐겨보려고 했다. 다만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는데······.

 

“하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나쁜 일은 전혀 아니었고, 따지자면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어쩐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가 빨려나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이틀 전, 성수를 마신 대공의 의식이 돌아오고 기력을 회복하자마자, 그의 침실에 딸린 작은 서재에는 기사 로엔그린을 중심으로 한 주요 가신들을 소집하는 일이 있었다. 막 앨버로 귀환한  로엔그린 본인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이 일은 함구해야 합니다. 아우로라의 별에 걸린 봉인이 풀려 은총의 잔이 되었고, 전하의 손으로 돌아왔다는 게 알려져선 안 돼요.”

 

대공의 치료를 위해 신성력을 가진 사제의 파견 요청을 위해 전속력으로 북쪽 교구에 다녀온 로엔그린은 아쉽게도 사제를 데려오지 못했다. 

다만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안한 얼굴로 함께 가 줄 수 없다 말하는 사제에게서 교회에 대한 황제의 태도와 동향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2황자였던 현 황제는 형인 황태자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예상치 못하게 즉위한 배경 탓에, 지지 세력과 정통성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알 사람은 아는 사실이었다. 즉위 후 대부분의 체계를 중앙 위주로 개편하고, 자신의 편이 되어줄 귀족이며 세력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행보에서 유추하기 어렵지 않았다.

다만 권력이란 총량이 정해져 있어 누군가가 더 가지면 누군가는 덜 갖게 되는 법. 자발적으로 숙여주는 상대의 세력을 포섭할 수 없다면 빼앗아야 했다.

 

"전국에 많던 신전들이 체계화라는 핑계 하에 없어지거나 합쳐진 건 황제의 가장 큰 견제 대상이었기 때문 아닙니까.”

 

황제와 신임 대사제가 손을 잡고 대대적으로 진행한 교구의 축소와 신전의 통폐합이라니,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전 대사제를 모시던 고위 사제들의 상당수가 개편을 반대했지만, 결국 모두 파문되거나 타지의 수도원장 같은 한직으로 좌천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하의 목숨이 위험했다는 것과, 전설 속의 잔을 수복해 그 힘으로 살아났다는 소식이 중앙이 전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잔은 빼앗기고, 세력은 견제당하겠지.”

“······으음.”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심각한 낯을 했다. 당장의 처세뿐 아니라 먼 미래의 정치적 입장까지 충분한 고려가 필요한 사안이었으므로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다른 이유로 얼굴을 굳힌 사람이 있었으니,

 

‘난 왜···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거지?’

 

밀리였다. 제국 권력의 가장 큰 줄기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자기가 낀 것이 이상하다는 것쯤은 모르지 않았다. 아랫것들 입장에서 높으신 분들의 중요한 이야기 같은 것은 모르는 게 약이기 때문이었다. 분수를 아는 자는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이 주어졌을 때 불안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심지어 분위기 상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상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외부인이 그녀 하나뿐인 만큼 입막음을 위해 별로 좋지 못한 꼴을 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었다. ······상상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여기 앉아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했으면, 하고 빌었다.

 

“카밀리아 양.”

“네, 네?!”

 

최대한 기억 속에서 잊히지 위해 조용히 있어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갑작스레 이름이 불리는 바람에 화들짝 놀란 밀리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망했다.‘


존재감 지우기는 장렬하게 실패였다.

벌떡 일어나는 그녀를 힐끗 본 대공이 느릿느릿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꿀꺽. 밀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직할 생각 없나?”

“네?”

“숙식 제공되는 곳으로.”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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