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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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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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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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MMY

***

 

연회가 파하고 손님방으로 돌아온 밀리는 영 소화가 되질 않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잘 먹지 않던 호화로운 음식을 먹기도 했고, 심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나, 언제 닥칠 지 모르는 불행 때문에 마음을 졸인 것을 생각하면 체하지 않은 게 다행인 것 같았다.

 

“나참, 간도 크지. 어떻게 그런 일을······.”


피가 섞이지는 않았어도 몇 번의 삶을 거친 그녀가 유일하게 가족이라 여긴 사람이었다. 병약한 몸으로 연고도 없는 아이를 거두어 친손녀처럼 키워준 사람이, 사실은 앙심을 품고 후계자를 납치하려다 성물을 도둑질한 사람이었다니. 덕분에 대공령의 죄 없는 사람들은 장장 30년간 고통에 시달려야 했던 게 아닌가. 마음이 너무나 복잡했다.


“그래놓고 그걸 나한테 돌려주라고 했단 말야? 이 노인네가 정말······.”


캐서린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 밀리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바람이라도 쐬면서 산책을 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였다. 마침 손님방에는 두꺼운 망토도 구비되어 있어, 느닷없이 조명이나 액자가 떨어지는 기이한 불행에 대한 염려 없이 야외에서 산책을 할 수 있을 듯 했다.




***




대공성의 구조는 언젠가 읽었던 ‘국경의 요새들’을 다룬 고서적에 나온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덕택에 밀리는 기억 속의 고서적에 그려져 있던 비상구를 찾아 천천히 걸었다.

 

「······앨버의 대공성 역시 국경지대에 위치한 성이다보니 적이 침입했을 때를 대비한 비상 출구가 제법 여러 군데에 있는 편이다. 성의 거주자들은 유사시에 익숙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이 비상구를 쪽문이나 샛길처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어, 사용인들의 생활반경에 활용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여기서는 그것들 몇 개를 소개할까 한다······ (후략)」


그녀가 혼자 은둔하며 살던 시절 닥치는대로 책을 읽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대강 훑기만 했더라도 한번 눈에 담은 활자는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신비한 능력, 이 덕분에 그 지식들은 언젠가는 유용하게 쓰였다.

그러니까 제일 가까운 비상구는 주방 근처의 출구였다. 음식 냄새와 달그락대는 그릇 소리, 그리고 두런대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께서는 오늘도 거의 남기셨네요~”

“왜, 그래도 평소에 비하면 많이 드셨는데.”


그러고보니 대공이 그런 말을 했었던가. 

 

ㅡ입맛이 까다로운 건 우리 아들 하나로 족하거든.

 

단순히 입이 짧은 도련님. 밀리는 내심 잘 알지도 못하는 그가에게 부러움을 느꼈다. 당장 그날의 끼니 걱정을 하면서 사는 것이 일상이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터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더 엿듣고 싶지 않아 밀리는 걸음을 재촉해 비상통로를 따라 작은 문을 열고 나갔다.

가능한 인적이 드물 것 같은 곳을 찾아 후원 쪽으로 향하고 있는 와중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지? 사람이야, 짐승이야······?”


언뜻 들었을 땐 짐승 소리인지, 사람 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덜컥 겁이 났다. 당장 대공성에 도착한 날만 해도 곰이 산적의 머리통을 박살내는 광경을 눈앞에서 보았기에 어느 한 쪽이 덜 무섭다고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주변에서 자꾸 뭔가 깨지고 떨어지는 등의 갑작스러운 소음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소리에 익숙해지는 순간이 오곤 한다지만, 안타깝게도 밀리는 오히려 남들보다 소리에 훨씬 예민해졌다. 갑작스러운 소음이 발생하는 원인이 자신이 몰고 온 불행 탓일까 의심한 탓이다.

그래서인지 이상한 소리가 들렸을 때 직접 확인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이 불안했다, 바로 지금처럼.

 

“웁, 우욱.”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조금 더 다가가니 자그마한 사람의 인영이 몸을 구부린 채 구역질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연회에서 과음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닥 놀랍지 않은 일이었으나, 점점 또렷해져가는 상대방의 작은 체구로 보아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로 보이지 않았다.

 

“컥, 컥···!”

 

게다가 그 사람은 더 이상 음식물이 나오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해댔다. 등을 쳐 주는 것 따위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이건 편식 따위가 아니었다. 몸 자체가 모종의 이유로 음식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 또한 몇 차례의 죽음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을 때 겪어봐서 잘 알았다.


‘어쩌지······.’


무턱대고 굽어진 등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그녀도 막상 상대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뭘 해야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어느새 헛구역질이 잦아들었는지 눈 앞의 사람이 고개를 여전히 숙인 채로 색색 숨을 골랐다. 쓰고 시큼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밀리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서 손수건을 내밀었다. 숨을 고르던 상대방은 불쑥 내밀어진 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돌아보았다.

손등으로 입을 가린 검은 머리 소년의 금빛 눈동자는 깜짝 놀랐는지 동그래졌다가, 이내 상대를 확인하자마자 수치와 분노로 떨리기 시작했다.


‘아.’


밀리는 직감했다. 그가 보이고 싶지 않아하는 광경을 봐버렸다는 걸.

 

“죄송합니······”

“넌······ 뭐야, 그, 외부인? 왜 네가··· 여기에······”

“그게, 길을 잃어서······.”

“당장!······당장, 꺼져···!”

 

무언가를 꾹꾹 눌러 참는 목소리로 그가 말을 잘랐다. 목이 상했는지 잔뜩 쉰 목소리였다. 떨리는 눈동자에는 생리적인 눈물이 고여있었다. 어쩐지 차마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하.”

 

발을 떼지 못하고 있는 그녀를 노려보던 소년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결국 먼저 자리를 뜬 것은 소년이었다. 망토를 여미며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그와 밀리의 어깨가 부딪혔다. 몸이 너무나 야위어 아프지도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검은 머리칼의 소년은 빠르게 성 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아도니스 대공자······.’

 

허탈한 기분으로 밀리는 그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불행을 옮기기 싫어 피해 다니려고 했는데, 본의 아니게 그에게 수치심을 안겨버린 꼴이 되어 기분은 한층 더 복잡해졌다.

북풍을 맞은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대공에게 할 부탁이 떠올랐다.


***

 

“벌써 돌아간다니, 아쉽구나.”

 

대공 부부는 그 뒤로도 몇 차례나 밀리에게 대공성에서 일하게 해 주겠다는 권유를 해 왔다. 눈 딱 감고 승낙할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잠잠한 듯 해도 언제 또 자신을 늘 따라다니는 기상천외한 불행이 대공성의 사람들을 힘들게 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적개심 가득한 아도니스 대공자의 눈동자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줄곧 이곳을 떠나라고 외쳤다.

게다가, 캐서린이 저지른 짓을 알게 된 이상, 혈연은 아니어도 가족인 자신이 이곳에 남아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잡고 인사를 하는 밀리에게 마리아가 다가와 무언가를 내밀었다. 제법 묵직했다.

 

“받게.”

“이건······?”

“북부의 음식이 입에 맞는 듯 해서. 조금 챙겨가게.”

“···!···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연회를 제외한 대공성의 식사에서는 밀리에게 익숙한 음식들이 많이 나오곤 했다. 비교적 오래 보관이 가능한 단단한 빵이나 고기 삶은 물에 감자 같은 채소를 잔뜩 넣고 끓이는 크림수프 등, 캐서린과 먹던 것들과 비슷해 익숙하게 먹곤 했는데 그런 모습을 눈여겨 본 모양이었다.

코가 찡한 것을 애써 참고 있는 밀리를 마리아는 빤히 보았다. 어쩐지 그녀는 평소처럼 무뚝뚝하게 답하는 대신 운을 떼지 못하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밀리가 말했다.


“말씀하셔요! 뭐든요.”


한참만에 마리아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약간 갈라져있었다.


“그래서 캐서린은······ 결국 죽은 건가?”


예상치 못한 물음이었다. 대답하려니 어쩐지 마음이 아파 잠시 멈칫했지만 밀리는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무거운 표정을 지은 마리아가 마주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고맙네.” 

“이만 나오지, 카밀리아 양.”


때마침 바깥에서 에인스워스 대공이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목걸이를 가져다 준 상으로 밀리가 대공에게 부탁한 것은 원래 살던 마을로 안전하고 빠르게 돌아가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는것도 이상하기도 했고, 산적을 또 만나는 건 사절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지 밖은 오랜만인데. 이거 제법 설레는군.”

 

그렇다고 대공에게 직접 마을까지 에스코트해달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밀리는 부담감에 몸둘 바를 몰라 하며 대공가의 인장이 찍힌 마차와 동원된 기사들을 멍하니 보았다. 평민 소녀 한 명을 돌려보내는 인원 치고는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그 의견을 이 나라에서 둘째 가는 대귀족에게 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마차에 오르기로 한 밀리는 마차 계단에 발을 딛으려다 말고 고개를 돌려 성을 올려다보았다.

떠나기 아쉬웠다.

그리운 북부 특유의 음식을 비롯해 캐서린과 비슷한 억양을 지닌 사람들과 하루 종일 있으니 마치 그녀가 곁에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캐서린은 떠났고, 이곳에 없다.

밀리는 고개를 저으며 마차에 냉큼 올라탔다. 떠나기로 마음먹은 이상 질척댈수록 더 힘들어질 뿐이다.

탁. 마차 문이 닫혔다.

 

그렇게 대공성에서 출발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채 5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마차 문에 달린 창 밖에서 별안간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바람 소리가 마차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눈보라에 마차가 거세게 흔들렸다.

 

“꺅···?!”


마차 구석에 내동댕이쳐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손잡이를 붙잡은 순간, 마차가 완전히 멈췄다. 바깥에선 기사들이 눈보라를 뚫고 의사소통하기 위해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요?!”


벌벌 떨며 상황을 보기 위해 밀리가 마차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순간,

 

“대공 전하, 조심하십시오!”

“히히히히힝-!”

 

길게 울부짖는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외쳤다. 그리고 이어진······

퍽.

무언가가 딱딱한 곳에 곤두박질치는 소리.

 

“들것을 가져와!”

“의사를 불러!”

“전하를 안으로 모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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