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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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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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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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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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MMY

갑작스레 뒤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밀리와 마리아는 뒤를 돌아보았다. 대공비와 팔짱을 낀 대공이었다. 치유의 잔으로 목숨은 구했다고 하나 심리적 충격 같은 것은 고칠 수 없었고, 주변인들의 과도한 관심 및 대외적인 회복기간을 이유로 인해 한동안 계속 실내 생활만 해 오고 있다 들었는데, 이제는 성 내 마당이나 뜰 정도를 산책할 정도는 된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신세를 졌으니 뭘로 갚아야 할 지 걱정이야. 어떻게 생각하나, 카밀리아?”

“알렉. 부담은 그쯤 주죠. 마리아, 카밀리아, 이 사람이 더 실언하기 전에 얼른 가서 일 보게.”


대공비가 대공과 팔짱을 낀 쪽 손에 힘을 주며 그를 나무랐다. 반대쪽 손으로는 얼른 가보라며 손짓하는 것도 잊지 않아, 밀리는 마리아와 함께 허리를 숙여보이고는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아침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동작으로 밀리는 2인분의 식사를 가자고 아도니스의 방으로 올라갔다.

턱없이 적은 양의 수프를 먹는 것만으로도 성내를 들썩거리게 했던 아도니스는 이제 무른 음식이 아니라 제법 단단하거나 형태가 있는 음식도 곧잘 먹었다. 주방에서 욕심을 내어 매일 미세하게 양을 늘리고 있는데도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게 그가 음식 양에 의구심을 품는지 기색을 살펴보고 있던 밀리의 눈에 다른 것이 들어왔다. 오늘의 식사 속도가 조금 늦나 싶었는데, 한 술 뜨고 입에 넣어 음식을 씹어 삼키는 동안 아도니스가 수저를 내려놓고 연신 다리를 주물렀다. 저도 모르게 그 동작을 지켜보고 있자, 시선을 느낀 아도니스도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아차, 하는 마음으로 밀리는 뻔뻔하게 먼저 선수를 쳤다.


“도련님, 어디 불편하세요?”

“······다리가 좀.”

“다치셨어요? 걸을 순 있으신 거예요?”

“아니, 그 정돈 아냐.”


그는 멀쩡하다는 듯 제 다리를 툭툭 쳐 보였다. 며칠 전부터 근육통처럼 묘하게 욱신거리는 게 불쾌하다는 내용을 투덜거리는 것으로 보아 정말 심각한 통증이나 부상은 아닌 듯 했다. 물론, 그것도 그가 걷는 모습을 확인해야 내릴 수 있는 결론이겠지만.


‘심각해 보이면 티렐 선생님께 말씀드려야겠어.’


어떻게 하면 상태를 확인할 만큼 같이 걸을 수 있을까, 밀리가 고민하던 찰나에 대공자가 문득 말을 꺼냈다.


“그러고보니 저번의 동굴에서 결계를 유지할 빙정석의 채굴 가능 여부 조사하러 들어갔던 거, 결과가 나쁘지 않다고 하던데.”


밀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도니스가 고개를 까딱여보였다. 칭찬에 인색한 그에게 이 건방진 동작은 나름대로 치하의 말 비슷한 것이었기에 밀리는 안도와 직업적 성취감을 동시에 느꼈다.

어느새 그릇을 싹 비운 아도니스가 다시 다리를 한번 주무르나 싶더니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따각따각 두드렸다.


“그러니까 지금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시기지.”

“······?”


 이제 한시름 놨다는 반응들 사이에서 아도니스의 반응은 확실히 튀었다. 유일하게 경계를 늦추지 않는 그의 모습에 밀리는 자신이 무언가 간과했나 생각해 보았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나왔다.


“아. 결계 작동을 할 방법은 찾았다지만··· 당장 작동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 그런데 그간 결계가 없는 상황에서 영지를 보호하던 기상 현상은 이미 자취를 감춰버렸으니, 말하자면 무방비 상태 아니겠어.”


‘보호'라는 말을 입에 담은 그의 입가가 비뚤게 웃음기를 띠었다.


“그래서 오늘은 경계를 살펴보고 배치가 필요한 인원과 교대가 필요한 시간대를 가늠해서 아버지께 전달드릴 예정이야.”

“도련님이 직접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기사님들도 많으신데.”

“내가 맡아서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지. 빠르든 늦든, 내가 맡게될 일이기도 하고··· 나도 좀 보고 싶거든.”

“무엇을요?”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켜며 벽에 걸린 석궁을 집어드는 아도니스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경계 너머에서 오는 것들.”


애틋한 의미의 보고 싶다가 아님을 느낀 밀리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 또한 경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 않았다. 


“흥미 있어? 궁금하다면 보여주고.”

“어어······ 네?”


갑작스러운 제안에 상체를 숙이고 식기를 치우던 밀리가 멈칫거렸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골칫덩이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뛰쳐나왔다.


“앗, 안돼!”

“하.”


탈출을 감행해 식기를 치운 널찍한 테이블 위로 등장한 새끼고양이들을 보던 아도니스가 안절부절거리는 밀리를 앞에 두고 짧게 웃었다. 그리고 탈출한 보람도 없이 이 가엾은 생물들은 곧바로 그에게 뒷덜미를 잡혀 검거되었다.


“얘넨 두고 가.”

“그야 당연하죠······에?”


얼떨결에 가겠다고 대답해버린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성벽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뒤였다.


***


“헉, 헉······.”


돌로 된 계단은 좁고 가팔랐다.

워낙 지어진지 오래된 탓인지 변변한 난간 하나 없어 벽을 짚으며 올라야했다. 덕분에 밀리도, 아도니스도 계단을 다 올라오고 나서 잠시 숨을 골랐다. 밀리는 찬 공기에 식어가는 땀을 손으로 훔치며 아도니스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숨이 가쁠 때마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거나 어지러움으로 벽에 몸을 가누고 눈을 감기 일쑤였던 그녀의 주인은 이제 그런 조짐 없이 평범하게 양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물, 좀, 드세요······”


밀리는 숨을 고르며 미리 챙겨온 물병을 내밀었다. 아도니스는 물병을 잠시 보다가 또 칭찬하듯 고개를 살짝 까딱이고는 건네진 물병을 받아 한참동안 물을 마셨다. 그동안 밀리도 자신 몫의 물을 마실 수 있었다. 급하게 마셔서인지 살짝 입가로 흐른 물을 손으로 대충 훔치며 고갤 들자 성곽 너머로 영지 바깥의 북쪽 땅이 보였다.


“와······.”


세계의 끝, 버려진 땅에 대해 아는 게 많진 않았지만, 기이하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었다. 하지만,


‘살면서 본 광경 중 가장 기이한데.’


끝을 알 수 없게끔 펼쳐진 검은색 땅은 협곡 같기도 했고, 산 같기도 했다. 거기에 드문드문 안개가 펼쳐져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없이 불길함을 느낄 법한 풍경이었다. 밀리 또한 마찬가지였으나, 어쩐지 이 불길한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뭘까? 묘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


기이한 끌림에 저항하지 못한 채 밀리는 멍하니 시선을 지평선 가까이 검은 땅에 고정하며 한 걸음씩 내딛었다.

더 자세히, 가까이서 보고 싶은데······


“내가 분명 조심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윽, ···!”


어깨를 거칠게 콱 붙들고 끌어당기는 느낌에 밀리는 순간 흠칫하며 돌아보았다. 새삼스럽지만 아도니스였다. 그제야 방금 전 자신이 경계 너머를 쳐다보고 있을 때 그가 바로 옆에서 넋 놓지 말고 조심하라고 말했고, 그것을 자신도 똑똑히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멍하니 넋을 빼고 성벽 밖으로 넘어갈 것처럼 굴었다.


‘왜 말을 들었던 당시에는 이 말을 전혀 인식 못했지?’


정말로 잠시 넋을 놓은 게 분명했다. 주의를 주고 단박에 어깨를 붙잡으며 그녀의 정신을 단박에 깨워준 걸로 보아 아도니스는 이 현상을 이미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방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설명하기 조금 어려운데······.”

“인간이 아닌 것들의 힘이야. 보는 사람을 공포에 질려 얼어붙게 하지. 몸이 멋대로 움직이게끔.”



아도니스의 말에 밀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딘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 분명 몸이 말을 안 들었고 의식도 반쯤 나가 있었지만···


‘공포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 반대라면 모를까.’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와중에 사람을 홀리는 것들이 모인 검은 땅이라는 말에 기시감이 느껴진 밀리가 물었다.


“그렇다면 여기가 혹시, 소위 신께서 만든 것들 중 가장···”

“그래, 실패작들이 버려진 땅이야. 신의 쓰레기통이라고도 부르는데··· 눈치를 보니 알고 있는 모양이군.”


아차. 밀리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딴청을 부렸다. 한동안 편하게 지내오면서 너무 느슨해져 있었던 모양이다. 이미 아우로라의 별의 봉인을 풀겠다고 나설 때부터 조금 그르긴 했지만,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바람은 여전했다. 그래서 되도록 하녀치고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것을 티내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아무래도 방금 전엔 뭔가에 홀리긴 홀려 저도 모르게 말을 흘린 모양이다.

억울한 마음 반과 아직까지도 묘하게 편안함이 느껴지는데서 오는 찜찜함 반으로 밀리는 성벽을 따라 걸어가면서도 저도 모르게 자꾸 실패작의 땅을 힐끔거렸다. 그 느릿함에 결국 약간 앞서가던 아도니스가 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뛰어내릴까 겁난다.”

“아앗, 아니, 아닌데요···”

“말대꾸?”

“아잇······.”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손이 밀리의 팔을 붙잡고 앞장섰다. 덕택에 검은 땅 대신에 검은 머리칼만을 바라보게 된 그녀는 얼떨결에 끌려가며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다행히 이제 아도니스는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처럼 적대하진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지나치게 아는 것이 많은 하녀를 수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럴 때는 또다시 화제를 전환해주어야 한다.


“도련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신 거예요?!”

“문제 없어. 난 이미 겪어봐서.”

“아······.”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기묘하게 저항에 강한 듯 싶더라니, 이미 겪어봤던 모양이다. 그는 아주 여상하게도 자신의 경험담을 단편적으로 툭툭 내뱉었다.


“너보다 심했지. 그때 나는 혼자 있었기에 잡아줄 사람도 없었고, 지금보다 훨씬 작을 때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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