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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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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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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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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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MMY

마리아와 빌도 티렐의 물음에 함께 아도니스를 보았다. 티렐은 성벽 위의 결계가 빛났던 상황을 몰랐기에 묻는 것이었지만, 두 사람은 그 광경 직후 쓰러진 밀리를 아도니스가 데리고 내려온 장면을 보았기에 밀리의 상태와 무언가 관계가 있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도니스는 질문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답해줘야할지 고민하며 가만히 침묵했다.

슬슬 질문자인 티렐이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며 불안에 떨기 시작할 때쯤 아도니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얘긴 아버지의 서재에서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


“결론적으로, 빙정석을 올려두는 홈을 건드리자마자 결계가 발동되었다는 이야기가 맞으냐?”


아도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 알렉시스의 서재에는 아도니스가 데려온 빌 외에도 그의 최측근인 기사 로엔그린과 대공비 안나그레타가 한데 앉아있었다.


“네. 심지어는 빙정석을 올려둔 것도 아닙니다. 맨손이었죠. 그런데 손끝을 가져다대자마자··· 그 뒤는 아시는대로입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결계의 작동이 빙정석 대신 그 아이의 기운으로 대체되었다는 소리가 된단다, 정말이니?“

“그렇다면 그건 곧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었겠지만 정확한 상황 파악은 불가능했으므로 그녀가 의식을 차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로엔그린이 의아해하며 손끝으로 턱을 감쌌다.


“성도 근처에 살 때 서적의 필사를 좀 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신성력이 있었다면 그들이 몰랐을 리 없습니다. 진작에 신관이 되었을 법한데 이상하군요.”

“어쩌면 감추고 싶었을 지도 모르지. 신성력이 눈에 띄면 무조건 제도의 중앙 신전으로 가야 하니까.”


신성력이 감추고 싶어진다고 감춰지는 종류의 힘인지는 차치하고, 아도니스는 중앙 신전으로 가는 것을 밀리가 꺼려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비록 제도에서 먼 곳에 살고 있다곤 해도 신관이 되어 생계를 걱정할 일이 없이 살 수 있다면 그녀는 기꺼이 임했을 것이다. 안나그레타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그 의견에는 의문을 표했다.


“우리처럼 황실과 힘겨루기할 입장도 아닌 어린애가 제도를 왜 꺼려요. 어렵게 살아왔던 모양인데, 신관이 될 수 있다고 하면 기쁘게 갔겠지.”

“끄응. 그렇다면 뒤늦게 발현된 건가. 하긴, 자신에게 신성력이 있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 같군.”

“그럼 지금이라도 중앙 신전 쪽으로 보내야 하는 게 아닙니까?”


로엔그린의 말에 아도니스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 말대로, 신성력을 가진 것이 확실하지 않다고 한들, 정황상 그런 기미가 보인 것은 확실했으니까.

하지만······.


“굳이 가야 하는 이유가 뭐죠? 신성력 검사라면 북부 교구의 신전에서도 가능할텐데요.”

“왜, 안 보냈으면 싶으냐?”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도니스는 목덜미가 홧홧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들키지 않으려 애써 뒷목을 주무르자 장갑을 타고서도 그 열기가 전해져 와 어쩐지 불쾌했다.


“···전혀요?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라서 그런 것 뿐입니다.”

“농담이다, 농담.”


그런 아들이 귀엽다는 듯 삐뚤게 웃던 알렉시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영지를 비롯한 제국 곳곳의 신전들이 통폐합된 것과 같은 이유다. 위대하신 우리 황제 폐하께서는 신을 모시는 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아. 굳이 신을 모시는 길을 걷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만큼, 혹은 그보다 더 자신을 섬기길 원하지.”


그래서 제도로 오게 된 신성력 보유자들은 신관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신성력을 가졌는지에 대한 간단한 시험 후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제도의 중앙 신전에서 며칠간 머무르곤 했다. 중앙 신전은 그곳에서 신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제국의 빛인 황제의 은혜를 교묘히 섞어 그들에게 주입했다.

그 뒤로 실제로 신학교에 보내지는 것은 황제의 은혜에 감화된 이들 뿐이었다.

아도니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별론데요.”

“나도 네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단다. 하지만, 갈지 말지는 그 애가 깨어났을 때 직접 물어보기로 하자.”

“예.”


어머니의 말에 아도니스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


서재에서 이야기를 마친 아도니스는 다시 밀리의 방으로 돌아왔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티렐 박사는 여전히 밀리의 곁을 지키고 있었으며, 마리아의 지시로 리사가 병간호를 해주고 있었다. 문간에서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도니스가 인기척을 냈다.


“앗, 도련님!”

“하녀장이 찾던데. 부엌으로 가봐.”

“네? 네!”


리사가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인사하며 방을 빠져나갔다.


“티렐, 당신은 어머니께서 찾으셔. 몸 상태가 어떤지 전달드리면 방금 서재에서 나온 결론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을거야. 서재로 가봐.”

“옙.”


티렐 또한 인사하고는 대공비의 서재로 향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이 빠져나간 방은 밀리의 고른 숨소리만이 들려와 무척이나 고요했다. 그 고요 속에서 아도니스는 잠깐 고장이라도 난 상태로 가만히 서 있었다.


‘난 방금 왜······’


하녀장도, 대공비도, 아도니스에게 누군가를 불러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부탁은 하인에게라면 모를까 대공자에게는 하지 않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아도니스는 지금 거짓말로 두 사람을 내보낸 상황이었다.

자신의 행동 원인을 곱씹는 그의 걸음은 어느새 밀리가 누워있는 침대로 향해있었다. 리사가 앉아있던 간병용 의자를 짚은 채 아도니스는 지척에 놓인 밀리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언제나 쓰고 있던 크고 두꺼운 안경이 없는 창백한 얼굴은 꼭 낯선 사람 같았다.

그냥 보기만 할 건데, 다른 녀석들이 있든 말든 알 게 뭐란 말인가.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이유 없이,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그것도 다 이 녀석 탓일 터였다. 미간을 찌푸리고 잠든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며 그가 중얼거렸다.


“너 대체··· 뭐하는 녀석이냐고.”


얼른 일어나서 내 물음에 대답해야 할 것 아냐. 나지막하게 덧붙이면서도 스스로 어이가 없었다.


“됐다, 기절한 녀석한테 쓸데 없는 소릴 다 하고···”

“죄, 송··· 잘못 했··· 제가······”


잠든 밀리의 얼굴을 슬쩍 보고 적당히 돌아서서 나가려는 찰나에 들려온 소리에 아도니스는 깜짝 놀라 다시 몸을 돌렸다.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 밀리가 끙끙대며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 깜짝이야···”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로 우물대며 연신 사과를 하는 것이, 나쁜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었다. 


“..번만 용서······ 사고 치지 ······을게요. 주인님, 마님, 제발······.”

“······젠장.”


불분명한 발음으로 연신 사과하던 그녀는 자신의 머리칼을 가리려는건지 뽑으려는 건지 알 수 없는 동작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결국 발길을 돌린 아도니스는 리사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 머리를 잡아당기는 밀리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만 해, 이제 괜찮으니까.”


그러자 온몸에 힘을 주고 있던 그녀의 몸에서 안도했다는 듯 힘이 풀렸다. 일그러졌던 얼굴도 어느덧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할머니···”

“······.”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겠지 싶어 아도니스는 입을 다물었다.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얼굴로 밀리가 또 중얼거렸다.


“왜 그랬어요······.”

“······.”

“보고싶어······.”


어쩐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신도 덩달아 마음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도니스는 밀리의 잠꼬대가 멎을 때까지 손목을 놓지 않았다.


***


“헉,”


밀리는 눈을 떴다.

의식은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에 정확히 멈춰있었다.


‘방금, 내가 뭘 잘못 건드려서······.’


아직도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빛의 잔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등골이 서늘해진 밀리는 재빠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침대에서 뛰쳐나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헉, ······!”


자신의 손목을 쥔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도니스 대공자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를 뻔한 입을 막은 밀리는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다시 얌전히 침대에 앉았다. 그의 손에서 조심스럽게 빼낸 손목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뭐야???? 왜 도련님이????’


어쩔 줄 몰라하며 밀리는 아도니스를 비롯해 방 안을 정신없이 둘러보았다. 아도니스가 앉아있는 의자 옆 침대 가의 협탁에는 물수건이 걸쳐져 있는 대야와 무언가의 약, 그리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쿠키나 과일따위가 놓여있었다. 그것들을 살펴보던 밀리의 연녹색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이 사람이 나를 간호한거야?!’


너무나도 크나큰 오해였지만 방금 막 의식이 돌아온 밀리가 본 광경은 그런 오해를 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왜?!’


분명 자신의 경솔한 행동 때문에 성벽의 마법진에 무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을 본 그가 기절해있던 자신의 곁을 지켰다니, 정말이지 기분이 이상했다. 꼭 잘못을 저지르고 걸리기 직전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심장이 벌렁거렸다.


“아, 하핫, 조, 좀 춥네······?”


양손으로 팔뚝을 쓸어보던 밀리는 문득 자신이 근무복이 아니라 잠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옷을 갈아입혀 준 것 같은데··· 저도 모르게 시선이 졸고 있는 아도니스에게 닿았다 떨어졌다.


‘악, 아니겠지. 아니어야 돼. 제발, 리사나 마리아였을거라고 누가 좀 말해줘···!’


생각을 멈추기 위해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청하려던 밀리는 문득 다시 아도니스를 보았다. 잠든 그를 깨워서 방으로 돌아가 눈을 붙이라는 말을 해도 되는 것일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고민하던 그녀의 손끝에 침대헤드에 걸어두었던 체크무늬 담요가 잡혔다. 캐서린이 쓰던 담요였다. 유품 상자에 넣어두는 대신 자신이 쓰고 있던 그 담요를 고민 없이 집어든 밀리는 천천히 그것을 양팔로 넓게 펼쳤다.


‘어깨를 다 덮어야 따뜻한데, 길이가 되나?’


쫙 펼친 담요의 폭과 아도니스의 어깨 너비를 가늠해보니, 조금 아슬아슬하지만 덮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그의 몸을 최소한으로 건드리며 조용히 담요를 덮어주는데, 


“······뭐야······.”

“아앗,”


예민한 감각 탓인지 아도니스가 금방 잠에서 깨어나 고개를 들었다. 코끝이 스쳤다.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마주친 두 동공이 수축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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