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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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최근연재일 :
20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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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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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MMY

“······.”


무슨 일이었는지 물어보려다 그만둔 채로 밀리는 가만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쩐지 이 나라에서 가장 고귀한 소년 중 하나인 그가 어째서 아직 어린 나이에 왜소한 신체 조건을 가졌음에도 석궁을 늘 들고 다니며 실전 같은 명중율을 보이는지 알 것만 같다.


​“아마 이쯤이었던가.”


밀리를 데리고 걷던 아도니스가 걸음을 멈추었다. 유사시에 밧줄 등을 걸 수 있도록 담이 네모난 모양으로 낮게 파여있었다. 과연 어린 아이에게도 알맞은 높이였다. 아도니스의 입가에 삐딱한 웃음이 걸렸다.


“완전히 넋이 나가서는, 거의 제발로 내려갈 뻔했···”


그렇게 어린 시절의 자신을 비웃듯 담 아래를 내려보던 시늉을 하던 것도 잠시, 갑작스레 눈을 샛노랗게 빛내며 그는 밀리의 팔을 놓고 그 자리에서 석궁을 장전했다. 

그 살기에 놀란 밀리가 아? 하고 의문 가득한 탄식을 뱉기가 무섭게, 아도니스가 담벼락 아래로 석궁을 날렸다.

저도 모르게 화살이 날아간 쪽을 향해 고개를 내밀자, 시선이 화살을 포착하기가 무섭게 부정형의 시커먼 연기 같은 형태를 관통했다.


ㅡㅡㅡㅡㅡ!


동네 노인들이 담배 연기로 만드는 도넛 구멍 같은 것과는 달랐다. 분명 아무 형태도 없는 검은 연기 같아보였던 그것은 아도니스의 석궁을 맞자 기괴하게 뒤틀린 것만 같은 비명과 신음, 그 중간쯤 되는 끔찍한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저도 모르게 귀를 막았던 밀리가 조심스럽게 귀에서 손을 떼며 담 아래와 아도니스를 번갈아 보았다.


“방금······ 그러니까,”

“더 들여다보지 않는 게 좋을 걸.”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었다. 방금 전의 광경을 본 밀리는 깨달았다. 잔뜩 소름이 돋아 머리칼이 쭈뼛 솟는 기분이었다.

화살을 맞고 연기가 사라지자 드러난 것은 그저 누구의 발도 닿은 적 없는 새하얀 설원의 한귀퉁이였다. 그러니까 지평선까지 끝을 알 수 없게끔 이어진 검은 땅이, 사실은 땅이 아니라······


“······도련님.”

“말해.”

“······저희 이만 결계를 보러 가죠?”

“지금 네가 깔고 앉고 있잖아.”

“······네?!”


‘신의 실패작'이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는 광경을 마주하고 나니 어떻게든 목적을 달성하고 내려갈 마음에 건넨 얘기였지만, 정확히 그것이 엉덩이 밑에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에 밀리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 성벽에 올라왔을 때랑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아니, 잠깐. 평범한가?’


처음부터 똑같은 바닥 아니었나? 하던 밀리는 문득 다시 바닥을 살펴봤다. 자세히 보니 칼로 그은 실선으로 이어진 문양 같은 게 규칙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설마 이 문양이요?”

“경계를 지키는데, 작을 리가 없잖아?”


그 말에 밀리의 눈동자는 선이 이어진 곳을 따라가며 점점 커졌다다. 선이 성곽 위쪽 바닥 전체에 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성벽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마법진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빙정석을 쓰기로 하면서 마법진에 약간의 수정이 거쳐졌지긴 했지만.”


​그렇게 말하며 아도니스는 몇 걸음 뒤쪽을 가리켰다.

마법진은 말해주기 전까지는 새겨져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감춰져 있었지만, 이번은 그나마 알아보기 쉬웠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마치 무언가를 올려두는 간이 제단처럼 생긴 곳이 만들어져 있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제단의 한가운데에 작은 홈 같은 게 여러 개 파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기에 빙정석을 꽂아 작동시키는 건가요?”



아도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광물이라 원석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을 텐데, 이 홈에 넣으려면 세공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어요.”

“그 말대로야. 듣기론 원석을 일정한 크기와 모양으로 다듬는 것도 작동 과정에 포함된다던데. 그래서 홈이 있는 거고.”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밀리가 손가락을 뻗었다. 낮에 마리아에게서 받은 빙정석이나, 최초에 아도니스와 함께 동굴을 헤매다 주워온 원석의 크기와 비교해볼 셈이었다. 혹 자신이 가진 것이 그 홈의 크기보다 크다면 세공을 부탁해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면 빙정석 결계를 좀 더 빨리 가동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대는 순간.

촤악-


“꺅?!”


순간적으로 눈이 멀 것만 같은 섬광이 홈을 채우듯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수로를 통해 물이 흘러나가는 것처럼 빛은 홈과 연결된 마법진의 선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이윽고 성벽 위에 새겨진 마법진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 기세와 함께 출처 모를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정신없이 흐트러뜨렸다.


“너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바람 소리에 귀가 먹먹해진 아도니스가 고함을 쳤다.


‘저, 전 그냥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 건드린 것 뿐이라구요···!’


정말로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았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말이 나오지 않아 밀리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눈 앞이 핑핑 돌아 주변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발밑에서 빛나는 것이 엄청나게 눈이 부시다는 것 뿐.


ㅡㅡㅡ!


다만 아직 청각은 멀쩡한지, 끔찍한 소리만은 확실하게 포착했다. 분명 아까 전 아도니스가 쏜 석궁에 맞고 죽은 마물의 비명 소리와 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그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으며, 덕택에 훨씬 더 시끄럽게 들려온다는 것 정도.


‘으으, 시끄러워, 그만, 그만!’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음에 청각이 자극을 받아 신경은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졌고, 그것은 밀리와 다르게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이 없는 것을 빼면) 상태가 정상인 아도니스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소리의 근원지를 확인하기 위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고개를 내밀고 성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도니스의 화살에 맞아 사라졌던 ‘신의 실패작’과 똑같이 생긴, 성을 기어오르려던 검은 그림자들이 모두 빛에 닿아 재처럼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성벽 근처의 어둠이 몇 걸음씩 후퇴하듯 계속해서 밝아지고 있었다. 성벽이 밝아진다고 착각될 만큼.


‘어둠이······ 물러나고 있잖아.’


그러나 어둠은 밀려가는 것과 반대로 밀리의 시야에는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다. 의식이 아득해지며 몸에 힘이 풀리는 것이, 꼭 성에 처음 왔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정신 차려, 이봐, 카밀리아!”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려던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붙잡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점일까. 차가운 돌바닥에 부딪히는 대신 가죽 장갑과 털망토가 자신을 붙잡아줘서 다행이라고, 아득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밀리는 생각했다.


‘그런데 도련님 품이 이렇게 넓었던가?’


맨정신으로는 하지도 못할 생각을 감히 해보며, 밀리는 정신을 잃었다.


***


아도니스는 기절해 축 늘어진 밀리를 데리고 내려가기 위해 다시 성벽 입구로 향했다.


‘두 달 전의 체력이었다면 어림도 없었겠는데······.’


다행히 현재의 아도니스는 그녀를 간신히 부축해 계단 입구까지 갈 정도의 힘은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밀리를 계단에서 굴리는 게 아닌 이상 그보다 더 움직이는 건 무리였기에 그 뒤엔 빌을 불러서 계단을 내려가야 했지만.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결계에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결계가 빛나는 것은 성 안에서도 다 보였던 모양인지, 창백한 얼굴로 계단을 올라오덩 기사들, 하인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아도니스는 그런 그들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손을 휘휘 내저으며 밀리를 업은 빌이 지나가게끔 길을 터 주었다.


“설명은 나중에. 우선 이 녀석 상태부터 확인해.”

“예! 어서 티렐 선생을 불러오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둥, 토를 다는 과정 없이 그들은 의사인 티렐 선생을 부르는 한편 밀리의 상태를 대략적으로나마 확인했다.


“안색이 창백하긴 하지만 독이나 저주 등에 걸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선은 방에 데려가서 티렐 선생이 올 때까지 편안히 눕혀놓죠.”

“그렇게 해.”


허락이 떨어지자, 마리아가 빌을 데리고 밀리의 방 쪽으로 향했다. 상황을 지시하고 돌아갈 것 같던 아도니스도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대신 그들을 따랐다. 평소와 비슷한 무표정이었지만 그를 아주 오래, 가까이서 봐왔던 마리아와 빌은 미세하게 평소보다 더 걱정이 서려있음을 눈치챘다.


‘별일이시군.’


다만 늘 그래왔듯, 에인스워스 대공저의 사용인들은 주인에게 토를 달지 않았다.


***


빠른 일처리 덕에 정신을 잃은 밀리를 침대에 눕히자마자 에인스워스 대공저의 주치의, 티렐이 타이밍 좋게 등장했다. 마리아가 물수건으로 밀리의 이마를 닦는 것을 보며 티렐은 밀리의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눈꺼풀이나 손목의 맥, 목덜미의 맥, 호흡 등을 살핀 티렐이 안도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생명에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마리아와 빌은 약간 안심하는 기색을 보이는 가운데, 밀리의 방문에 팔짱을 낀 채 삐딱하게 기대어 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도니스가 여전히 인상을 쓴 채로 물었다.


“그러면 어떤 상태인거지?”

“그게, 모든 기력이 소진되어 기절한 것 같습니다.”

“그럼 기력을 회복하면 깨어나는 건가?”

“맞습니다. 우선은 자면서 기력을 회복하면 알아서 일어날 겁니다.”

“흠······.”


그제야 만족했다는 듯 아도니스가 인상을 쓴 미간에 힘을 풀었다. 도련님께서 찾으신다기에 중노년의 몸으로 헐레벌떡 달려온 티렐은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무심코 물었다.


“그런데 이 아이, 오전에 봤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격한 운동을 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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