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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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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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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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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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MMY

“윽!”

 

밀리는 다리에 힘을 풀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하아······뭐야,”

 

경사진 길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굴러서 산을 내려갈 뻔했다. 목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옆에서 비척거리며 걷던 아도니스는 반쯤 넋을 놓고 걷다가 밀리가 넘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한심한 것을 보는 듯한 눈으로 그가 혀를 쯧 하고 하며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잡아.”

“죄송해요, 다리에 힘이 빠져서···”

“가지가지하네······ 알았으니까 잡으라고.”

“네에···”

 

굉장히 성가시다는 시선을 받기는 했지만, 어쨌든 밀리는 그의 팔을 붙잡고 간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에 만족했다. 그가 내민 손을 잡고 팔에 매달리듯 힘겹게 일어난 밀리는 문득 그의 손에 아까 전에 매어준 천이 감겨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 체중이 조금 실릴 정도로 세게 쥐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전혀 아픈 것 같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혹한에서 계속 걸었음에도 무릎의 상처가 더이상 아프지 않았던 건,

언제부터였더라?

 

“이런, 죄송해요! 아프지 않으세요?”

“···갑자기 뭔 소리야.”

“아까 공자님이 상처내신 쪽 손을 너무 세게 잡아버린 것 같아서요···”

“아프긴커녕 전혀, ······어?”

 

잔뜩 피로한 표정을 짓던 그가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듯 멍한 표정으로 손에 동여맨 천을 풀었다. 검붉은 피가 배어든 천을 벗겨내자, 드러난 것은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손바닥이었다. 밀리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정말 나았잖아요?”

 

멍하니 자신의 말끔한 손바닥을 내려다보던 아도니스는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무어라 계속 중얼대며 몸을 바로 세웠다. 어느새 자세는 다시 처음 성에서 만났을 때처럼 꼿꼿해진 채였다.

 

“······살릴 수 있어.”

 

아버지를 살릴 수 있어. 추위로 인해 불분명해진 발음으로 몇 번을 되뇌는 그의 걸음에서 초인적일 정도의 힘과 의지가 느껴졌다. 팔을 붙든 밀리가 망토로 자신의 몸을 반쯤 감싸준 것도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로.

 

“저기다! 저기 도련님이 계신다!”

 

다행히 산의 초입까지 내려가니 어두워진 산 속에서 헤매고 있을 대공자를 모셔오기 위한 병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겨우 정신을 붙들고 귀환한 두 사람은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으으음···”

 

빛이 얼굴을 찌르는 느낌에 밀리는 잠에서 깨어났다. 창가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셔 잠깐 인상을 찌푸린 그녀는 무언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퍼뜩 몸을 일으켰다.

 

“헉,”

 

언제나 기상하던 이른 아침 시각을 훨씬 지나,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그나마 현재 무직 상태라 늦게 일어나도 지각할 곳이 없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물론 일보다 더 급한 사안을 두고 있긴 했지만.

아직 덜 깨어난 머리가 삐그덕거리며 억지로 회전을 시작하는 것을 기다려줄 순 없었다. 밀리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어 땋으며 침대 바깥으로 빠져나오다 방으로 들어온 사람과 마주쳤다.

 

“어머!”

“아, 저,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아니··· 오후네요.”

 

성에서 일하는 하녀들 중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아직 통성명을 하진 않았지만 오며가며 사람들이 그녀를 리사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적 있었다. 리사는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더니 손에 들고 있던 빨랫감을 고쳐 들고는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일어났네요! 아, 함부로 나오지 말고 여기 얌전히 있어요.”

“네? 네.”

 

그녀의 말에 밀리는 영문도 모르고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리사는 우렁차게 외치며 다시 복도로 빠져나갔다.

 

“빨강 머리 아가씨- 깨어났어요-!!”

 

어쩐지 얼굴이 조금 달아오르는 것 같은 기분으로 안경을 찾아 끼자 곧이어 급한 걸음의 하녀장 마리아가 하인 빌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일어났나? 몸은 좀 어떤가.”

“아, 저. 괜찮답니다!”

 

저도 모르게 일어나서 마리아에게 인사를 건네자, 그녀 또한 마찬가지로 눈을 엄하게 뜨고는 앉으라며 손짓했다.

 

“앉게. 서 있는 것도 힘들테니. 우선 식사부터 들지.”

 

어쩐지 데자뷰가 느껴지는 상황에서 밀리가 도로 앉자 빌이 가벼온 쟁반을 내밀었다. 쟁반에는 따뜻한 토마토 스프와 삶은 달걀 등이 놓여있었다.

 

“사흘이나 굶었으니 갑자기 거한 식사를 하는 것은 무리야. 그 정도로 만족하게.”

“물론이죠!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숟가락을 들어 이변 없이 맛있는 스프를 입 안에 떠 넣던 밀리는 뒤늦게 무언가 이상한 단어를 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방금 사흘이라고 하셨어요···?”

“그래, 자네 삼일만에 깨어났어.”

 

툭, 철퍽.

깜짝 놀라 스푼을 그릇에 떨어뜨리자 토마토 수프가 쟁반 여기저기에 튀었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방에 튄 시뻘건 국물을 닦을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비틀대던 대공자의 걸음과 얼마 남지 않았다던 대공의 생명에 대한 것만이 머리를 채웠다.

 

“공, 공자 님께서는···?”

“그분은 아직이시네. 빨라도 오늘 저녁에나 일어나실 것 같아.”

“혹시 무슨 일이 있나요? 다치셨다거나···”

“도련님은 원래 잠이 좀 많, 아니, 깊이 잠드시는 편이에요. 부족한 식사량을 수면으로 채우셔서 체력을 보충하시는···”

“빌. 그쯤 하게.”

“옙.”

 

마리아가 주절거리는 빌의 말을 끊었다. 대공자 본인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만큼, 그의 식성에 관한 이야기는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는 듯 보였다. 밀리는 못 들은 척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럼 언제쯤 깨어나실까요?”

“아무리 깊이 잠드셔도 평소라면 사흘씩이나 깨어나지 못하지는 않으시네. 언제 깨어나실지는 우리도 알 수가 없어.”

 

다소 가라앉은 마리아의 말에 나머지 두 사용인들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의 몸 상태가 한시를 다투는 상황인만큼 대공자가 깨어나는 것을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밀리는 식사를 대충 마무리하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빠르게 땋아내리며 물었다.

 

“대공께서는 아직 깨어나지 못하셨겠죠? 아, 북부 교구로 가셨던 기사님들께서는요?”

“모두 아직일세.”

 

마리아가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북부 교구는 쉬지 않고 말을 달려도 가는 데만 3일이 걸린다고 했으니, 아무리 빨라도 어제 막 그곳에 도착한 게 고작일 것이다.

나서기 싫었지만 사람 목숨이 그보다 더 중요했다. 밀리는 한숨을 쉬며 머리 정돈을 마무리하고는 침착하게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산에 올라갈 때 멨던 가방은 구석에 놓인 테이블 위에 있었다. 분명히 잔을 그 안에 넣어두었···

 

“···없잖아···”

 

잔이 없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쭈뼛 선 머리털 아래 식은땀이 맺히는 것을 느끼며 밀리는 마리아를 보았다.

 

“저, 하, 하녀장님? 혹시, 이, 가방에 들어있던 건 이게 다, 인가요?”

“찾는 물건이 있는 모양이구나.”

“···!”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가 저도 모르게 홱 돌아갔다. 대공비가 문가에 서 있었다.

 

“잔이라면 내가 보관하고 있으니 심려 말렴.”

“아···!”

 

온몸을 경직시키던 긴장이 언제 그랬냐는 듯 빠져나가는 바람에 밀리는 다리가 풀려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정말 다행이다······.”

“이런, 진작 말해줄 걸. 많이 놀랐나보구나.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렴.”

“아니에요! 귀한 물건이 무사한 것이 제일 중요하지요.”

“네 말대로란다. 귀한 것이라 맡아두었지. 가져오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겠구나.”

 

밀리에게 무언갈 망치지 않고 해내어 칭찬을 받는 건 굉장히 드문 경험이었다. 어쩐지 귀가 뜨거워진 느낌에 민망해져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으니 안나그레타가 손짓했다.

 

“부끄럽지만 내 아들이 잠이 많아. 그래서 이것에 대해서는 네게 신세를 좀 져야할 것 같구나. 나를 도와주겠니?”

 

불안 속에서도 애써 친절을 유지하려는 대공비의 눈동자 속에서 여유로 가려놓은 조바심이 느껴졌다. 아마도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은 그녀일 것이다. 밀리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네, 맡겨만 주세요!”

 

***

 

아도니스는 꿈을 꾸었다.

그는 다시 눈보라치는 설산 한가운데 서 있었다.

저만치에 검은 옷을 입은 누군가가 쓰러져있었다. 쓰러진 사람의 몸뚱이 위에 빠른 속도로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아도니스는 묘하게 익숙한 실루엣을 가진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다가갔다. 그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눈보라가 앞을 막아서려는 듯 맹렬하게 불어댔지만 멈추지 않고 침착하게 나아갔다.

마침내 그 사람에게 다가갔을 때, 눈은 한참 쌓여 사람이 잘 보이지 않을 수준이었다. 아도니스는 다급한 손길로 그의 얼굴께에 쌓인 눈을 치웠다. 아버지였다.

 

“아버지!”

 

눈을 치우는 그의 손길이 점점 빨라졌다. 어느 정도 눈을 치운 뒤에는 빠르게 깨워보겠다며 몸을 흔들어댔다. 그러나 의식이 돌아오는 대신 체온이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마음이 점점 다급해졌다. 어떻게든 그 온기를 나눠보겠다고, 그는 부친의 몸뚱이를 꼭 껴안았다. 짊어지고 일어나기엔 자신의 볼품없는 몸뚱이로 지탱하기 너무나 무겁다는 사실에 울부짖으면서.

 

“아버지! 일어나세요! 제발, 누구든 도와줘!”

 

몰아치는 눈보라가 그의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그는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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