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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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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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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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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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MMY

“아······.”


토마스의 몸은 딸을 감싼 채로 얼어붙고,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버리는 바람에 토마스의 주검을 훼손하는 것이 아닌 이상 둘을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였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남편과 딸의 생존만을 기다려왔던 캐서린은 하루 아침에 꼭 껴안은 시체로 돌아온 그들을 보고 반쯤 미쳐 버렸다. 누구라도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캐서린이 성유물을 훔쳐 달아난 것은 사건 이후로 딱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은 안타까운 사건이었지. 그 직후 내려진 저주로 성이 눈보라에 갇힌 것은 사실이지만 추격자를 보내려면 보낼 수 있었을거야. 그러나 선대 대공 전하께서 그러지 않은 것은 캐시의 고통을 이해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네.”

“······.”

“그러니 자네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어.”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마리아는 약간 후련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다만 직후에 다시 얼굴이 어두워졌다.


“앞으로가 걱정이지.”

“앞으로라고 하시면······?”

“이제 눈보라가 그쳤잖나. 북부 국경선을 막아주던 천연 방벽이 사라졌으니 다시 국경의 결계를 작동시켜야지.”


영지를 수호하던 성배를 도둑맞자 닥친 저주가 결과적으로 영지를 지켜주는 방벽이 되다니, 아이러니했다.


“신성력이든 빙정석이든, 다시 공급을 받아와야 하는거군요.”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30년 전에는 빙정석 쪽이 좀 더 수급이 용이했지만, 광산이 무너지고 30년동안 손을 쓰지 못한 지금에서는 둘 중 어느 쪽이 더 공수가 어려울지 우열을 가릴 수가 없겠지. 큰일이야.”

“빙정석은······ 많이 귀했던가요.”

“30년 전 당시에는 토마스가 일하던 그 광산이 유일한 수급처였지. 아마 다시 빙정석 수급을 시작하게 된다면 그곳부터 가 볼거다. 사고 이후로는 발길이 끊겼으니 어떻게 되어있을지 모르겠군.”


그러고보면 빙정석은 ‘제국 최북단에서나 드물게 찾아볼 수 있는 광물’이라는 내용을 예전에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가뜩이나 드문 광물이 잠든 새로운 매장지를 지금부터 찾아다니는 것은 어려운 만큼 아마 예전의 광산이 무너진 자리를 다시 파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빠를 것이다.

다만 무리한 채굴로 인해 약해진 지반이 무너졌다고 했으니, 그곳의 매장량도, 안전성도 믿을 만한 건 못 되겠지만.


“괜찮을까요? 빙정석의 양은 그렇다치고, 위험할 것 같은데.”

“어쩌겠나. 우선적으로 가볼 수 있는 곳이 그곳뿐인 것을. 최대한 조심해야겠지.”


마리아가 말하는 ‘큰일'이라 함은 이 모든 것을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한 말일 터였다. 그녀는 다만 어깨를 으쓱였다.


“결국 새로운 광산을 발견하거나, 다시 영지에 사제님을 모시고 신전을 세우는 것을 허락받거나, 둘 중 하나라도 해내지 않으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네.”

“······.”

“둘 다 어렵다면 결계를 포기하고 국경수비대를 조직해 병사를 기르는 게 빠를지도 모르지. 황제께서 두고 보실지는 모르겠다만.”


결국은 돌고 돌아 황제에게로 문제가 모였다. 그의 권력 장악을 위한 교구 축소만 아니었어도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이전 회귀에서 경험했던 전쟁도 왠지 그의 탓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던 와중, 미처 정리되지 못한 물건들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는 테이블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거기 놓인 흰 돌조각이.

일전에 얼음 동굴에서 아도니스와 함께 헤맬 때 주운 돌이었는데, 유백색 석영이 동굴 벽에서 떨어져나온 것처럼 생긴 것이 언뜻 보면 보석 같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빙정석도 유백색 석영과 유사한 색상과 결정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본 것 같았는데?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밀리는 램프의 뚜껑을 닫고 재빨리 방의 불을 껐다. 저녁 시간답게 방은 어슴푸레한 어둠이 가득찼다. 덕분에 방 한구석에 놓인 테이블 위에서 하얗게 빛나는 돌조각이 더욱 눈에 띄었다.

그랬다. 빙정석은 어두운 곳에서도 일정하게 빛이 난다는 특징이 있었다. 성큼 일어난 밀리가 그것을 내밀자 빙정석을 알아본 마리아가 깜짝 놀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 빙정석은 언제······. 혹시 캐시가 생전에 자네한테 남겨주었나?”

“아뇨, 저번에 성배를 되찾으러 도련님과 함께 들어갔던 동굴에서 찾은 거예요.”


비교적 평탄하다고 생각되던 동굴 초입을 막 지나 가파른 경사나 낮은 천장 탓에 두발로 걷지 못하고 이따금씩 무릎과 손으로 기어서 통로를 지났던 때였던 것 같다. 어두운 바닥에서 무언가 빛나는 돌은 좁고 컴컴한 시야에서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예쁘네.’


자연스럽게 손에 쥐어보니 어딘가에서 떨어져나온 결정처럼 일정한 모양을 하고 있는것이 제법 예뻐 주머니에 넣었다. 어떠한 가치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운 것이 아니다보니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 상황이었다. 발견지와 외형적 특징을 고려했을 때 빙정석일 확률이 이렇게나 유력했는데도.


은은하게 빛나는 빙정석을 보는 마리아의 눈동자가 어두운 방 안에서 유독 눈에 띄게 반짝였다. 어쩌면 이상적인 방법으로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게 다시 또 몇 주가 지났다.

한 달이 넘은 만큼 할당된 업무와 일정이 정착되며 밀리는 제법 이 성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계속 마음을 졸인 것이 무색할 정도로 예전에 그녀를 집요하게 따라다녔던 사고나 불행도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록 그 원인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이 정도가 어디인가.

다만 이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삶에서도 변수라는 것은 존재했는데, 그것은 바로······.


“리온, 올라가면 안돼! 루이, 그건 먹는 게 아냐······!”


이제 막 제대로 걷기 시작한 야옹이네 새끼고양이들의 기동성이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삼색 고양이 리온은 무엇을 봐도 겁이 없었고, 턱시도 고양이 루이는 뭐든 입에 넣고 봤다. 완전히 크기 전까지는 (아도니스의 허락 하에 이제 고양이 집이나 다름없이 꾸며진) 예배당 안에서만 키우는게 좋겠다는 판단 하에 조용히 키우고 있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탈출을 감행하니 언제나 정신을 번쩍 차려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정작 밀리 본인을 부르는 소리에 제때 대답을 못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밀리, 밀리!”

“꺅! 아, 리사······ 죄송해요!”


방금처럼.


“한참 찾았잖아. 하녀장님이 찾으셔. 얼른 와.”

“···지금요?”

“왜, 급한 일 있는거야?”

“······아니에요! 얼른 가요.”


급한 일은 아니긴 하지만 도련님께서 돌보라고 한 고양이들이 제 앞치마 주머니에 들어있는데요······. 차마 꺼낼 수 없는 그 말을 삼키며 밀리는 리사를 따라 걸음을 옳겼다. 성의 앞쪽 뜰에 있는 마리아에게 밀리를 데려다 준 리사는 시원스러운 동작으로 인사하고는 할일을 다했다는 듯 부엌으로 가버렸다.


“부르셨어요?”

“내가 너무 급하게 부른 모양이지.”

“네? 전혀 아니··· 아앗,”


마리아의 시선이 닿은 곳을 보니 불룩해진 밀리의 앞치마 주머니가 눈에 띄게 꼬물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꼬물거림이 격해질 때마다 주머니 위쪽으로 삐죽삐죽한 솜털을 자랑하는 꼬리가 슬쩍슬쩍 보이기까지 했다. 주머니를 보며 작게 들릴락말락한 한숨을 쉰 마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저번에 자네가 이야기한 그것 말이네.”


갑자기 밀리의 몸에 힘이 들어가며 온몸이 긴장되었다. 그녀가 마리아와 무언가에 대해 이렇다할 이야기를 나눈 적은 캐서린의 유품이 도착한 그 날 이후로 거의 없었기에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빙정석 말씀이시죠? 어떻게 되었나요?”


이어진 질문에도 마리아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말없이 한숨을 쉬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근무를 시작한 후로 크게 문제를 일으킨 적 없었다는 걸 아는데도 살짝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생각은 마리아가 꺼내어 건넨 가죽주머니를 받아들 때까지 계속되었다. 밀리에게 그 달 치 봉급을 받고 쫓겨나는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이, 이이이게 뭔가요?”

“열어보면 알 거야.”


더 불안했다. 손끝이 떨리는 것을 애써 숨기며 끈을 잡아당겨 주머니를 열자, 은은한 빛과 서늘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빙정석······?”


눈이 마주친 마리아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지막 급여 같은 건 아닌 분위기였지만, 갑자기 이걸 왜 나한테? 순간 밀리의 머리를 스친 생각이 있었다.


“아, 혹시, ······?”

“자네가 이야기해준 동굴을 조사하러 간 사람들이 돌아왔네. 거기서 나온 거야.”

“그렇다는 건 그러면······!”

“그래, 빙정석이 매장된 게 확실하다더구나.”

“덕분에 30년 전에 무너졌던 이전의 광산은 예정보다 천천히 파도 괜찮을 것 같아. 고마운 일이지.”

“···대공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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