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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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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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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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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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MMY

다시 돌아왔다고 한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밀리는 여전히 고아였고, 여전히 불행했으며, 여전히 빨간 머리에, 가진 것도 없으면서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처지에서 밀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캐서린 할머니의 부탁을 저버린 것이 마음에 걸려 그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대신에 그녀는 거리에서 제법 영향력이 큰 아이를 저 대신 캐서린의 눈에 들게 했다.

 

“좋은 분이야. 나 대신 돌봐 드려.”

 

대가로는 자신이 거리 생활을 계속하면서 험한 일은 당하지 않는 거면 충분했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그녀가 양보해 대신 캐서린의 집에 들어간 아이가 사실은 강도단의 일원이었고, 덕분에 캐서린이 저번 삶보다도 더 빨리 숨을 거뒀으며, 집과 재산이 모두 강도단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단 것을.


―고맙다, 밀리. 약속대로 넌 안 건드렸다, 그치?


밀리는 절규했고, 세상은 다시 뒤집혔다.


***


세 번째 삶부터 밀리는 캐서린과 만난 마을을 떠나 살았다.

자신의 불행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에서 문제가 되는 거라 생각한 그녀는 인적이 드문 산속에 처박혀 살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남이 내다 버린 책을 주워다 하루 종일 읽는 것 뿐이었다. 첫 삶에서 글을 배워두길 잘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가끔 희귀한 나물이나 버섯을 캐러 밀리의 집 근처까지 온 사람들이 바위산에서 발을 헛디디거나 독초를 먹고 죽는 불운한 사고가 있었지만, 이 또한 외면하며 성인이 될 때까지 그런대로 괜찮게 버텼다고 생각했다.

전쟁 이야기가 들려오기 전까진.


무엇 때문에 어디와 벌이는 전쟁인지도, 전투가 어디서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그저 전쟁의 소식을 들었을 때 뭔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고,


―제국군이 대패했소.

―오, 내 아들! 아직 돌아오지도 못했는데······!


패전 소식을 들었을 때, 또다시 세상이 뒤집혔다.


***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밀리는 패전했다는 정보를 들을 때마다 계속해서 회귀했다. 벌써 패전 소식을 듣고 과거로 돌아와 눈을 뜬 것이 몇 번째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간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밀리는 점점 지쳐갔다.

 

‘뭐, 전쟁이라도 막아야 되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가진 거라곤 반반한 외모뿐인 불운한 여자애는 스스로의 인생도, 하나뿐인 가족도 구제하지 못했다. 하물며 전쟁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사건을 마음대로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렇게 목숨만 부지하는 게 고작인 불행한 삶에 의미라는 게 있을까, 밀리는 생각했다.

 

‘그냥 죽을까.’

 

마을 성당의 신부가 들으면 까무러칠 만한 생각을 하며 밀리는 밧줄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몇 초 후, 허무하게 끊어져 버린 밧줄을 쥐고 마룻바닥에 나동그라진 채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침을 하며 생각했다.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 해?’

 

밧줄을 몇 차례나 끊어먹고, 강가에선 계속해서 기슭으로 건져졌으며, 손목에 닿는 칼날들은 죄다 무뎌져 생채기만 내는 게 고작이었다.

서른 여섯 번째로 목을 매기 위해 올라선 의자 다리가 부러지며 바닥에 떨어진 밀리는 눈물을 흘렸다.

 

“너무, 힘들다······.”

 

번번이 실패하니 이제는 시도가 아프고 무섭기만 했다. 하지만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사무치는 외로움이었다. 따뜻한 온기가, 유일한 가족의 품이 너무나 그리웠다.

 

“할머니, 보고 싶어요······.”

 

일그러진 눈가에서 눈물을 흘리며 밀리는 눈을 감아버렸다.

 

***

 

눈을 뜨면 다시 과거였다. 원점으로 회귀한 밀리는 죽는 것을 포기하고 짧은 시간이나마 사랑하는 가족과 다시 함께하는 것을 선택했다. 마침내 돌고 돌아 다시 처음과 같은 삶이었다.

이변은 없었다. 캐서린은 첫 번째 생에서 그랬듯 유언을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떴다. 하지만 이후는 다를 것이었다. 밀리는 식어버린 캐서린의 주름진 손등에 키스하고 그녀가 건넨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너무 늦었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사랑하는 가족의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먼 길을 떠날 참이었다.

북쪽의 앨버 영지, 영원한 겨울의 성을 향해.

 

 ***


“······.”

 

푹신한 침구에서 위화감을 느낀 밀리는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서서히 잠이 깨며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캐서린 할머니의 부탁으로 겨우겨우 산꼭대기 대공성까지 오는 길에 마차가 산적들의 습격을 받았고, 성문 앞에서 죽을 위기에 누군가가 석궁을 쏴서······.


‘정말로, 와 버렸어······.’


깨닫고 나니 심경이 복잡했다.

 

“일어났는가.”

“헉,”

 

갑작스레 누군가가 말을 걸어와 밀리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자세가 꼿꼿한 중노년의 부인이 쟁반을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황급히 안경을 쓰고는 몸을 일으켜 인사를 하려 했지만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그녀를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는 식탁 옆에 딸린 작은 협탁에 쟁반을 내려놓으며 사무적인 말투로 자신을 소개했다.

 

“마리아 델윈. 에인스워스 가문의 하녀장일세. 우선 들지.”

“앗, 감사합니다···”

 

쟁반 위에 놓인 것은 채소로 끓인 평범한 크림수프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보잘 것 없는 음식일테지만, 이 음식은 캐서린이 밀리에게 자주 해 준 음식 중 하나였다.

가뜩이나 몇날 며칠을 굶으며 설산을 오르고 난 뒤였던지라 냄새를 맡는 순간 밀리의 이성은 보잘 것 없이 끊어졌다. 체면을 차리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수프를 먹는 그녀를 맞은 편에 앉은 마리아는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자네가 가져온 물건은 대공 전하께서 보고 계시네.”

“···!”

 

그릇을 비우자마자 마리아가 꺼낸 말에 밀리는 잠시 멈칫하다가 목덜미를 더듬었다. 손끝에 걸리는 묵직한 것이 없었다. 이내 그녀는 마리아가 말한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곤 고개를 주억거렸다. 분명 그 목걸이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그녀가 정신을 잃고 있던 동안 그것을 가져간 모양이었다.

 

“혹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나?”

“대공 가의 중요한 보물이라고 들었어요. 그것 외에는, 잘······.”

 

우물쭈물거렸지만 사실 그녀는 그 목걸이가 무엇인지는 물론, 현재는 ‘아우로라의 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반환을 부탁한 캐서린이 알려주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고, 회귀하며 접한 지식들 덕분이었다.

아우로라의 별은 제법 유명한 보물이라, 제국의 귀족 가문을 다룬 책을 조금만 읽어도 알 수 있는 것이긴 했다. 에인스워스 가문은 건국부터 함께했기에 웬만한 가문의 역사나 가계도 같은 곳에 황가 바로 다음 장에 수록되어 있어 접근성도 좋았다. 게다가 아우로라의 별과 얽혀 전해내려오는 사연 또한 유명해서 에인스워스 가문의 일화를 다룬다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하지만 이것도 사교계에 입성하기 위해 교양 개념으로 공부하는 귀족가 자제들에게나 상식일 뿐 입에 풀칠하기 바쁜 백성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 하녀가 글만 알아도 신기할 판에, 이런 것까지 내밀하게 알고 있다는 티를 내서는 좋을 것이 없었기에 밀리는 적당히 모르는 척을 하기로 했다.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목걸이는 에인스워스 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라네. 오래전 도둑맞아 애타게 찾고 있던 것을 가져왔으니 전하께서 큰 상을 내리실 거야.”

“상······이요?”

 

밀리는 조금 의외라는 생각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을 되찾아준 자에게 상을 내리는 처사야 당연했지만, 그 목걸이가 아우로라의 별과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다 한들 진짜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었다. 황가 다음 가는 가문의 가보를 북부와는 거리도 먼 시골 마을의 죽어가는 노파가 가지고 있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 목걸이, 정말로 찾으시는 ‘진짜’ 보물이 맞을까요? 저는 부탁만 받았던 터라 잘 모르는데······.”

 

대공을 상대로 사기를 친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 밀리는 쭈뼛거리며 물었다. 마리아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네. 자세한 것은 대공 전하께서 직접 이야기해주실 거야. 자네가 입고 온 옷은 영 엉망이 되어버려서 버렸으니 이 옷으로 갈아입고 나를 따라오게.”


***

 

새옷으로 갈아입고 마리아의 뒤를 따르는 밀리는 가빠진 호흡을 다스리려 애썼다. 마리아의 걸음이 빠른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불안해 죽겠다······!’


묵직해 보이는 저 샹들리에가 갑자기 떨어져 산산조각나진 않을까?

이 커다란 창문에 새가 날아와 부딪혀 죽는 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유리가 깨져 조각이 튀어 살갗에 박히지는?

그녀가 숨을 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언제 어디서든 일어났던 예고 없는 사고들이 잔상처럼 밀리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후, 하, 후, 하······.”


그녀는 의식적으로 심호흡을 했다. 주변은 고요했음에도 이따금씩 심장이 쿵쾅거렸다. 오감이 지나치게 예민해져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나 발소리만으로도 흠칫거리는 그녀를 하녀장은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너무 긴장할 것 없네.”

“가, 감사합니다···”

 

갖은 경우의 수로 불길한 사건들을 상상하고 있으니 어느새 대공의 접견실이었다.

잔뜩 긴장해 마른침을 삼키며 마리아의 어깨 너머로 접견실의 문이 열리는 것을 살펴본 것이 무색하게도, 안은 비어있었다.

 

“아직 안 오신 모양이군. 조금 기다리게.”

 

그렇게 몇 분을 대기한 끝에, 접견실의 반대편 문이 리며 두꺼운 털외투를 걸친 남성이 기사 두엇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앨버 대공 드십니다.”

 

밀리는 마리아가 미리 일러준 대로 예를 갖추며 곁눈질로 대공, 알렉시스 에인스워스를 힐끔거렸다. 그는 키가 대단히 크고 날카로운 금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검은 머리의 미남이었다. 다만 왠지 모르게 잔뜩 상기된 얼굴과 올라간 입꼬리 탓인지 청년인지 중년인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워 보였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성큼성큼 들어와 자리에 앉은 그는 허례허식에 별로 구애받지 않는 사람인지, 인사를 채 마치기도 전에 손을 내저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이름이 어떻게 되지?”

“밀, 아니, 카밀리아입니다!”


밀리가 뒤늦게 꺼낸 이 이름은 캐서린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ㅡ아가, 이름이 어떻게 되니?

ㅡ밀리··· 예요, 할머니.

ㅡ이렇게 예쁜 애한텐 너무 평범한 이름인데?

ㅡ그런가요···?


고향에서 피는 새빨간 동백꽃을 닮았다며 카밀리아라는 이름을 붙여준 게 그러고 며칠 뒤였다. 원래 이름인 밀리를 포함하고 있으니 애칭이라 생각하라면서.

고향에서 피는 아름다운 꽃과 닮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무척 기뻐했던 것과는 별개로, 이 이름을 실제로 사용한 적은 많지 않았다. 귀족 아가씨들이나 갖는 이름 같아 자주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오늘만큼은 이 이름을 꺼내야 할 것 같아, 밀리는 긴장으로 굳어버린 혓바닥을 서툴게 움직였다.

 

“동백꽃인가? 머리카락이 새빨개서 퍽 잘 어울리는 이름이군.”

 

아차, 밀리는 뒤늦게 깨달았다. 죽을 위기를 넘기고 눈을 뜬지 얼마 안 된 탓에 잊고 있었다. 도망치듯 설산을 오르던 과정에서 늘 머리카락을 가리고 다니던 수건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이런, 머리가···! 죄송합니다, 가렸어야 했는데······.”


허둥지둥 머리 위를 더듬는 그녀의 코끝에 간신히 달려 있는 안경이 덩달아 달랑거렸다. 그러나 앨버 대공은 경을 치기는 커녕 여전히 기분 좋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왜, 빨간 머리라서? 걱정 말아. 지금 이곳에서 아가씨를 보고 그 말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로군.”

 

저길 보게. 알렉시스가 손끝으로 가리킨 쪽에는 커다란 창이 있었다. 밀리는 그가 시키는 대로 창을 쳐다봤지만 창 밖에는 푸른 하늘 외에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그 시선을 알아챈 듯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십 년 동안 보지 못한 맑은 하늘. 그것을 아가씨가 가져다줬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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