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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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L
작품등록일 :
2024.08.0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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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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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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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MMY

***


알렉시스는 노골적으로 그녀를 제도로 보내는 게 내키지 않는 티를 냈다. 안나그레타는 밀리에게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아도니스는 왠지 모르게 잔뜩 언짢은 얼굴로 가장 먼저 자리를 떴다. 밀리는 우선 고개를 주억거리고 그대로 방으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라니. 생각해 볼 게 있나? 제국 법이 그러한데.

‘꼭 나한테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던 그녀는 그들의 신분을 생각하고 헙, 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앨버 대공쯤 되면 정말로 그 정도의 제국법은 살짝 피해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신관님이 그랬지,’

그녀의 능력은 고위 사제 급이라고, 노신관은 말했었다. 하녀로 살다가 가장 높이 이를 수 있는 위치라고 해 봐야 하녀장이 고작이다. 하지만 아까 그 늙은 사제는 밀리의 신성력이 고위 사제급이라고 한 것으로도 모자라, 신관으로서 거치는 과정을 상당수 건너뛰며 빠르게 사제가 될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러면 그게 더 낫지 않나?’

게다가 생각해보니 성도의 대신전 근처에서는 그녀의 불운도 덜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이 신성력과 연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침대에 앉은 밀리는 팔로 양 무릎을 감싸고는 벽에 등을 기대었다.

어쩌면 이제껏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지도 몰랐다. 물론 이번에도 또 전쟁이 일어날 즈음 회귀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일단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신분 상승. 새로운 직업. 새로운 장소. 불운한 사고가 줄어드는 주변 환경. 거기에 제국민이라면 모두 따라야 하는 법까지.

여러모로 봐도 대공 부부가 제안한 선택권 따위를 고민할 것 없이 당연히 제도로 가는 게 맞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부감이 들었다. 지극히 비논리적인 충동에 밀리는 입안으로 우물대며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내키지 않지······.”

“뭐가.”

“으앗! 깜짝이야··· 도련님! 언제 오셨어요?”

혼잣말에 들려온 갑작스러운 반응에 소스라치게 놀란 밀리가 아도니스를 탓했다. 그녀가 자신 때문에 놀라건 말건 아도니스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로 제 할 말만 했다.

“정했나?”

주어도 목적어도 없었지만 무엇을 묻는지는 명확했다. 제도의 신전으로 갈지 정했냐는 물음이었다.안나그레타가 천천히 생각해보라고 말한지 이제 만 하루 정도 지난 참이었다. 가뜩이나 정하기 어려워 심란해 죽겠는데 찾아와서 캐묻는 것에 왠지 심술이 난 밀리는 조금 뾰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왜 물으셔요?”

“안 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말을 해 주려고.”

마침 안 가고 싶어하는 자신의 마음은 어떻게 알았는지. 놀라우면서도 괜시리 그가 얄미워 밀리는 평소보다 조금 대담하게 굴었다.

“왜요, 제가 가는 게 싫으세요?”

공기가 싸늘해지자 괜히 나댔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어쩐지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아도니스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기억 안 나? 네가 성을 나서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


“네 할머니라는 사람때문에 우리 영지는 몇 년간 고통을 겪었어.”

“도련님, 이것부터 우선 놓으시고, ···아파요!”

아도니스가 밀리를 붙들고 향한 곳은 일전에 알렉시스가 사고를 당했을 때 밀리가 몰래 빠져나가려다 들개 무리를 마주쳤던 문으로 향하는 복도였다. 그는 하녀복 블라우스의 소매 끈을 쥐고 있어 그가 앞서 걸어갈 수록 끈이 손목을 조여왔다. 최근 들어 식생활 개선으로 체력이 좋아진 탓인지 아도니스의 걸음은 몹시도 빨라서, 밀리는 손목이 조여오지 않으려면 그에게 맞춰 반쯤 가볍게 종종걸음으로 뛰었어야 했다. 

‘밥을 괜히 해 줬어···!’

성장한 아도니스의 체력과 악력을 온몸으로 느끼며 밀리가 후회하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문이 보이는 성벽에 다다라 있었다. 아도니스는 그대로 밀리를 문으로 끌고가더니 바깥에 내동댕이치듯 데리고 나왔다.

성문 바깥으로 완전히 나오고서야 아도니스는 끈을 놓아주었다. 성벽을 등진 밀리가 설산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그 앞에 버티고 서서. 통증으로 손목을 매만지며 밀리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으면 어느새 바람이 불어왔다. 눈밭 여기저기에서 빛을 반사해 설산을 온통 눈부시게 만들었던 태양은 온데간데 없고 시커먼 구름이 상공을 뒤덮었다.

이윽고 뺨에 차가운게 와닿았다. 얼음 결정이었던 그것은 체온에 닿자마자 물기가 되어 흘러내렸다.

“그것 봐.”

“······.”

성을 나서자마자 내리기 시작한 함박눈에 아도니스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아도니스는 그렇게 잠시 손바닥을 펼쳐 내리는 눈을 감상하다 밀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밀리는 깜짝 놀라서 살짝 뒷걸음질 쳤지만 아도니스는 그대로 밀리의 어깨를 붙들었다.

“이 정도면 알아듣겠지.”

그러고는 낮게 으르렁대며 그녀를 붙잡은 그대로 다시 성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녀를 먼저 들여보내고 등 뒤에서 문을 닫고 들어온 아도니스는 눈이 그치고 바람이 잠잠해질 때까지 말없이 서서 기다렸다 입을 열었다.

“네가 살겠다고 제도로 떠나면 우린 또 다시 눈보라 속에서 고통 받으며 살게 될 것 같은데. 네 할머니가 성유물을 훔쳐 영지에 저주가 내려진 때처럼.”

네 할머니와 저주라는 말에 유난히 힘을 담아 말했기 때문일까, 밀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일렁임을 놓치지 않고 아도니스는 결국 속죄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넌 못 떠나. 네 할머니가 우리 영지에 고통을 준 만큼 너도 여기서 일하면서 속죄해야 될 거야. 알겠어?”

의문조로 말을 마무리한 것 치고는 답을 듣지 않겠다는 것인지, 제멋대로 떠들고 난 아도니스는 밀리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를 두고 등을 돌려 성으로 돌아갔다.


어쩐지 돌아서기 전 봤던 그녀의 얼굴이 조금 상처 받은 것도 같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버렸다.

‘그 녀석 할머니가 잘못했잖아. 진짜 할머니는 아니었겠지만 가족이라며. 그럼 진 빚도 갚아야지.’

그리고 제도에는 가 봤자일 테였다. 현재 시점에서 신참 수도사가 무탈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제도의 중앙 신전 교육에서 충실한 개가 되는 것이 가장 편안 방법이었다. 종교에 몸을 담았으면서 신이 아닌 황제를 섬기고 그만을 위한 기도를 올리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신성력을 가진 게 밝혀진다면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생활은 불가능해.’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서 잠결에 붉은 머리칼을 뜯으며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머리카락을 가리지 않아 죄송하다고 아버지에게 사죄를 했다는 이야기도 생각났다. 

‘눈에 띄지 않고 이대로 지내는게 저 녀석한테도 좋을 거라고.’

그래. 자신은 옳은 말만 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도니스는 머릿속에서 아른대는 풀빛 눈동자를 지워내려 애썼다.


밀리의 신성력을 확인하고 만 이틀.

그녀는 드릴 말씀이 있다며 대공 부부를 성문으로 안내했다. 사용인과 기사 두엇을 대동한 알렉시스와 안나그레타는 잠자코 밀리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밀리는 잠시 시리게 푸르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는가 싶더니, 별안간 성문 바깥으로 척척척 걸어나가더니 입구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발을 멈추었다.

잠시 후,

휘이이잉.

새파랗던 하늘은 어느새 하얀 구름으로 뒤덮이더니,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웬 눈이 온담?”

제각기 움직이는 성 안의 사람들은 잠시 멈추어 눈이 오는 것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이에 질세라 바람도 점점 거세졌고, 그들은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며 모두 실내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남은 것은 대공 내외와 기사, 사용인들 뿐이었다. 그 쯤 되자 밀리는 재빠르게 다시 성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이윽고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는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갑자기 왜 눈이 오는 것인지 의아해하던 그들은 밀리가 들어오자마자 그치는 눈과 바람을 깨닫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늘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하던 마리아와 로엔그린도 난데없는 기현상에 대경실색하여 밀리를 쳐다보았다. 지금이 바로 해명이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헤헷, 놀라셨죠. 저도 잘 모르겠는데, 언제부터인지 성벽 바깥으로 나서기만 하면 날씨가 갑자기 변덕을 부리네요. 꼭 나가지 말라는 것처럼요······.”

밀리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전 제도에 가는 대신 여기 있어야만 할 것 같지요?”

몇십 년만에 찾아온 맑은 하늘이 유지가 안 되면 꽝이잖아요. 하며 알렉시스의 말을 그대로 빌려 덧붙이자, 제도에 가지 않겠다는 그녀의 말을 뒤늦게 이해한 대공 부부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겠니?”

“정말 가고 싶지 않아?”

이상하게도, ‘가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가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 성에 들어온 뒤로 자신 주변을 둘러싸며 일어나던 불행들은 그치지 않았나. 그러나 성 바깥으로 나가면 내리는 눈은 그것이 다시 시작될 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경고일 수도 있었다. 대공이 다친 것처럼.

그리고···

리사, 마리아, 안나그레타, 빌, 알렉시스···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곳에서 좋은 분들과 지내는 것도 제겐 분에 넘치게 행복한 삶인걸요.”

또박또박,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는 씩씩하게 말했다. 아른대는 친절한 얼굴들 사이에 불친절한 황금빛 눈동자가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을 모른 척 하면서.


‘일자리와 방, 급료가 있고 다들 친절하니 더 이상 부러울게 없는 생활이다. 이대로 소박하고 조용하게 지내면 될 거야.’


그런데 이러다가 또 죽으면 나는 다시 회귀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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