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죽으려고 했는데 대공가에 취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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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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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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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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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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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MMY

아무래도 그녀의 물건들을 가져오기 위해 살던 집을 처분하면서 캐서린의 유품들도 정리해 온 모양이었다.

충분히 그럴 법한 일이지만 예고 없이 다가와서일까. 울컥, 밀리는 목이 메는 것을 어떻게든 참으려 애쓰며 다른 상자들도 열어보았다.

예상대로 이 상자에는 캐서린이 쓰던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탁상 시계, 관리가 안 된 장신구, 안경줄이 걸린 두꺼운 돋보기 안경, 손때 묻은 성서 등··· 먼지를 닦아서 가져왔는지 직전까지 사용했던 것처럼 말끔했다. 안 그래도 그리운 냄새에 울컥 눈물이 나오려던 차에 그러한 배려가 느껴지니 가슴이 더욱 뭉클했다.

울지 않으려는 그녀의 부단한 노력은 아마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꺼운 성서를 버릇처럼 파라락 넘겨보다 그 안에서 떨어진 말린 꽃잎 책갈피를 보지만 않았더라도.

색이 바랬지만 그 붉은 꽃잎은 분명 동백꽃이었다.

 

“흑, 흐으으······.”

 

자신과 똑같은 이름의 꽃갈피가 바스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책 안에 끼워넣던 밀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한참을 울고 난 뒤에야 밀리는 겨우 울음을 그쳤다. 돌이켜보면 죽음이 예고되었기 때문인지 막상 캐서린이 눈을 감았을 땐 이렇게 마음 놓고 울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일이 쉬는 날이라 다행이다.’

 

어쩐지 후련해지는 기분 끝에는 내일 퉁퉁 부어 끔찍한 몰골이 될 얼굴 같은 생각을 할 여유도 회복할 수 있었다.

 

똑똑.

 

“밀리, 정리는 잘 되어 가나?”

“헉,”

 

취소. 노크와 함께 들려온 마리아의 목소리에 밀리는 다시 여유를 잃었다. 우느라 벗어두었던 안경을 서둘러 쓰고 황급히 일어나는 과정에서 쌓아두었던 책 무더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책이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저걸 지금 당장 다시 쌓을 순 없었다. 밀리는 과감히 널브러진 책들을 팽개치고 문가로 달려가 마리아를 맞이했다.

 

“부르셨어요?”

“혼자서 괜찮나? 안에서 엄청난 소리가······. 음.”

 

책더미가 무너지는 소리에 문이 열리자 틈 사이로 방 안을 살피던 마리아의 시선이 밀리의 얼굴에서 멈추었다. 안경을 써도 퉁퉁 붓고 빨개진 눈은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밀리는 멋쩍게 웃으며 딴청을 피웠다.

 

“아, 책을 대강 쌓아뒀었는데 잘못 건드려서 무너진 거예요. 다시 쌓으면 되니까 괜찮아요! 그것 외엔 내일 좀 더 부지런히 시간을 내면 될 것 같고요, 어 또······.”

“······.”

 

하지만 마리아도 밀리도 쌓아둔 책이 무너진 것 따위는 아무런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다. 다만 마리아가 퉁퉁 부은 밀리의 얼굴을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다 다시 한번 물어올 뿐이었다.

 

“정말 괜찮나?”

 

아, 왜 자꾸 이러실까. 기껏 사람이 다 울어놨는데, 이러시면······.

괜찮냐는 염려의 말에 다시금 목이 메어오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입을 여는 순간 감정의 주체가 어려울 것 같아 밀리는 그저 입술을 앙다문 채 고개만 끄덕였다.

 

“잠깐 들어가도 되겠나? 별 건 아니고, 짐이 많아보여서. 둘이 하면 빨리 끝나지 않겠어.”

“······감사합니다.”

 

웅얼거리며 마리아를 방 안으로 안내하고 뒤돌아서 닥치는대로 방을 치우고 있자니 다행히 울컥했던 감정이 차츰 가라앉았다. 그 자릴 부끄러움이 채우긴 했지만.

방은 그다지 넓지 않았기에 마리아가 정리를 도와주기 시작하자 눈에 띄는 속도로 정돈되기 시작했다. 휴무일인 내일까지 천천히 마무리하려던 방 정리는 순식간에 마무리되어 캐서린의 유품이 담긴 상자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

“······.”

 

이전에도 느꼈지만 마리아는 캐서린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던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유품이 든 상자를 앞에 두고 멍하니 있을 일도, 저런 표정을 지을 일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한참 둘이서 유품 상자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리아가 말을 걸어왔다.

 

“버릴 건가?”

“잘··· 모르겠어요.”

 

유품 상자를 열자마자 엉엉 운 사람답지 않은 대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밀리가 그녀를 여전히 사랑함과는 별개로, 캐서린 할머니는 분명 중요한 것을 훔쳤고, 그로 인해 몇십 년간 이 영지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피를 나누지 않았더라도 느껴지는 부채감은 어쩔 수 없었다. 부채감을 느끼지 않았더라도 이곳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척’ 했을 거고.

다만 마리아의 대답은 정말로 의외였다.

 

“너무 미워하지 말게. 나는 이해하니까.”

“할머니를요?”

“그래.”

“어째서요?”

 

마리아는 낡은 탁상시계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캐시가 왜 그것을 훔쳤는지, 어째서 도망쳤는지 이야기해주지 않았을 테니까.”

 

밀리는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

 

캐서린과 마리아는 동갑내기 친구이자 올케 시누이 사이였다. 마리아의 남동생 토마스가 캐서린과 결혼했기 때문이었다.

토마스는 북부에서만 나는 광물인 빙정석을 캐는 광산의 책임자로 일했다. 빙정석은 우윳빛의 뿌연 수정 같은 광석이었는데, 주로 반투명한 밀크글래스로 가공해 종교 예술이나 건축에 사용됐지만 북부에서는 고유의 용도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북쪽 경계를 막는 진의 힘을 강화하는 매개체 역할이었다.

대륙의 북쪽은 그림자의 땅이라고 불렸는데, 그곳에는 오래 전부터 신에게 버림받아 인간도 짐승도 아닌 사악한 것들이 살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 그것들이 북부의 경계를 넘어 알비오니아 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앨버 대공의 사명이었다.

하지만 사시사철 춥고 척박한 경계를 지킬 병력을 구하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를 위해 몇 대 전의 선조가 고안한 것이 바로 경계선의 방벽에 신성력으로 결계를 쳐두는 것이었다. 그당시의 대신관을 비롯한 다수의 신관들이 동원되어 성공적으로 펼쳐진 결계는 10년에 한 번씩 고위급 신관(대부분의 경우 가장 가까운 북부 교구의 대사제나 영지 내 신전의 책임 신관)의 신성력과 그 효력을 증폭시켜줄 빙정석을 공급하여 유지해오고 있었다.

문제는 새 황제가 새로운 대신관과 손을 잡고 제국 전역의 신전에서 영향력을 빼앗고 규모를 대대적으로 축소해버렸다는 것이었다. 인구나 날씨 같은 터무니 없는 기준을 들먹이며 대부분의 신전과 교구를 철수시켜버린 덕에 가뜩이나 척박했던 앨버 영지 입장에선 결계 유지를 위한 신성력을 보유한 신관을 찾기 위해 일주일은 걸리는 거리를 오가야하는 신세가 되었고, 그마저도 한 지역을 대표하는 고위 사제의 신성력은 쉽게 사용 허가를 받지 못하 중간급 사제들에게 의지해야했다.

결국 부족한 신성력의 힘은 빙정석의 양을 늘리는 것으로 충원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바로 그렇기에 평소 생산량의 배에 달하는 양을 짧은 기간 채굴해야하는 상황이 찾아오고, 토마스와 인부들이 집에 가지 못하고 광산에서 철야와 노숙을 반복하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애가 얼마나 아빠가 보고 싶었겠어.”

 

당시 대공자였던 현 알렉시스 대공의 유모로 일하던 젊은 캐서린 할머니와 토마스의 사이에는 서니라는 딸이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 서니는 고모인 마리아, 엄마인 캐서린과 함께 대공성에서 생활했지만, 그 시기에 유독 집에 잘 오지 않는 아빠가 그리웠는지 오랜만에 돌아온 토마스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서니는 그날만 토마스를 따라 광산에 가기로 했다. 아빠와 함께 먹을 도시락을 싸던 전날의 서니는 고모인 마리아의 눈에도 몹시 즐거워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게 두 사람이 살아있을 때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무리한 채굴과 타이트한 일정으로 인해 평소에 비해 광산의 안전함 여부를 체크하지 못한 채 돌입한 작업은 예정된 참사를 낳았다. 약해진 지반은 기상 악화로 인한 충격도 견디지 못했고, 무너져내렸다.

 

“당시의 대공 전하, 그러니까 전대 대공께서는 재빨리 구조대를 꾸려서 인부들을 모두 구출하려고 하셨다. 가족인 내가 확실하게 기억해.”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애초에 광산이 무너진 원인은 기상 악화였다. 강풍으로 인한 낙석, 지반을 뭍잡고 있던 나무 뿌리의 훼손 등 동굴에 충격이 갈 만한 요소는 찾아본다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랬던 만큼 그들을 구하기 위해 편성된 구조팀이 제대로 출발하기도 전에맞닥뜨린 날씨 역시도 ‘기합’ 따위의 단어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궂은 날씨에 그들을 억지로 사고 현장에 투입했다 2차 인명 피해가 날 것을 우려한 대공은 고민 끝에 날씨가 조금 잠잠해지는 것을 기다렸다.

 

“당연하지만 이 결정에는 수긍하는 사람과 반발하는 사람이 모두 있었다. 캐시는 그 중 반발하는 쪽이었고.”

 

반발하는 쪽의 인원은 수긍하는 쪽보다 많지 않았고, 대공의 판단대로 구조는 눈보라가 지나간 뒤에야 시작되었다. 붕괴 사고가 일어난지 꼬박 일주일 만이었다. 그리고 구조 작업이 시작되고 사흘 뒤, 열흘 만에 매몰된 인부들이 모두 발견되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너진 굴에 깔려 몸 여기저기가 부서진 인부들의 주검과 다르게 오직 어린 서니의 시신만이 멀쩡했다.

 

“···토마스의 품에 안겨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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