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를 만나다
이석윤 부장은 조합 총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휴일도 마다않고 서둘러 준비를 마친 뒤 총회장으로 달려왔다. 가방 안에는 며칠 밤을 새워 준비한 발표 자료가 고이 들어있었다.
이석윤은 총회장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살폈다. 100명 가량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분위기는 어딘가 이상했다.
그 분위기는 투표가 시작되자 더 수상해졌는데, 갑작스럽게 후보가 사퇴를 하는 것이 아닌가.
‘후보가 갑작스럽게 사퇴를 했다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이석윤은 자리에 앉아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참석자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무언가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곧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 온 이유는 하나였다.
‘지금 중요한 건 내 앞에 놓인 수백억대의 계약이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어. 나는 그 계약만 성사시키면 돼.’
총회가 시작되고, 김건우가 무대에 올라 조합비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재원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현재 토지 5만5천평을 평당 5만원에 확보했으며, 추가로 토지 5만평을 평당 5만원에 구매할 계획입니다. 총 52억 5천만원이지요.
그리고 주택 건설 비용으로 150억 원, 토목 공사 비용 50억 원, 설계비 20억, 예비비 27.5억원 등 총 300억 원이 필요합니다. 1인당 3억이지요.
이 중 3천만 원은 계약금으로, 나머지 2억 7천만 원은 귀농 창업 자금으로 충당할 계획입니다.”
이석윤은 김건우의 발표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설계비와 예비비에서 많이 남겨 먹겠군... 그런데 공장과 상가비용은?’
이석윤 뿐만 아니라 다른 청중들도 계산식에서 의아했는지 웅성거리자 김건우는 바로 말을 이었다.
“물론 의아해 하실 수 있겠습니다. 바로 공장과 상가 및 학교와 같은 기타시설을 짓는 비용은 그럼 어디에 있느냐. 예비비와 바로 정부 지원금을 타먹는 것입니다.”
‘정부 지원금?’
“인구 감소 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특별법을 마련했는데, 매년 1조 원의 재원이 마련됩니다. 그 중 89개 지역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1개 지역당 약 110억 원가량의 지원이 가능한 셈이죠.
우리는 그 자금을 활용해 공장과 상가 및 부대시설을 지을 계획입니다. 우리같은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곳이 거의 없기에 정부 돈은 눈먼 돈 먹기거든요.“
사람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나오자 바로 말을 이었다.
“물론 정부가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면, 예비비로 김치 공장만을 지어 우선 김치로 매출을 올린 뒤 그 매출의 일부를 공제해 나머지 시설을 지어나가겠습니다.”
이석윤은 속으로 감탄하며,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역시 김대표, 정보력과 준비성 모두가 대단하군··· 이 사업은 반드시 잘 될거야.’
발표를 들으며 감탄하는 것은 이석윤 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이민용도 마찬가지.
이민용 역시 김건우의 발표를 들으며, 자신의 계획이 얼마나 허술했는지와
김건우의 준비성과 정보력은 이미 자신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음을 깨달았다.
이민용은 발표를 들으며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내가 조합장이 되었더라도 이 정도로 철저히 준비할 수 있었을까?’
조합총회가 무르익으며 김건우와 이석윤이 무대에 올라 토지 구매부터 주택 건설, 토목까지 세심하게 계획된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곧이어 진행된 운영계획 발표에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방송국 국장, 마트 관리자, 캠핑장 관리자 등이 차례로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기대와 설렘 속에 발표를 듣고 있을 때, 김건우가 말했다.
“그리고 캠핑장 관리자는··· 성환 씨가 맡아주시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민용은 눈을 크게 뜨며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성환이 무대로 올라오는 모습에 그의 머릿속은 혼란에 휩싸였다.
‘성환 형제님? 아니, 성환 형제가 왜 저기 있지? 우리 패거리 중 한 명이었는데···’
성환이 당당하게 무대에 서서 운영계획을 발표하자, 이민용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의 목소리는 이민용에게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애초부터 저쪽 편이었던건가?
발표가 마무리 되고 조합총회가 끝나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이민용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다듬지 못한 채 성환을 찾아나섰다. 그러곤 다가가 성환의 어깨를 붙잡았다.
“성환 형제님, 어찌된 일이죠?”
성환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별거 아닙니다. 김건우 형제님쪽에 가니까 캠핑장 관리자가 된 거죠.”
이민용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랬어요? 저도 캠핑장 관리자를 시켜드릴려고 했는데... 무슨조건이길래 바로 배신할 수가 있죠?”
성환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마주쳤다.
“형제님, 저도 처음엔 그럴려고 했었죠. 그런데 형제님이 저희에게 자리를 나눠줄 때 조건을 달았잖아요.”
“그건 당연한거 아닌가요?”
“아니죠. 애초에 조합장은 형제님 자리도 아니고. 전 그런 거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민용은 할 말을 잃고 성환을 바라봤다. 그는 정말로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그렇다고 해도 저를 이렇게까지 속여야 했나요? 그건 너무 하잖아요···”
이민용의 목소리는 점점 더 떨리기 시작했다.
성환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김건우 형제님은 저한테 바로 캠핑장 운영권을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쪽으로 가기로 한 거죠. 게다가 형제님이 주택조합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이민용은 주먹을 꽉 쥐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성환이 이자율이 높은 대출을 알려준 것도, 환불 가능한것도 선착순임을 자신의 패거리에게 알린 것도 김건우의 계획일 가능성이 컸다. 모두 김건우 손바닥 안이었던 것이다.
이민용은 자신이 얼마나 철저히 속았는지를 깨닫고, 깊은 배신감과 함께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내 그 분노는 무력감으로 변했다. 김건우에게 약점 잡혀 붙잡혀있는 신세인데 화내서 무엇 할 것인가? 잘 지내는 수밖에. 이민용은 성환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가며 말을 뱉었다.
“그래요. 뭐 그럴 수 있죠. 하지만 대단히 섭섭하네요.”
성환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형제님, 이건 비즈니스입니다. 감정이 들어갈 자리가 아닙니다.”
이민용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고 자리를 떠났다. 자신이 성환에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완전히 패배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
조합총회가 성공적으로 끝난 후, 효천은 건우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고생했다. 이제 다음단계로 갈 수 있겠군.”
“다음 단계?”
“조합 설립인가다. 우리 같은 경우 군에 위치했으니 군수에게 신청하면 된다.”
“그렇군. 언제 제출하러갈까?”
“오후에 가면 된다.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 잡아놨거든.”
나와 효천은 군수와의 약속을 위해 서둘러 길을 나섰다. 조합설립인가 신청서를 손에 쥔 건우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벌써 여기까지 오다니. 처음에는 먹튀할 생각이었는데 어느덧 진짜로 해볼 마음도 생겼다.
“효천아, 설립인가는 문제 없겠지?”
“물론이지. 군수도 인구가 몇백명이나 느는데 특별히 반대할 이유는 없을거다.”
효천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군청에 도착한 우리는 군수실로 들어갔다. 비서를 통해 군수실로 들어가니 서글서글한 인상의 군수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김건우 대표님, 처음 뵙네요. 자, 앉으시죠.“
“네, 감사합니다.”
“귀농 주택 조합 설립이라니, 좋은 일 하시는군요."
군수의 따뜻한 환대에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도 미소로 화답했다.
“저희도 큰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군수에게 신청서를 제출했고 군수는 서류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서류를 검토하던 군수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군수는 서류를 내려놓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좀 어렵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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