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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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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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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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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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정우’로 개명하다

DUMMY

세월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1년이면 365일! 하루 스물 네 시간! 한 시간은 60분!


누구에게나 단 한치 틀림없는 바둑 돌 같은 것이었지만 어린 시절 세월은 거북이처럼 더디만 갔다. 그러나 어른이 된 후부터는 나이만큼 가속도가 붙은 듯 빠르게 지나갔다.


‘구석’이와 스님은 서로가 느끼는 ‘세월 감’은 달랐지만 20여 년도 훨씬 전, 쌀 튀밥을 시주하고 받았던 오래 전 일을 떠 올리며 회상했다.


“그 때 불경을 하던 소승에게 쌀 튀밥을 두 차례나 주셨지요?”

“네, 맞아요. ‘물’과 ‘불’이 있는 관상이라 초년 운세가 박복(薄福)하다고 했고요. ‘구석’이란 이름자도 안 좋다고 법력 높은 사형(師兄)이라면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나중에 찾아오라며 쪽지를 주셨어요.”


“잘 왔습니다. 지금은 초년 운이 다할때라선지 관상이 그 때와는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여기 이러고 있지 말고 차도 한잔할 겸 사형한테 가 봅시다.”


객방을 나와 책이 도서관처럼 진열된 서재로 갔다.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책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대웅전 앞 풍경이 흔들리며 청아한 소리를 냈다.


마치 어서 오라고 환영하는 인사말 같기도 했다. 감방에서 수의를 걸친 재소자들과 별사탕이나 건빵을 가지고 다투던 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


스님이 꼼짝도 않는 마네킹처럼 정좌(正坐) 책을 읽고 있었다. 하루도 빼지 않고 면도를 해서 일까? 번쩍번쩍한 두상이 빛이 났다. 선홍빛 피부도 광채가 났다.


“사형! 원채 오래 전 일이라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말씀 드렸지요? 어느 날 ‘신원리’로 탁발을 나갔다가 튀밥기계 아저씨를 졸졸 따라다니는 여섯 살 꼬마를 만났다고."

"글쎄요. 들은 것도 같고."

"그 때 꼬마한테 쌀 튀밥 시주를 받았는데, 안타깝게도 두 사람 운세를 가지고 있었던 아이였다고 했어요."

"맞아요. 기억이 납니다."

"그 꼬마가 의젓한 청년이 돼서 왔네요."

“나무관세음보살!”


보통사람들이 ‘안녕 하세요.’ 라고 인사하는 것처럼 스님이 나누는 인사말은 ‘나무관세음보살!’이었다.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누구에게나 똑같은 나무관세음보살! 주문을 했다.


“부처님이 지어 놓은 인연을 우리 같은 보잘 것 없는 중생(衆生)이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사형이라는 스님은 보국스님 뒤를 따라 들어간 ‘구석’이를 스캔하듯 위아래로 살폈다. 그리고는 끌,끌,끌 혀를 찼다.


“나랏밥을 꽤나 먹은 듯한데, 어디서 오는 길인가요? 주변에서 찬바람이 부는 것 같기도 하고?”


‘팩트’가 같은 일을 두고도 하는 일이나 직업에 따라 표현 방법이나 사용하는 단어는 수만 가지였다. 사형이라는 스님이 출소한 ‘구석’이한테 ‘나랏밥’이라고 했는데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주변에서 ‘찬바람이 분다.’ 는 의미는 또 무엇일까?


‘구석’이는 자신 일임에도 처음 겪는 일이라 대중탕에서 혼자만 벌거벗은 것처럼 부끄러움을 느꼈다. 얼마 전에 만났던 택시기사는 '관식'이라고 했는데도 관식을 군에서 주는 짬밥이라고 이해했었다. 그러나 사형 스님은 단박에 징역살이 한 구석이를 알아봤다. 신통한 통찰력에 많은 것들을 생각하느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키고 안 지키고는 어차피 자신 몫이지만 조금 일찍 만났더라면 소승이 작은 도움이라도 됐을 텐데, 이 또한 사람 힘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사형 스님은 알아 들을 수도 없는 말을 뜬구름 잡듯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러나 ‘구석’이는 스님 말씀을 이해했다.


“스님께서 찾아오라고 적어 주셨던 쪽지를 생각날 때마다 드문드문 보기는 했지만, 막상 찾아오지는 못했습니다.”


“그것 역시 전생 업보(業報)인 것을. 힘없고 무지한 중생이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지금은 그득했던 물을 쏟아낸 빈 병처럼 마음은 개운한가요?”


순간 ‘구석’이는 사형 스님 앞에서는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 놓고 싶었다.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자신만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은 나라에서 내린 벌을 끝내고 나오는 길이라 마음은 홀가분합니다.”

“그래, 감옥살이는 얼마나 했나요? 그곳도 복잡한 닷새 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곳이라서 간혹 못된 씨앗이 토양을 만나 발현(發現)하기도 하지요.”


‘구석’이는 징역을 살았다는 것이 창피한 일이라 자신 일임에도 ‘나라에서 내린 벌’이라고 순화 했다. 그러나 사형스님은 단박에 '감옥살이''라고 일갈했다. 씨앗의 발현은 감방에서 재소자끼리 머리를 맞대고 하는 ‘도적놈 모의’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꼬박 3년 살았습니다.”


막상 ‘구석’이를 서재에 데리고 온 보국스님은 아직껏 말 한 마디 못하고 듣고만 있었다. 한순간 끼어 들 틈조차 주지 않고 사형 스님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해댔다.


***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쭈그리고 앉은 다리가 쥐가 나도록 저려왔다. 그러나 힘들다고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날 분위기는 아니었다. 인생! 좋은 가르침을 받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구석’이란 이름자는 마음속에서 깨끗하게 지우고 ‘정우’로 살아 보세요.” “이름을 정우로 바꾸라고요?”

“바를 정(正), 벗 우(友), 좋은 친구라는 의미지요. 한 자씩 떼어 놔도, 두 자를 붙여 이름자를 써도 그렇고 사방이 막힌 ‘구석’이 보다는 한결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정우!


구석이 자신이 생각해봐도 이 구석, 저 구석, 혹은 방구석이라고 놀림을 당했던 구석이 보다는 '정우'가 듣기도 부르기도 세련되고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네, 스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구석’이는 정우로 출소 날 개명(改名)을 했다.


꽤나 긴 시간이 흘렀지만 띄엄띄엄 한마디씩 하는 사형스님 얘기는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구석’이 가슴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마치 학창시절 근엄한 교장선생님말씀을 들은 듯 무겁고 진중하게 받아 들여졌다.


“사형! 어차피 좋은 이름까지 내린 마당에 앞으로 닥칠 일도 한 말씀 해 주시지요.”


보국스님은 사형임에도 죄송하다는 듯 이제사 말문을 열었다.


“허허, 내가 어디 남의 관상이나 봐 주는 사람입니까. 우리같이 산사(山寺)에 숨어 들어 땡 중이나 할 팔자도 아닌 것 같고. 그러나 조금 늦긴 했지만 이곳까지 제 발로 찾아 온 것도 그렇고, 꽤나 오랫동안 부처님 손길이 필요할 듯합니다.”


“네, 스님! ‘정우’라는 이름자도 그렇고, 스님 말씀 명심해서 따르겠습니다.”


‘구석’이는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란 이름자도 마음에 들었다.


“고통이 따르는 일이겠지만, 지금껏 ‘구석’이로 잘못 살아온 몸과 마음을 닦아낸다는 의미에서 대웅전 부처님께 ‘천 배’나 ‘만 배’를 올려 보세요. 옆에 백지를 두고 숫자만큼 ‘정우’라는 새 이름자를 써보면 더 좋을 것 같고.”

“천 배나 만 배를 올리며 정우란 새 이름자를 절 숫자만큼 써보라고요?”

“참회(懺悔)나 잘못을 닦아내는 방법은 누구의 주문이나 가르침 보다는 자신의 순수한 의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누구에게 일일이 확인 받을 필요도 없고, 배고플 때 밥 먹는 것처럼.”


사형스님과 한 차례 만나 짧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깊은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알 수 없는 것에 싸여 점점 깊어지는데, 이렇게 해야만 자신이 좋은 마음으로 바르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형스님과 보국스님, 그리고 새 이름을 얻은 '정우' 세 사람은 낙엽 냄새만 진하게 도는 맛도 향도 없는 진황색 녹차를 마셔가며 오래도록 차담(茶啖)을 나누었다. 그러나 꽤 긴 시간에 비해 두 분 스님이 해 주신 말씀은 몇 마디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의미를 되새겨 보면 뼈에 새겨야 할 만큼 수긍이 가는 말씀이셨다.


***


이곳 법당은 학생들이 도서관을 찾는 것처럼 스님들이 부처님 말씀과 불경을 공부하는 곳이었다. 좋은 이름을 내려 주신 사형 스님처럼 환갑이 지난 스님이 있는가 하면 간간히 혈색 좋은 젊은 스님들도 출입했다.


구석이가 여섯 살 때보았던 것처럼 피부가 하얀 젊은 스님도 보였다. 스님들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을 했다. 그리고 나무관세음보살! 이란 주문을 외웠다.


“보국스님! 사형스님이 저한테 어차피 땡 중은 아닌 팔자인 것 같고, 구석이란 이름자를 정우로 바꾸라고 했는데 스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내 의견은 하나도 중요치 않아요. 사형이 한 얘기라면 내가 한 얘기와 같고. 이젠 계속해서 ‘구석’이란 이름자를 쓸지? '정우'란 새로운 이름 자를 쓸지? 본인이 결정하면 될 일이고.”

“보국스님! 저 얼마간 이 절에 머물러도 돼요?”

“그럼요. 어차피 나를 찾아온 손님인데 마음 시키는 대로 하세요. 머리 복잡하게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스님도 아니면서 하는 일도 없이 절에 머무르기가 뭐해서요.”

“부처님을 모시는 절이란 잘못된 마음을 닦아내는 곳입니다. 누구라도 언제까지라도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르면 됩니다.”

“네에, 그럼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


이곳 절간은 새소리, 바람소리,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잎새만 고요하게 흔들렸다. 고요한 감방이었다. 잎새를 흔드는 바람은 대웅전 추녀 끝 풍경도 자유롭게 흔들었다. 저토록 청아한 소리를 냈지만 바람이 없다면 적막함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가에서 깨끗한 자갈돌을 들여다보듯 정갈해짐을 느꼈다. 절간은 언제나 맘대로 출입할 수 있는 철창 없는 감방 같은 곳이었다. 인간은 삶의 변화를 위하여 때론 감방 같은 곳이 필요하기도 했다.


콜록콜록 기침이 나오는 담배가 뭐라고 강렬하게 니코틴 증상이 왔다. 앞날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교도소 감방에서도 한 달이면 몇 차례씩 담배를 피울 수가 있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었다. 하루도 견딜수 없을 만큼 지옥 같던 감방생활 역시 하루하루 날 수가 쌓일수록 현명하게 살아가는 요령도 터득하게 되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해야만 그나마 유희를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곳 감방은 별의별 인간이 머물다 가는 곳이었다. 바깥세상처럼 돈만 있다면 못 사는 것이 없었다. 단지 열배쯤, 아니 그 이상으로 대가가 비쌌다. 도둑놈 소굴답게 가격을 정하는 거 역시 도둑놈 마음이었다.


금단 현상에 스트레스가 최고조인 재소자들이 영치금을 모아 한개 피 당 만원씩 담배를 샀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서 확인할 순 없었지만 담배장사는 교도관이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삼번 방 깡패두목이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누가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돈만 있다면 금지 품목인 담배도 감방에서 살 수가 있었다. 단지 가격이 상상을 초월했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유통구조는 인권이 차압된 감방에서조차 불변(不變)인 셈이었다.


재소자들이 영치금을 모아서 보낸 후 이틀이 지나면 감방장은 운동시간 누군가로부터 신문지에 싼 ‘낱개 담배’를 받아왔다. 종이나 벽에 문지르면 불이 붙는 딱성냥도 함께 받았다.


교도관 눈을 피해서 꿈에서조차 간절하게 생각났던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재소자들은 천당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고놈 담배 맛이란! 아는 사람만 아는, 천당도 지옥도 구경할 수 있는 맛을 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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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2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10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10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10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8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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