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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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작품등록일 :
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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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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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절간 계집아이 ‘용순’이

DUMMY

감방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곤 교실에는 선생님과 학생이 있듯이 재소자와 교도관 뿐이었다.


저녁 시간 교도관은 수십 개 감방을 살피느라 창문 쪽 복도를 왔다 갔다 했다.

막내는 복도와 연결된 창문을 열고 교도관 동태를 살폈다.


가장 먼저는 권력 순서에 따라서 감방장과 부감방장 차례였다.

다른 재소자들도 원을 그리고 앉아 감방장 부감방장 입에서 나온 담배를 한 모금씩 빨아 대기 시작했다. 지옥 같던 감방의 시름이 살만한 세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뭐라도 할 수 있다는 에너지가 생겼다.


자신 번호표를 기다리듯 차례를 지켜가며 눈치껏 빨아 들여야만 했다. 자동차가 뒤에서 달려오듯 마음이 급해지기도 했다. 이런 느낌을 얼마나 오래 동안 참았는지 사르르 없어지는 연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코와 입을 통해 체내로 흡수된 연기가 발아된 씨앗에서 온 몸에 새싹으로 피어나듯 살아나는 느낌이었었다.


마른 잎처럼 매 말랐던 몸이 피가 돌며 살아나기 시작했다. 작은 일 하나까지 생각나며 아이러니하게도 이젠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희망도 생겼다. 담배는 이런 것이었다. 아직은 까마득하게 남은 출소 날, 하루 빨리 왔으면 하고 뭔 가를 기다리게 되었다.

온전한 마음이 되었다.



“스님. 담배 한 대만 피워도 될까요?”

“그래요. 가장 중독성 강한 것이 담배라서 안 좋긴 하겠지만 안 좋은 것 이라고 살면서 모두 안 할 수가 있나요.”


정우는 예의를 갖추느라 몸을 돌렸다.


허락을 얻고 피는 담배라선지 맛이 좀 더 짜릿했다. 아침나절 터미널에서 담배 한 갑을 사서 지금까지 겨우 두 개피를 피웠다. 담배 부자는 오랜만의 일이었다. 파도가 잠을 잔 듯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내일부턴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큰절을 올리며 ‘이 정우’라는 새 이름자를 써 보려고요.” “그러세요. 정처없이 떠 도는 것 보다는 어디엔가 머무는 것이 지나고 보면 도움이 될 때가 있어요.”


***


산사(山寺), 이곳은 산골짜기라선지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벌써 온 세상이 적막에 쌓였다. 오랜만에 바깥에서 맞는 저녁이었다. 이른 봄이라 골짜기에선 개굴개굴 개구리 우는소리가 합창이 되었다.


개굴개굴, 개굴개굴, 여러 마리 의태어 표현은 어려웠다. 아기주먹만한 개구리가 울면 동네 잔칫날인 듯 골짜기 개구리가 따라서 울었다.


칠흑 같은 어둠에 쌓여 추녀 끝 풍경소리만이 땅랑땅랑 청아하게 들리는 운방사!

이 곳, 절간은 솔솔바람이 소리없이 지나가듯 스님들 발걸음조차 숨 숙이고 사뿐사뿐 걸었다.


체육관 딸린 기와집이라면 ‘용 문신’ ‘범 문신’ 하마 닮은 뚱뚱한 깡패 새끼들이 근력 운동을 하며 내뱉는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입에서 냄새가 나도록 시끄러웠는데, 고무신 차림 스님들이 내는 발걸음은 물총새가 물 위를 나는 듯 고요했다.


초저녁 아홉 시!

보통 사람들이라면 낮 시간은 밖에서 일하고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귀가(歸家) 가정 생활을 하거나 시작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곳 절간은 일과를 마친 스님들 모두가 수면 해야 되는 취침 시간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과 세 시간쯤 시차(時差)가 느껴졌다. 그러나 정우도 따라서 취침을 해야만 했다. 어제까지 생활했던 감방 역시 절간과 같이 저녁 아홉시면 취침나팔을 불고 소등 했다.


창문 하나 없는 자그만 객방, 혼자서 눕자 인생이란 것이 갑자기 외롭고 슬프게 느껴졌다. 어젯밤을 보냈던 교도소 감방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엿가락 늘어지듯 사지(四肢)조차 맘대로 펼수 없었던 좁은 감방!!!

'관물'로 받은 담요조차 국가 재산이라는 이유로 ‘법무부 마크’가 찍혀있었다. 잠자는 시간마저 감시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수면 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는 침묵의 시간이었다. 잠이 들면 세상의 번뇌는 말끔히 잊을 수가 있었다.


정우는 이 시간이면 삼류 극장에서 영사기 필름을 돌리듯 지난 일들이 생각났다. 망치 형님한테 대들며 물불 가리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던 일도 생각났다. 오야붕에 대한 적개심과 울분에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초한 일이었지만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었다.


감방 재소자들은 대부분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은 자초한 일이므로 억울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만가지 생각을 접고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마음과 달리 잠은 오지 않았다. 여러 차례 몸을 뒤척였다. ‘나대지 말고 조용히 자빠져 자라’는 감방 장 육두문자가 감방에 울렸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었다. 묘하게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밤 시간이면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잘한 일보다는 잘라내 버리고 싶은 일들이 몇 곱절이나 많았다.


어느 선각자 말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라는 구절이 크게 틀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잠결, 어디선가 염불 외는 소리와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새벽이라선지 작은 소리도 크게 들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제 왔던 절간, 새벽 세 시 무렵이었다. 문밖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염불 소리였다. 스님들이 부처님께 새벽 예불을 하는 시간이라 짐작이 되었다. 절간은 저녁 아홉시면 취침 다음날 세시면 기상 예불을 드린다고 했다.


자신도 일어나서 어줍은 몸과 맘으로 염불소리 들려오는 절 방으로 갔다. 스님들이 절 방에 모였다. 환한 대낮처럼 얼굴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젊은 스님들도 드문드문 섞여있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두상이나 아담한 체구로 보아 비구니도 섞여있는 듯 했다.


30여분 남짓 예불을 마치자 정우는 사형스님 말씀처럼 대웅전으로 가 부처님 앞에서 큰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차렷 자세로 무릎과 허리를 굽혀 온 몸으로 절하며 양 손바닥을 허공을 향하여 마치 뭔 가를 내려 달라는 듯 반듯하게 폈다.


다른 건물에 비해 두 배쯤 높은 대웅전 천정에 사람들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은 수백 개 기다란 쪽지가 늘어져 있었다. 정우도 이곳에 자신 이름자 ‘정우’를 달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르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경건한 마음! 똑같은 자세로 한 시간쯤 절을 했을까? 넓은 백지에 쓰기 시작한 ‘이정우’란 이름자도 페이지를 넘겨 까마득히 지면을 채웠다.


이정우, 이정우, 이정우,,,,


나쁜 기운이 빠져 나간 듯 겨드랑이부터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늘부터 새로 태어나기로 다짐한 이상 땀이 난다고 큰절 올리는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지금껏 사용해 왔던 ‘구석’이라는 이름자는 멀리 보내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처럼 새 이름 ‘정우’로 밝게, 그리고 옳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쉬지 않고 큰절을 했다. 다행히 감방 생활 중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하게 운동을 했던지라 몸은 다져진 근육질이었다. 젊은 나이 덕분에 무릎도 새 기계처럼 싱싱했다.


마라톤을 완주하듯 급하게도 천천히도 말고 쉬지 않고 절을 했다.


깊은 바다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자신의 한계는 어디쯤일까 가늠할 수가 없어서 몇 번 해야지 계획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무아지경이 되어 잘못 살아온 지난날을 짓이겨 뭉개버리듯 쉬지 않고 계속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스물여덟 나이!

사랑하는 이성을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릴 나이였지만 날마다 나쁜 짓을 했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 흡족하게 깡패 짓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꿈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 같은 것은 한순간도 없었던 지난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깡패란 이유로 약한 사람들에게 양아치 짓을 하며 패싸움을 할 때면 심지어 연장이나 각목을 휘두른 일도 있었다. 누구를 위하여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형님들이 시키면 시키는 이상으로 행동 했다. ‘명’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 같은 인생이었다.


***


큰절을 올리는 시간이 세 시간쯤 지났을까? 머리부터 시작된 땀이 목덜미, 배, 등짝, 허벅지까지 소낙비를 맞은 듯 흘러내렸다. 가장 아랫단 양말에 흥건하게 고였다.


지금껏 이 지경이 되도록 땀을 흘려 본 일도, 무엇인가를 무아지경에서 해본 경험도 없었다.


“아저씨! 아침 공양 드시래요.”


누군가 밖에서 정우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 절간은 남자는 ‘처사님’ 여자는 ‘보살님’으로 부르는데 친근하게도 사회에서처럼 불렀다. 강아지도 따라와서 ‘멍멍’ 짖어 댔다. 운방사에 첫발을 내 딛던 날 꼬리 치던 그 녀석이었다.


초등학교 5~6학년쯤 됐을까? 긴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계집아이였다.


“그래, 알았다. 너도 이 절간에 사니?”


계집아이가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이름이 뭔데?”

“용순이요. 이용순!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용순’이란 계집아이, 이름이 약간은 촌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답답한 가슴이 창문을 만난 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용순’이한테 편안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물어 볼 수가 있었다.


“아저씨도 너와 같은 이씨야. 이름은 이 정우!”


사형스님이 지어주신 새 이름을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소개했다. 정우란 새 이름이, 약간은 창피했던 구석이 보다는 백배 쯤 세련되고 맘에 들었다.


“아저씨도 스님 되려고 왔어요?”

“아니야, 그런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어른이면서도 살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단다.”


“옷 갈아입어야겠어요. 아저씨, 한증막에서 나온 사람같아요. 하하하.”


‘용순’인 어디론가 부리나케 가더니 스님들이 입는 개량한복을 가져왔다.

얼마나 작은지 소매도 발목도 반쯤은 나왔다. 그러나 부탁도 안 했는데 자신을 배려 승복을 챙겨 왔다는 것이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대충 옷을 갈아입었다.


“아저씨, 어깨 몽고 반점 있어요. 흐흐흐.”


‘용순’이가 놀리듯 말했다.

그러나 어깨라서 정우 자신은 볼 수가 없었다. 깡패들과 대중탕을 갈 때면 커다란 몽고 반점을 보고 '구석이, 너는 용 문신은 안 해도 되겠다' 고 놀림을 받곤 했었다. 거울에 비춰봐야만 보이는 곳이라 평소엔 잊고 살다시피 했다.


“그래 용순아,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용순’이도 좋다는 듯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절 방 건너 식당은 20여 평 남짓으로 제법 컸다. 지난 겨울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장작 난로가 중앙에 그대로 있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이 지긋한 스님이 처음 만난 정우를 향하여 아는 척 했다. 정우도 합장을 하고 처음으로 ‘나무관세음보살!’을 입에 올렸다. 무슨 뜻인지, 무슨 의미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스님들 두상이 반짝 반짝 빛이 났다. 순간 세면 시간은 보통 사람들 절반이면 충분할것 같다는 장난끼 어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님들이 많아서 잔반을 염려한 탓인지 배식(配食)은 먹을 수 있는 양 만큼 식판에 담아먹는 ‘뷔페식’이었다.


수저와 젓가락을 챙기고 네모난 식판에 밥과 국을 담았다. 육류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나물류 반찬을 가짓수대로 담았다. 3년 감방 생활 중 삼시세끼 배식 받던 일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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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09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09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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